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두물머리에서 세미원으로 물로 나뉜 길을 이어주는 배다리!
섬과 섬, 섬과 육지, 강의 이쪽과 저쪽, 물이 있어 서로 떨어진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든 사람이 오고가고, 물건이 전달되려면 무엇인가 이어주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개울이나 시냇물처럼 얕은물 이라면 성큼성큼 건너뛰는 돌다리가 필요하고,
강폭이 넓고 깊이가 깊어지면, 돌다리로는 안되니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가지를 얹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씌운 섶다리라도 놓아야 이쪽 저쪽을 오갈 수 있다.
그러나 섶다리는 매년 홍수가 지면 흔적도 없이 떠내려 가버리니,
가능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돌을 쌓아 다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고인돌처럼 넓은 돌판을 올려놓으면 돌다리가 되나,
이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하기에, 이런 돌다리는 흔치가 않다.
지금 남아있는 이런 다리는 진천 농다리가 있고,
자연석이 아닌 잘 다듬어서 만들면 현재로서는 장충단 공원의 수표교나,
청계천의 광통교, 뚝섬의 살곶이다리 등이 있다.
건너야할 강폭이 더 넓고 깊어지면 돌이나 나무로 된 다리는 걸기가 어려워지니.
그런 때에는 나룻배가 있어 강을 건네 주었다.
이런곳에 있는 뱃사공은 동네 사연을 전해주는 이야기꾼이 되고, 소문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아랫마을 누구네 집에 환갑이 되었다든지, 윗마을 김총각이 장가를 간다든지...
나루배 뱃사공은 이쪽 저쪽 다 알고 있어 소문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한강처럼 강폭은 넓은 곳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임금님이 행차하려면 이런때는 특별대책이 필요하였다.
작은 나룻배로는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건널 사람이나 물건이 많아 어림도 없으니,
임금님 행차때는 한강의 떠다니던 많은 배들을 왕명으로 집결시켜 이들을 연결하여 배다리를 놓았다.
수많은 배들를 옆으로 잇대놓고, 그 위에 널판자를 얹어 판판하게 깔아 놓으면 사람도 건너고 소도 건너고,
가마도 건널 수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정조임금 반차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두물머리 상춘원에서 세미원으로 가는 폭이 넓은 물길(약 200m)에는
배다리를 설치하여 옛날 주교(배다리)를 재현하였다.
이 배다리는 옛날에 만든 것은 아니지만 저런 식으로 배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로 옛날 배다리의 설치 기법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정경이다.
저기 놓은 배다리는 옛날 배다리처럼 특별한 날에만 있는 다리가 아니고,
고정으로 설치한 것이라, 특수 제작한 것이지만, 분명히 배를 만들어 띄우고,
그 위에 판자를 덧붙여서 판탄하게 깔았으니 배다리임에 분명하다.
배다리 근처에는 여분으로 만들어놓은 배들도 3~4척 있어 배다리에 쓰인 배의 모양도 알 수 있다.
길게 늘어선 배다리의 양 옆으로는 깃발을 가득 세워놓아 마치
수원으로 가기위한 한강의 배다리를 연상하게 한다. 한강에 저런 배다리가 놓인다면 ,
그 강폭이 1km에 이르니 이보다는 훨씬 장관이었을 것이고,
강물의 흐름도 꽤 거셋으니 배다리를 놓기도 무척 어려웠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