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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뒤흔든 몰입 체험(2)
몰입 상태에서 해결한 대표적인 문제들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들이 몰입 상태에서 난제를 해결하는 예는 무수히 많고,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도 그러한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나 역시 난제를 풀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다가 몰입상태를 경험하고, 이를 통하여 평소에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아이디어를 얻어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에 따라 해결할 때까지 걸리는 몰입 지속시간이 다른데, 이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단분산 나노입자의 생성 원리 (일주일 몰입)
크기가 균일하게 같은 나노입자를 단분산(monodiperse) 나노입자라고 하고 크기가 균일하지 않은 나노입자를 다분산(polydisperse) 나노입자라고 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제조를 하면 다분산 나노입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응용을 위해서 크기 선별이라고 하는 추가 공정을 거처 단분산 나노입자를 만든다.
그런데 2000년 초에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과의 현택환 교수는 나노입자로부터 크기 선별이라고 하는 번거로운 추가 공정 없이 직접 단분산 나노입자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대단히 획기적인 성과여서 2001년 미국의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에서 ‘편집자의 선택 editor’s choice’의 주제로 소개되었다. 그 당시 현 교수와 나는 자주 테니스를 치곤 했는데, 어느 날 그는 내게 단분산 나노입자가 형성되는 원리를 밝혀줄 수 있냐고 요청을 했다. 국제학회에 초청강연을 많이 하는데 강연이 끝날 때마다 “왜, 우리가 나노입자를 만들면 다분산이 되는데 당신이 만들면 단분산이 되느냐?”라는 질문이 항상 나오는데 항상 대답을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나는 버스로 이동 중에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 문제에 몰입한 지 일주일만이다. 그 당시 핵생성(nucleation)으로는 단분산 나노입자의 생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성장(growth)이 단분산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문제를 생각하는 방식 중의 하나는 나의 나쁜 머리로는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기 어려우므로 가능하면 문제를 최대로 단순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입자의 수를 2개로 줄여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장속도도 같다고 가정하였다. 초기에 5 nm와 1 nm 크기의 두 개의 입자가 있다고 하자. 이때 큰 입자는 작은 입자보다 5배나 커서 단분산과는 거리가 멀다. 각 입자가 1nm씩 성장하면 큰 입자는 6nm가 되고 작은 입자는 2nm가 된다. 그러면 큰 입자는 작은 입자의 3배가 된다. 그런데 추가로 98nm가 성장하면 큰 입자는 104nm가 되고 작은 입자는 100nm가 된다. 그러면 큰 입자는 작은 입자의 1.04 배가 되는데, 이는 크기 차이가 5% 이하가 되어 단분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로 부딪히지 않고 단순히 성장만 하면 크기가 같아지는 것이다. 이것으로 게임은 끝났다. 문제의 핵심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풀린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입자들의 성장거동을 보이려면 컴퓨터를 사용하여 계산하면 되는데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확산지배성장(diffusion-controlled growth)에서는 성장속도가 같지 않고 큰 입자는 작은 입자보다 더 천천히 자란다. 이를 고려하여 컴퓨터로 계산한 결과가 다음과 같다.
(a)초기상태 (b)100초 (c)1500초
그림 2. 확산지배성장에 의한 단분산 나노입자의 형성
그림 2(a)는 초기 상태의 다분산 입자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태에서 100초 동안 성장을 하면 그림 2(b)와 같은 상태가 된다. 1500초가 지나면 그림 2(c)와 같은 상태가 되어 단분산 나노입자가 생성됨을 알 수 있다.
나는 현교수에게 이 결과를 보여주면서 단분산 나노입자가 생성되는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현교수는 이러한 생성원리를 고려하여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제조하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를 2004년 Nature Materials에 ‘Ultra-large-scale syntheses of monodisperse nanocrystals’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현재 3650회 이상 인용되고 있고 발표 당시 국내 주요 매스컴뿐 아니라 CNN 뉴스에서도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된 연구결과이다.
세라믹스의 비정상 입자성장 원리 (2개월 몰입)
세라믹스의 비정상 입자성장은 어떤 특정한 입자가 다른 입자보다 월등하게 크게 성장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재료의 성질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그 때문에 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1950년대 이 현상이 알려진 이후부터 규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이는 세라믹스 분야에서 미해결로 남아있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둥근 입자들은 예외 없이 정상입자성장을 하고 비정상입자성장을 하는 경우는 한결같이 입자가 각이 진 모양을 갖는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집중해서 2개월간의 몰입 끝에 해결할 수 있었다. 각진 입자가 2차원 핵생성에 의한 성장을 하는 경우 비정상입자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국제적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처음 이에 관한 논문을 1996년에 발표했을 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교과부 장관과 과학기술자문위원장을 역임하고 얼마 전까지 포항공대 총장을 역임한 김도연 명예교수님은 서울대에 재직하였던 그 당시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었는데 내 이론에 동의를 하였다.
그 이후 김도연 명예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2차원 핵생성 이론을 뒷받침하는 40여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함께 발표하였다. 그러자 미국 세라믹학회지에서 이 이론에 관한 특집논문을 기고해달라고 요청이 있어서 2006년에는 특집논문을 발표했다.
‘특집논문’이란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연구자가 해당 분야를 총정리하는 일종의 초청논문이다. 특집논문이 실리면 보통 해당 연구 분야는 새 학문 영역으로 인정받게 되며 특집논문을 쓴 연구자는 그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 당시 김도연 명예교수님이 서울공대 학장을 하고 있어서 이러한 내용이 2006년 9월 5일자 <국민일보> 등에 소개되었다.
금속의 2차 재결정 원리 (3개월 몰입)
전신주에 달려 있는 변압기에는 소위 실리콘 강이라는 재료가 사용된다. 이 재료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Goss라고 하는 방위를 갖는 입자의 2차 재결정 조직을 얻어야 한다. 이 현상은 1935년 미국에서 고스 Goss 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 이후로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이다. 이차재결정 현상은 다른 금속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금속분야에서 미해결로 남아 있는 문제 중 가장 유명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이 문제는 3개월간 몰입 끝에 해결하였는데 sub-boundary enhanced solid-state wetting이라는 이론으로 설명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30여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이 이론은 현재 학계에서 2차 재결정을 설명하는 주된 이론 중에 하나로 간주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이 인정받고 있지는 않아서 최근까지도 계속 논문을 발표하고 있고 올해 8월에 벨기에에서 개최된 REX & GG 7 (재결정과 입자성장학회)에서 ‘Abnormal grain
growth induced by sub-boundary enhanced solid-state wetting’이라는 제목으로 초청강연을 하기도 했다.
저압 다이아몬드 생성 원리 (1년 6개월 몰입)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모두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다이아몬드는 높은 압력에서 안정하고 흑연은 낮은 압력에서 안정하다. 따라서 인조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만 기압 이상으로 압력을 올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1980년 초 구 소련에서 화학증착 (chemical vapor deposition)에 의해 상압보다 낮은 압력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를 했다. 그 당시 이 결과는 굉장히 믿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다이아몬드는 수만 기압 이상이 되어야 안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본 연구자들이 낮은 압력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짐을 재현하였다. 그러자 이 연구에 불이 붙어 세계적으로 수 천명의 과학자들이 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1990년 당시 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저압다이아몬드 연구과제를 수행하던 연구원이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공도 아닌 내가 이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신청했던 연구과제가 탈락이 되어서 상심하고 있었는데 전공분야도 아니고 관심도 없는 연구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경우가 연구원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여러모로 사기가 꺾이는 상황이었지만 논문을 읽으면서 저압다이아몬드 연구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수 천명의 과학자가 왜 저압에서는 흑연이 안정한데 고압에서 안정한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일주일간 몰입해서 해결했다. 그 당시 내가 해결책으로 제안한 이론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3. 탄소가 기체 상태에서 다이아몬드로 변화할 때의 장벽 높이가 흑연으로 변화
할 때의 장벽 높이보다 낮다면 준안정한 다이아몬드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도표
그림 3에서 세로축은 안정도를 나타내고 가로축은 반응경로를 나타낸다. 메탄가스(CH4)로부터 유리된 기체 상태의 탄소(C)가 가장 불안전하므로 세로축에서 가장 높은 값을 갖는다. 그리고 흑연이 안정하므로 가장 낮은 값을 갖고, 다이아몬드는 준안정하므로 기체와 흑연 중간에 놓여 있다. 그림 3에서는 기체 상태에서 흑연으로 가는 장벽이 기체 상태에서 다이아몬드로 가는 장벽보다 더 크다. 이런 경우 준안정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것으로 다이아몬드가 저압에서 생성될 수 있음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실험을 하던 중 아주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2000℃이상으로 가열된 필라멘트 아래에 실리콘 (Si) 기판 위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생성되지만 실리콘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철 (Fe) 기판 위에는 검뎅 (soot)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검뎅은 백묵가루처럼 손으로 문지르면 쉽게 부서질 정도로 약한 탄소입자가 쌓인 형태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그림4는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림 4. 열 필라멘트 방법으로 다이아몬드를 증착하는 동일한 조건에서 실리콘 위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고, 철 위에서는 검댕이 만들어짐을 보여주는 전자현미경 사진
처음에는 1주일 정도 생각하면 왜 철 기판 위에 검뎅이 만들어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 모르겠고 1달이 지나도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1년 6개월이 지난 후에 해결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는 기존에 박막성장에 대한 교과서의 설명이 틀렸기 때문이었다. 교과서가 틀렸으리라고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렸다.
기존 교과서에서는 박막이 원자나 분자 단위로 성장한다고 설명되어 있고 모든 사람들이 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철 기판 위에 검뎅이 형성되는 것을 설명하려면 탄소원자 수백 개 혹은 수천 개로 이루어진 전하를 띤 나노입자가 성장 단위가 되어야 한다. 즉 전하를 띤 다이아몬드 나노입자가 허공에 떠 있다가 실리콘 기판 위에서는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철 기판 위에서는 전하를 잃어 다이아몬드 나노입자가 흑연 나노입자로 변화되고 중성입자는 기공이 많은 입자로 응집되는 경향이 있어 다공성의 검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직후에 드는 생각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내가 가진 능력의 날개를 푸른 하늘에 마음껏 펼친 것 같았다. 이전에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내 날개를 접고 살았던 것 같다. 하루하루 기적과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감격을 하고 그 아이디어가 1년6개월 동안 쌓여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이 되니 내가 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벤허’를 만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시사회 때 “오 하나님! 정말 이 영화를 제가 만들었습니까?”라고 했다는데 바로 그 심정이었다.
빨리 가족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으나 우리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제 아빠 유명하게 될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몇 달 동안 엄청난 발견을 했다는 흥분 속에서 보냈다. 빨리 세상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 이론을 믿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당신들이 믿고 있는 박막성장에 관한 교과서의 설명이 틀렸다고 하니 과연 누가 믿겠는가? 4년 동안 투고한 논문이 거절되었다.
그래서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몰입을 했고 그 결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 당시 흑연을 기판으로 사용하면 흑연이 식각이 되고 다이아몬드가 흑연 위에 증착이 되는 현상이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현상을 교과서의 설명대로 원자 단위로 성장한다고 설명을 하면 열역학 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된다. 내가 이야기한대로 허공에 생성된 하전된 나노입자가 다이아몬드 입자를 만든다고 해야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 내용을 자세히 정리하여 ‘저압 다이아몬드 합성에서 다이아몬드 증착과 흑연의 동시 식각의 패러독스에 대한 열역학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결정성장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인 <Journal of Crystal Growth>에 투고했다. 심사위원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
금했다. 이에 대한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원문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을 우리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림 5 심사위원의 심사평
이 논문은 화학증착에 의한 다이아몬드 성장에 있어서 대단히 독창적이면서도 대단히 위험한 가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모델은 자체적으로는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나노미터 크기의 다이아몬드 입자가 정말로 허공에 생성되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이 모델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리고 이런 종류의 주장이 다른 결정성장 시스템에 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논문은 발표될 가치가 있다. 실험을 통하여 가상의 다이아몬드 입자가 정말로 허공에 존재하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이 화학증착에 의한 다이아몬드 성장에 관하여 활발한 토론의 장을 열기를 희망한다.
심사평에서 이 가설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 이유는 본 논문의 주장이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되지 않고 실험적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 이론을 발견한 지 4년이 지난 1996년에야 비로소 하전된 나노입자 이론에 관한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그 당시 한국과학재단에서 지정한 우수연구센터인 계면공학센터의 대표 업적으로 선정되어 1997년 4월 30일자 <매일경제>에 소개되었다. 이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다이아몬드 박막뿐 아니라 화학증착으로 만드는 대부분의 박막 즉 반도체를 만드는 실리콘 박막이나 LED를 만드는 GaN 박막도 이러한 원리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는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고 논문을 제출할 때마다 심사위원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으면서 그 동안 80여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하였다. 국제학회에서 발표를 할 때 최대한 겸손하게 발표하려고 노력하지만, 원자 단위로 박막이 성장한다는 기존의 교과서의 설명이 틀렸다고 이야기를 하면 기존 이론을 믿고 있는 학자들은 불쾌해한다. 특히 자존심이 강한 선진국 학자들은 노골적으로 화를 내곤 한다. 어떤 MIT 교수는 “그러면 우리가 모두 바보란 이야기냐?”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청중 중에는 내 이론에 호의적인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내 이론이 너무나 멋지다며 자신들이 부편집자로 있는 저널에 Review 논문으로 투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대표적으로 2004년에서는 International Materials Review에 투고를 했고, 2010년과 2018년에 Journal of Physics D: Applied Physics에 Topical Review 논문으로 투고를 했다. 뿐만 아니라 내 연구에 호의를 갖는 선진국 학자들이 자신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나에게 포스트 닥으로 보냈는데 프랑스에서 1명 호주에서 2명을 보내기도 했다.
내 연구에 호의를 갖는 한 학자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연구결과가 매우 중요해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큰 상도 받을 텐데 현재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항을 받고 있으니 앞으로는 다른 것 할 생각하지 말고 이 연구를 세계에 알리는 활동에 올인하라는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미나를 하고 유명한 그룹과 공동연구도 하라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상황이 되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했다. 나머지 여생을 이것에 올인한다면 내가 추구하는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내가 몰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후회 없는 삶’에 해당이 되지만, 이 결과를 세상에 알리려고 내 삶을 투자한다는 것은 ‘후회 없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이론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조금 더 유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아니었다. 특히 이러한 활동이 내 나머지 삶과 기꺼이 바꿀 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을 소모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내 나머지 삶과 기꺼이 바꿀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경험한 몰입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다. 평범했던 내가 몰입을 통해서 선진국 사람들을 수십 년 앞서가는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7년 『몰입』을 출간했다. 이후에 몰입 관련된 책을 몇 권 더 출간했다. 그리고 몰입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커다란 반전이 두 번 있었다. 첫째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연구를 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1초도 쉬지 않고 생각하기를 실천할 때이다. 처음에는 그 길이 모진 가시밭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몰입을 경험하면서 천국으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반전은 몰입을 알리려고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하전된 나노입자 이론 보다 오히려 몰입으로 더 알려진 것이다.
하전된 나노입자 이론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 25년 이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는데 내용이 방대해져서 이제는 대학원생에게 “반도체 재료 특강”이라는 제목으로 한 학기 강의를 하고 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기존의 패러다임과 달라서 저항이 많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하전된 나노입자 이론은 느리지만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Elsevier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재료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책이 있다. ‘Reference Module in Materials Science and Materials Engineering’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Diamond: Low Pressure Synthesis라는
섹션에 대한 글을 펜실베니아 대학의 Badzian 교수가 썼다. 그런데 백과사전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개정판을 낸다. 2016년 개정판을 담당하는 편집자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내가 이 부분을 개정하는데 적합한 사람으로 추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이론이 옳다고 생각하여 나를 추천한 것이다. 그래서 저압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설명을 내 이론으로 모두 대체하였다. 재료 백과사전에 내 이론이 소개가 되었으므로 조금씩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박막성장에 대한 교과서의 설명이 틀렸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교과서를 출간하는 것이다. 그래서 2016년에 새로운 이론에 의한 박막 성장에 관한 책을 Springer 출판사를 통하여 출간하였다. 이 책을 쓸 때 무슨 사고라도 나서 책을 출간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했다. “혹시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이 책이 출간된 후에 나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다음 그림은 이 책의 표지이다.
그림 6. 하전된 나노입자 이론으로 박막성장을 기술한 2016년에 출간된 책 표지
몰입을 통해서 수개월 혹은 1년6개월 만에 해결하면서 얻은 이론들은 하나같이 남들을 이해시키기 힘들다. 금속의 이차 재결정 원리나 화학증착에 의한 박막의 성장 원리는 현재까지 25년이 넘도록 남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연구들을 하고 있다. 물론 관련 이론을 이용한 응용연구도 하고 있다. 참고로 선문대학교의 이호용 교수는 나의 세라믹스 비정상입자성장 이론을 이용하여 조성이 복잡한 압전단결정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세라콤’이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재료분야의 난제를 해결해도 남을 이해시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니 2005년부터는 산업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몰입을 통해서 해결해오고 있다. 특히 생산공정에 발생하는 원인을 모르는 불량은 몰입을 적용하면 너무나 해결이 잘 된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들 문제는 해결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이런 공로로 문제를 해결해준 회사로부터 인센티브나 감사패도 받고 공과대학에서 산학협력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나는 누구나 몰입을 통하여 창의적인 문제해결능력을 가진 인재로 교육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에 힘입어 요전 원고에 소개한 학생들을 교육하고 훈련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몰입을 통해 얻은 대표적인 업적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이들 대부분은 내가 종전의 방식으로는 평생을 연구해도 얻지 못할 결과이다. 독자들 중 나의 개인적인 연구업적을 소개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로써 내가 왜 몰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왜 몰입을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하는지, 그리고 왜 몰입을 창의성 교육에 접목시키려 하는지 내 의도가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몰입 관련한 원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