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스크랩북-사진… 우리가 몰랐던 김환기의 예술세계
새 단장 호암미술관 김환기 기획전
한국 미술품 최고가 낙찰 ‘우주’ 외
사위 집서 발견된 자료 100여건 전시
‘여인들과 항아리’ 제작 연도도 확인
‘한 점 하늘…김환기’ 전시 준비 과정에서 기록이 발견돼 1960년에 제작한 것으로 확인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뉴스1
“김환기(1913∼1974·사진)는 최근 몇 년간 경매 소식으로 유명했고 정작 작품 세계를 조명할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소개되지 않았던 김환기를 보여주려 합니다.”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18일부터 열리는 기획전 ‘한 점 하늘…김환기’에 대해 전시를 담당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이 15일 이렇게 말했다. 호암미술관이 1년 반 동안의 내부 재단장을 마친 후 첫 전시에서 선택한 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 김환기다. 호암미술관의 1, 2층 전시실 전관에서 작품 약 120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1930년대 중반부터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1970년대까지 생애 전반에 걸쳐 그의 예술세계를 살펴본다.
● 사위 윤형근 집에서 기록 발견
전시에는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론도’(1938년)부터 전면 점화를 처음 알린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년),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당시 환율로 약 132억 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 기록을 세운 ‘우주’(Universe 5-IV-71 #200) 등 대표작이 포함됐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환기의 유품과 편지, 청년 시절 사진, 스크랩북 등의 자료 100여 건이다. 이 자료는 김환기의 장녀이자 윤형근 화백(1928∼2007)의 부인인 김영숙이 자택에 보관하던 것으로, 전시 준비 과정에서 발견됐다. 태 실장은 “유족이 김환기가 소장했던 달항아리를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가 자료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관련 자료를 그저 할아버지가 남긴 물건으로 생각했던 유족들은 2018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윤형근 회고전을 계기로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전시 이전에는 윤형근과 김환기의 자료가 뒤섞여 있었는데, 준비 과정에서 이들을 분류하고 확인한 것. 윤형근의 아들 내외가 스크랩북과 편지의 존재를 알려주는 등 미술관 측에 도움을 주면서 이번 전시에 미공개 유품과 자료가 공개될 수 있었다.
태 실장은 “그간 제작 연도가 미상이었던 ‘여인들과 항아리’ 관련 기록을 발견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작은 수첩에 ‘늦도록 벽화. 달걀 두 개 먹고 종일 제작. 나대로의 그림으로 밀고 가자’란 짧은 글이 적혀 있었고 1960년에 기록된 것이어서 자연스레 제작 연도가 파악됐다. 그는 “김환기가 신문에 그린 삽화가 꼼꼼히 기록된 스크랩북과 스케치북도 4권이나 나와 향후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시대 아우르는 기획전 개최
소장품 전시가 주를 이뤘던 호암미술관이 내부를 재단장한 건 이곳에서 전시했던 ‘이건희 컬렉션’ 고미술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데 따른 것이다. 전시실 층고를 최대한 높이고 다양한 전시가 가능하도록 조명과 구조를 바꿨다.
1948년 작품 ‘달과 나무’(위쪽 사진)와 리노베이션을 마친 2층 라운지. 이 공간은 창호를 확대해 정원 ‘희원’과 외부 전경이 더 잘 보이도록 했다. 리움미술관 제공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이번 전시를 마친 뒤 올해 말 두 달간 소장품 기획전을 열고, 내년부터 상·하반기 두 차례 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고미술은 물론이고 국내외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기획전을 선보인다. 현재는 미술관 앞 정원인 ‘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으로 전시만으로도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게 한다는 것.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리움과 호암미술관은 ‘하나의 미술관, 두 개의 장소’로 전시 및 프로그램을 통합 기획·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9월 10일까지 열리며 관람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을 받는다. 현장 발권도 가능하다. 1만4000원.
용인=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