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2023-06-22)
< 시간이 머무는 곳 > - 정영인-
지나 간 책을 정리하던 중, 책갈피에서 한 장의 사진이 발밑에 툭 떨어진다. 오랜 세월을 견디어왔는지 얼룩덜룩 누렇게 바래져 있다. 고향집 뒤란 감나무 밑에서 찍은 나의 독사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3x4 사이즈. 그 작은 사진 한 장 속에 지나간 내 인생의 한순간 머물고 있었다. 계절은 여름철인가 보다. 헐렁한 여름철 옷을 입고 있었다. 무성한 감나무 잎 그림자가 모자이크처럼 바닥에 드리워져 있다. 하루 중 아마 12시가 좀 지난 때인가 보다. 내 그림자가 바닥에 짧게 드리워 있는 것을 보면…. 입은 앙 다물고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나에게는 세 가지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사진에 찍할 때, 시험을 볼 때, 죽음 앞에서 이다. 이제나 저제나 사진에 찍히는 나는 늘 자연스럽지 못하고 뻣뻣하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갔건만 지금도 그렇다. 자연스레 사진을 찍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가끔 의도적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연출하면서 찍어보면 더 부자연스럽다. 아마 그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한 친구가 있다. 거울 앞에 선 자기의 얼굴 모습이 너무나 굳어진 모습을 보고 거울 앞에서 미소 짓기 10년을 연습했다고 한다. 지금, 친구의 얼굴에는 자연스런 미소가 입 가장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그 소리를 듣고 조막만한 손거울을 지니고 다니면서 미소 짓기 연습을 했건만 끈기 부족으로 그냥 그 타령이다. 한번은 친구들과 강천사라는 곳으로 단풍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단풍나무 가지가 멋지게 늘어진 너럭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마침 중년 부부가 지나가기에 사진 한 장을 찍어주기를 부탁 했다. 여자가 내 핸드폰을 넙적 받아들더니 이리저리 포즈를 주문을 한다. 그러자 그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예, 김정일 사진 찍어 예. 아저씨 예, 김정일 사진 찍어 예!” 하는 것이 아닌가. 그 경상도 아지매는 내가 뻣뻣하게 굳어있는 모습이 여간 못마땅했던 가 보다. 그 아지매의 지청구를 들으면서 만면에 웃음을 만들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 아지매의 말처럼 김정일 사진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한순간의 시간이 거기에 머물고 있었다. 사람과 단풍과 너럭바위의 공간과 시간이 머물고 있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 아줌마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저절로 떠오른다. ‘아저씨 예, 김정일 사진 찍어 예!’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생활의 큰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웃는 낯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초등학교 3학년 담임 때, 우리 반 여자 부반장은 언제나 어디서나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3학년이니 연습해서 몸에 밴 것도 아닐 테고 아마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자연산인가 보다. 그 아이 엄마 말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다. 배냇적 미소인가 보다. 그 아이 앞에서는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야단을 쳐도 배시시 웃으니 내가 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녀석에게 말했다. “주미야. 너는 백만 불짜리 미소를 늘 잘 간직하면서 살아 가거라.”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상큼하고 환한 미소는 자신에게, 혹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전해주는 친절과 배려의 보시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입을 꼭 다물고 긴장해서 찍은 내 사진을 보면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헐렁한 옷을 입었다.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의 옷을 살 때는 항상 한 두 치수 느루 잡아 옷을 사 오셨다. 처음에 입을 때는 너무 커서 소매 단이나 바짓단을 으레 접어 입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몸이 커지면서 옷은 맞아간다고 하셨다. 내남없이 어려웠던 시절, 어느 어머니나 지녔던 절약의 슬기였을 것이다.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다.
누렇게 바랜 사진 한 장에 찍혀 배경이 되는 감나무는 대접감 나무였다. 우리 집 뒤란 동쪽에는 뾰족감나무 한 그루, 서쪽에는 대접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대접감나무는 침시용沈柿用이었고 뾰족감나무는 연시용軟柿用이었다. 가을이면 뾰족감을 따서 커다란 독에 마른 감나무 잎을 깔고 뾰족감을 한 켜 놓고, 그 위에 감잎을 깔고 뾰족감을 놓고 켜켜이 쌓았다. 그렇게 한겨울이 되면 살짝 언 자연산 연시가 되었다. 추운 겨울에 그런 연시를 먹는 맛은 아마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대접감은 유난히 떫었다. 어머니는 항아리에 대접감을 넣고 소금과 된장을 푼물을 끓여 항아리에 부었다. 그 위에 수수대의 잎을 덮었다.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나 헌 이불을 덮어 침을 뺐다. 어머니는 감의 떫은맛을 빼는 것을 ‘침을 뺀다’고 하셨다. 하루 쯤 담가두면 감은 떫은맛이 빠지고 달다 단 침시가 되었다. 된장을 조금 푼 침시는 더욱 구수하고 달았다. 침을 담근 항아리 위에다 수수대의 잎을 덮는 이유는 감과 수수는 상극이라는 것이다. 민간요법으로 감 먹고 체하면 날수수를 씹어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은 연시도 단감도 아닌 침시다. 지금은 단감, 연시 천지나 침시를 만나기 어렵다. 침시를 담글 때 된장을 조금 푸는 이유는 단맛을 더하기 위해서란다. 이것은 우리 어머니만의 노하우였다. 이 3x4 작은 사이즈, 누렇게 바랜 작은 사진 한 장이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의 한순간으로 초대한다. 그때의 시절상과 시절인연이 나무 나이테처럼 주어진 주변 환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감나무 앞에는 펌프가 있다. 그 옆 자배기는 마중물과 바가지가 띄어져 있다. 마중물 한 바가지 붓고 빨펌프 손잡이를 움직여야 숨어 있던 지하수가 두레박으로 물 푸듯이 올라온다. 막 퍼 올린 차가운 펌프 물로 등목 하며 진저리 치던 우리 가족의 시절인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지금은 아무데서는 핸드폰으로 인증 샷을 찍어 이리저리 보내는 시절이 되었으니 말이다. 법정 스님의 말이 생각난다. 인연을 함부로 맺지 마라. 맺은 인연은 소중히 여겨라. 이 빛바랜 사진 한 장속에 얼마나 많은 인연이 담겨 있을까. 부모형제, 친구, 고향집, 감나무, 먼 외국의 낯선 풍경, 눈만 껌벅이던 외양간의 우리 암소도……. 황혼 길에 접어 든 나는 사진 찍히기, 시험보기, 죽음 앞에 여전히 어색하다. 아직도 김정일 식 사진을 찍히며 시절인연을 만들어 가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 사진 한 장 속에서 시간이 머무는 곳을 바라본다. 나이가 먹을수록 추억의 시간이 머무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고향이라는 시공간은 더욱 그렇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한동안 머물다 간다. 그 사진 속에 나는 검정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
첫댓글 ㅎ.ㅎ.
역시 사진찍기란 전문가가 있나 봅니다.
델런트가 그들 아닐까요.
참 재미있는 기억들을 소환하셨습니다.
어렴풋하게 내 기억들도 소환되는 좋은수필입니다.
고맙습니다.
자꾸 삶이 빛바래지는 것 같습니다.
공원 가는 전철을 타면 많은 사람이 실버카드 소지자입니다. 요즘 젊은 정치가가 의견을 저시하여 시끌벅적합니다.
@너나들이 빛이 바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퇴물 취급만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박종해 스테파노 노인아라는 존재가 엄연히 인생과정에서 존재하지만 사회는 서로 분리된 세대로 인식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민간인과 군인이 구별되듯이.
@너나들이 ㅎ.ㅎ.
전 좀 둔한것 같습니다.
별로 못느끼거던요.
우쨋던 갈때까지 같이 가야 할 세상.
조금씩 져주며 살아 봅시다.
행운을 빕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한동안 머물다 간다
나이가 들면 자주 과거를 들먹이나 봅니다.
그래도 한장 사진속에서 수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습니다.
@너나들이 저도 사진 찍히는 것이 머뭇거려집니다.
혹시. 잊혀져야. 할 존재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점점 사진 찍히는게 별로 입니다.
언젠가는 흐려질 추억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