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먹는샘물 1
먹는샘물(생수) 산업의 성장 속의 진통
생수,병물, 보존음료, 광천수, 먹는샘물
상류층은 생수를 먹고 국민에게는 금지
물산업에서 먹는샘물(생수)은
생수, 보존음료, 광천수, 먹는샘물, 병물까지
공식 명칭부터 5 번이나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고위직과 정치인 부유층에서는
진작부터 병물을 음용했지만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서자취급을 받으며
판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1세대 14개 허가 기업들도
반드시 외국인과 군가족에게만
판매해야한다는 단서가
주홍글씨처럼 따라 다녔다
김영삼정부에 들어와
시판판매금지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10여년의 법정 공방은 막을 내렸다.
시판은 허용 하였지만
과징금, 벌금은 가장 무거웠으며
수질개선부담금은
생산량의 20%로
당시 우리나라 모든 생산제품에
가장 비율이 높은
부담금을 내야 했다.
일반 광고도 전면 금지되었으며
1사 1 브랜드만 허용한
법의 재물로 홍역을 치뤘던
먹는샘물이었다.
110년 전 초정리 물이 한국 최초로 생산
70년대 미군가족을 위해 서초동 지하수를
우리나라 먹는샘물 1호는 다아아몬드정수
먹는샘물 산업의 태동과 성장
우리나라의 최초 생수가 처음 상품화된 시기는 한일 합방 후 1912년 일본인이 충청북도 초정리 약수터를 개발, "구리스다루(crystal)"라는 이름으로 천연사이다와 천연 탄산수를 생산한 것이 시발점이다. 해방후 생수를 상품화하여 시판한 것은 76년 다이아몬드정수가 처음이다.(사진;경기도 장흥 다이아몬드정수 공장)
다이아몬드정수는 70년대 초반부터 미군 및 미군 가족을 위해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먹는샘물이라는 명칭보다 대중적으로 생수로 불렸으며 공식명칭은 보존 음료수로 불렸다.(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 1974.8, 1974년 9월 보건사회부 고시로 조건부 허가)
먹는샘물’이란 샘물을 있는 그대로 음용 하는 것이 아닌 물리적인 처리를 거친 물을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먹는물관리법」(먹는물관리법 시행, 1995.5.1., 법률 4908호)에 따라 음용수를 병에 넣어 판매하는 것을 ‘먹는샘물’로 명시하고 있다. 국내 수돗물 사정이 열악한 현실에서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샘물 산업이 미군기지에 군수용품을 납품하는 미국 기업인에 의해 생수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먹는샘물 사업은 한국인 상대가 아닌 미군과 미군 가족들을 위해 서초구에 위치한 롯데사이다 공장(뱅뱅사거리 주변)에서 사이다 생산 공정 중에 지하수 일부를 병물에 담아(18.9리터) 공급했던 것으로 최초의 지하수 물을 이용한 생수 공정이다. 당시 생수병은 유리병이었는데 미군 군수물자로 오키나와 기지에서 공수되어 샘물 회사가 사용하였지만, 점차 수량이 증가하면서 생수용 유리병이 국내서 제조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주로 활용되는 위생 재질인 PE(폴리에틸렌) 플라스틱병은 당시로는 생산할 수 없었기에 유리병으로 제조한 병에 물을 담아 용달이나 오토바이로 배달하였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는 병물이라고 자연스럽게 불렸다.
18.9리터의 유리병 물의 가정까지 배달은 용기의 파손과 무게로 소비자의 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후 플라스틱 용기 제조사들이 플라스틱으로 용기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는 플라스틱 용기로 전환되기 시작한다(그림 1). 하지만 플라스틱 용기조차 생산하기 어려웠던 것은 위생의 안전성을 위해 PE 재질로 생산해야 했지만, 가공 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서는 위생에 안전한 물병 생산에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더구나 미 8군에 납품하는 조건은 미국의 위생 기준에 적합해야 하므로 한동안은 위생 기준 검사에서 불합격 받아 수년간 유리병이 대세로 활용되었다.
물의 무게와 생수통(유리병) 무게가 겹쳐 물을 나르는 것은 건장한 사내가 아니면 물병을 옮기기 어려웠다. 주부들이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수를 배달하는 배달인들은 미군기지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이 발부되었고 그 증표는 후암동에 주로 기거하던 미군 가족들 집의 거실까지 무탈하게 통과하며 미군 가족과 좋은 인연을 맺는 구실이 되었다.(초창기 생수사업의 사장들과 주요 배달직원들은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시의 유리용기는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이 없는 청결한 생수병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자국 내 유통하는 생수는 병물로, 수출용은 페트병으로 구분하여 생산 유통하고 있다.(사진;석유통같은 크기의 생수통)
미8군에 독점 공급한 생수 회사는 다이아몬드라는 상표를 지닌 다이아몬드정수 회사로 후암동에 사무실이 있다가 후에는 연희동으로 사옥을 옮겨 운영했다. 생산공장도 강남사거리(롯데사이다 공장)에서 경기도 양주시의 송추계곡, 그리고 강원도 철원 근남면으로 이전하여 생산하고 있다.( 설립자인 미국인에게 양도받아 40여년간 유덕재(영업담당),정진화(경리담당) 2인이 공동대표로(고 정진화 대표는 환경부 이정주국장(수도권매립지 초대 이사장과 고교동기동창)운영하다가 LG생활건강에 300억원에 매각하고 1세대 최초의 먹는샘물 사업가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다이아몬드정수에 근무하였던 인물들이 독립하여 크리스탈샘물과 청정 크리스탈샘물 2개 사가 탄생된다. 당시 이들 생수도 18.9리터 단일 제품으로 지금의 소형 용기(0.5리터/2리터)는 제조하지 않았다.
시장이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는 미군 가족보다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열렬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매년 수량이 급증하게 되고 생수 구매는 신분 상승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당시의 국내 소비자의 주요 구매층은 국회의원, 정부 고위직, 기업인, 의사와 약사, 교수 등과 미국을 포함한 외국의 대사관들이 주를 이뤄 생수통이 배달되었다.
18.9리터 생수가격은 1병에 1500원으로 시작하여 3천원, 5천원이상으로 인상되었지만 가격에 관계 없이 생수시장은 지속적으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연간 16% 이상 신장)
1970년대에 주로 주한 미군에게 판매되던 먹는 샘물은 점차 지역의 외국인 가족들에게 판매가 확산했고 1980년대 초반부터는 이들 영업 조직으로부터 신규 기업이 파생되어 먹는 샘물 사업 조직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이아몬드 샘물에 종사하던 한국인에 의해 경기도 지역에 크리스탈샘물, 한국청정음료와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KAL호텔 지하수를 사용하여 비행기 승객들에게 공급하던 제동흥산, 엣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충청도 초정리의 초정약수 주변에 지하수를 개발하여 풀무원,일화,진로석수등이 샘물사업에 진출했다.(초정리 지하수는 샘물기업들이 밀집하여 지하수를 사용하므로서 물이 고갈되고 세계 3대 광천수로( 미국의 샤스타, 영국의 아폴리나리스,한국의 초정약수)선정된 것이 무색하게 탄산수의 본래 맛도 상실하고 지하수량도 부족하여 옛 명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지하자원 관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샘물시판허용이 된 94년까지의 14개 업체는 다이아몬드 정수(제조 경기도 송추/대표 정진화,유덕재),산수음료(경기도 수동면/김태룡)(주)크리스탈(가평 설악면/윤정호),한국청정음료(포천 이동면,이동크리스탈/이병인),설악음료(설악산,용마건설,김노식;국회의원 역임),풀무원샘물(미원면에서 괴산 문광면으로 이전/남승우),(주)일화(내수면 초정리),(주)진로석수(청원군 가덕면 내암리),제동흥산(제주항공계열사,남제주군 표선면),(주)동원산업(괴산군 불정면), 스파클(내수면 초정리,제일제당에서 분리),해태음료(강원도 평창군 봉평면),화니음료(전남 장성,화니백화점계열),고려마운틴이다.
이들 기업은 먹는 샘물 산업의 1세대로 14개업체가 95년 양성화될 시기까지 샘물사업을 주도했다. 먹는 샘물의 매출 증가와 더불어 샘물 회사들도 급증하게 됐지만 정부는 수돗물의 불신과 계층 간의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문제로 한동안 먹는 샘물 업체에 대해 공식적인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14개 업체도 식품위생법상 전량 외국에 수출하거나 주한 외국인에게 판매하는 조건이 주홍글씨처럼 붙어 다녔다.
그러나 당시 14개 업체에 허가된 생산량중 97.8%가 국내에서 유통되며 제품 생산량인 24만 1439톤 중 주한외국인에게 판매된 물량은 고작 2913톤에 불과했다. 판매금액으로 환산하면 338억 5500만원 중 주한외국인에게는 5억8700만원에 불과했다. 해외 수출은 다이아몬드정수가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판매하는 6백26톤(1억6100만원)에 불과했다.(보사부 조사 92.1월부터 93년 9월자료)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