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토요일 강론>(2024. 4. 27. 토)(요한 14,7-14)
복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요한 14,7).”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1-14).”
1)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요한 1서 4장에 있는 요한 사도의 다음 말이 연상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2.16ㄴㄷ).” 사랑을 주든지 받든지 간에, 사랑을 통해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사랑은 하느님이시다.”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계신 곳에 사랑이 있고,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물론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지만, 우리가 생생하게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은 사랑을 줄 때와 사랑을 받을 때입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라는 요한 사도의 말에 대해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사야가 하느님을 보았다.” 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와 이사야가 하느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난 사람들이긴 해도, 그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뵌 것은 아니고(탈출 33,18-23; 1열왕 19,11-13; 이사 6,1-8ㄷ), 하느님의 등만 보았거나, 하느님의 음성만 들었습니다.>
2) 7절의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는 “너희가 나를 알게 되면”으로 우리말 번역을 바꿔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알다.’ 라는 말은 ‘일치’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게 되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제자들이(신앙인들이)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면 하느님과도 일치를 이루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은 이미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었기 때문에, 하느님과도 이미 일치를 이룬 상태이고, 하느님을 이미 뵌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 사도들이 완전하게 일치를 이룬 것은 아니었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기 ‘시작한’ 상태였고,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완성된 일치’를 향해서 나아가는 중이었습니다.>
3)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완전히 일치되어 있음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이 완전히 하나로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뵙는 것은 곧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라는 말씀은, 당신이 일으키신 기적들과 표징들을 보았다면 당신과 하느님이 완전히 하나로 일치되어 있음을 믿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믿지 못하겠거든”이라는 말씀을, 표현만 보면,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데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지만, 예수님 말씀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믿으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과 표징들을 통해서 믿음을 갖게 되는데, 대표적인 표징은 ‘부활’입니다.>
4)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을 사도들이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더 먼 곳까지 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사도들이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에 승천하실 것이기 때문에,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받아서 해야 합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라고 기도하셨는데(요한 17,15),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데려가지 않으시고 세상에 남겨두신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이지만, 지상에서의 신앙생활 자체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쪽 세상에서의 인생과 신앙생활을 모두 건너뛰고 하느님 나라로 직행할 수는 없습니다.> “청하는 것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라는 약속은, 당신이 하느님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신 가르침이기도 하고, 언제나 항상 신앙인들과 함께 하면서 신앙인들을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아버지 하느님을 소외시키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출처] 부활 제4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