주민이 직접 조합을 만들지 않고 부동산 신탁회사를 통해 재건축을 추진하는 ‘신탁 방식 재건축’이 인기를 얻고 있다. 사업장마다 복잡한 인허가 과정과 공사비 갈등이 반복되자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권에서도 신탁 방식을 선택한 단지가 생겼다. 그러나 일부에선 높은 수수료 등을 이유로 신탁 재건축을 포기하는 곳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권까지 진출한 ‘신탁 재건축’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삼풍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투표에 참여한 소유주 99%의 동의를 받아 한국자산신탁과 한국토지신탁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 신탁사로 선정했다. 추진위는 이달 컨소시엄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신속통합기획과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1988년 준공된 삼풍아파트는 지상 최고 15층, 24개 동, 2390가구의 대단지다. 대형 신탁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전문성을 내세우면서 삼풍아파트 주민의 동의율이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 중 다수가 신탁 방식을 선택했다. 시범아파트뿐만 아니라 은하, 광장, 공작 등 7개 단지가 신탁사를 선정해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신월시영(사진) 등 양천구 목동·신월동 노후 단지도 신탁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여의도와 목동 재건축 단지는 주변에서 신탁 방식으로 사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확인하고 신탁 재건축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강북 지역에서는 신탁 방식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확산하고 있다. 노원구에서 2200가구 규모의 상계주공3단지가 최근 신탁 방식을 통해 재건축 사업을 하기로 했다. 앞서 상계주공 11단지와 5단지도 신탁방식 재건축을 확정했다. 도봉구 방학동 신동아아파트 1단지는 최근 신탁 방식 재건축을 위한 설명회를 열었다. 주요 신탁사가 설명회에 참여하며 높은 열기를 보였다.
신탁사도 도시정비 사업 수주를 위한 조직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사업본부 인력을 도시재생팀으로 재배치했다. 정비사업 수주가 늘며 사업 관리 인력이 부족해지자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전문성 강점…높은 수수료 고려해야 신탁방식 재건축은 조합이 직접 시행하는 것과 달리 신탁사가 시행을 맡는다. 신탁사는 도시정비사업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주민이 추진하는 것보다 사업 속도가 빠른 편이다. 게다가 조합 내 대립이나 시공사와 공사비 갈등을 겪는 단지가 늘어나면서 신탁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 정부가 최근 정비사업 시행 과정에서 신탁사 특례를 허용하기로 하면서 신탁 방식에 관심을 갖는 단지가 더 늘었다. 현재 조합을 설립해 정비사업을 추진하면 정비계획 지정에 이어 추진위 설립과 조합 설립, 사업시행 인가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신탁 방식을 선택하면 정비구역과 사업시행자를 동시에 지정한 뒤 바로 정비사업계획 통합 수립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일부에선 수수료가 높고 성공 사례가 많지 않아 단지별 특성에 맞게 사업 추진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탁사는 분양대금의 1~4%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사업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 부담도 늘어나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