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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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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3월호와 목련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164 15.03.06 08: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귀포 이중섭거리에 목련 소식이 전해진 지는 며칠 되었는데, 제주시의 양지 바른 곳에 하나둘 피기 시작하는 날,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詩’ 3월호(통권 321호)가 배달되었다. 시지는 임미리 시인의 권두 에세이로 시작하여 ‘신작시 14인 選’으로 임보 정순영 김동호 김두환 조재도 채들 조경희 장상관 김석윤 이동훈 민구식 채영선 이명우 유병란의 시를 실었다.

 

  이어 ‘기획특집 연재詩(10)’로 홍해리의 ‘치매행致梅行’, 이인평의 ‘기획연재 인물詩(3)’, 박승류의 ‘詩誌 속 작은 시집’, 이재부의 ‘테마가 있는 소시집’, 손성대, 정선희의 ‘시인이 읽는 詩’, 조영임의 ‘한시한담漢詩閑談’, 양선규의 ‘인문학 스프’, 홍예영의 ‘수필 산책’ 순으로 엮었다. 앞에서 시 몇 편을 옮겨 목련과 같이 싣는다.

   

 

♧ 시는 꼭 고상해야 하나? - 임보

 

시는 꽃처럼 아름다워야 하고

시는 과일처럼 향기로워야 하고

시는 어린애 볼처럼 부드러워야 하고

시는 귀부인처럼 우아해야만 하나?

 

아름답진 않아도 정겹고

향기롭진 않아도 구수하고

부드럽진 않아도 따스하고

우아하진 않아도 소박하면 안 되나?

 

아니,

타령처럼, 만담처럼

해금처럼, 소리처럼

소주처럼, 아편처럼

작부처럼, 오입처럼

황홀하게 빨려드는 그런 시는 안 되나?

 

어금니에 달라붙은 갱엿 같은

여름날 학질 쫓는 소태 같은

날된장에 혀를 쏘는 풋고추 같은

입천장이 훌렁 까진 홍어찜 같은

 

한 입 베어 물면 눈물이 핑 도는

그런 시는 안 되나?

왜 안 되나?

 

 

♧ 추정秋情 - 정순영

 

풀벌레 소리 우거진 오솔길을 혼자 걸으니

갈바람이 마중하네.

외로운 술잔에 여울지는

노을 물든

주막

지그시 감은 눈의

그리움

올 때 홀로 왔으니

홀로 가야지

낙엽 지는 길섶에서

귀뚜리가 이리도 애처롭게

울어주네.

   

 

♧ 사랑 넷에게 - 김동호

 

지구를 휘감고 있는 것

대기 아닙니다

 

대지를 덮고 있는 것

수목 아닙니다

 

바다를 채우고 있는 것

바닷물 아닙니다

 

짐승 속에 들어 있는 것

똥오줌 아닙니다

 

 

♧ 눈이 오면 6 - 김두환

 

눈들 소곤소곤 다가오네

 

천신天神 앞장서서 찾아오는 지

천아성聲* 그윽이 들리며 높아질수록

지신地神은 그를 맞이한다고 동구에서

손짓춤 사뿐사뿐 돌리며 넓히네

 

눈들 점점 많이 몰아오네

 

대보름날 동네 토민들 모여들어

상쇠놀음 큰소리 따라 쿵쿵 펄펄펄

돌고 돌며 잇대네 불리네 다짐하네

얼싸절싸 끄덕끄덕 풍년 빌어대네

얼싸절싸 뒤뚱뒤뚱 조왕王 떠받치네

마당도 들려 번쩍번쩍 돌아대고

장독대도 쳐들고 뒷소리 지르고

대추나무 감나무 모둠꽃밭도 웨웨웨

외치네 부르네 수수꾸네 한통치네

천지가 한물로 불어나며 넘쳐나네

 

눈들 점점 높이 쌓아올리네

 

앞동산 뒷동산 너머 멀리

봉우리들 등성이마다 하얗게 높직이

탑塔들 세웠으니 그들 무시로 굽어보며

천하 만세태평萬世太平을

천하 만인적萬人敵*들 패기를

빌어주며 북돋워 주며 방호하네

산까치들도 알고 만선두리* 쓰고 나타나

앞에다 한참 조아리며 더 무롸내며

순수 순정에 만만 감사 올리네

 

참 참, 순천順天이네

 

---

* 천아성 : 임금이 행차할 때 부는 태평소 소리

* 만인적 : 군사를 쓰는 전술이 뛰어난 사람

* 만선두리 : 고관이 겨울에 예복을 입고 머리에 쓰던 방한 모자

   

 

♧ 고등어회 - 채들

 

아가미 아래 깊숙이 칼집을 내

바닷물에 담근다

 

파닥거릴수록 빠져나가는 피

비린 삶이 흘러나가

바다 한가득 노을이다

 

접시 위에 분리된 머리가

한 점, 두 점, 젓가락질로

사라져가는 살점을 헤아리고 있다

 

모진 삶,

왜 이리 눈은 감겨지지 않는 거야

왜 이리 숨은 머리에 오래 붙어 있는 거야

   

 

♧ 걸어다니는 나무 - 조경희

 

  내 그늘진 삶에도 쨍하고 해 뜰 날 올까요 어둡고 습한 지하셋방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요 아마존 열대우림 빼곡한 정글에 갇힌 듯 눈앞이 캄캄해요 벽에는 곰팡이꽃이 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바퀴벌레들이 기어다녀요 찬바람이 뼛속을 에이는 시린 밤,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이불을 겹겹이 덮어도 마음으로부터 오는 한기는 가시지 않아요 볕들지 않는 궁핍한 무늬와 씨름하며 온몸 땀에 젖고 정강이뼈 부러지도록 빛을 향해 걷고 달려도 길은 요원하기만 해요 아아 나에겐 한모금 빛이 필요해요 해가 뜨는 곳으로 누가 날 좀 데려다줘요 이 천형 같은 음지에 박힌 다리를 잘라서라도 해바라기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뻗겠어요 이제 그만 그늘진 생의 늪에서 벗어나 맑은 햇살 내리는 양지녘에 단단한 뿌리 내리고 싶어요

 

---

* 아마존에 서식하는 워킹팜(walking palm)은 햇빛이 드는 양지를 향해 새뿌리를 뻗고, 음지쪽 뿌리는 잘라버린다. 1년에 4cm가량 움직임

   

 

♧ 번영상회 - 민구식

 

대숲 속에 녹슨 간판 하나 누워있다

각목에 박혔던 못 자국에서 바람소리가 난다

삭아 없어진 구멍 사이로 나온 대나무를 따라

물건 하러 가려고 채비하듯 반쯤 일어서 있다

얇은 함석 얼굴에 남아있는 화장기가 붉다

왜 여기까지 와서 전을 벌렸는지

한 때는 번영을 꿈꾸었던 빨간 글씨 번영상회

두 자리 국 전화번호는 오래 전 폐업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글자에서는 해 저녁 떨이로 팔리거나

아침 저자의 통통한 콩나물이 묘 등 만큼이나 다소곳 한

아직도 팔고 싶은 것들이 쌓여있는 듯

검은 앞치마를 두른 튼실한 주인 아줌마가 콩나물을 다듬다 말고 일어나

수다스럽게 인사하는 것을 외면 할 수가 없어

날마다 콩나물을 먹어야 했지

때 묻은 외상 장부가 나풀나풀 손을 타고 넘으면

아내 이름이 숨어있고

외상장부에 줄이 그어지던 월급날엔 한 움큼 덤으로 얹어진 가난한 단골

가쁜한 비닐봉지 속에

반은 비게인 돼지고기가 들어있던 날의 기대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골목 흙길을 더듬으며

언젠가는 배달해서 먹을 거라고

우물거리던 아내의 꿈을 기억하는 번영상회 간판

   

 

♧ 상처 - 홍해리

  - 치매행致梅行 · 91

 

사는 일이 서로 상처나 주고받는 일이라서

깨진 바가지 꿰매 봐야 자국은 남기 마련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는다고 다 담으랴

끊어진 끈 이어 놓아도 흉한 매듭은 남고

가슴의 통증은 사라져도 흔적은 있지만

그것은 내가 만든 필생의 작품이 아닌가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감상할 명품이니

하늘도 이와 같아 깨져서도 파랗게 빛난다

사람도 이와 같아 병들어도 아프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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