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인 신랑은 서울에서 나는 포항에서 각자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도 일직(日職)이라 숙직(宿職) 선생님과의 교대시간까지는 텅 빈 학교를 지켜야 했다. 대학 동문이며 자취방 룸메이트인 동료 교사의 일직까지 도맡아 여름방학 동안의 일직 회수는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이상한 느낌이 왔다. 무언지 모르게 불편하고 불안하고 참을성 많던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음악처럼 즐겁게 들리던 매미소리도 짜증스럽고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넓은 운동장에 내리쬐는 햇살도 못마땅했다. 교재로 풀던 문제집은 보기도 싫어 책상 서랍 안에 넣어버렸다. 딱딱한 교무실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평소 근처에 가기도 어려웠던 교감선생님의 푹신한 회전의자에 앉아보아도 불편한 건 여전했다. 머리가 띵하게 아팠고 속은 메슥거리고 열도 나는 것 같았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한다는데, 감기몸살이 오려나?'
오후 6시에 숙직 교사에게 인수인계를 하기까지 시간이 멈춘 듯했고 몸은 점점 더 불편했다. 자취방에 돌아와서도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심해졌다. 급기야 한밤중에는 심한 열과 함께 오한이 와서 친구 이불까지 덮었는데도 이가 딱딱 마주치게 너무너무 추워서 정신없이 떨었다.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서 혼자 죽는 게 아닌가 싶어 무섭고 서러워 울었다. 휴대폰은 고사하고 자취하는 집에도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가까운 기독병원에서 급성신우신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대구 집에 가서 입원하겠다고 하니 진단의뢰서를 써주며 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대구에 와서 바로 그 병원에 입원했다. 메슥거리는 증상 때문에 식사를 할 수 없었고 양쪽 팔에는 링거 주삿바늘 자국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링거 수액에 항생제를 넣어 하루 24시간 주삿바늘을 꽂고 있어서 깊은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게 며칠간 입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열흘 정도로 짐작이 된다.
퇴원하자마자 추석이라 서울에서 내려온 남편과 시댁에 갔다. 항생제와 링거로 연명하다시피 해 기운도 없고 어질어질한 상태였다. 엉덩이에도 주사를 계속 맞아 비포장도로에 버스가 덜컹댈 때마다 심한 통증이 엄습했다.
나를 보신 시어머님께서
"우리 아~아가 상처(喪妻)할 팔자가 아이라 카던데 니는 우째 이런 일이 다 있노?"
아무리 아들이 소중하고 며느리는 아니라고 해도 면전에서 이렇게 심한 말씀을 하시는 시어머님이 참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몇 번 뵙지도 못해 서먹하고 어색한데 이런 말씀까지 하시는 데야 서럽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죄를 지은 것 같은 복잡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 당시 농촌에서의 며느리는 가족의 일원이라기보다 소처럼 척척 일 잘 해내고 순풍순풍 아이 잘 낳는 것이 최고였으니 우리 시어머님의 낭패감이 어떠하셨을지 이해는 간다. 결혼 전 남편에게 이렇게 조언하셨다고 들었다.
"우리 집엔 대학 공부한 며느리보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 좋겠다."
개학해서 출근했더니, 교감선생님이 몹시 언짢아하셨다며. 한 여교사가 귀띔해 주는 말이,
"당장에 곪아 터지는 것도 아닌데, 입원이 뭐 그리 바빠서 가버렸노."
급성이라니 당장에 곪을 수도 있는데, 남의 일이라고 어찌 그리 심한 말씀을 하셨는지 많이 서운했다.
여 교감선생님은 성격이 몹시 괴팍해 동료 교사들의 존경을 못 받고 있었다. 특히 남자 교사들은 대놓고 싫어했다. 지금은 연세가 90에 가까워 생존해 계실지 모르지만 좋은 추억이 별로 없다.
신우신염은 신장에 생기는 염증으로 증상이 고약하고 완치하고도 재발이 잘 되는 병이다. 그 후로도 피곤하면 슬며시 고개를 드는 통에 한동안 신우신염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렸고 그 병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극심한 오한도 견디기 힘들지만 '권태감'의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병이 발병할 즈음 찾아온 그 권태감이라는 것의 정체는 지구 땅덩어리가 나를 짓누르는 억압 같은 것이었다.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무기력과 고통이었다. 이후로 '권태'라는 단어만 보면 바로 신우신염의 증상을 연상하게 되었다.
권태라는 말이 일상에서는 부부사이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부부간의 '권태기'라는 의미도 바로 이 권태감과 같을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은 진공상태인 권태가 부부사이에 작용한다면 함께 생활을 영위하지 못 할 것이라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는‘권태’를 직접 경험해 보아 정말 이해가 간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단계에서 나는 지금 노년에 와 있다. 바로 다음 단계인 병(病)이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그 병이 진짜 무서운 것은 통증보다 권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신우신염 무서운 병이예요.
초기에 확실히 치료해야되구요.
살다보면 과거 시어머니나 시댁일때문에 가끔 속상하고, 화나고 그땐 왜 그렇게 바보같이 가만히 있었을까? 할때가 많아요.
고부간의 관계는 풀 수 없는 숙제인가 봐요.
우리 몸의 각 기관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신장의 역할이 대단합니다.
건강할 때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옛날과 현재의 고부관계는 엄청 많이 바뀌었지요.
우리 세대가 낀세대라 손해가 많다고들 합니다.
요즘 며느리는 할 말 다 하고 먹을것 다 먹고 하구싶은 것 다 하고 사니 신우염은
잘 안 생길꺼다 신우신염이 무서운 병이라 과로하면 재발 한다고 하제 ...
고부관계가 정반대로 바뀐 지금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보며 살잖아요.
며느리는 할말 다 하는데 저는 할말도 참고 삽니다.
참, 마음고생 많으셨네요.
처음엔 희망이 안 보였는데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권태롭고 짜증 나는모습 실감 납니다....^^
저도 가끔 그럴때 있는데...전 게을러서 그래요...
부디 건강 하세요 선배님
아우님도 건강하세요.
옥덕님, 지난번 체육회에 얼핏 봤을때 수척해보이던데, 잘 드시고 잘 쉬세요.
TV보며 같이 웃고... 두사람만 살다 보면 한 사람이 웃어줘야 남은 사람도 전염됩니다.^^
늙은이 둘이서 웃을 일이 별로 없어요.
서로 맘 편하게 해주며 살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