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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6일
가수 김광석 사망
김광석(金光石, 1964년 1월 22일 ~
1996년 1월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되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하여 1982년에 명지
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
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1984년
에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
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https://youtu.be/IwZtD0XB7JQ
▶ 2014년 오늘,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등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체감온도가 섭씨 영하 46도 (미국에서 사용하는 화씨로는 영하 50.8도)까지 떨어졌다. 이는 최악의 한파로 기록되었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기온이 50도를
기록하는 등 남미지역은 폭염을 겪었다.
미국 중북부 지역이 북극 기류가 남하하며 섭씨 영하 40도의 한파를 기록했다. 혹한에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한 대학생의 눈썹과 머리카락이 얼어붙었다. AP/연합뉴스
지난 29일 미국 중북부 지역은 북극 기류가 남하하며 섭씨 영하 40도의 한파에 떨었다. 최근 지구에 이상기온 현상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몰고 온 이례적인 현상이다.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북극기류가 남하하면서 미국 일리노이 주와 미네소타 주를 비롯한 중북부 지역에 역대 최악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미 국립기상청은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최저 체감기온이 섭씨 영하 48도에 이르고 미네소타주의 체감온도는 지난 1982년 기록을 깨고 섭씨 영하 56도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 지역엔 한파대피소가 설치됐고 학교와 대학은 긴급 휴교에 들어갔다.
▶2009년박지성, ‘아시아판 발롱도르’
UAE 슈퍼어워즈 선정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2009년 1월 6일 ‘아시아판 발롱도르(ballond’or)’인 UAE 슈퍼어워즈 아시아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
슈퍼어워즈는 아랍 지역 축구주간지 <슈퍼>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아라비아 국가의 최고 선수를 선정하는 시상식으로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대한축구협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5일 “박지성이 UAE 시간으로 6일 오후 슈퍼매거진이 주는 슈퍼 어워드를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슈퍼어워드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권위를 인정 받는 스포츠언론 슈퍼매거진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상인데 올해는 아시아선수에 박지성, 아프리카선수에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아스널)가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덧붙였다.
UAE 아부다비 스포츠 카운실의 세이크 하자 빈 자예드 알 나얀 회장이 후원하는 이 상은 아시아-아프리카판 발롱도르를 자처할 정도로 큰 자부심과 의욕을 가진 대형 프로젝트다. 2002 한일월드컵 결승전 주심을 봤던 이탈리아의 스타심판 피에루이지 콜리나가 선정위원장이며 대한축구협회의 김주성 국제부장도 선정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박지성은 팀 일정에 따라 7일 UAE 아부다비의 에미레이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리는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못했으며 대신 수상 소감을 담은 동영상을 보내 감사를 전했다.
▶2009년롯데칠성,
두산 주류사업부문 5030억원에 인수
롯데칠성의 정황 대표이사와 ㈜두산 강태순 부회장이
영업양수도계약 체결식을 가진 뒤 악수를 하고 있다.
▶2003년부산 광안대로 개통
▶2003년실리콘 유방확대 피해자
미국서 집단소송 승소
▶1998년미국, `루나 프로스펙터`
무인 달 탐사선 발사
미국이 1998년 1월 6일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무인 달 탐사선 `루나 프로스펙터`를 발사했다. `프로스펙터`의 달 탐사는 지난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의 우주인 유진 서먼과 해리슨 잭 슈미트가 마지막으로 달에 착륙한지 25년만의 일이었다. 프로스펙터는 지구를 떠난지 105시간 뒤인 11일 오후 8시(한국시간)에 달 궤도에 진입했다. 프로스펙터에 든 비용은 6천3백만 달러. 30년전 첫 달 탐사때 2억6천만달러에 비해 4분의 1밖에 안들었다.
길이 1.2m, 무게 2백96kg인 드럼통 모양의 `루나 프로스펙터`는 1년 간 달 1백km의 궤도를 돌며 달 표면지도를 작성했고, 극지(極地)의 얼어붙은 물, 가스 및 광물의 존재 여부를 보여줄 증거를 찾았다. `루나 프로스펙터`가 보내온 자료를 분석한 미국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와 달 연구소는 우주 탐사선 달에 최고 1백억t의 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달의 남북극 근처 토양에 최소 10억∼최고 1백억t의 물이 얼음형태로 묻혀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달 탐사 역사는 1959년 1월 소련의 무인우주선 루나 1호 발사, 1959년 9월 소련의 무인 우주선 루나 2호 최초 달 착륙, 1962년 4월 미 우주선 최초인 레인저 4호의 달 착륙, 1968년 12월 미우주인 프랭크 보먼과 짐 로블, 빌 앤더스에 의한 인간최초의 달 상공 비행, 1969년 7월 미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에 의한 인간 최초의 달 착륙, 1972년 12월 미우주인 유진 서먼과 해리슨 잭 슈미트의 인간으로서는 마지막 달 착륙으로 이어져왔다.
`루나 프로스펙터`
무인 달 탐사선이 발사되고 있다.
▶1996년인기가수 김광석씨 사망
▶1994년대입본고사 14년만에 부활
▶1993년세계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추정
`삼장문선` 발견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고려의 직지심경(=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1377년간)보다 30여년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의 금속활자본 `삼장문선`이 발견됐다. 1993년 1월 6일 상암문고가 "고려시대 서적원 간행의 `삼장문선`(원제 신간류편역거삼장대책)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며 이 책을 공개했다. 출간연대는 1341년에서 1370년 사이로 `직지심경` 보다 짧게는 7년, 길게는 36년 앞서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본의 활자들은 대-중-소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자 본문에 소자 두줄로 주석을 달아 인쇄할 수 있는 완벽한 체제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활자와 체제외에도 내용이 구본은 고려본, 신본은 조선본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삼장문선`은 원나라에서 주관한 국제적인 과거시험(향시와 중서성 회시)의 대책문제를 뽑아 고시관의 비평을 곁들인 명답문집으로, 이 책에는 1314년에서 1335년까지의 출제가 들어있고 초간본은 1341년에 나왔다. 내용에 고려본인 구본은 경의를 표시하는 대두법을 사용, 원황제나 황실이 나오면 문장을 별행하고 있으나 조선본은 이를 무시, 출판국가가 다름을 확연하게 증거하고 있다.
▶1992년한국-앙골라 국교 수립
▶1990년서울-파리간 KAL여객기,
소련 시베리아 영공 첫 통과
비행하고 있는 대한항공 여객기.
대한항공기피격사건
1983년 9월 1일, 뉴욕발 앵커리지 경유, 서울행의 대한항공기(KAL : Korean Air-line)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사할린 부근상공에서 소련전투기의 미사일공격을 받고, 사할린 서남쪽 모네론섬(海馬島) 해상에 추락하여, 승객 240명과 승무원 29명 등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겨우 유품이 반환되었을 뿐 유체에 관한 정보와 블랙박스 회수의 유무를 포함하여 상세하게 밝히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은 사건확인 후 성명을 발표하고, 소련의 비인도적 잔학행위에 강력히 항의하고, 소련의 사과와 피해보상, 사건책임자처벌,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방지에 대한 보장 등 4개항을 요구,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소집을 요구하였다. 서방 측 여러 나라는 소련여객기의 운항을 전면규제하고, 미국은 소련과의 문화교류를 단절하였다. 일본도 소련과의 외상회담(外相會談)ㆍ무역회담의 중지를 고려하는 등 일ㆍ소관계도 악화되었다. 민간차원에서도 국제조종사협회 연맹(IFALPA)이 KAL기 격추에 대한 보복조치로 60일간 모스크바 취항을 중단하기로 결의하였다. 사건 후의 1984 년 5월 국제민간항공기구의 총회는 국제민간항공 협약을 개정하고 민간항공기에 대한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국제민간항공협약 3의 2)을 새롭게 채택하였다(미발효).
▶1981년이란 미국 인질석방에
관한 알제리 중재안 수락
▶1980년인도 총선에서 간디 재집권
▶1978년한국-기니 국교 수립
▶1972년중국 군부 원로 진의 사망
▶1971년미국 국방장관, 월남지상작전을 월남군에 연내 이양한다고 발표
▶1969년길재호 공화당사무총장, 개헌논의 제기
▶1966년철도화물운임 횡령사건
철도화물운임 횡령사건으로 검거된 서울역 직원들.
▶1962년구정치인 연금상태 해제
▶1950년영국, 중국을 승인,
자유중국은 영국과 단교
▶1950년제1회 고등고시 실시
▶1943년미국 교육자
아보트 로렌스 로웰 사망
▶1941년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반파시즘 선언
▶1930년최초의 우리말 사전 간행
▶1926년조선총독부, 전(前)
중앙청 건물로 청사 이전
▶1925년이탈리아, 파시스트내각 성립
▶1920년통일교 교주 문선명 출생
▶1920년조선총독부, 조선일보ㆍ동아일보ㆍ시사신문 발행 허가
▶1919년동경유학생회학우회 독립선언실행방침 밀의
▶1919년미국 제26대 대통령
데오도르 루스벨트 사망
▶1913년폴란드 공산당 지도자
에드워드 기에레크 출생
▶1904년러시아,만주에서의
특권확립 재천명
▶1902년서양화가 도상봉 출생
▶1901년인도네시아
정치가 수카르노 출생
▶1901년아이슬란드의 시인 토마스 그뷔드뮌드손 출생
▶1884년유전학자 멘델 사망
▶1852년프랑스의 교육자 루이스 브라유 사망
브라유(Braille, Louis, 1809.1.4~1852.1.6]
ㆍ시각장애우에게 ‘문자 표현’ 희망
루이 브라유의 일생은 송곳으로 꺾이고 송곳으로 다시 핀 삶이었다. 프랑스 쿠브레에서 태어난 그는 마구와 안장 제작기술자인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3살 때 가죽과 송곳을 쥔 채 놀다가 손에서 미끄러진 송곳이 왼쪽 눈을 찌르면서 시력을 잃었다. 나머지 한쪽 눈도 감염되면서 5살에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그의 부모는 바로 위 형제와 13살 터울의 늦둥이 막내인 그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브라유는 읽고 쓰기를 익혔고 10살에는 파리의 왕립맹아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계속했다. 학교라곤 했지만 위생이나 시설이 형편없는 곳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브라유는 학구열에 넘치는 학생이었다. 학교 설립자인 발랑탱 아우이가 창안한 돋음문자로 만든 몇권되지 않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구리선에 종이를 눌러서 만든 책은 제작비용을 아끼려 합본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권당 30㎏에 달해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고행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읽을 수만 있을 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방법은 없었다.
브라유가 12살이던 1821년, 학교를 찾아온 전직 군인인 샤를 바비에르를 통해 그는 점자체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바비에르가 개발한 ‘밤 문자’는 12개의 점으로 구성돼 전장에서 소리내 말하지 않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 이 문자를 본 뒤, 브라유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송곳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점자체계를 만들어냈다. 가로 2열, 세로 3행의 직사각형으로 배열된 여섯 개의 점이 볼록 튀어나와 있는지 아니면 평평한지에 따라서 알파벳 각 글자에 대응하도록 만들었다. 64개의 글자 표현이 가능한 이 글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이도 간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췄다.
탁월한 첼리스트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던 브라유는 1827년 수학과 음악도 표현할 수 있도록 점자책을 출간했다. 모교에서 존경받는 선생님이었지만 그의 생전에는 학교 교육과정에 점자책이 채택되지는 않았다. 건강문제로 시달리던 그는 43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숨졌고, 100년 뒤인 1952년 위인들이 묻히는 파리 팡테옹으로 이장됐다. 서구권에서 점자는 브라유라고 부르는데, 이는 창안자인 그를 기리기 위해서다.
▶1838년독일의 작곡가 막스 브루흐 출생
▶1809년프랑스의 교육자
루이스 브라유 출생
▶1766년파라과이 독재자 프란시아 출생
▶1564년영국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출생
▶1412년프랑스 성녀 잔 다르크 출생
성녀(聖女)’ 잔 다르크가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412년 1월6일 프랑스 동레미에서 태어났다. 백년전쟁은 영국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고집해 1338년부터 1453년까지 115년동안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며 프랑스 땅을 황폐화시킨 전쟁이다.
잔 다르크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신앙심 하나 만은 누구 못지않은 농촌처녀였다. 그에게 ‘나라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가 내려진 것은 열세살이었지만 그가 전쟁에 뛰어든 것은 4년 후였다. 그는 열일곱살 때 곧 프랑스 국왕이 될 샤를 왕세자를 찾아, 흰 갑옷과 프랑스 왕가의 문장(紋章)이 수놓인 군기를 전달받았다. 전선을 종횡무진하는 그의 모습은 좌절과 실의에 빠졌던 프랑스군의 사기를 되살려, 프랑스 최후의 방어선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기적같은 연전연승을 거둔다.
그러나 신(神)도 은총을 거두었는지 영국군에 사로잡혀 1431년 5월30일, 마녀로 낙인찍혀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열아홉이었다.
잔다르크의 활약상은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 6세’, 쉴러의 희곡 ‘오를레앙의 처녀’ 등 문학 곳곳에서 재현돼 역사를 뛰어넘는다. 라이프지(誌) 선정 ‘1천년 밀레니엄’을 일구어 낸 100인에 오르기도 했던 그도 한때는 기피인물 1호가 된 적이 있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이 그를 우상시하며 집회 때마다 동상을 앞세우고 행진했기 때문. 영국인은 지금까지도 잔 다르크(Jeanne d’Arcㆍ아르크 사람 잔)를 고유명사로 인정하지 않고 ‘조운 오브 아크(Joan of Arc)’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부르며 분을 삭힌다. 샤를 드골은 ‘찰스 오브 골’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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