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도롱뇽의 날 행사 후기 겸 연애편지 ㅋㅋㅋ
서울에 막 도착했습니다. 막은 아니고 아는 분들 몇몇 꼬득여서
때 이른 낮술을 즐기다가 돌아왔지요!
행법 스님! 많은 인원들 공양하랴 행사 준비하랴 많이 고생하신 거 같은데
저번주에도 그렇고 이번주에도 역시 민폐를 끼치기만 하고 돌아왔내요.
너무 고마웠다는 말, 고생하셨다는 말 쑥스러워서 못 전해드리고 올라온 게
마음에 자꾸 걸리는 것 같아서 송구스럽습니다.
스님을 뵙고 돌아나오는 길 내내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왜 하필 스님의 법명이 행법이였을까 하는...
젖어드는 동안 버스는 빠르게 서울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삶이란 늘 고단하기만 했습니다.
거짓과 위선, 고소 고발이 난문하고, 온갓 욕망이 뒤엉켜
나뒹구는 것만 같았습니다.
순수도, 사랑도, 예술도, 그리고 환경도, 생태계도
도시의 욕망이 허겁지겁 먹어치워버리고 나면
거기 사람이란 아주 초라한, 근거 없음의
존재에 불과한 그런 것이였습니다.
스님! 무등산 끝으머리 나즈막한 능선 위에
스님처럼이나 아담한 선덕사의 풍경 안에
조용히 가부좌틀고 앉아 있을 스님을 생각합니다.
세속의 욕망들 무거운 "법"의 눈빛으로
가늠하고 계신건 아니신지요?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이
관여하고 있는데 그 차 한 잔을 마시고 음미하는
사람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가 하시던
스님의 말씀이 또렷히 기억합니다.
스님! 불법을 떠나 그저 철없이 살아가는 한 사내의 눈빛에서도
세상은 그지없이 아름다울 뿐인데
스님의 말씀 속에 담긴 세상과
또 어찌나 아름다울 것인지 상상해보곤 합니다.
스님! 제가 공양간으로 슬리퍼를 끌고 내려가면서
발소리가 요란스러웠는지 스님께선
사람의 들고 나는데는 소리가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앞으로느 소리가 나지 않도록 걸으라는
스님의 꾸지람 속에서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깨닫곤 했습니다.
스님. 세속의 삶이란 요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생인지 죽음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떠들석임
도롱뇽과 같은 작은 생명을 위해서도
떠들고, 노래하고, 재판하고, 고소하고, 고발하는
떠들석임 없이는 아무 까닭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생명.
사람의 들고 남, 생명의 들고 남이 어찌 떠든다고 흔들리겠습니까만은
이렇게라도 떠들지 않으면 안돼는 아픈 현실이 저미어옵니다.
스님! 스님의 말씀처럼 들고 남이 고요한 것이였지요
비엔날레 공연장 앞에서 한 아이가 도롱뇽의 사진을 유난히
오랜동안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난생 처음 본듯한, 그러나 또렷한 기억의 눈빛으로.
그 아이도 얼마 전에는 생으로 향햔 열림으로
걸음마를 시작했겠지요.
아무도 주의깊게 보지 않았겠지만
아이의 눈빛은 너무도 수상해보였습니다.
그저 고요의 생의 들고 남의
또렷한 소리들을 기억해내려 애쓰는 것처럼.
눈빛과 눈빛의 마주친 자리에
영혼의 매듭들이 엉켜들던...
스님의 말씀처럼 그 자리가 초록이였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들고 나지만
수상한, 그러나 조용한 눈빛.
열린 생이, 닫혀져가는 안타까운 생을 바라보는 눈빛
그것이였지요.
스님! 오는 길 내내 지율 스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라는 시집을 되풀이 해서 읽었습니다.
거기 "겨울 산사"라는 시가 자꾸 아리게 가슴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갈잎 같은 흔적이 눈 위에 찍히는 동안 명의 무게를
다는 길 뒤에서 나는 아버지의 얕은 발자국을 다시 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지상의 무게가 얼마 남지 않으셨군요 머잖아 날아오를 만큼
가벼워졌음을 이르시려고 묵묵한 겨울 적막도 저무는
산길 앞서며 숨차시고 그런 누안의 걸음을 산사는
산의 눈망울이 되어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는지도
모르는 채 향내에 섞이는 어둠으로 산사에 들었습니다
날지 못해 굳어진 기와는 구름의 어디쯤에서 허리를
접고 이승을 버티느라 휘어진 기둥도 서서히 뿌리로
돌아가 아버지 지상에 지은 집 저 같아 행자승의 마중도
없는 마루에 앉아 지워진 산길 대중하고 계시는지요
하지만 어딘가 숨골처럼 군불 들고 있을 저녁 마음의 고요가
절간의 고요를 지피고 마침내 산의 고요로 번져 희미한 능선
바람으로 사는 것을
아버지 한마디 말도 없이 끄덕끄덕 처마 밑으로 들어가
한 줌 그림자가 되었습닏 염 없이 서성이던 나는 씨로 담겨
따로 놓인 나락 같았지만 이승의 끝인 듯 풍경 소리가
그 몸 다 퍼내도록 아버지는 나오시질 않았습니다
스님! "날지 못해 굳어진 기와는 구름의 어디쯤에서 허리를 접고
이승을 버티느라 휘어진 기둥도 서서히 뿌리로 돌아가"...
스님도 날지 못해 굳어지 기와로 구름의 어디쯤에서
생을 노래하고 계신지요. 이승을 버티느라 휘어진 기둥처럼
뿌리로 돌아 앉고 계시면서.....
스님! 지난 주 선덕사유치원 아이 하나가
졸린 잠을 억지로 누르고 유치원에 일찍 도착했는지
2층 다방에 올라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스님께 "스님 뭐하고 계세요"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토요일 오후라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스님이 머리를 쓰다 듬던 유치원 아이들 모두
생으로 향한 "빛의 걸음 거리로" 한 발 한 발
세상으로 향한다면 그 아이가 성장했을 때
우리는 썩 기분 좋은 여행이 아닌
죽어가는 생명을 위한 공연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현재가 그랬다면 스님과의 인연은 닿지 못할 수도 있었겠죠.
지율스님과, 제 것의 욕망들을 내 것의 아닌
사랑의 존재로 향해 열려있던 도롱뇽친구들과의 인연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스님이 광주 선덕사 앞마당에 초록의 나무들을
먼 곳에서 바라볼 때, 저 역시 도시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은
아린 가슴으로 바라봤을 것입니다.
마주하지 않아도 수상한 눈빛을 띄고.
수상한 눈빛 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희생되지 않고 생으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님! 세상의 그리운 마음들
어느 시에서 처럼 가는 곳 마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날이 곳 오겠지요.
세상에 사, 랑 이라는 발음들이 떨림으로 진동하는
날이 곧 오겠지요. 스님의 마음이 그러하시다면
도롱뇽친구들의 마음이 그러하다면요.
몇개월이 지나고 나면 도롱뇽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겠지요
현실적 가치관에 눌려 노롱뇽들 잊혀진다 해서
세속의 사람들 눈 하나 깜짝 하겠습니까
그러나 스님! 우리가 작은 생명을 위해 마음을 모아
두고 왔던. 우리들 가슴 속에 사라지지 않을 생명이 있음을
훝날 우리의 아이들이 또렷이 기억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덕사 유치원 아이들의 눈빛은 말하고 있으니까요.
스님! 아침 저녁 찬 바람 조심하시고 두루 평온하시길 기원합니다.
스님! 광주에 두고 온 도롱뇽들 친구들의 마음들
생명으로 향한 그리움들 선덕사 뒷곁에 조금씩 묻어 두고 옵니다.
곧 새싹이 돌아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지율 스님과 행법 스님, 그리고 도롱뇽의 친구들과 머물렀던
짧은 하룻밤. 가슴에 오래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리운 이여......
-행법 스님께, 밤늦은 산사에 철없이 머물다가 간 녀석이-
첫댓글 세상사는 진리가 멀리야 있겠습니까 내안에 있고 가까이 귀를 기울여 보면 그속에 모든것이 담겨있지않나 생각됩니다 좋은밤 되시길
수덕촌님의 말씀에 동감입니다..근데 우리들은 왜 멀리에서만 찾을까요...좋은밤 되세요...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득히 실린글 감명깊게 잘 읽고 갑니다...오늘 하루도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