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에는/청락
옛 서울역사가 연두 빛 모자를 쓰고 눈을 감고 있다.
철없는 비둘기는 시 때도 없이 날아올라 똥을 싸대고 장난질로 시간을 때우고 있다.
그 앞에 커다란 동상하나가 수류탄 모양을 가진 폭탄을 손에 움켜쥐고 비장한 각오로 서 있다. 이봉창열사인가? 김 구 선생인가? 가까이 가보니 어라! 잘 모르는 사람이다.
하필 왜 여기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대접받지 못하는 이름으로 외롭게 서 있는 동상이다.
술 취한 노숙자의 게슴츠레한 낮술의 빈둥거림에도 누구하나 따사한 눈길로 다가서는 이조차 없는 시끄럽고 황량한 광장에 조화롭지 않은 크기의 동상이 영국제 폭탄을 들고 서 있다.
그의 손에 움켜 쥔 폭탄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왜 여기 세워 두었을까?
영생을 외치는 천막속의 굉음으로 찌든 하오가 지나고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저녁 빛 어스름에 묻혀들 즈음 바쁜 발걸음에 광장은 더욱 북새통이다.
옮겨다오! 어차피 지나칠 동상이면 조금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도 잔디밭에 핀 장미 한 송이라도 보이는 그곳으로 옮겨다오.
1919년 9월 2일 남대문 역 앞에서 65세 노인의 나이로 신임 사이토 총독을 향해 이 나라를 위해 폭탄을 던진 역사를 기리고자 서울역 광장에 세워진 기리고 경배할 대상이라면 저기 남산 백범광장 옆 작은 곳이라도 아니면 하늘다리 위 서울역이 내려 보이는 곳이라도 숭례문 앞이라면 더 좋을텐데 꽃 한 송이 놓을 수 없는 황량한 광장 시멘트 바닥위에 조화롭지 못하게 여기 세웠는가? 그곳엔 작은 표지석과 흉상정도면 어울릴 텐데 말이다.
마음속에 그린 사람과 음식과 풍경, 그 무엇을 찾아 둘 셋 어울린 어깨동무 친구들의 서울 나들이에 사진 찍기의 배경으로 한 컷 하곤 누군가는 아무런 의미 없이 가버리는 차분히 앉아 바라볼 수 없는, 흔한 분수하나 없는, 시계탑 하나 없는......
경배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 그냥 서 있다. 많은 사람속의 외로움은 더욱 외롭다.
아! 서울역 광장에는 남산 길에 닿는 하늘다리 위까지 낯선 억새가 생뚱맞게 웅크리고 있다.
저기 숭례문으로 줄지어선 차량들을 보라. 신전에 경배하러 가는 무리들처럼
삐죽거리며 고개를 뺀 빌딩들 안에 있는 사람은 바빠서 밖을 보지 못하고
밖에서는 어두워서 안을 보지 못한다.
서울역 광장에는 산다는 것들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고 오는 터미널에서 앉아서 쳐다보는 오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과 흐릿한 눈동자에 비친 어눌한 삶의 조각들 바쁜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트 보다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세상사에 구역사와 신역사가 붙어 서서 어깨를 겨누고 있다. 여러 갈래의 철로에 기차가 들어오고 나간다.
역사의 흐름 또한 그러할 진데 이미 정해진 길이지만 어디로 갈까?
서울역 광장에는 여전히 비둘기와 확성기와 사람들의 엇박자가 시끄러운데...
조용한 새벽열차에서 내리는 날이면 지나가다 잠시라도 묵념이라도 하고 가면 어떨까?
동상앞에 새겨진
거사 14개월이 지난 다음 해 1920년 11월,
강 우규 의사가 순국직전에
서대문 형무소 형장에서 남긴 유시가 이러하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 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그때도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인 듯 바람이 차다.
역사를 잊으면 잃어버린다.
첫댓글 예나지금이나ㅡ넘지저분한것같아요ㅡ
서울역이 많이 바꿨어요
옛날에는 운치가 있었는데
요즘은 편하게 현대식으로 복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