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유기성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고난 연단 징계에 대해 묵상을 하게 된다. 2013년에 한 설교이니 11년이 지난 설교이다. 히12장의 본문이었다. 예화로 큰딸의 경험을 말하였는데, 자기반에서 1등하는 아이의 집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1등하는 아이의 엄마가 보살이었다고 하였다.
왜 목사의 딸은 1등을 못하는데 보살의 딸은 1등이냐는 항의였다는 것. 초등학생다운 항의일 것이다. 성적은 본인의 노력일 뿐이다. 부모의 직업은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을 한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처음부터 고난과 연단의 삶을 살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치 부자집 대문앞에서 살아가던 거지 나사로처럼! 결단코 귀신의 조종을 받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어리석음은 범치 않았을 것이다.
신구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연단을 많이 받은 인물일수록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칠만큼 평탄한 삶을 산 인물치고 범죄에서 자유로운 인물은 없다. 롯이 삼촌 아브라함으로 부터 양보해주는 은혜를 입지않았더라면 결코 소돔성에 거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좋아보이는 장소를 양보했기 때문에 타락의 삶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다.
징계는 당하는 본인을 위축시킨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굳이 하나님을 바라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아쉬움이 많은 부족한 연단을 주신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랑하는 자녀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이끄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하지만 막상 징계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본인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실수때문에 당하는 징계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을 위한 연단은 징계가 아니다. 다만 구분을 못하다보니 혼동을 겪게되고 때때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욥이 상상하기 힘든 고난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때믄이었다고 이론으로는 인정을 하면서도 막상 내 자신이 겪는 힘듬에 대해서는 즐거움으로 감사하지 못함은 왜일까? 결론은 간단하다.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고 완전히 죽지 못한 때문이다. 오직 예수 한분이면 족하다는 믿음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첩경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