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고향, 소주 항주 여행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이 있다. 도대체 소주 항주가 얼마나 좋길래 이럴까. 동창 부부 10명이 소주 항주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상해는 위도가 제주도 보다 남쪽이라 유도화(油桃花)와 야자수가 많다. 황포강 강변에 프랑스 영국풍 석조건물들은 한 때 ‘동방의 파리’란 애칭으로 불리다가, 아편과 매음 때문에 ‘동방의 창녀’라는 곱지 않은 이름으로 불린 적 있다.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 터를 찾아가니, 마당로(馬當路)라는 곳이 60년대 서울 달동네 같다. 화장실은 골목 공동화장실 쓰고, 수도가 골목에 있고, 빨래가 만국기처럼 걸려있다. 낡은 목조 2층 청사는 바닥 면적이 15평쯤 되는데,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딛고 이층 집무실로 올라가, 선생이 기거한 초라한 나무침대 구경했다. 윤봉길 의사가 시라카와 대장 폭살한 홍구(虹口) 공원 둘러본 후 본토 중국요리점에 가니, 탁자 가운데 놓인 둥근 유리판에 요리가 회전하며 나온다.
식사 중 작난 끼 동한 남자들이 음식 담긴 유리판 돌리면서 친구 부인에게, ‘살살 좀 돌려주시겠습니까?’ ‘반대쪽으로도 돌려주세요’ 하면서 요구하면, 부인들은 까르르까르르 배꼽을 잡고 웃는다. 처음엔 채소 등 전채(前菜)가 나오고, 다음엔 오리, 돼지, 소고기가 삶고, 튀기고, 졸이고, 별미로 나오고, 마지막엔 국수와 밥이 나온다. 술은 공자 가문 전래의 ‘공부가주’(公俯家酒)인데, 독하면서 순했다.
상해는 양자강 하구에서 잡히는 발 밑부분에 부드럽고 까만 털이 빽빽한 ‘털게’로 만든 요리가 유명하다. 살아있는 게를 술에 담아먹는 ‘취해’(醉蟹), 껍질 채 푹 조린 장초청해(醬炒靑蟹), 게 껍질에 게살과 알을 채워 쪄먹는 부용해투(芙蓉蟹鬪), 게살과 두부를 조린 해분두부(蟹粉豆腐) 등 다양한 요리가 있다.
공부가주에 거나하게 취한 채 기차로 한 시간 거리 소주(蘇州)로 갔다. 이층 열차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넓은 들판에 띄엄띄엄 보이는 농가는 빈부 격차 없는 공산사회라 크기가 비슷하다. 1층에는 가축을 기르고 2층에 사람이 산다. 집집마다 사각 연못을 파놓고 자라와 새우를 기른다. 이곳 끝없는 평야 곡창지대에 풍년이 들면 11억 중국 인구가 굶지 않는다고 한다.
마르코폴로가 ‘동방의 베니스’라 부른 소주는 수 양제가 북경서 여기까지 판 운하가 시내 가운데를 지나간다. 실크로드 출발지 소주는 쌀과 차, 비단과 물고기가 풍부해서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린다. 이곳을 문필가 위치우위(余秋雨)는 '물은 너무나 맑고, 복사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먹거리는 너무나 달고, 여인은 너무나 곱다'라는 표현을 썼다.
호텔에서 아침 먹고 한산사(寒山寺)에 가보니, 상가에서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를 많이 팔고있다.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울음 울고 하늘엔 서리만 가득한데, 강가 단풍 숲 고기잡이 배 불빛만 수심에 찬 내 눈에 비치고, 고소성 밖 한산사 야반의 종소리 나그네 뱃전에 들려오네.(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眼.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
이 시를 쓴 사람은 당나라 때 장계(張繼)라는 사람이다. 과거에 낙방하고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고향으로 가다가, 고깃배 불빛이 비치는 ‘풍교’ 근처서 한산사 종소리 들으며 쓴 시다.
소주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도읍지다. 시내 곳곳의 운하에 다리를 놓아 그 아래로 배가 다닌다. 거리엔 태호에서 나온 태호석(太湖石)이 보인다. 물결에 구멍이 뻥뻥 뚫어진 그 괴석은 서울에선 귀한 물건이 될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강남 정원은 중국 제일 정원이요, 소주 정원은 강남 제일’이라 한다. ‘졸정원’(捽政園)에 들렀는데, 이곳은 북경의 이화원(梨花園), 청도의 피서산장(避西山莊), 소주 유원(留園)과 더불어 중국 4대 명원(名園) 중 하나다. 명나라 왕헌신(王獻臣)이란 사람이 조성했다는데, ‘채소밭에 물 주고 채소 팔아 끼니 마련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 우애 있는 것, 이것이 못난 사람의 일’이라는 반악(潘岳)의 시에서 '졸정원'이란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정원의 절반이 호수인데, 도영루(倒影樓)는 물속의 거꾸로 선 나무 그림자 감상하라는 누각이요, 향원당(香遠堂)은 먼 호수 연꽃 향기 맡으라는 누각이다. 견산루(見山樓)는 산을 바라보라는 누각이요, 원앙관(鴛鴦館)은 손님 접대하라는 누각이다. 백향목(白木香) 숲 따라가면 계수나무는 꽃을 피우고, 하늘 가린 태산목 작은 오솔길은 정자와 누각 사이로 이어진다. 누각들은 꽃무늬 새겨진 화창(花窓)을 통해서 경치 조망토록 되어있다.
졸정원 구경한 후 오왕 합려의 무덤이 있는 ‘호구’(虎丘)로 갔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오월동주(吳越同舟) 고사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호구는 30미터 나지막한 언덕인데, 입구에 작은 운하가 지나가고, 꽃과 기념품 파는 행상이 많다. 나는 ‘쿠리’가 메고 가는 가마를 재미 삼아 타봤다. ‘시검석’(試劍石)은 합려가 검 제작 명인 간장(干將)과 막사(莫邪) 부부에게 명하여 다섯 자루 검을 만들고 성능을 시험한 바위다. 검지(劍池)는 3천 개 칼과 아버지 시신을 묻은 곳이다. 손무정(孫武亭)은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유명한 손자를 기념한 곳이다. 천하명필 왕희지와 안진경도 여길 다녀간 모양이다. 암벽에 친필과 낙관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나는 백락천의 ‘비파행’(琵琶行)이란 명문장을 읽고 언제 꼭 한번 비파 타는 중국 여인 실물을 보고 싶었다. 그는 시에서, 양자강 분포구(盆浦口)란 곳에서 희미한 달빛 아래 등불 밝힌 배의 여인을 만났다고 한다. 여인은 비파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손가락으로 비파를 타는데, 곡조는 소리를 이루기 전에 정이 담겨있었다. 한소리 한소리에 슬픔이 서려 평생 불우한 정을 하소연하는 듯, 아미를 약간 숙이고 심중의 무한한 사정을 말하는 듯, 배는 소리에 취한 듯 조용하고, 강물 위에 가을달이 유난히 희게 보이더라고 했다. 얼마나 운치 있는 장면인가.
그 내게 중국 미인을 볼 안복(眼福)이 있던 모양이다. 일정에 비단공장 패션쇼가 있었는데, 거기서 천 2백 년 전 분포구(盆浦口)에서 희미한 달빛 아래 등불을 밝힌 배에서 비파로 얼굴을 반쯤 가리어 은근한 멋을 풍기며 손가락으로 비파를 타던 여인이 생각나는 모델을 본 것이다. 그들은 옥같이 흰 피부에 화려한 비단을 걸치고는, 구슬같이 맑은 눈에 미소를 띠면서 내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그 워킹을 보면서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어 무릎을 치면서, 하오!(好) 띙하오!(頂好)를 연발했다. 여인은 눈빛이 천량이다. 나는 미인 눈빛을 하나하나 작심하고 원도 한도 없이 끝없이 쳐다본 후, 소주에 간 기념으로 비단 머플러 네 개나 샀다.
항주(杭州)에선 저녁에 10위안 내고 택시로 골동품 시장을 구경했다. 도자기와 흑단(黑檀), 자단(紫檀)과 옥과 대리석 인재(印材)들이 볼만했다. 결국 청화백자 한 점과 청동 관운장 좌상을 샀다.
청화백자는 오래된 것처럼 색깔을 누렇게 변색시켜 진품이라고 우기면서 60위안 내라고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중국 사람들은 믿기 어렵다. 가짜다. 관운장 좌상은 청룡도 칼날과 관운장의 긴 수염 한 올 한 올까지 세밀히 조각했지만, 값이 문제다. 어떤 집은 4백 위안, 어떤 집은 2백 위안으로 갈팡질팡 한다. ‘뚸샤오첸’(多少錢)? 얼마냐고 물어보면 전자계산기로 숫자 보여주는데, ‘뿌야오’(不要) 안 산다고 돌아서면 팔 붙잡고 늘어진다. 중국 쇼핑 재미는 깎아도 깎아도 한정 없이 내려가는 그 재미에 있다. 결국 청화백자와 관운장상을 1백 위안(元)에 샀다.
이렇게 네 배나 깎은 골동품을 흡족하게 품에 안고, 5위안 내고 인력거 위에 앉아, 인력거꾼이 밤거리 복잡한 인파 속을 죽어라고 페달을 밟는 걸 보면서, 나는 ‘모정’에서 월리엄홀덴이 그랬던 것처럼 담배 연기 뿜으며 호텔로 돌아왔다.
이튿날은 시인의 고향, 서호(西湖) 구경을 나갔다. 주민들이 안갯속에 태극권을 하고 있었다. 배로 호수 유람하니 둘레 40리 서호의 절반이 연꽃으로 덮여있다. 남송시대는 부자들이 등용선(燈龍船)이나 누선(樓船)에 기생 태운 유람선 불빛이 서호의 밤풍경이었다고 한다. ‘맑은 날 서호보다는 비 내리는 서호가 좋고, 비 내리는 서호보다는 눈 내리는 서호가 좋고, 눈 내리는 서호보다는 밤의 서호가 좋다’는 맛깔난 표현도 좋다.
마침 가이드가 뱃속에서 시를 읊어주기에, 나는 미리 준비해간 두보(杜甫)의 ‘강남춘’(江南春)이란 시로 화답했다. '천리 꾀꼬리 울음 속에 푸른 숲에 붉은 꽃 비치고, 강촌 성곽의 술집 깃발은 나부끼는데, 남조시절 4백80개의 절, 수많은 누대가 실비 속에 젖고 있네(千里鶯啼綠暎紅 水村山郭酒旗風 南朝四白八十寺 多少樓臺煙雨中). 이렇게 서호의 풍경을 읊은 시를 듣고 손님들은 ‘배 위에서 시를 읊어주니, 고량주 한 잔에 10위안씩 해도 먹고 싶소.’ 라면서 분위기 엎 된다.
서호에는 소소소(蘇小小)란 이름난 기생이 있었던 모양이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서호 10경’을 소개했다.
첫째 소동파 백락천이 만든 물 위에 걸친 아취형 돌다리에 눈 쌓인 모습. 둘째 호수 안에 외로이 떠있는 고산(孤山)의 누대에 뜬 가을 달. 셋째 연꽃 활짝 핀 5월 술집 뜨락 술 향내가 연꽃 향기와 함께 떠다니는 기막힌 분위기. 넷째 소동파가 만든 다리 아래 하얀 북숭아 꽃잎이 살짝 물 위에 떠 있는 경치. 다섯째 추석날 달과 인공섬 소영주(小瀛洲) 석등에 켜진 불이 셋으로 보이는 모습. 여섯째 서호 남쪽 정원에 모란꽃이 활짝 피고, 화려한 비단잉어 노니는 모습. 일곱째 남녂 골짜기에 운무가 끼어 아름다운 것. 여덟째 석양의 남병산(南幷山) 정자사(淨慈寺)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아홉째 우뚝 솟은 영봉산(靈峰山) 뇌봉탑(雷峰塔)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 열 번째 물 오른 버들잎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꾀꼬리 울음소리.
호수 속 나지막한 섬 고산(孤山)이 유명했다. 북송 때 시인 임화정(林和靖)이 은둔한 곳이다. 성긴 그림자 기울어 얕은 물가 더욱 맑은데, 그윽한 향기 살포시 황혼 무렵 달에 걸렸네 ‘라는 그의 시는 문인묵객이 매화시 중 절창으로 꼽는다. 임화정은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두 마리 학을 길렀고, 손님이 찾아오면 동자가 새장에 있는 학을 풀면, 임화정이 배를 저어 돌아왔다. 그는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 거기서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말이 나왔다.
임화정이 학을 부를 때 쓴 피리를 장사꾼이 팔고 있길래 내가 1위안 내고 하나 사니, 곁에 있던 박홍식 친구 부인이 ‘일 위안 양 꺼!’ 하곤 잽싸게 피리 하나 집어간다.
서호에는 1백50년 된 ‘누외누’(樓外樓), ‘산외산’(山外山), ‘천외천’(天外天)이라는 멋진 이름의 주가(酒家)들이 있었다. 일정 때문에 거기서 닭을 연꽃잎과 함께 풍로 증기로 찐 규화계(叫化鷄)나 양념 돼지고기 요리 ‘동파육’(東坡肉) 시켜놓고 소홍주(紹興酒) 마시지 못함이 매우 아쉬웠다. 서울 강남 아파트 하나 팔면,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운하 옆 천여 평 넓은 땅과 운치 있는 한옥 사놓고, 월 10만 원 주고 운전수와 식모 부릴 수 있다. 그런 생각 나서 ‘내 당장 서울 집 팔아 여기 항주로 이사 오련다’ 하자, 전춘식 친구가 ‘김교수, 우리 내년 봄 꽃 필 때 한번 더 오자’ 하면서 위로해 준다.
전당강(錢塘江)엔 12월인데 개나리꽃 피고 파초잎 푸르다. 이곳은 임어당 전기소설의 무대이다. 벽돌로 쌓은 육화탑(六和塔) 구경하고, 동진(東晋) 때 인도 승려 혜리(慧理)가 창시한 영은사(靈隱寺) 구경했다. 영은사는 중국 선종(禪宗) 10대 사찰 중 하나로, 승려가 3천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운림선사(雲林禪寺)란 현판은 청 강희제 글씨라 한다. 중국 사람들이 빗자루처럼 기다란 향에 불을 붙여 도량이 온통 향연기에 쌓여있다.
대웅보전의 19미터 높이 향나무에 금도금한 석가모니불은 입술과 눈동자가 여인처럼 고혹적이다. 그렇게 이쁜 부처님 처음 보았다. 법당 뒤엔 신라 왕족 김교각스님 등신불(等身佛) 불상이 있었다. 신라는 왕족 형제 중 한 사람은 출가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교각스님이 얼마나 출중했으면 등신불로 모셔졌을까.
절 동네는 자단(紫檀)으로 만든 끝이 둥근 젓가락 천축쾌(天竺筷)와 백단향으로 만든 항선(杭扇)을 팔고 있다. 여기가 용정차(龍井茶) 본고장이라 다원(茶園)이 많다. 다원 입구에는 희고 붉은 산다화가 피어있다.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김춘수의 시 '처용단장(處容斷章)'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 사장 진고 후배 덕 많이 보았다. 상해에선 정통 중국요리와 독하면서 순한 ‘공부가주’(孔府家酒) 맛보았다, 소주에선 백락천의 시에 나오는 미인을 보고 원을 풀었다, 서호(西湖)에선 유람선 타면서 시(詩)를 읊었고, 항주 야시장에선 청화백자와 관운장 좌상을 가방에 넣었다, 시종일관 흐뭇한 마음인데. 아시아나 항공기가 내 맘을 아는지, 구름 위로 한없이 고도(高度)를 높이더니, 시속 8백 킬로 속도로 힘차게 달린다. (1998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