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베티 게천 , 서프라이즈 "모든것을 바치다"편
여시들 하이헬로우안녕?!?!?!ㅎㅎㅎㅎㅎ
일단 나 싸대기한대 맞고 들어갈게 쭈굴쭈굴.......
제목에....제목이 너무 진부하면 안보고 지나칠까봐 저렇게(?)해봤어 ....자진신고..
안돼면 말해줘 고칠게 (소근소근)
글에 문제있어도 말해줘
글 제목 바꿨어요!
그래도 이글은 600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글이야ㅎㅎㅎㅎㅎㅎㅎㅎ코가 길어지는거 같기도 하궁ㅎ
어쨋든 여시들 3분 내가 루팡해감 잇힝ㅎ
여시들 재밌는 얘기 들려줄게 3분만 투자해서 들어봐~!!!!!!!!!!
ㅇㅇ
ㅇ
그럼!컴온릿쓴!!!!!!!!!!!!!!!!!!
자 그럼
우당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스타뚜!
사진속 이분은 조선 최고 부유층 집안의 넷째아들 , 이회영 선생 = 주인공
선조시절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
이회영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름난 집안의 자제였어요.
(어느정도였냐면 통일신라,고려,조선에서 최고의 벼슬을 한 집안 - 영의정 9명 배출, 오성과한음 주인공 이항복의 후손, 천년동안 양반인집안)
그러던 1910년 ,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이 일어나게 됨..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거야
병합이 발표된 직후,
갑자기 집과 땅을 포함한 전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하는 이회영 선생.
그 후, 그는 형제들을 불러모았어요
"제가 이렇게 형님들을 오시라고 한 이유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입니다.
이 곳을 떠나야겠습니다. 저는 만주로 가 이 나라를 되찾을 방도를 찾을 것입니다."
형제들에게 독립운동을 위해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떠나기로 결심했음을 알렸어요.
그러자,
둘째 이석영 : 나도.. 내 집을 내놓겠네
셋째 이철영 : 나도 내 땅을 내놓겠네.
.
.
다른 다섯 형제들도 그를 따라 전재산을 처분했어요.
그렇게, 오로지 독립 운동에 쓰기 위해 여섯 형제가 모은 돈이 40만원 (현가치 600억원)
급하게 처분해야했으므로 제값을 받지 못한 것을 감안한다면,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해요 ㄷㄷ
만주로 가기 위한 준비가 마무리되던 어느 날, 노비문서를 소각하는 이회영 선생.
그리고는,노비들을 불러모아 말씀하셨어요.
"이제 너희들은 자유의 몸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만주로 갈 것이다.
내 너희들을 다시 만나는 날엔 꼭 이 나라를 되찾은 후일 것이다."
"어르신.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부디 이 비천한 것들이 큰일 하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의 인덕을 알고있던 노비들중 일부는 이렇게 자진해서 만주로 따라나서게돼요.
ㅠㅠㅠㅠㅠㅠㅠ노비분들도 착하심..해방시켜줬는데 같이 가심 ㅠㅠㅠ으리!!!!!!!!!!!!!!@
사실 병합 후, 일본 정부가 회유책의 일환으로,
양반들의 지위와 재산을 인정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영 일가는 타협하지않았죠.
( 이당시 대부분의 양반들이 일제에 타협 -> 친일파의 근원 )
그렇게 1910년 12월, 이회영의 일가족 60여명은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 만주로 떠납니다.
여기는 만주입니당.
전재산을 독립 운동을 위해 쓸 것을 결심한 이회영 선생.
계획을 세우죠.
교육만한게 없죠
학비 ,숙식비 꽁짜 신흥강습소 학생들 모집@@@@@
"독립군 양성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자 합니다.
청년들에게 조국의 역사부터 무술까지, 지덕체를 고루 가르칠 것입니다."
그는 독립군 양성을 위한 학교인 신흥 강습소(=신흥무관학교) 를 세우고,
이후 신흥 강습소는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해 10년동안 3500명의 독립군을 배출하게 됩니다.
( 이밖에도 이회영 일가는 헤이그말사 파견지원, 고종황제 중국망명계획등 독립활동 지원 등등등 많은 도움을 줬어요 ! )
신흥 무관 학교의 졸업생들은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짝짝짝!!!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이회영 일가의 생활은 궁핍해지고...ㅠㅠ
가족들이 하루 한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 이회영선생의 집에 시집온 명문가 규수들이 삯바느질과 고생을 많이해서 반지가 안들어갈 정도. 식구들 모두 일주일에 3끼이상 먹는날이 흔치않았다고 함.......ㅠ)
그럼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고
1932년 마지막 결심을 하게됩니다.
정신력 대단하심..ㅠㅠbb!!!!
1932년 . 이회영 선생이 아들에게 말을 했어요
"아들아, 너에게 힘든 삶을 살게 해서 미안하구나.
나는 다시 만주로 돌아간다. 다시 가서, 이 손으로 꼭 일본군 사령관을 처단할 것이다."
그러나..
밀고자에 의해 만주땅을 다시 밟지도 못하고, 일본 헌병에게 체포..
그것이 이 분의 마지막이셨습니다.
밀고자 개씨발놈...
그렇게
1932년 65세의 나이로,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두시게 됩니다.
이렇게 6형제 중 5분이 돌아가시고,
이시영 선생의 바로 아래 동생인 이시영 선생 만이 살아 남아 조국의 해방을 보셨습니다.
저 사진 속에 울고 계신 분..
우당 이회영의 6형제는,
첫째 이건영(李健榮, 1853~1940), 둘째 이석영(李石榮, 1855 ~1934),
셋째 이철영(李哲榮, 1863~1925), 넷째 이회영(李會榮, 1867~1932),
다섯째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여섯째 이호영(李頀榮, 1875~1933)
이십니다.
잠깐만~~~~~~~!!!!!!!!!!!
이회영 선생 말고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됐냐고?!?!?!
자세하게 그분들의 뒷이야기를 말하자면,
첫째
[첫째(이건영),이건영의 둘째아들(이규면)은 신흥학교 졸업 뒤 머나먼 중국땅 상해에서 독립운동하다 병사.
이건영의 셋째아들(이규훈)은 만주에서 독립운동한뒤 귀국, 국군 공군대위로 복무중 한국전쟁때 실종.]
둘째
[가장많은돈을 보탠 둘째(이석영)는 중국빈민가를 80의나이에 떠돌다 굶어죽음,
이석영의 장남(이규준)은 김원봉의 의열단원으로 이해명과 함께 밀정 김달하와박용만을 암살하고 한구(漢口)에서
독립운동하다 20대 나이에 병사.]
셋째
[셋째 이철영은 신흥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 병사]
넷째
[모든계획에 중심에섰던 넷째 이회영은 일흔이 다되어가는 나이에 독립활동하다 걸려 모진고문끝에 숨짐.
이회영의 둘째아들 이규학은 사촌 이규준과 함꼐 밀정 암살가담.
이회영의 셋째아들 이규창은 친일파 암살사건으로 경찰에 체포, 13년의 징역을 살고 광복뒤 석방.]
다섯째
[유일하게 살아남아 해방을 본 다섯째(이시영)는 독립후 김구선생님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초대부통령이 됨.
하지만 이승만의 전횡에 반대하며 결국 국민방위군사건,거창양민 학살사건등
이해할수없는 1인 천하 독재만행에 항거 부통령직 사임.]
이승만은 역사공부할수록 좋게 볼수가 없다 정말...여기서도 나오네 이승만 XXX
막내
[막내(이호영)는 만주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33년 소식이 끊김.
이호영의아들 이규황,이규준도 함께 실종 ( 몰살당한걸로 추정 )]
이외에도 이회영 일가의 식구들,노비들 굶어죽고 얼어죽고 끌려가고 등등..그분들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이회영선생은 나라를 지키기위해 임시정부를 만들면 또 그안에서 분열된다 하여 임시정부를 참여안하시는등
양반의 머리에서 이런 발상이 나온것자체가 엄청나게 진보적.
- 육형제 모두 강냉이와 풀죽으로 연명
-이회영의 아들 이규창에 따르면“1주일에 세끼를 먹으면 잘 먹을 정도였지만 궁핍이 아버지의 독립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6형제가 독립운동을 한 유례없는 일
일제와 타협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윤택한 삶을 버리고
전재산
600억을 독립운동에 바친 독립운동가
한국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
< 이회영 일가 >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합시다
브금출처 여성시대 박水달 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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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종걸씨가 이분들의 후손이래요
감사합니다.... 이 땅을 지켜내 주셔서 감사합니다..ㅠ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꼭 기억해야겠다 진짜..대단하셔..
대단하시다..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더 존경스러워요
감사합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ㅠㅠ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감사합니다...ㅠㅠ
감사합니다ㅜㅜ
감사합니다 꼭 기억할게요..
여섯형제 모두가.. 진짜 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셨나보다..
ㅠㅠ 눈물날 것 같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눈물이난다 빈민가를 떠돌다 아사했다니...평생 새기고 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진짜멋지다...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ㅠㅠㅠ
헐 이시영 부통령이 그 명문가 셨구나... 정말 멋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대단하시다ㅠㅠㅠㅠ눈물난다...
한국사 강의때 봤는데 대단하다고 생각해!
진정한 명문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