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자 신고소..
거수자란 거동수상자를 줄인 말로
한때 제가 그곳 소장이었지요..ㅎ
1983년.........서울
군 제대하고 동생들과 잠시 잠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나는 직장엘 다니고 여동생들은 당시 대학생으로 한참 이쁠때였는데..
휴일이었던가?..외출에서 돌아와 막 아파트 건물로 들어서는데
처음 보는 큼지막한 송판이 건물 입구에 걸려 있다.
현판에는 "거수자 신고소..000동 000호"
엥?..가만보니 우리집 아닌가?..그런데 거수자 신고소라니?
예쁜 여학생 둘이나 있는 집에 이 해괴한 현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수소문하여 알아보니 지역 예비군 중대에서 걸어 놓은 거란다.
다음날 시간내어 동사무소 예비군 중대 사무실을 찾아갔다.
인상이 느끼해 보이는 예비군중대장..
고물 쇼파에 삐딱하게 드러눕다시피 앉아있던 그 양반..
그에게 따졌다.."아니~~이기 뭡네까?..우리집이 거수자 신고소라니~~"
"아..그기 뭐냐믄 여차여차 저차저차..한마디로 그대는 훌륭한 예비군 자원이라
유사시 거동수상자 발견될 경우 워쩌구저쩌구...... "
"아니 이러면 아니되죠..그 뭐시냐~이런일을 하려면 최소한 사전 설명은 해주고
동의도 받고 그러구나서 일추진해야지 일방적으로 이런 법이 시상에 어디 있습네까?
게다가 나는 일개 사병출신인데 이런것은 장교출신 집앞에나 걸어놓는게 마땅한거 아님메?"
젊은 녀석 기세가 등등해 아무래도 진정시킬 필요 있다 생각했는지 중대장이 누구에게 뭘 시킨다..
"개똥아~~여기 커피 두잔만 맛있게 타서 가져와..얼릉~~"
그러면서 내게 이리 말한다.
"장교출신도 좋겠지만 당신이 엠피출신 아니오..전시 보직을 보니 제3한강교 검문소 소장님이두만..
그 보직도 헌병장교 보직인데..아뭏든 대단해..그러니 당신은 거수자 신고소 간판 걸 자격 충분하고
이래저래 우리도 심사숙고한후 적격자라 판단했구만이라~~그리구 이거 다 형식적인거여~~
그러니 거수자 신고소 소장님은 부담 갖지말구 걍 넘어가두돼..따지지좀 마~~히히히.."
이런 젠장..저 얄미운 주둥아리..(내가 북에서 넘어온 공작원에게 표적 테러라두 당하면 당신 책임질껴?)
잠시후 커피 두잔을 쟁반위에 담아 가지고 들어오는 방위병..그런데 그가 왠지 낯익다..
"아~그래..저 친구구만.."..그 방위병을 보니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그러니까 몇달전..
병역의무를 다하고 제대하던 날..
동사무소에 제대신고하러 갔다가 담당 방위병 위세에 개망신 당한 일 있었다.
당시 업무담당이던 방위병의 부당한 억지요구에 내가 한마디했더니 이리 말하는거였다.
" 뭐요?..하라면 할것이지 뭔말이 그리 많소?..개구리복 신분으로 우리에게 이러면 곤란해요.."
이거야 내원참..내 비록 계급은 예비역 하사지만 그래도 어제까지는 군사법 경찰관이었는데..
일개 방위병 녀석이 나하고 무슨 원한관계라도 있다고 이리 기고만장 굴종을 강요한단 말인가.....
그랬던 그 방위병이 커피잔을 들고 내앞에 나타난거다.
예?..울화통 터져도 거수자신고소 소장님이 참으라고요?..예..안그래도 참았습네다..
그 무서운 방위병에게 또 망신 당할까봐~~ㅎ
그리고 몇달이 지났다..
어느 휴일..
집에 콕박혀 딩굴딩굴하던 나..
당시 할부로 구입한 14인치 칼라 티비가 신기한듯 보고 또 보고..
그때는 전두환이가 칼라티비 보급하고 프로 야구단도 창단시켜 중계방송에 공들이던 시절,,
아뭏든 하루종일 그누무 칼라에 미쳐 신물나도록 보고 또 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 초인종 벨이 울렸다.
나가보니 잠바 입은 건장한 중년의 사내 둘이 들어서며
"여기가 000씨 사는 곳이죠?"..해서 내가 "제 동생입니다만..뉘십니까?"
"우린 이런사람입니다..정보과 형사입니다 " 하며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는데
"그래 내 동생이 뭔 잘못이라도 했단 말입네까?".."그게 아니라 워쩌구 저쩌구 저쩌구 워쩌구..."
"아뭏든 일단 들어오세유"
두 형사가 들어와 내게 말한다.
동생 단속좀 잘 부탁한다고...그래 내가 말했다.." 들어올 때 현판 못보셨소?
우리집이 거수자 신고소입네다..그런 신고소에 당신들 말대로라면 거수자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현판 걸땐 언제고 대체 이기 뭡네까?..내동생은 고저 평범한 학생으로 모대학 학보사 편집장인건 맞지만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전혀 문제없는 조용한 학생입네다..
이런 모범학생을 24시간 감시한다면 그건 국가적으로도 우스꽝스런 일이고
늘 애국충정으로 탱탱한 저 또한 기분 매우 안좋습네다..
잠시 출타했는데 곧 귀가할테니 걱정하덜덜 마시고..이 거수자신고소 소장 말 믿고..이만 돌아가시라요..ㅎ"
음료 한잔하고 그들이 나간후
밖을 내다보며 동태를 살피니 계속 가지 않고 놀이터 벤치에서 그냥 죽치고 있다.
아니 평범하고 연약한 내동생 하나 감시한다고 할일없이 그 아까운 고참 형사 인력..
그것도 둘씩이나 그것도 거수자신고소 현판 걸어놓은 집앞에 고정 배치하고 감시를 해?
그때를 회상하면 참으로 한심한 세월~~ 답답한 나라였다!
* 1983년,,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던 해로 기억합니다.
정초에는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싸이렌이 마구 울리며 전쟁발발을 걱정했다하고..
그런가하면 가공할 아웅산 폭탄테러,,대한항공 007기 피격..다대포 무장간첩 침투사건 등등
줄줄이 아주 크게 놀랠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한편으로는 중공의 민항기가 춘천에 불시착..
이사건은 우방이었던 대만과 절교하고 중공과 수교하는 우리 정치경제사 큰변혁의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KBS 1TV 이산가족찾기 방송으로 우리는 참 이래저래 많이도 울었던 해였죠.
그때를 회상하다보니 무장간첩으로 다대포에 침투 생포된 전모씨..
그와 함께 근무했던 시절과 그시절의 직장동료들도 생각나고
또 1983년을 말하다보니 "1984 & 동물농장" 저술로 유명한 조지오웰도 갑자기 생각나고..ㅎ
그래 다음에는 동물농장을 글소재로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 우리가 사법경찰관이라 부를 때는 말똥 하나 즉 경위 이상을 말하는 것이고
이른바 이파리 계급장 즉 경사 아래로는 사법경찰리라 칭하죠..
마찬가지로 군수사기관에서는 헌병하사이상을 군사법경찰관, 그리고 병들은 군사법경찰리라 부르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흔히 들어왔던 "관리"라는 용어와 연관이 있음을.....
관리(官吏) : 봉급을 받고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 사무를 보는 사람 통칭.......
별 관심없다고요?..ㅎㅎ..알겠습니다.
그죄를 우선 모면하려는 부조리 의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한국인의 의식속에는 작은 권한 작은 권력일지라로 흔히 말하는 끗발을 부려보려는..
그과정에서 부당하게 개인 이득도 취하는 잘못된 마음이 있는거 같습니다
물론 안그런 사람도 많겠지만..이런 이야기는 술한잔 나누면서 길게 해야하는데..ㅎ
아뭏든 아픈 과거지사를 오늘 아프게 말씀하셨으니 다음에 만나면 위로의 술한잔 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