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영국 런던에서 왕립광산학교(RSM, Royal School of Mines) 연구실에 첫 등교 하던 날이다. 당시 140년 이상 된 흰색의 5층 석재건물과 현관 벽에 부착된 오래된 철제 학과명패들이 특별히 기억난다. 한국과학재단과 영국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IC, Imperial College)의 왕립광산학교에서 1년간 박사 후 연구 생활을 했다. 왕립광산학교는 1841년에 문을 열었고, 1907년에 임페리얼 칼리지에 통합되었다. 임페리얼 칼리지는 과학과 공학 전공의 명문대학이며 유럽의 MIT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왕립(ROYAL)이라는 용어는 국왕을 위해 봉직하거나 국왕의 후원을 받는 조직이나 기관 이름에 쓰이며 최고를 의미한다.
내가 체류할 때는 왕립광산학교에 광산공학 (자원공학), 지질학, 광물처리 공학 등 세 학과가 있었다. 내 연구실은 4층이었는데 건물의 복도가 나무 마루여서 걸을 때면 삐걱 소리를 내곤 했다. 런던에서는 100년 이상 된 빌딩이나 주택이 허다하다. 내부 수리는 가능하나 건물의 재건축은 도시 보전 때문에 어렵다고 들었다. 연구실 북향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바로 앞에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과 하이드 파크가 있다. 늦은 오후 홀에서 음악 공연이 있을 때면 우아하게 정장한 남녀 관객들이 보이곤 했으나 나는 한 번도 이곳에서 공연을 관람한 적은 없었다. 왕립광산학교 바로 남쪽에 지질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있어 나는 단골 방문자였고, 나를 찾아오는 지인들에게도 즐겨 이곳을 안내하였다. 이 대단한 박물관 입장이 무료여서 처음에 놀라고, 대단한 전시품을 관람하며 감탄하곤 했다.
방문 첫 2주간은 장기 체류 숙소에 입주 전이어서 하이드 파크 북쪽 편에 있는 숙소에서 출근했다. 이 숙소 주인 남자는 그리스인이고 부인은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내가 런던에서 처음 만난 국제결혼 부부였다. 런던에 혼자 나와 연구 생활하는 나를 기특해하며 친절을 베풀던 두분을 잊지 못한다.
하이드 파크 안의 남쪽 방향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숙소에서 연구실까지 약 20분 거리이다. 10월의 어느 맑은 날 아침 출근길에 파크 길에서 한국인 여성 단체관광객 서너 분을 우연히 만나 반가워서 아침 인사를 건네었다. 이분들도 한국인 청년을 만나 매우 반가워했고, 내가 대학 연구실로 출근 중이라고 하자 대견해했다. 내가 그날 오전 출근 시간을 좀 늦추고 그들에게 대학 주변을 안내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미처 그런 배려를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고 더욱이 하이드 파크에서 이른 아침에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