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산사님이 스님들의 모습에서 실망을 느끼신 거 같습니다.
화두한다는 스님들을 보시기에 깨달으신 분들이 아니라는 생각도 드신 거 같고.
그래서 제가 설명을 좀 드립니다.
얼마전 대장경 천년 특집으로 다르마를 1부부터 4부까지 방영했습니다.
거기에 티벳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거 보면 그 추운 겨울에 간단한 식사만을 하면서
자애 명상 수행을 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자애심을 가지고 평화로움을 기원하는 명상을 하시지요.
그런 방식이 남방불교의 자애명상 수행 방식입니다. metta 수행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김재성 박사가 이 자애명상 코스를 8 주 코스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위빠사나에서도 자애명상을 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강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자애명상 김재성 박사 카페를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daum 에 카페가 열려 있습니다.
위빠사나 불교인 남방불교나 티벳 불교는 자비심을 우선 기르는 것에 중심을 많이 둡니다.
그런데 중국불교는 중국식이에요. 중국은 아시다시피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나라입니다.
원나라 지배도 거의 수백년 받았구요. 청나라 지배도 4-5백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외세 침략이 아주 많아서 수시로 훈이 침략하고는 해서 만리장성을 쌓았죠.
만리장성을 국가적으로만 쌓은게 아니라 개인 집도 만리장성식으로 쌓아서
남과 자신을 격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독하게 개인주의화 되어 버린 것이 중국입니다.
일본과는 좀 다릅니다. 일본은 和 라서 서로 서로 예의를 지키어야 사는 섬나라이지요.
중국의 불교는 도교와 합쳐져서 단전호흡 명상으로 발전하며 신선이 되는 불교로 변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단학선원이라고 하여 仙佛敎 라는 종교단체도 생겼습니다. 앞의 글자가 신선 선짜입니다.
불교는 아니고 - 연기법이 없으므로 - 도교, 신선도라고 보죠 )
그러다 보니 스승에게 복종하는 그런 중국식 문화가 탄생되었구요.
소위 말해 건방져 진거죠.
많은 사람들에게 스승으로 존경받고 밑에 제자들이 좌악 깔린 그런 불교.
도를 닦는다는 말도 사실 도교의 단어이고 깨우친다는 것이 뭐 신선이 되는 길 쯤으로 아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불교 스님들은 자비심이 좀 없습니다.
개인 수행을 강조하고 백팔배, 천배 시키는 것은 다반사이고
일 시키고 울력시키고 거의 노예처럼 부려 먹고
옛날 승가 교육은 거의 군대 교육 비슷하였다고 봅니다.
군대에 자비심이 있나요?
요즘은 좋아져서 위빠사나도 , 자애명상도 생겨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님들도 자비심으로 기도도량을 만들어 도반들에게 합격기도도 같이 해주고 하면서
도반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는 자비심을 발휘하시지요.
사실 스님이 천배를 같이 한다는게 쉽지 않거든요.
기도 스님도 보시면 일심으로 같이 기도해 주신다는게 ,. 그게 웬만한 희생정신으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셔서 예불하시고 또 사시 기도 같이 드려 주시고.
대단한 희생, 아니 자비 정신이시지요.
존경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불교인 선불교는 개인주의가 강해요. 특히 도반들이 스님들의 그런 걸 배워서인지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는 마음이 없는 사찰들이 있답니다.
제가 가장 놀란 건 이런 거에요.
언젠가 도반들끼리 저녁을 먹었는데, ( 제가 첫 사찰에 나갔을 때 ) 저녁 끝나서 헤어지기 전에 화장실을 갔다가 나왔더니
모두 사라지고 없는 거에요. 인사도 서로 안하고 헤어지더라구요.
완전 남들 같아요. 그럼 뭐하러 같이 식사를 했던건지.
식사가 끝나면 식당 앞에서 서로 인사하고 헤어지는 것이 맞는 일인데 이분들.
그냥 끝나고 인사도 없이 훨훨 자기 갈길로 가버리는 겁니다.
와~~~ 놀랬어요.
뭐 불자들이 이런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정말 도사틱하더군요. ㅎㅎ
그 때만 그런게 아니라 그 다음에도 인사없이 헤어져서 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중국 불교인 선불교의 영향이에요. 도사틱하게 굴고, 신선처럼 굴고 뭐 그럽니다.
그러니 노인들이 그냥 가톨릭으로 가 버리지요.
가톨릭은 재미있잖아요. 남자여자 노인들 숫자도 비슷하고 , 여행도 버스타고 다니고.
죽으면 가톨릭에서 성당에 장례식장도 마련해주고 심지어 장지도 마련해주고
서비스가 보통 좋은게 아니지요.
불교는? 이건 뭐 스님이 자기에게 삼배하라고 하지, 법회 끝나면 따로 앉아서 식사하시지.
도반과는 대화도 안하시지. 완전 도사세요. 그러니 자애명상이 안되는 거죠.
목사들은 어떻습니까. 예배 끝나면 문 밖에 서서 일일히 한사람 한사람 모두 웃으며
인사하지 않습니까. ( 뭐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죠. 그들로서는 한사람 한사람이
십일조니까 중요하겠죠. )
서비스가 너무 좋은거에요. 특히 노인들에 대한 목사의 서비스는 대단히 좋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는 압니다만 여기 말은 못하겠어요.
기부금 때문일 거라고 상상만 합니다.
물론 진정한 사랑의 정신 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지요.
지금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인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적이고 자비심의 부족의
사찰이 많습니다. 돈 많은 사찰이 좀 그런 거 같구요.
하지만 도반 숫자가 큰 사찰은 조직이 생겨서 이제는 가톨릭적 조직처럼 움직이는 사찰들도 생기고 있죠.
중국 불교가 이제는 한국불교화 되는 셈입니다.
한국인이라는게 원래 한 가족처럼 지내는 습성이 있지 않습니까.
순복음 교회가 맨 처음 만들어 낸 지역예배.
그런 식으로 사찰도 지역법회를 만들어 도반들끼리 묶어 주기 시작했죠.
그리고 남방 불교인 자애명상 수행이 들어오면서 티벳 스님이나 버마 스님들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자비심을 갖는 수행도 많이 생기구요.
뭐 초기 불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뭐 초기 불교일리는 있겠어요?
남방 불교이거나 티벳 불교이겠지요. 라마 불교.
어쨋던 간에 새벽산사님이 만났던 스님들은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선불교 스님이실 거 같구요.
이제는 자애명상을 하시는 스님들을 만나 보세요.
불교 방송에서 방송하셨던 정목스님.
자애명상파 스님이십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그리고 불교 도반들도 자애명상 많이 하시고 서로 돕고 돕는 방식의
불교가 되어야지 뭐 혼자서 깨닫고 도사 되고 신선되는 종교에서 나와야 할 거 같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불교 뭐 그런 불교 말입니다
타이완 불교는 그런 도움을 주는 불교로 변해서 도반들 조직이 사회 봉사 조직으로 변해서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스님의 법문도 아마 자비심위주인 거 같구요.
그러다 보니 기독교가 설 땅이 사라져 버렸죠.
지금은 타이완은 거의 불교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독교가 사라진 거죠.
만일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선종으로 움직인다면 아마 앞으로도 힘들거에요.
그냥 합격기도, 49 재로 살아가는 불교가 될것이겠죠.
자애명상을 하는 수행이 많이 늘어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고
새벽산사님이 실망하셨던 그런 불교는 점점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화두 수행이 외도는 아닙니다. ㅎㅎ
그 분들이 좀 자애심이 부족하시다 보니 그렇습니다.
도사들이나 신선들은 좀 건방지거든요. ^^
불교가 아니라 도교라서 그렇습니다.
기공이 성행하던 80 년대에 너도 나도 기공한다고 많이들 산에서 내려 왔는데요.
그게 도사인지 스님인지 알 수 없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요즘도 불가기공이라고 하는 걸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미국 애틀란타에 계시는 아는 도반 분인데요. 연세는 70 대. 그 곳에 새로 젊은 스님이 한분 오셨답니다.
근데 오자 말자 도반들에게 자기에게 삼배를 하라고 하더랍니다.
70 대 노인께서 기가 막히신거죠. 자기더러 삼배를 하라니??
그 후 절에 안나가셨습니다.
그 스님은 자애심이 없으신 거죠.
그러니 불교가 되겠어요?
애틀란타 한인교회에 가면 그런 대접은 안받을테니까요.
아무튼 스님들, 행자시절 고생하다보니
그런 습관이 생기시는 거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현대식 대학 교육기관처럼 그런 불자 교육기관이 생겼음 좋겠습니다.
타이완에서 좀 많이 배워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
가톨릭처럼 구역을 정해서 한 구역마다 불교회관 하나씩 만들어 모든 종단이
공동 교육장으로 이용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죠.
지역마다 불교회관 한개씩 지어서 식당, 세미나실, 법당, 도서관, 커피샵등을 만들고
도반들이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 말입니다.
첫댓글 새벽산사님은 제 윗글에 동감하십니까?
다빈님의 자애심이 느껴지네요^^.
저도 구구절절 동감됩니다.
티벳불교의 자비심은 정말 선불교가 본받아야 합니다.
타이완불교의 봉사행도 정말 끝내줍니다.
911터졌을때 가장 먼저 달려간 단체가 자제공덕회 입니다.
간화선 의정 터지면 그 집중력이란 정말 하늘을 찌릅니다.
속세를 떠나신 분은 그런 수행이 가능하나 매일 일해야 하는 일반인은 그런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반인을 위한 수행으로는 위빠사나 수행같은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미국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 식으로 수행하는 거죠. 간화선 수행은 스님들이 하시면 되구요.
저도 초보불자에겐 위빠사나가 좋다고 생각됩니다.그외 염불 주력도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위빠사나도 경지를 넘어가면 일을 병행하며 할수 없다 합니다.
생활과 병행하는 경우는 위빠사나 초보단계 이죠.
간화선은 생활 병행문제보다 위낙 들기가 어려운 수행법 같습니다.
그래서 상근기 수행법이라 알려져 있는 것같습니다.
소승불교, 대승불교, 티벳불교(라마교), 중국선불교. 이렇게 구분한다면 각각 장단점이 보이더군요. 이제는 타이완불교같은 특별한 불교도 생겨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모델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불교는 결혼을 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목사들 같아서 아무래도 돈벌이가 위주가 되겠죠. 기도해 주는 거나 제사 지내주는 것등등.
각각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해 나간다면 더 좋겠지요..요즈음 국내에도 위빠사나가 많이 보급되고 있는것 같습니다...반가운 일입니다....위빠사나..간화선.염불.주력.어떤 수행이나..바르게 수행하는 불자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경전공부나 어떤 수행이나 자신의 근기에 맞게 하는것도 중요하다 봅니다...세속의 공부가 아니라 출세간의 공부를 하는 불자라면 타종교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데...하물며 같은 불교의 수행법을 함부로 비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어떤 무엇을 비판할려면 그 비판하고자하는 것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특히나 수행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간화선을
비판하고 비방할려면 수행의 경지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경전공부를 한것을 토대로 수행의 세계까지 자신의 잣대로 재단해서 그 수행법은 외도다. 이렇게 단정짓는 것은 누가 보아도 주장의 무리가 있습니다. 자신이 수행해서 그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간화선이 외도란 것을 논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공부한것이 다 옳고 자신이 생각이 다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견성해서 성불한 부처님이 아닌 다음에야..항상 자신이 알고있는 것이 다 옳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아 스스로에게 겸손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님은 간화선을 토론하고 비판한것이 아니라...간화선 수행법이 외도 수행법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님이 쓴 댓글이 남아 있습니다..지금와서 토론하고 비판한것이라고 말을 바꾸는것입니까?
간화선의 장단점에 대해서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지만...외도 수행법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비방이고...간화선 수행을 비하하는 것입니다..비방과 비판은 다른것입니디...님의 말과 행동은 모든것이 옳다는 식입니다...
금시조님이 잘 지적하셨습니다. 너무 일방적 비방이셨습니다.적어도 간화선 수행법을 비판할려면 경험에 우러나와 내가 해보니 이러더라 라는 정도는 나와야 할텐데 해서 수행법 비판은 무척 조심스러운 것인데 <경>엔 않나오니 외도다 이런 말을 사용하니 '비방' 이 되어 여러분들이 문제 삼는 것 아닙니까?
부처가 말하는 사마티와 사티 수행은 어느 수행을 해도 나타납니다.사마티 사티가 없으면 수행법도 아닙니다.
부처가 팔리어로 뜰앞의 잣나무 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부처 앞마당에 잣나무가 없었는지 허긴 따뜻한 곳이라 잣나무가 있었겠습니까? 뜰앞에 보리수 라고 했어야 할텐데 부처님 참 야속하네요.
님이 간화선이 정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은 자유입니다...그것은 님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결론인 것입니다.....위의 노랑님의 말씀처럼..간화선을 비방할려면 님이 직접 수행해서 내가 해보니 이러더라 정도는 되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무조건 경에 나오지 않으니 외도다...는 개인의 생각을 수천명의 회원이 계시는 카페에서 단정적으로 표현하시는것은 삼가하라는 말씀입니다...님 혼자 정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화선 수행 안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왜....천년동안 3국에서 간화선 수행한 수많은 선지식과 선승들..그리고 현제 간화선을 수행하는 수많은 스님들을 외도라 비방하냐...이말입니다.._()()()_
어떤말을 하고 무슨말을 하던지 역대 선지식과 선승들 그리고 현제 간화선 수행하시는 스님들 외도라고 비방하시지 말라는 말씀입니다.....비방하지말고 하고픈 말 다 하세요
산사님께서는 본인의 그동안 태도를 쫌 합리화 하시는데
이런건 토론이 아닙니다.
토론은 내용이 있어야 읽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데
영양가 없는 비방이 거의 였습니다.
화두선 수행법이 잘못되었다면 수행해보신 경험을 한번 말해 보세요.
산사님이 한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님이 간화선이 외도 수행법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으니 천년넘게 간화선 수행한 역대 선지식과 선승들 그리고 현제 우리나라에 간화선 수행하시는 스님들....조계종 법전종종예하께서도 간화선 수행하셨습니다...이 모든 분들이 외도가 되는것입니다...님의 말대로하면..아시겠어요...이제와서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겠지요?
간화선은 외도 수행법이다..이렇게 말해서 수많은 선지식과 선승과 스님들을 외도라 비방해 놓고 이제와서 ....간화선 수행법이 잘못되었다..로 말을 바꾸는군요...
부처가 화두수행 않했다 란 명제자체가 스투빗 한 발상입니다.
부처가 왜 화두수행합니까? 화두란 중국문화와 맞물려 양산 된 것인데 부처가 산동네가 중국문화권입니까?
부처가 간화선 않한건 세살아이도 아는 영양가없는 이야깁니다.
간화선 비판을 하더라도 제대로된 근거를 제공하고
적어도 내가 체험해보니 이렇더라 정도는 나와야 누가봐도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경에 안나온다고 '외도' 라니 체험도 없으신 분께서 이렇게 큰소리 쳐도 되냐는 것입니다.
있지도 않은 수행법 간화선을 한 역대조사들은 님보다 못해서 허송세월 버렸습니까?
임제가 묘지에서 튀어나올 소리군요.
또한 역대조사를은 간화선을 정진했는데 역대조사들은 비방하지않고
간화선 수행법만 비방한다는 것은 센스가 전혀 안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주 간화선 수행을 다 아시는듯 매도하시던데
본인에 대해 '나 같은 사람 한사람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본인평가는 나이스 하게 하십니다.
간화선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체험을 내놓치 못하실거면 침묵하셨으면 합니다.
위빠사나.또는 간화선을 수행한 체험을 이야기 해 보라는 노랑님의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는군요...수행은 체험해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해도 않되고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그런데 수행한 체험은 이야기하지도 않고 평생 간화선하신 헤아릴 수 없는 선지식과 선승들이 간화선을 잘못알고 수행했다고요......그 많은 선지식..선승.스님들 중에 성철스님 한분만 보더라도 경전공부와..수행경력이 님하고 비교가 안될 것입니다....근데 성철스님은 간화선이 정법이 아닌데..잘못 수했다는것이고...님은 수행경력도 말하지 못하면서 님의 주장이 옳다는 것입니까....수행도 안해보고 어떻게 간화선이 정법이 아니라고 단정합니까....
역대조사란 말이 걸리시나 보군요.
간화선 정진하신 수승한 스님들을 그저 편히 이리 말한것이니 염려 않하셔도 됩니다.
하늘을 찌른다는 것 체험한바를 염두하고 쓴것입니다.
화두를 않깨쳐도 집중이 오롯할땐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 합니다.
님 체험 들려 주세요.
팔아먹은 것이 아니라 간화선 정진하신 수승한 스님을 편히 이리 표현한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찌른다고 표현한것은 의정을 냈을때 저의 체험을 바탕으로 들려드린 것입니다.
해서 의정터짐이 커지면 집중이 하늘을 찌른다했지 화두터짐에 대해 한말이 아닙니다.
의정터짐과 화두터짐은 다릅니다.글을 잘 살피셔야 겠습니다.
전혀 체험도 없으시면서 간화선 비방하는 것은
자격이 안되심을 숙지 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역대조사란 말에 걸리신것같다고 말한것입니다.
간화선 정진한 수승하신 스님을 이리 표현한것은 제 불찰입니다.
그리고 현재 대화는 님의 간화선 비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님께서 비방근거를 보여주어야 하는 과정에서 님의 체험이 있으면 말해보시라 하는데
말을 못하시니 비방할 자격이 없다 하는데 오히려 상대에게 물음을 전가시키네요.
앞서도 다른분과 대화에서도 보니 아무문제 없는
상대글을 문제있는 것으로 만들어 상대에게 주시던데 이렇게 대화하시면 시비가 끝이 없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무엇이든 문제 제기 좋으나 체험이 수반되는 수행법은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됩니다.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어 그만 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체험을 수반하는 수행에 대해선 조심해야 한다는 걸 전해드립니다.
간화선을 어렵다고 하는것은 상근기가 아니라서 이기보다는 점검해 줄수있는 선지식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동안거 하안거 동안 화두를 들고 선방에 들어가지만 그 선방에 선지식이 없으면 안거가 끝난후에 선지식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아야 하겠지요. 이렇게 되면 석달동안 처음에 생각한 답을 붙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답이라고 여기고 석달을 허송하게 되지요.
그래서 간화선은 반드시 선지식이라고 믿을만한 스승이 없이는 간화선 수행이 불가하다고 보여집니다.
많은 선승들이 간화선이 어렵다고 하는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리고 화두참구를 할려면 기본적 기초교리를 공부한 후에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 경전의 지식없이 토굴에만 몇십년 들어앉아 있는것 보다는 차라리 연기의 도리를 법문으로 한줄이라도
듣고 깨치는것이 빠른길이라고 여깁니다.
어찌보면 경전은 처방전입니다. 처방전을 중탕해서 삶아 먹는다고해도 약이 될수는 없습니다.
처방전을 알았으면 처방전되로 약을 지어서 먹어야 병을 고치지 처방전만 들고 외운다고 되는일이 아니라 여깁니다.
교리에 대한 이해가 없이 禪만 하게되면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기 싶습니다. 禪은 절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닙니다.
간화선이 어려운것은 사실인것 같습니다......지금 조계종에서는 스님이 되면..강원에서 경전공부를 먼저 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강원을 졸업한 후에 경전공부를 계속할 수 도 있고 선방으로 갈 수 도 있습니다...물론 기초교리나 경전 공부하고 선방에 가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 합니다...현재 그렇게 하고 있는 추세이고요...다만...지난 시절에는 바로 화두 참구을 가르친 스님도 있었겠지요....경전 공부를 하지않고 바로 화두 참구를 할려면 눈밝은 선시식을 스승으로 두고 배우고자 하는자도 근본 마음 바탕이 되어 있어야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그외 사람들은 기초교리나 경전 공부를 한 다음 화두참구 하는게 맞을것 같구요.....
그렇지요. 간화선만 어려운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것은 다 어렵게 느끼어지지요.
하지만 타파되고 나면 어려운게 없습니다. 반드시 화두에는 답이 있다는 확신과 선지식을 믿는 마음이 없으면 타파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아무리 내가 답이라고 확신을 해도 선지식이 아니라고 하면 바로 버려야 합니다.
경허 스님같은 경우에는 무자화두를 타파했지만 점검해 줄수있는 선지식이 없기 때문에 3년간 보림을 했다고 하지요.
이와같이 간화선수행에서 선지식의 역활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주 "無"字 같은 경우 양귀비 옆에 몸종인 소옥이 부르는것과 같은 것이지요. 소옥이는 왜 옆에두고
자신을 부르는지 알수 없지만 양귀비는 소옥이를 부르는것이 아니라 담장 넘어의 안록산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알려서 자신이 여기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지요. 간화선은 글자를 따라가면 답을 얻을수가 없습니다.
이와같이 간화선이 어려운것이 아닌데 상근기만 하는줄 알고 미리 포기하거나 선지식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방법을 알면 누구나 염불하듯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에는 시민선방이 많이 있습니다....재가 불자도 마음만 먹으면 화두참구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셈이지요....다른 수행도 마찬가지만 간화선은 바로 하기보단 ...절수행이나 ..다리니기도..염불..수행으로 수행의 힘을 키운다음에 시작하는것도 좋은 방법인것 같습니다.
선지식은 당근 있어야 하고
문제는 의정돈발인데 의정돈발이 머리가 아닌 수행력으로 내어야 하므로
어느정도 수행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수행이 깊어지면 의정돈발은 꼭 화두가 아니어도
지속하던 수행이 자연히 연결되어 의정이 될수 있는데
그 이상 나아갈때 스승이 꼭 필요한것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화두가 타파되고 나면 그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수행속도가 엄청 빨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보림을 해야하는데 보림하는것이 화두 참선하는것 보다 더 어렵더군요. 그것은 답을 모를때는 의정이
돈발되지만 이것이 깨지고 나면 의정이 없어지니 무슨 재미가 나겠습니까? 마치 염불하는것과 다르지 않지요..()
이를때는 다른 화두에 의정이 풀어지지 않으면 다른화두를 참선하면 됩니다.
화두 한 자루가 깨졌다고해도 확철이 되지않아서 다른여타 화두에 막힌다면 다른 화두를 들고
참선해도 보림이 된다고 합니다.참선수행으로 根幹을 안다면 경전으로는 枝葉을 알뿐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요?.()
"밝은 빛은 천상을 다 비추는데 조각구름이 왜 빛을 가렸는냐?"고 할때 기본적 불교교리를 모르면
아무리 참구해도 답을 알수가 없습니다. 늘 문제속에 답이 있지만 찾지못할 뿐이지요. 시심마 화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