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금성산(金城山·592.1m·경상남도 합천군)
영남일보 기사 입력일 : 2020-08-21
유선태
안개 내려앉은 산에 바람 부니…훤히 드러낸 정상 그저 감탄만
유례 없는 최장 장마가 끝날 무렵 불꽃놀이의 마지막 장면에 엄청난 폭죽을 쏘아 올리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처럼, 엄청난 물 폭탄을 퍼부으며 전국에 산사태와 홍수를 남기고 지루한 장마가 끝났다. 이번에 찾은 합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류에서 유입되는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댐의 수문을 열어 방류하자 댐 하류는 집채만 한 바위가 떠내려갈 만큼 하천 바닥을 뒤집어놓으며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이곳을 찾았던 날은 수문을 닫은 후여서 들머리가 되는 댐 상류마을에 이르자 만수위라는 것과 황토를 풀어놓은 듯 흐린 물빛 외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기까지 하다.
금성산을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코스를 잡고 율정마을 부근 공터에 차를 세우고 버스정류장과 팔각정이 있는 마을 입구에 들어선다. 150m쯤 마을 사이로 난 길을 오르면 오른쪽에 희양2구 율정동 마을회관을 지난다. 70m쯤 더 지나면 포장길은 왼쪽으로 휘어지고 그 오른쪽에 주택과 창고 사이로 경운기가 지날 정도의 좁은 길이 나 있는데 '금성산 1.7㎞'로 적은 이정표가 서 있다. 평소 같으면 절벽을 이룬 금성산 정상부가 훤히 보이는 위치지만 한차례 소나기 예보가 있던 터라 잔뜩 흐린 하늘과 구름이 걸려있어 전혀 보이질 않는다.
평소엔 율정마을서 훤히 보일 정상
흐린 하늘·구름에 가려져 궁금증만
능선 오르면 정상까지 이어진 바윗길
넓은 바위 2단으로 된 금성산 정상부
포장길은 비포장으로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쪽 밤밭 사이를 지나게 된다. 멧돼지가 뒤진 흔적은 밭을 일군 듯하고, 물이 고인 자리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뒤진 흔적이라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밤밭이 끝나는 지점쯤 평평하고 넓은 바위를 만나 잠시 쉬어간다. 마을 입구에서 15분 정도 올랐을 뿐인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흐르는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었다. 가늘게 빗줄기가 시작된다. 어두컴컴한 숲으로 들어서니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이고 '금성산 1.2㎞'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는 경사가 점점 가팔라진다. 긴 장마 탓인지 조건이 되어서인지 노랑망태버섯이며 큰갓버섯 등 버섯 종류가 길섶에 깔리듯 자라고 있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길을 걷자니 거미줄을 걷어내야 하고, 좁은 길을 지날 때면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을 털어내야 하니 눈길에 러셀을 하는 것처럼 속도가 느려진다. '금성산 0.7㎞' 이정표를 지나면 정상부 바위지대 사이로 오르는 숲길인데 경사가 만만찮다. 빗물을 머금은 너덜지대의 바닥이 미끄러워 스틱을 접어 넣고 나뭇가지를 잡고 오르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번 산행에 동행한 이는 내년에 히말라야 등반을 준비 중인 후배인데 분위기 좋다며 앞서나가는데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워낙 준족인 데다 앞산에서 비슬산까지를 왕복으로 내달리며 몸을 만들고 있는 터라 거친 오름길이지만 즐기는 듯 보인다. 20분 정도 된비알을 오르니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오른쪽은 양리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지만 희미하고, 정상은 왼쪽 방향이다. 참나무가 주를 이루는 숲에 안개인지 구름인지 사방이 희뿌옇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되어 정상까지 이어진다. 안부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인돌(지석묘)을 닮은 바위를 지나면서 바위를 넘거나 돌아 오르는 길이 이어진다. 아기자기한 바위가 겹겹이 포개진 바위, 난간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바위를 감상하며 오르지만 짙은 안개로 아쉽게도 조망은 없다. 정상과 직선거리로 70m 정도 거리에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를 만나면서 마침 비도 그쳐 쉬어가기로 한다. 간혹 바람에 안개가 옅어지니 정상부 바위가 보일 듯 말 듯 모습이 드러난다. 잠시 쉬어가려던 것이 점심까지 먹으며 무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하늘이 열린다. 정상 왼쪽 합천댐 방향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순간순간 변화무상한 풍경에 "우와~ 우와~"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전망바위에서 내려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두어 번 바위를 넘고 마지막에는 오른쪽 바위 아래로 내려서서 돌아 오르는 길이다. 산죽군락지를 돌아 오르면 넓은 공간에 금성산 표석이 세워져 있다. 표석 뒤로 철계단이 놓였는데 실제는 계단을 올라야 정상이다. 정상은 넓은 바위가 2단으로 되었는데 앞쪽에는 산불감시초소와 봉수대 터가 있고, 암반을 드러낸 바위로 걸어 나가면 바위아래 금성산 안내판이 서 있다. 바위틈을 내려서면 모산재에서 보았던 돛대바위를 닮은 바위와 바위를 두드리면 북소리가 난다는 북바위가 있다. 북바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드렸는지 절구 모양으로 깊게 파여 있다.
북소리 내는 북바위, 절구처럼 파여
합천댐 내려다보이고 북쪽엔 악견산
절벽 가운데 '금반현화' 불리는 반석
곽재우 장군 이야기 얽힌 바위구멍도
합천댐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북쪽 악견산과 마주보고 있지만 안개로 희미하고, 서쪽의 황매산, 남쪽의 허굴산은 또렷하다. 표지판의 금성산 소개에 봉수대가 있던 산이라 봉화산이라 불렀고, 정상 절벽 중간의 너른 반석은 '비단 소반에 꽃을 단' 것처럼 보인다 해서 금반현화(錦盤懸花)로 이름 붙였다 한다. 서 있는 자리가 꽃봉오리 위인 셈이다.
정상에서 바위구멍을 통해 산불감시초소로 내려선다. 이 바위는 임진왜란 때 왜적이 장기전을 기하자 선비들이 의병을 모아 악견산과 줄을 매어 붉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띄워 달밤에 줄을 당기니, 흡사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다니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본 왜적은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전멸시킬 것이라며 겁에 질려 도망쳤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구멍이다.
철계단을 되돌아 내려와 정상석이 있는 정면으로 길을 잡는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급경사를 이룬다. 율정마을에서 올랐던 길과 비슷한 경사지만 계단과 밧줄을 설치한 구간이 많아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경사지에 간혹 한국특산종인 노각나무가 자라고 있고, 15분 가까이 내려서니 '대원사 1.3㎞'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는 다소 완만해진다. 길이 편해지자 작은 물길을 만나면 세수도 하고 여유가 생긴다. 대원사가 가까워지자 낙엽송이 자라는 길을 지나면서 길이 넓어지며 어두컴컴하던 숲에서 나와 정면의 악견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원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서면 금성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진 도로를 만나게 된다. 도로를 따라 약 1㎞쯤 걸어야 오전에 올랐던 율정마을 입구가 나온다. 준비해간 물은 다 마셨고, 빈 물병에서 달그락거리는 얼음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걷는데 후배가 한마디 한다. "형님 이따 앞산에 야간산행 안 가실래요." 아무 대답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산행길잡이
율정마을 -(7분)- 밤 밭 -(30분)- 금성산 0.7㎞ 지점 -(20분)- 안부 삼거리 -(25분)- 금성산 -(25분)- 대원사 1.3㎞ 지점 -(50분)- 대원사 -(15분)- 율정마을
경남 합천군 대병면에 속한 금성산, 악견산, 황매산을 일컬어 대병삼산으로 부르며 정상부는 모두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옹골차기로 꼽는다면 단연 금성산이다. 코로나 사태로 단체산행이 어려워지자 개인 산행 위주로 산행을 즐기는 꾼들에게는 제격인 산이다. 소개한 코스를 한 바퀴 돌아내려오면 약 4.7㎞로 비교적 짧은 코스지만 경사가 심해 3시간30분 정도 넉넉히 잡아야 한다.
☞교통
광주대구고속도로 고령IC를 빠져나와 좌회전으로 삼거리 회전교차로까지 간 다음 합천·고령 방향의 33번 국도로 진주 방향으로 합천읍까지 간다. 남정교차로에서 합천호 이정표를 따라 조정지댐과 영상테마파크를 지나 용문2교를 건넌다. 약 3㎞를 더 가면 합천댐 물문화관을 지나 약 1.5㎞를 더 가면 율정마을 입구가 나온다.
☞내비게이션: 경남 합천군 대병면 합천호수로 44(율정마을 입구 팔각정)
☞볼거리
-임란창의기념관
합천댐 바로 아래에 있는 임란 창의기념관에는 임진왜란 당시 상황도와 그 당시에 사용된 화살과 칼, 갑옷, 창이 전시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전국 의병의 실제적 효시가 된 합천의병사(史)와 내암 정인홍 선생 및 남명학파의 숭고한 구국정신과 장렬히 산화한 선현들의 정신을 기리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상테마파크
합천댐과 조정지댐 사이에 있는 영상테마파크는 2004년도에 건립한 192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국내 최고의 특화된 시대물 오픈세트장으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인천상륙작전, 드라마 각시탈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촬영세트장이다.
합천 [의룡산&악견산&금성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