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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으로,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것을 말한다.
漱 : 양치할 수(氵/11)
石 : 돌 석(石/0)
枕 : 베개 침(木/4)
流 : 흐를 류(氵/7)
(유의어)
견강부회(牽强附會)
궤변(詭辯)
아전인수(我田引水)
영서연설(郢書燕說)
지록위마(指鹿爲馬)
추주어륙(推舟於陸)
침류슈석(枕流漱石)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알고도 잘못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모르는 사이에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기의 큰 잘못은 넘어가고 남의 사소한 잘못만 눈에 띈다.
그래서 공자(孔子)도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과오(過而不改, 是謂過矣)라며 인간에게는 허물이 없을 수 없는데 이를 적게 하고 고치는 것이 도에 가까워지는 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경에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 하는가’라고 깨우쳐도 어리석은 인간은 남의 탓만 한다.
돌로 이를 닦고(漱石) 흐르는 물을 베개 삼을 수(枕流)는 없다. 옛말을 인용하려다 잘못 거꾸로 말했는데 그것을 지적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꾸며댈 때 이 말을 쓴다.
일의 앞뒤가 맞지 않거나 남에게 지기 싫어서 자기 것만 옳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빗대 사용하기도 한다. 견강부회(牽强附會)나 아전인수(我田引水)다.
서진(西晉) 때의 손초(孫楚)라는 사람은 문학적으로 뛰어났고 임기응변에도 대단히 능했다. 성격이 시원시원했지만 오만하고 남을 우습게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젊었을 당시 사대부 간에는 노장(老莊)의 철리를 중히 여겨 자연 속에 은둔하는 청담(淸談)이 유행했었다. 손초도 속세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친구인 왕제(王濟)를 찾아가 자신의 흉금을 토로했다.
그는 ‘돌을 베개 삼아 잠자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며 심신을 닦으려 한다(枕石漱流)’고 말한다는 것이 거꾸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겠다’고 말했다.
친구가 잘못을 지적하자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으려는 것은 옛날 영천(潁川)에서 귀를 씻은 허유(許由)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라고 억지 부렸다. 진서(晉書) 손초전과 세설신어(世說新語) 배조(排調)편에 전한다.
수석침류(漱石枕流)
이 성어는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으로,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것, 또는 이기려고 하는 고집이 셈,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고집부리는 것, 또는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지음(知音)을 얻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 말이다.
백아(伯牙)의 거문고 타는 마음을 마치 들여다보듯 헤아려 준 종자기(鍾子期)는 물론이고 관중(管中)과 포숙(鮑叔)의 관포지교(管鮑之交)는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례이다.
특히 유별난 세상살이로 트러블을 빚게 마련인 재자(才子)에게 지음(知音)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중국 서진(西晉) 시대를 살았던 손초(孫楚)와 왕제(王濟)가 그런 사이였다. 손초는 문재(文才)가 뛰어나고 영롱한 머리를 지녔으나 강직하고 고집불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미친 놈(狂夫)을 칭하며 속세를 떠난 은자(隱者)처럼 살았다. 이런 괴짜의 재주를 이해하고 거둬 준 사람은 황제의 사위로 제일급 귀족이자 구경(九卿; 장관)을 지낸 왕제였다.
손초가 죽은 아내의 상복(喪服)을 벗으면서 시(詩)를 지어 왕제에게 보여주었다. 왕제가 극찬하며 말했다.
未知文生於情, 情生於文.
시문이 정에서 생겨나는지 아니면 정이 시문에서 생겨나는지 모르겠구나.
(世說新語/文學篇)
당시는 과거제(科擧制)가 발명되기 이전으로 향리의 인물평판을 매겨 관리를 등용하던 시절이었다. 평판이 고약해서 스스로 관직과 담을 쌓은 손초에게 길을 열어준 것도 왕제였다.
왕제가 인사 책임자가 됐다. 담당자가 품장(品狀; 향리의 인물평판)을 작성하려 하자 왕제가 말했다. “손초는 향리의 평판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사람이니 내가 직접 짓겠다.” 그리고는 이렇게 썼다. “영특한 천재 발군의 재주(天才英特, 亮拔不群)”
이로써 손초의 관직은 지방장관(地方長官)에 이르렀다.
(世說新語/言語篇)
이토록 그를 인정해주던 왕제가 죽자 손초가 보인 행태는 과연 오만하고 방약무인(傍若無人)한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왕제가 죽자 명사들이 빠짐없이 조문했다. 손초가 뒤늦게 와서 시신을 마주하고 통곡하자 빈객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곡(哭)을 마친 손초가 위패를 향해 말했다. “그대는 늘 내가 나귀 울음소리 내는 것을 좋아했으니 이제 그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울어 보겠네.”
그 모습이 진짜와 흡사하여 빈객들이 모두 웃었다. 그러자 손초가 머리를 들고 말했다. “이런 자들을 안 잡아가고 이 사람을 데려가다니...”
(世說新語/傷逝篇)
다른 기록에는 손초의 거침없는 이 말에 빈객들이 모두 화를 냈다(賓客皆怒)고 전한다. 본론으로 진서(晉書)의 손초전(孫楚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 초엽, 풍익태수(馮翊太守)를 지낸 손초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 간에는 속세의 도덕, 명문을 경시하고 노장의 철리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손초도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石漱流)”라고 말할 것을 잘못하여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겠다(漱石枕流)”라고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손초는 자존심이 강하여 이렇게 말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삼겠다는 것은 옛날의 은자인 허유(許由)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으려는 것이고,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것은 이를 닦으려는 것일세.”
전설의 은자 허유가 요(堯)임금으로부터 천하를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씻었다는 얘기로 금세 둘러대는 재치도 재치지만,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그의 고집 센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사부급설(駟不及舌)이라. 이는 한번 뱉은 실언은 사두마차(四頭馬車)를 타고 뒤쫓아도 잡지 못한다는 말이다. 말 실수를 경계하는 논어(論語)의 말이다.
험한 세상일수록 실언과 극언을 입에 담는 이들이 많다. 손초의 재주가 있다면 말 실수를 금세 덮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아니 뱉어야 할 말을 한 것을 오히려 훈장 쯤으로 여기니 놀라울 따름이다. 손초는 그런데도 자신의 말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억지를 부렸다.
쓸데없는 소리를 들었을 때 냇물로 귀를 씻으면 물을 베개로 삼는 것이다.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는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후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고집부리는 것, 또는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쓰는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욕심이라는 병은 고칠 수 있다(縱欲之病可醫). 그렇지만 고집부리는 병은 고치기 어렵다(而執理之病難醫). 자기 주장만 하는 고집병은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얘기다.
사욕에 가득 찬 것도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이러한 병은 본인이 어느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다든가, 주변의 환경이 바뀌면 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소위 먹물이 조금 든 사람 중에는 집리(執理) 즉 쓸데없는 이론만 내 세우는 고집스런 사람이 있다.
좋게 표현하면 주관이요, 속되게 말하면 고집이다. 자기 주관이 강하면 남의 말을 잘 귀담아 듣지 않는다. 너무 주관이 강해도 문제가 있고, 유야무야(有耶無耶)해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중용(中庸)을 지킨다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집리지병(執理之病)이 고치기 어려운 것은 그 사람의 개성이요 성격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을 외골수라고 한다. 옳고 그름이 확실함에 자신은 떳떳하지만 늘 고독하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 법이다.
조선시대의 개혁가 조광조(趙光祖)는 대단한 얼짱이었다. 훤칠한 키에 맑은 얼굴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인상이었다. 조광조가 입궐하면 궁녀들이 안달이 났다고 한다.
어느 날 조광조가 숙직을 하는 데 젊고 아름다운 어떤 궁녀가 밤중에 몰래 찾아와 그 궁녀는 조광조 앞에서 치마를 올렸다.
조광조는 엄격한 유학자가 아닌가, 치마를 올리고 드러낸 종아리에 닿은 것은 조광조의 손길이 아닌 회초리였다. 그리고 궁녀는 쫓겨 난 야사(野史)로 전하는 이야기다.
조광조는 대쪽같은 성격은 국내 문제뿐 아니라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함경도(咸鏡道) 회령(會寧) 근처에서 살던 여진족(女眞族) 속고내(速古乃)가 갑산부(甲山府)를 침입했을 때의 일이다.
여진족은 부녀자를 겁탈하고, 곡식과 가축을 노략질 했다. 나라에서는 기습작전으로 여진족을 소탕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광조가 반대하고 나섰다. “안된다. 기습은 도둑이나 하는 짓이다. 결코 왕자의 도리가 아니다. 당당하게 나아가서 싸울 일이다. 뒷구멍으로 오랑캐를 기습할 수는 없다. 나라의 위엄을 손상하게 된다.”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반발했다. “밭을 가는 일은 남자 종에게 묻고, 베 짜는 일은 계집종에게 묻는다고 했다. 조광조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선비이다.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종(中宗)은 조광조의 손을 들어줬다. 여진족 소탕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군자기습불가론(君子奇襲不可論)이었다.
조광조는 좋게 말하면 원칙이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었다. 조광조는 죽느냐, 죽이느냐 하는 전쟁을 앞두고도 기습은 안된다며 자기 주장만을 폈던 것이다.
조광조 같은 인물이 그리운 시절이다. 어딜가나 아첨배기는 차고 넘쳐나도, 원칙이 있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없다. 오로지 이기(利己)만이 넘치는 사회이다.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 같아서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성어도 돌이켜 보자. 진시황이 죽자 나이 어린 호해(胡亥)가 진(秦)나라 황제 자리에 앉았다. 앉은 것이 아니라 앉힘을 당했다. 따라서 황제는 호해였지만 황제를 지배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환관(宦官) 조고(趙高)였다.
당시 진(秦)나라는 세금 많이 걷으면 우수한 관리, 사람 많이 죽이면 충신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엉망이었다. 조고가 권력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었다.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반대파는 있었다. 조고는 이것이 못마땅했다.
조고는 어느 날 호해에게 사슴(鹿) 한 마리를 가지고 갔다. 그러면서 이것은 내가 황제에게 바치는 말(馬)이라고 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말(馬)과 사슴(鹿)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황제였다. “사슴이 어떻게 말이 될 수 있는가” 반문했다.
결국 신하들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찬반 투표를 했다. 많은 신하들이 조고가 가지고 온 짐승을 말이라고 했다. 사슴이라고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했던 사람을 일일이 머릿속에 입력시켜 두었다. 나중에 모두 제거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잘 알려진 고사성어다. 사슴은 사슴이 아니었다. 말이어야 했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하면 찍혔다. 곧바로 원수가 되고, 제거 대상이 되었다. 악랄한 조고였다.
수석침류(漱石枕流)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병이다. 채근담(菜根譚)에는 그 정도 병에 걸린다고 해도 고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고집병은 병일 뿐이다. 고집병 걸린 사람과는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록위마(指鹿爲馬)는 한술 더 뜨는 병이다. 사슴을 말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제거 당하기 때문이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하면 오로지 찍힐 뿐이다. 원수 취급 당할 뿐이다.
그러니 지록위마(指鹿爲馬)는 훨씬 무서운 병이다. 수학 공식을 이용해 수석침류(漱石枕流),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의어로는 시냇물을 베개삼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뜻으로, 몹시 남에게 지기 싫어함을 이르는 말의 침류수석(枕流漱石)이 있고, 유사어로는 견강부회(牽强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추주어륙(推舟於陸), 지록위마(指鹿爲馬), 영서연설(郢書燕說), 궤변(詭辯) 등이 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추려고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도리나 이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당하다고 우기는 꼴이니,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에는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있는데, ‘제 논에 물 대기’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말이다. 또 추주어륙(推舟於陸)은 배를 밀어 육지에 댄다는 뜻이니, 역시 되지 않을 일에 억지를 쓴다는 말이다.
그밖에 영서연설(郢書燕說)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영(郢) 땅의 사람이 쓴 편지를 연(燕)나라 사람이 잘못 해석하고도, 자신이 해석한 내용대로 연나라를 다스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에 ‘채반이 용수가 되게 우긴다’는 속담이 있으니, 가당치도 않은 의견을 끝까지 주장한다는 말이요, ‘홍두깨로 소를 몬다’는 속담 역시 무리한 일을 억지로 한다는 뜻으로 수석침류(漱石枕流)와 통한다.
프랑스 속담에 ‘모든 물 방앗간 주인은 자신의 수차에 물을 끌어들인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이롭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의 아전인수(我田引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속담은 사람의 이기적 본성을 꼬집는 수준인 데 비해,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말에는 공동체적 가치를 무시하고 제 속셈만 차리는 이에 대한 강한 비난이 담겨 있다. 농부와 방앗간 주인의 처지가 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가끔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실수를 하고서도 끝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아전인수 격으로 억지로 발라 맞춰 발뺌을 하는 일도 참 흔히 볼 수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수는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실수를 하고서도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발뺌과 변명과 남의 탓에 익숙한 문화 가운데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터지면 자신의 탓이라고 고백하거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를 일단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보는 것이다.
세상이 악해서 그렇고, 제도가 잘못 되어서 그렇고, 환경이 열악해서 그렇고, 언론탓이고, 타당탓이고, 노조탓이고...
그리고 막상 문제의 꼬리가 잡혀도 끝까지 가는데 까지 가보고 버텨볼 수 있는데 까지 버텨 보려고 한다. 좀 체로 내 탓이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든 세상이다.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경솔하게 하다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살펴 듣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주고받을 때 십중팔구는 앞뒤가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때로는 거칠고 엉성하여 말의 맥락을 살피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치밀하고 고지식하여 말의 논리에 얽매이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영특하여 억측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며, 때로는 어리석고 식견이 짧아 귀착점을 찾아내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비근한 말을 듣고서 고원한 데에서 탐구하기도 하며, 때로는 오묘한 의론을 듣고서 천박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만나서 대화를 하지만 그 말이 어긋나고 모순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것은 단지 성격이 편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체로 마음을 안정되게 갖는 자는 적고 방심하는 자는 많아서,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 간신히 시간을 내어 말을 주고 받으니, 곡절을 잘 살펴 제대로 말이 오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동문서답(東問西答)하는 것은 자세하게 듣지 않아서 생기는 실수이니 허물이 그래도 적다. 그러나 낮을 이야기하는 말을 반대로 밤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듣고, 추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말을 반대로 더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듣는 경우는 바로 미장(迷藏; 숨바꼭질)의 경우이니 더욱 가증스럽다.
심지어 ‘흐르는 물을 베고 자며 돌로 양치를 한다’는 침류수석(枕流漱石)이란 말과 ‘노루 옆에 있는 것이 바로 사슴이고, 사슴 옆에 있는 것이 바로 노루이다’라는 장변록록변장(獐邊鹿鹿邊獐)과 같은 경우는, 골계적(滑稽的)인 말을 하여 자기 잘못을 완성시키거나, 혹은 얼버무려서 자신의 졸렬함을 감추는 것이니 마음에 가장 큰 해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논쟁할 때에 이 같은 증후가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제거하여, 뿌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남에게 논리상 밀리게 되면 발끈하고 이기려는 마음이 발동하여, 이윽고 남의 말이나 글에서 흠집을 찾아내어 억지로 그를 꺾으려고, 앞뒤는 다 잘라버리고 달랑 한 구절만 거론하거나, 본뜻을 살피지 않고 지엽적인 것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모두가 자기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남을 이기려고 힘쓰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런 생각이 깊을수록 병은 더욱 중해지는 법이다.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싸우려는 기세가 있는 자와는 변론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때 만약 이와 같은 부류를 만난다면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로써 본다면, 함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세상에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함께 말할 만한 상대인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고, 함께 말할 만한 상대가 아닌데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다”하시고,
또 말하기를 “중등 이상의 자질이 되는 사람에게는 고원한 도리를 말해줄 수 있지만, 중등 이하의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고원한 도리를 말해줄 수 없다”고 하셨으니, 남과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언제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을 베게로 삼는다.
본 성어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며 억지를 부릴 때 사용되는 용어로, 오기(傲氣)가 있고, 남에게 지기 싫어서 자기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거나 억지 쓰기를 잘하는 사람을 비유 할 때 견강부회(牽强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자기의 주장을 조건에 맞도록 함)나 아전인수(我田引水), 궤변(詭辯) 등과 함께 주로 사용되고 있다.
진(晉)나라 초 풍익(馮翊) 태수를 지낸 손자형(孫子荊, 孫楚)는 문재(文才; 글을 짓는 재주나 솜씨)도 뛰어났고 임기응변(臨機應變)에도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
이 고사는 손초(孫楚)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노장사상(老莊思想; 노자, 장자사상)이 성해서 속세(俗世)를 피해 숨을만한 곳을 구하는 경향이 강했고, 세속적인 도덕(道德), 명문(名聞)을 경시하며 노장사상을 논하거나 연구하는 것을 중시하는 시대였다.
이것을 청담(淸談)이라고 불렀고, 그 중심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있었으며, 이러한 세태가 당시의 사대부(士大夫)간에 유행처럼 번졌다.
그 중 손초(孫楚)도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손초는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流漱石)'라고 해야 하는데, 잠간 헛갈려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漱石枕流)'라고 반대로 잘못 말했다.
마치 '여름에 해수욕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즐긴다'를 '여름에 스키타고, 겨울에 해수욕을 즐긴다'라는 식으로 말을 바꾸어 말함으로 실수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왕제가 웃으며 말의 실수를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 문재(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인 허유(許由; 요임금 시대사람)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손초는 나중에 풍익(馮翊)이라는 지방의 태수(太守) 벼슬까지 하게 되는데 그는 뛰어난 문재(文才)이면서도 이 고사로 인하여 후세에 고집과 억지를 부리는 대장부(大丈夫)답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되곤 한다.
인류 최고 스승인 공자는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서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過則勿憚改)'고 가르치고 있다.
과거에는 고집스럽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을 고집불통이라 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사람은 소통(疏通)에 방해가 되고, 심하면 조직에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초래하여 그 조직을 와해시키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사람을 자기주장이 확실한 사람이라 칭하고, 또는 박식하고 중심이 있는 사람으로 평하는 시대가 되었다.
수석침류(漱石枕流)의 경우는 세 가지로 생각 할 수 있다.
첫째, 나이가 들어 늙어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자기의 젊고 유능한 시절의 자기도취(自己陶醉)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시대와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사람의 생각은 반대로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 '내가 과거에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라는 자존심이 점점 극대화되는 것이 그 이유이다.
둘째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고집과 억지가 강하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나 남을 가르치는 위치일수록 그 강도는 더해간다. 그들은 자기가 전공한 학문이외의 것도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셋째는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억지와 고집은 하늘을 찌른다. 세상만사가 자기를 위해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정책분야도 자기 의도대로 해야 맞는 것으로 억지를 부린다.
더 웃기는 일은 자기가 억지를 부린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왕고집(王固執)이 된다는 점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군주의 모습에 대한 교훈을 되새겨본다.
太上, 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최상의 군주는, 백성들이 다만 임금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인 군주이다(조용히 군주 역할에만 충실한 군주). 그 다음은 백성들이 다정함을 느끼고 칭송하는 군주이며, 그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는 군주이고, 그 다음은 백성들이 업신여기는 군주이다.
역대 대통령 분들은 이 가운데 어느 부류에 속한 군주였을까? 자기는 자기가 최상의 군주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백성들은 그분에 대한 모두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정중히 깨닫고 인정하는 지혜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 漱(양치질할 수)는 회의문자로 潄(수)는 동자(同字)이다. 물 수(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欶(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漱(수)는 ①양치질하다 ②빨다(주물러서 때를 없애다), 빨래하다 ③씻다 ④헹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양치질로 이를 닦고 물로 입 안을 가시는 일을 양수(養漱), 양치질을 함을 함수(含漱), 양치질하고 세수함을 관수(盥漱), 입안이나 목구멍의 세균을 제거하고 한편 염증을 치료하는 데 쓰는 약제를 함수제(含漱劑),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으로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것 또는 이기려고 하는 고집이 셈을 수석침류(漱石枕流), 시냇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뜻으로 몹시 남에게 지기 싫어함을 이르는 말을 침류수석(枕流漱石) 등에 쓰인다.
▶️ 石(돌 석)은 ❶상형문자로 언덕 아래 뒹굴고 있는 돌의 모양을 나타내며 돌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石자는 ‘돌’이나 ‘용량 단위’로 쓰이는 글자이다. 石자의 갑골문을 보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돌덩이가 그려져 있었다. 금문에서는 벼랑 아래로 돌이 굴러떨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石자이다. 그래서 石자의 좌측 부분은 벼랑이나 산기슭을 뜻하는 厂(산기슭 엄)자가 변한 것이고 그 아래로는 떨어져 있는 돌덩어리가 그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돌이 무게의 단위나 악기의 재료로 쓰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石자에는 ‘용량 단위’나 ‘돌 악기’라는 뜻이 남아있다. 그러나 石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돌의 종류’나 ‘돌의 상태’, ‘돌의 성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石(석)은 (1)어떤 명사 다음에 쓰이어 섬(부피의 단위)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2)경쇠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돌 ②섬(10말. 용량 단위) ③돌바늘 ④돌비석 ⑤돌팔매 ⑥숫돌(연장을 갈아 날을 세우는 데 쓰는 돌) ⑦무게의 단위 ⑧돌로 만든 악기(樂器) ⑨저울 ⑩녹봉(祿俸) ⑪쓸모 없음을 나타내는 말 ⑫굳다 ⑬돌을 내던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구슬 옥(玉), 쇠 철(鐵)이다. 용례로는 석유(石油), 석탄(石炭), 석류나무의 열매를 석류(石榴), 석회석을 석회(石灰), 돌로 쌓은 탑을 석탑(石塔), 돌로 만든 부처를 석불(石佛), 건축 재료로 쓰이는 돌을 석재(石材), 바위에 뚫린 굴을 석굴(石窟),돌이 마주 부딪칠 때에 불이 반짝이는 것과 같이 빠른 세월을 이르는 석화광음(石火光陰), 자갈밭을 가는 소란 뜻의 석전경우(石田耕牛), 옥과 돌이 함께 뒤섞여 있다는 옥석혼효(玉石混淆),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중석몰족(中石沒鏃),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수석침류(漱石枕流),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괸다는 상하탱석(上下撑石),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 뜨린다는 낙정하석(落穽下石), 나무 인형에 돌 같은 마음이라는 목인석심(木人石心),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사석위호(射石爲虎) 등에 쓰인다.
▶️ 枕(베개 침)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밑에 까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 冘(임, 침)으로 이루어졌다. 머리 밑에 까는 것, 즉 베개를 말한다. 옛날의 베개는 나무로 만들었다. ❷회의문자로 枕자는 ‘베개’나 ‘베다’, ‘잠자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枕자는 木(나무 목)자와 冘(나아갈 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冘자는 목에 칼을 차고 걸어가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베개를 사용했었다. 그러니 枕자에 木자가 쓰인 것도 베개의 재질을 뜻한다 할 수 있다. 또한, 머리에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을 그린 冘자는 뜻과는 관계없이 베개를 베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枕(침)은 ①베개 ②말뚝 ③머리뼈 ④베개를 베다 ⑤드러눕다, 잠자다 ⑥가로막다, 방해하다 ⑦임하다, 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베개와 자리를 침석(枕席), 팔을 베게 삼아 벰을 침굉(枕肱), 베갯 보를 침량(枕樑), 벼개를 베고 죽었다는 침사(枕死), 누울 때 사람을 벰을 침인(枕人), 베개를 침자(枕子), 밑에 깔거나 받치는 널빤지를 침판(枕板), 베갯 머리를 침두(枕頭), 머리맡에 치는 병풍을 침병(枕屛), 서로 베개 삼고 잠을 침자(枕藉), 이부자리와 베개를 금침(衾枕), 나무 토막으로 만든 베개를 목침(木枕), 구르는 차바퀴를 받쳐 멈추게 함을 차침(車枕), 둥근 나무나 큰 방울 모양으로 된 베개를 경침(警枕), 네모난 베개를 방침(方枕), 편안히 잠을 잠을 안침(安枕),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개침(開枕), 한 자리에서 함께 잠을 연침(聯枕), 잠자리에서 일어남을 기침(起枕), 물에 가라앉음 또는 물에 잠김을 수침(水枕), 홀로 잘 때의 외로운 베개로 곧 외로운 잠자리를 고침(孤枕), 시냇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침류수석(枕流漱石), 창을 베고 갑옷을 깔고 앉는다는 침과좌갑(枕戈坐甲), 창을 베고 기다린다는 침과이대(枕戈以待),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침과대적(枕戈待敵), 창을 베고 갑옷을 입고 잠을 잔다는 침과침갑(枕戈寢甲), 창을 베고 자면서 아침을 기다린다 라는 뜻의 침과대단(枕戈待旦) 등에 쓰인다.
▶️ 流(흐를 류/유)는 ❶형성문자로 㳅(류)는 고자(古字), 沠(류)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㐬(류; 아기가 태어나는 모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流(류)는 아기가 양수와 함께 순조롭게 흘러 나옴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流자는 '흐르다'나 '전하다', '떠돌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流자는 水(물 수)자와 㐬(깃발 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㐬자는 물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그린 것이다. 育(기를 육)자가 그러하듯 流자의 상단에 있는 것은 '어린아이'가 변형된 것이다. 또 아래에 있는 글자는 물살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㐬자는 아이가 급한 물살에 떠내려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㐬자 자체도 '흐르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 水자를 더한 流자는 본래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글자이다. 그래서 流(류/유)는 ①흐르다 ②번져 퍼지다 ③전(傳)하다 ④방랑(放浪)하다 ⑤떠돌다 ⑥흐르게 하다 ⑦흘리다 ⑧내치다 ⑨거침없다 ⑩귀양 보내다 ⑪흐름 ⑫사회 계층 ⑬갈래 ⑭분파(分派)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거침없이 흘러 통함을 유통(流通), 밖으로 흘러 나가거나 나오는 것을 유출(流出), 어떤 복장이나 언어나 생활 양식 등 일시적으로 널리 퍼져 유사해지는 현상이나 경향을 유행(流行), 흘러 들어옴을 유입(流入),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유리(流離), 물결에 비치는 달을 유광(流光), 널리 세상에 퍼지거나 퍼뜨림을 유포(流布), 이리저리 떠도는 것을 유전(流轉), 융통하여 사용함을 유용(流用), 액체 등이 흘러 움직임을 유동(流動),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얼음덩이를 유빙(流氷), 하천이 흐르는 언저리의 지역을 유역(流域), 일정한 목적없이 떠돌아 다님을 유랑(流浪), 떠내려가서 없어짐을 유실(流失), 서로 주고 받음을 교류(交流), 물에 떠서 흘러감을 표류(漂流), 대기의 유동을 기류(氣流), 물이 흐르는 원천이나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을 원류(源流), 물의 근원이 되는 곳의 부근을 상류(上流),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물의 원줄기에서 갈려 흐르는 물줄기를 지류(支流), 둘 이상의 흐름이 한데 합하여 흐르는 것 또는 그 흐름을 합류(合流), 혼탁한 물의 흐름을 탁류(濁流), 아무 근거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나 터무니없이 떠도는 말을 유언비어(流言蜚語), 향기가 백대에 걸쳐 흐름이란 뜻으로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함을 일컫는 말을 유방백세(流芳百世),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며 사는 일을 일컫는 말을 유랑생활(流浪生活),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항상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유수불부(流水不腐), 일정한 직업을 가지지 아니하고 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일을 일컫는 말을 유리표박(流離漂泊), 쇠가 녹아 흐르고 흙이 그을린다는 뜻으로 가뭄이 계속되어 더위가 극심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금초토(流金焦土),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가는 봄의 경치 또는 남녀 간 서로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을 이르는 말을 낙화유수(落花流水),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으로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것 또는 이기려고 하는 고집이 셈을 일컫는 말을 수석침류(漱石枕流), 푸른 산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말을 거침없이 잘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청산유수(靑山流水), 피가 강을 이루어 무거운 공이라도 띄울 수 있다는 뜻으로 싸움이 치열하여 전사자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혈류표저(血流漂杵), 흐르는 물과 하늘의 뜬구름이라는 뜻으로 과거사가 흔적이 없고 허무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류운공(水流雲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