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ADD)에 "소총 박격포 탄약 등을 넉 달 안에 국산화하라"고 지시했다.
암호명은 '번개사업'.
무기 생산 기초인 금속, 기계 산업과 기술 축적이 없던 때여서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연구원들은 미군 소총과 박격포를 분해 조립해보고 청계천을 드나들며 밤낮으로 매달린 끝에
이듬해 기본화기 사격 시험에 성공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은 격이었다.
국산 무기 개발 총본산 ADD는 1970년 설립됐다.
1.21 청와대 기습 삳건 같은 북한 도발이 거셌지만 주한 미7사단은 철수해 우리 무기가 절실했다.
박 대통령은 ADD를 불시에 방문해 연구원들과 함께 자며 애로사항을 들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해외 우수 두뇌를 불러들여 고급 관사까지 주는 최고 우대를 해줬따.
보안수준이 가장 높은 극비 기관이어서 '대전 기계창' 깉은 위장 명칭을 섰다.
ADD는 지난 45년간 국산 地對地 미사일 '현무'부터 'K-9 자주포, K-2 차기전차 '흑표'까지 150여종을 개발했다.
국방 기술 390여건을 민간에 이전해 1조1200억원 효과를 냈다.
차기 FM무전기가 민간 이동통신에, 105mm 곡사포 개량이 산업기계 피막 처리에, 충격 센서 설계가 자동차
노킹 센서에 활용된 게 대표적이다.
1982년 미국의 압력으로 ㅁ사일 개발팀을 비롯해 직원 3분의 1이 해직된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ADD는 지금 정부 출연 연구기관 중 랭킹 1위를 차지하는 거대 조직이다.
정원 2640명에 올해 예산이 1조55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1970~80년대 초 전성기에 비해 처우가 덜해 인재가 기피한다는 걱정도 나온다.
30년 넘은 근속자가 많아 평균 연봉은 8632만원이지만 신입 직원 초봉은 3926마누언이다.
우리 과학기술연구기관 24개 중 13위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 ADD를 방문해 격려했다.
지난해 말엔 무기 도입을 총괄하는 방위사업청장에 처음으로 ADD 출신을 기용했다.
감사원 감사원이 엊그제 ADD의 부실한 운영 실태를 발표했다.
ADD는 감사원이 오해를 했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과거보다 역할이 줄어들었다곤 해도 ADD는 북한은 물론 통일 후 주변 강국에 대응하는 전략무기를
개발해야 하는 핵심 기관이다.
ADD 구내엔 10년 전 군사 '마니아' 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우리는 여러분을 믿습니다'라는 격려비가 서 있다.
ADD가 이런 국민적인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유용원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