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GDP 늘어도 실질임금 1.6% 줄어... '트리클 다운 효과' 없는 성장 / 9/6(금) / 한겨레 신문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실질임금 상승률 추이=자료: 한국은행, 국가통계포털
한국에서는 최근 2년 6개월간 명목임금 성장률 하락으로 실질임금 누적 하락폭이 1.6%에 달한 것으로 4일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16월)에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8%에 달했는데도 실질임금은 반대로 0.4%포인트 떨어졌다. 성장 성과가 고루 배분된다면 실질임금 증가율은 실질 경제성장률에 근접한 값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성장률을 크게 밑도는 실질임금 상승률은 이른바 '낙수효과'가 근거 없는 주장임을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 자료에 따르면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장의 올 상반기 1인당 명목임금은 소비자물가 상승률(2.8%)을 밑도는 2.4% 증가에 그쳐 실질임금이 0.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임금은 2022년에 전년 대비 0.2% 하락했고, 2023년에는 1.1% 하락한 바 있다.
실질임금 하락은 1998년 외환위기 때와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일어났지만 하락세가 3년 연속 이어지는 것은 1993년 사업체 노동력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2년 반 동안 실질임금 누적 하락폭은 1.6%에 달한다. 300인 미만 사업장은 2.2% 감소, 300인 이상 사업장은 0.8% 감소로 소규모 사업장의 임금 손실이 더 컸다.
실질임금 하락은 명목임금 증가율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일어날 수 있다. 코로나19 직후에는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실질임금이 하락한 측면이 있다. 실제 2022년의 경우 명목임금 상승률이 4.9%로 높은 편이었음에도 소비자물가가 5.1%나 오르면서 실질임금이 0.2%포인트 하락했다.
그러나 2023년과 올해 상반기에는 명목임금 상승률이 각각 2.5%, 2.4%에 그쳤다. 2011~2021년 사이 명목임금 연평균 상승률은 3.53%였다. 물가상승률이 다소 둔화했음에도 실질임금이 하락한 원인은 물가보다 명목임금 상승률 하락 쪽에 있다는 의미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사 간 역학관계가 사용자 쪽으로 기울고 최저임금 인상률도 극히 낮아 명목임금 상승률이 떨어지면서 실질임금 하락까지 일어나고 있다며 계층 간 소득 격차를 키워 내수 부진에 따른 경기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계소득의 근간을 이루는 임금수준의 실질적 하락은 민간소비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올 들어 수출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지만 내수 침체는 여전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 실질 경제성장률을 2.8%(전년 동기 대비)로 집계했으며 민간소비 증가율은 1.0%에 그쳤다고 밝혔다.
경제성장률에 크게 뒤진 실질임금 증가율은 가계소득에 악영향을 미쳐 내수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김영기 아주대 교수(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는 수출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는 자연발생적인 낙수효과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재정을 통한 재분배로 낙수효과를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경상성장률(4.5%)에 크게 못 미치는 3.2%의 총지출 증가율로 예산안을 편성해 긴축재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