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의 주식거래 내역서 최초 공개
막대한 돈을 미국으로 빼돌렸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일가가 미국에서 거액을 주식에 투자했다 큰 돈을 날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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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욱 前 중정부장
김형욱 부부는 1975년에 59만달러, 1976년에 77만여달러의 주식을 매입해 1976년말까지 최소 136만달러어치 이상의 주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약
40년전의 136만달러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가장 보수적인 화폐가치 측정방식인 미국 연방노동부의 CPI 인플레이션 추정방식을
적용해도 570만달러를 넘고 실질물가상승을 감안하면 그 10배가 넘는 1500만달러(159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
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부인 김영순씨가 1981년 김형욱의 재산상속을 위해 뉴저지주 상속법원에 제출한 서류에는 김형욱 일가의
주식투자내역을 낱낱이 담은 주식거래내역서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서류는 또 미 국세청 개인소득세 보고 때도
첨부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서류는 한국처럼 연말정산을 위해 미 국세청 소득세 신고때 사용하도록 씨티은행이 발급한 것으로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치의 주식거래내역을 담고 있습니다
이 주식거래내역서에 따르면 김형욱과 그의 부인 김영순[신영순]은 적어도 1975년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했으며, 첫 거래일로
추정되는 1975년 7월 16일 하루에만 무려 33만7000여달러를 투자,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이어 약 한달 뒤인 8월 25일
8만9000여달러, 9월 22일 8만1000여달러, 9월 30일 역시 8만1000여달러 등 1975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무려 58만9800여달러의 현금을 주식에 쏟아부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1976년에는 주식매입액수를 더 늘려 5월에만
27만달러를 비롯해 4월과 6월에 각각 14만달러, 3월에 9만달러 등 한해 77만3500여달러 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975년과 1976년 2년간 주식매입액수는 136만3000여달러이며, 이들 주식은 1977년
이후부터 매도되므로 1976년말 김형욱 부부의 주식보유액은 적어도 136만달러를 넘었습니다. 특히 이 내역서에는 1980년 이후에
매도한 내역은 기재돼 있지 않기 때문에 김씨 부부가 더 많은 주식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1970년대 미국 이민 때 허용된
1인당 해외정착금이 2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1976년말 136만달러는 6800명의 해외정착금에 해당할 정도의 거액입니다.
김
형욱 부부는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즉 김형욱이 파리에서 실종되기전 3년간 코카콜라, 코닥, IBM,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존슨앤존슨, 듀폰, 시어스로벅, 제록스 등 이른바 세계적 우량주에 투자하면서 입은 손실만 25만7000여달러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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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은행이 발행한 1977년분 김형욱의 주식거래내역서.
김형욱의 씨티뱅크 증권투자 계좌번호는 546289로 계좌주인은 닥터 김형욱으로 표기돼 있었으며, 1977년 한해에만
단기투자에서 4000여달러, 장기투자에서 9만3400여달러 등 9만7400여달러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김형욱은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사들인 10개 종목을 1977년에 매도했으며, 세인트폴에서 1800여달러, 브리스톨 마이어스 1100여달러의 수익을
올린 반면, 코닥에서 2만5000여달러, 웨어호이어에서 1만7000여달러, 버로우사에서 약 2만1000달러, 엘리 릴리사에서
1만4000여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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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은행이 발행한 1977년분 김영순의 주식거래내역서.
아내 김영순도 마찬가집니다. 김영순의 씨티뱅크 증권투자 계좌번호는 546288이며, 1977년 한해에만 단기투자에서
4500여달러, 장기투자에서 6만6800여달러 등 약 7만1400달러를 날렸습니다. 김영순은 1975년과 1976년에 사들인 5개
종목을 1977년에 매도했으며, 단 한 종목도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김형욱과
마찬가지로 코닥에서 2만6700달러, 웨어호이저에서 1만7400달러, 버로우에서 1만6000달러 등 큰 돈을 잃었습니다. 특히
코닥은 김형욱 부부가 10만6000달러 정도를 투자해서 5만5000달러 정도만 건지면서 반토막이 났습니다. 이처럼 1977년
한해만 김형욱 부부가 주식투자로 날린 돈이 무려 16만9000달러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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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은행이 발행한 1978년분 김형욱의 주식거래내역서.
1978년에도 손실은 이어졌습니다. 김형욱은 1978년에 단기투자에서 약 900달러의 수익을 얻은 반면, 장기투자에서
3만6700여달러를 날려 전체적으로 3만5800여달러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김형욱은 코카콜라에서 4300여달러, 컨티넨탈
일리노이스에서 2300여달러의 수익을 올렸지만, 블랙데커에서 1만3000여달러, 카네이션에서 1만1000여달러, 존슨앤존슨에서
1만500여달러, 시어스 로벅에서 4100여달러, 듀폰에서 1500달러, 제록스에서 1500달러를 손해봤습니다. 김형욱은 제약회사
존슨앤존슨, 유통회사 시어스 로벅, 화학회사 듀폰, 복사기회사 제록스, 음료회사 코카콜라 등 이른바 세계적 우량주에 투자했지만
돈만 고스란히 날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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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은행이 발행한 1978년분 김영순의 주식거래내역서.
김영순은 1978년에 단기투자에서 1400여달러, 장기투자에서 4만1300여달러를 날려 전체적으로 약 4만2800달러의
손실을 기록, 김형욱보다 더 큰 돈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김영순은 1978년 IBM 주식에서 유일하게 5700달러의 수익을 올렸을
뿐 나머지 9개 종목에서 모조리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세계적인 복사기회사 제록스에서 1만4900여달러, 카네이션에서
1만500여달러, 케이마트에서 6400여달러, 맥도널드에서 5400여달러, 코카콜라에서 4500여달러 등 김형욱과 마찬가지로
우량주에 투자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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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은행이 발행한 1979년분 김형욱의 주식거래내역서.
김형욱이 실종된 1979년 김영순은 처음으로 약 8000달러의 수익을 올렸지만 김형욱이 1만7700여달러의 손실을 기록,
부부 투자성적은 역시 마이너스 9700여달러였습니다. 김형욱은 1975년과 1976년에 매입했던 IBM 주식을 팔아서
1만1300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약 1200달러, 백스터타번랩에서 6700달러 등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디즈니 월트사에서 1만6000여달러,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3600여달러를 잃는 등 전체 수익은 역시 마이너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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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은행이 발행한 1979년분 김영순의 주식거래내역서.
김영순은 4년간 보유했던 IBM을 매도 1만800달러, 백스터타번랩에서 7400여달러의 수익을 올려 처음으로 플러스를
기록했지만 김형욱의 손실을 메울 수는 없었습니다. 1979년 주식거래내역서에서 특이한 것은 김형욱이 실종된 1979년 10월 7일
이후 김형욱 계좌에서 5차례나 주식이 팔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김형욱 부부가 씨티뱅크 직원에게 투자관리를 모두 맡기는 이른바
웰스매니지먼트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미 국세청은 김형욱 실종 이후 매도된 주식들은 뉴저지법원이 사망판결때
사망일로 간주한 10월 7일 종가로 계산, 상속세를 부과했습니다. 3년간 김형욱의 투자실적은 15만1000여달러 손실, 김영순은
10만6000여달러 손실로, 부부가 모두 25만7000여달러를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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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뱅크는 1976년 6월 작성한 김형욱 일가의 계좌내역을 미 하원 프레이저청문회에 제출했다. 프레이저보고서 제7권 88페이지.
김형욱 부부가 과연 주식에 얼마를 투자했는지 전체 액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1977년 미하원 외교위원회의 한·미관계청문회,
이른바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이미 이들이 증권계좌를 보유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프레이저청문회 보고서 부록 7권에 따르면 이들은
퍼스트내셔널씨티뱅크, 즉 씨티뱅크에 인베스트 애드버서리 어카운트, 즉 투자계좌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기록된 계좌번호는 씨티뱅크가 발행한 김형욱, 김영순의 주식거래내역서와 일치했으며, 놀라운 사실은 그의 차남 또한 동일한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형욱 차남의 이름은 김정우이며, 그의 투자계좌번호는 546290으로 김형욱 가족의 계좌
3개가 끝번호만 다를 뿐 연속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이들 김형욱 일가가 동시에 계좌를 개설했을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김
정우의 계좌내역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차남 또한 적지 않은 돈을 주식투자에 쏟아부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서류에는
김형욱 부부와 장남 김정한, 차남 김정우, 외동딸 김신혜가 각각 씨티뱅크 체킹계좌를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차남 김정우는
세이빙스계좌와 투자계좌를, 외동딸 김신혜도 세이빙스 계좌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됩니다. 차남과 외동딸은 체킹계좌 외에 장기간 일정액 이상을 예치해야 하는 세이빙스계좌를, 차남은 세이빙스 외에도 투자계좌까지
보유했지만 장남 김정한만은 세이빙스나 투자계좌가 없었습니다. 하루에 최대 33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2년간 136만여달러를 주식에
쏟아부었다는 것은 김형욱이 그만큼 엄청나게 빼돌렸음을 의미하며 그나마 이는 그가 미국으로 도피시킨 재산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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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욱은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자신의 월급은 7백50달러이며, 퇴임전 가장 많이 받았을 때 천달러정도였다고 증언했다. 프레이저 보고서 제7권 11페이지.
김형욱은 1977년 7월 11일 프레이저청문회에서 중정부장 재직때 자신의 월급이 750달러, 퇴임 전 가장 많았을 때가
1000달러였다고 밝혔습니다. 김형욱의 연봉이 1만달러이므로 136만달러는 그가 한푼도 쓰지 않고 136년동안 저축해야 되는
돈입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돈은 그의 부정축재에서 비롯됐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