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밤미사
복음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4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루카 2,1-14: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나셨다
호구조사의 상황은 요셉과 마리아를 왕도 베들레헴으로 가게 한다. 이곳은 다윗의 왕권이 시작된 곳이다(루카 2,1-5; 참조 1사무 16,1-13). 여기서 성령으로 마리아, 시온의 딸인 동정녀에게서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영원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루카 2,6-7)이 사람이 되어 탄생하신다. 들에서는 주님의 천사가 주님의 영광과 함께 깨어있는 목동들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복음을 전한다.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11절. 부활의 명칭). 그 표지는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아기”(12절)가 구유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합창이 이어진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14절) 여기서 말씀이 전해졌다. 즉, 복음화되었다. 목동들이 알아들었고, 아기에게로 달려갔다. 이것이 “오늘”(11절) 모든 사람에게, 가시적으로 영원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참으로 거룩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 위에 죽으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시며, “하느님의 일”을 행하시며, 인간들 사이에서 사셨고, 그러므로 그분은 참으로 탄생하셨다. 성탄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깊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 무덤에서 옛 시간의 날이 끝나고, 새로운 “날”, “낮”, “오늘”이 시작된다. 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날은 무덤에서 지지 않는 날로 시작되며, 탄생에서도 그렇다.
* 같은 인격(위격)이 “살아 계신 분”으로 무덤에서 나오셨다. 때문에 탄생에서도 “살아 계신 분”으로 태어나셨다.
* 수의로 싸여 무덤에 모셔졌다. 탄생에서도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셨다.
* 무덤에서 인간으로서 신적 생명으로서 나셨다. 따라서 그분의 탄생은 즉 인간이 되신 것은 무덤을 위한 것이다.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돌아가셨다. 진정 부활로서 아버지는 성령의 복되신 영원 안에서 영원한 아들의 인성을 낳으셨다. 바오로 사도가 시편 2,7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바로 죽음을 위해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탄생을 위한 것이며, 탄생은 십자가를 위한 것이다.
* 마리아와 아리마태아의 요셉은 무덤에 묻기 위해 수의로 싸는데 있었고, 그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포대기에 쌓아 구유에 모셨다.
* 주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무덤이 없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요한 19,41), “3일” 때문에라도 사랑으로 내어드려야 했다. 똑같은 모습으로 그분을 위해서는 탄생할 자리가 없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여관은 모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몰약은 무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위해 쓰였다(요한 19,39). 그 몰약은 박사들이 아기에게 바친 예물이었다(한 번만 쓰였다).
* 하늘의 천사들은 부활에도 있었으며, 탄생에도 있었다.
* 초자연적 신적 빛이 부활에도 빛났고, 같은 것이 탄생에도 있었다.
* 부활 사건에서 하느님의 나타나심(신현) 앞에서 두려움은 탄생에서도 나타난다.
* 제자들 사이의 부활에 대해 놀라움은 탄생에서의 목동들의 놀라움과 같다.
* 두려움에 대해 부활에서 천사들의 안심시키는 “두려워 말라!”는 말이 탄생에서도 같이 나타난다.
* “큰 기쁨”은 무덤에서 여인들에게 힘을 주었고, 같은 기쁨을 목동들도 맛본다.
* “표지”로서 무덤에 있던 얼굴을 싸맸던 수건과 끈이 표지가 되었으며, 같은 표지로서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누워있다고 하였다.
* 부활 사건에서 제자들이 달려가는 것, 미래의 “하느님 양 떼의 목자들”, 탄생하신 곳으로 달려가는 목동들이 나타난다.
* 제자들에게 여인들을 통해서 전해진 부활, 탄생에서는 목동들의 주님의 찬미와 찬양을 볼 수 있다.
* 위대한 왕의 도시, 예루살렘(시온)에서 부활하셨고, 인간적인 왕의 도시, 메시아적 왕의 도시, 다윗 왕의 도시, 예수께서는 인성으로 그리스도의 선조인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부활의 “표지”는 탄생의 “표지”이다. 이것은 기쁜 소식(복음)이며 살아있는 표징이다. 이는 주님 자신이시다. 이분이 바로 “오시는 분”이시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 그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분은 평화의 왕자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 아기로 태어나셨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분이 바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시며 모든 이의 구세주이시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거룩하게 살도록 가르치고 계시다.
복음에 나타난 성탄 사화가 바로 부활을 통하여 본 것임을 알 수 있다. 성탄의 신비는 바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성탄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십자가와 죽음의 신비, 부활의 신비가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비는 우리 자신이 사랑을 위하여 죽는 것을 말하며, 부활의 신비는 거기에서 오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성탄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원글보기; ▶ 저는 주님의 종 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