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의 교훈(敎訓)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첩첩산중(疊疊山中)의 오지(奧地) 성재(盛才) 골에는 수백 년생 정자나무(古木) 한 그루가 늠름(凜凜)한 자태를 뽐내며 마을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수령(樹齡)만큼이나 나뭇가지가 무성(茂盛)한 이 고목의 그늘 목(陰地)은 가가호호(家家戶戶)의 농경(農耕)에 관한 이해관계(利害關係)를 조율(調律)하고 마을의 각종 현안(懸案)을 토의(討議)하는 곳이었다. 한편, 이 그늘 목에서는 가마니 치는 사람, 짚신 삼는 사람, 새끼 꼬는 사람 그리고 장기나 바둑을 즐기거나 이야기책을 읽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1945년 해방되던 해 여름철 어느 날이었다. 정자나무 위에서 까치 한 마리가 푸드덕푸드덕,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저 가지에서 이 가지로, 왔다 갔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푸른 나뭇가지 사이에서는 또 한 마리의 까치가 날개깃을 부채모양으로 쫑긋 펼쳐 세우고 깍깍, 깍깍 다급한 목소리로 짖어댄다. 정자나무 꼭대기에 둥지 틀어 새끼 까놓고 연방 벌레를 물어 나르던 부부(夫婦) 까치였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부부 까치의 돌출(突出) 행동에 사람들은 매우 의아한 눈초리로 나무 위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구렁이다! 구렁이!”
정자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던 한 젊은이가 큰 소리로 외쳐댔다.
“능구렁이 아냐? 홍두깨만큼이나 큰 놈인데!”
또 다른 젊은이가 정자나무의 중간 부분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해 보였다.
“으응 그 구렁이, 까치 새끼 잡아먹으러 둥지로 올라가고 있겠지! 옛날부터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길조(吉兆)라 했건만, 저거 어쩌면 좋담!” 가마니 치던 할아버지가 손길을 멈추고 머리를 극적 거리면서 매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큰 고목의 중간까지 올라간 구렁이를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는지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그 구렁이를 처치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구렁이가 꼼지락 꼼지락 꿈틀거릴 때마다 부부 까치는 더욱더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깍깍 짖어댔다. 새끼들의 안전(安全)을 위하여 정자나무로부터 구렁이를 쫓아내려는 간절한 울부짖음이다. 그러나 먹잇감을 목전에 두고 그냥 물러설 구렁이가 아니었다. 구렁이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것이 힘에 버거운 듯 아주 천천히 둥지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다. 정중동(靜中動))이라 할까?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기를 몇 시간, 해가 지면서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까치와 구렁이의 싸움을 뒤로한 채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난 나는 황급히 정자나무로 달려갔다. 밤사이 구렁이가 까치 새끼들을 잡아먹었는지 매우 궁금했던 터였다. 정자나무에는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까치의 숫자가 10마리쯤으로 늘어나 있었다. 부부 까치의 다급한 사정을 전해들은 형제자매(兄弟姉妹) 까치들이 집단행동(集團行動)을 위해 모여든 것 같았다.
10마리의 까치가 일제히 날개를 푸드덕거리면서 정자나무의 7부쯤 되는 곳까지 올라간 구렁이를 향해 내뿜어대는 처절함이 천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밤새도록 그렇게 짖어댔을 까치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느덧 중천에 뜬 해가 따가운 햇볕을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까치의 숫자가 20여 마리로 불어났다. 부부 까치의 가족(家族) 외에도 친인척(親因戚)까치 모두가 모여든 것 같았다. 20여 마리가 동시에 짖어대는 소리는 이제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소음(騷音)이 되었다.
해가 다시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이제 형제자매(兄弟姉妹)와 친인척(親姻戚)에 더하여 이웃 간의 친지(親知)들까지 모여 까치의 숫자는 40여 마리로 불어났다. 까치들도 서로 의사(意思)를 소통(疏通)하면서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으로 공동생활(共同生活)을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많은 까치가 하루 만에 이 좁은 산골짝으로 일제히 모여들 수가 있단 말인가? 백발(白髮)의 어느 할아버지는 중얼거렸다. “내 평생 저렇게 많은 까치를 보기는 처음이야.”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구렁이는 둥지의 바로 코밑(?)까지 바짝 다가가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고는 그 놈 특유(特有)의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이제 새끼까치들의 목숨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까치들은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미 까치가 범상(凡常)한 결심(決心)을 했다. 눈이 찢어지라 구렁이를 쳐다보더니 양 날개를 반쯤 벌려 아래위로 두어 차례 펄럭이고 나서 힘차게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마치 고기를 본 낚시꾼이 쇠창살로 재빠르게 강물의 물고기를 내리찍듯 구렁이를 향하여 곤두박질을 치며 내려 꼬치더니 그 구렁이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물어뜯고는 신속하게 다시 솟구쳐 올랐다.
새끼를 구해야 한다는 본능(本能)적인 절박감(切迫感)은 구렁이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相殺)시키기에 충분했다. 몸집이 크고 동작이 느린 구렁이한테는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역습(逆襲)이었다. 뒤이어 아비 까치도 똑같은 방법으로 구렁이의 목을 잽싸게 물어뜯고는 나뭇가지로 돌아와 두 눈을 깜빡여 댔다. 이때까지도 구렁이는 그까짓 까치 두 마리의 공격은 괘의치 않고 능글맞게 유유(悠悠)히 혓바닥을 날름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구렁이의 오판(誤判)이었다.
부부 까치로부터 구렁이 공격(攻擊)에 대한 시범(示範)을 본 모든 까치들이 일제히 구렁이 공격에 가담했다. 이 나무 저 나무, 이 가지 저 가지, 사방팔방(四方八方)에서 까치들이 연방 날아들어 쉴 틈 없이 구렁이의 목을 물어뜯었다. 물어뜯고 솟구치고, 물어뜯고 솟구치고, 수백 번도 넘는 40여 마리의 까치가 교대(交代)로 구렁이를 공격(攻擊)하면서 들고(入), 나는(出) 시간(時間)과 거리 간격(距離 間隔)은 한 치의 오차(誤差)도 없는 일사분란(一絲不亂) 그 자체였다.
마침내 구렁이는 지쳐가고 있었다. 까치들의 집중공격에 기진맥진(氣盡脈盡)해져 더는 그 흉측(凶測)한 혓바닥을 밖으로 내뻗지 못했다. 둥지 속 새끼까치들에게 신(神)의 가호(加護)가 미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이들의 전투(戰鬪)를 지켜보고 있었다.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고, 물방울이 떨어져 돌구멍을 낸다고 했던가. 잠시 후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크디 큰 능구렁이가 땅바닥에 떨어져 축 늘어져 있었다. 다수(多數)의 작은 힘이 모여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순간(瞬間)이다.
“구렁이가 죽었어!”
“구렁이 저놈 목에 난 상처 좀 봐!”
“에이 시원하다!”
“까치의 단결심(團結心) 대단하군!”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까치의 승리에 통쾌하다는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하늘에서는 까치들이 승리를 자축하느라 재잘재잘 소곤거리고 있었다.
촛불행렬로 뒤덮인 광화문(光化門) 일대의 뉴스를 접하며 까치와 구렁이의 싸움이 떠올랐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라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명언(名言)은 상투적 수사(常套的 修辭)가 아닌 현실 속의 진리(眞理)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왠지 올해는 매우 길고도 후텁지근한 여름이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을 것이다.(박봉환 문집 “고마각시와 꼬마신랑” 중에서)
2008년 7 월 초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