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구 생활을 이 학교로 선정한 이유는 응용지구화학연구그룹이 있어서였다. 이 연구그룹은 Webb 교수(1921-2007)가 1954년 처음 설립 하였다. 그는 현대 응용지구화학 분야의 선구자였다. 세계 최초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광역지구화학지도를 1978년에 완성함으로써 광물 탐사와 환경오염 연구의 새 장을 연 영국 지구화학지도의 아버지였다. 나는 영국 유학 전후에도 모교 3학년 학생들의 전공필수과목인 응용지구화학 (3학점)을 강의하며 Webb 교수의 저서를 원서 교재로 활용했다
지도교수는 나보다 몇 살 많은 H 박사로서 시니어 강사(senior lecturer) 였다. 영국 대학에서는 교수 직위 순서가 강사, 시니어 강사, 리더(reader). 교수(onolesor) 이다. 교수 이외 나머지는 박사라고 호칭한다. H 박사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여서 서로 곧 가까워졌고 내 연구 활동을 독려해 주곤 했다. 영국의 대학은 다른 나라와 달리 방문연구자에게 연구실 사용료 (bench fee)를 부과함이 특이한데, 다행히 영국문화원이 이 비용을 지원해 주었다. 내 전공 분야의 세계 최고 연구그룹에서 연구하게 되었다는 만족감과 기쁨이 나틀 들뜨게 한 기억이 난다. 더욱이 그때는 30대 초반의 건강하고 자유로운 시절이었고 체재비 지원으로 만족감이 높았다. 틈틈이 영국의 여러 지방과 유럽 지역을 방문해 보겠다는 계획과 실행은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지금도 나는 주저 없이 비싼 전공 분야 원서들을 사보던 그 때가 그립다.
내가 체류하던 때인 1983년 4월 Webb 교수의 정년 퇴임과 공적을 기념하여 '1980년대의 응용지구화학'이라는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 분야의 세계 거물 학자들인 그의 제자들과 연구 동료들이 발표하던 자리 였다. 이 심포지엄에서 나는 처음으로 응용지구화학 분야가 기존의 지구화학탐사뿐만 아니라 환경지구화학 분야가 새로이 발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그룹에서 환경지구화학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습득한 기회는 내게 교수 생활의 큰 밑바탕이 되었다. 귀국 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모교 자원 공학과 학사과정 4학년에 환경지구화학 교과목을 개설하고 강의와 연구를 시작했다. 환경 분야 중 특히 폐광된 금속 광산과 석탄 광산 주변 지역의 중금속 오염 연구를 시작으로 산업단지와 도시 환경의 중금속 오염과 복원 연구를 시작하며 석박사 학위자를 배출하여 이 분야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런던에서 돌아온 이후 30여 년간 모교에 재직하면서 공동 연구로 또는 학회 참석으로 10여 차례 이상 이 왕립학교를 방문했다. 특히 영국문화원의 지원으로 연구실 제자들을 이곳에 유학시키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이런 면에서 영국문화원과 왕립광산학교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월이 나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40여 년 전 왕립광산학교에서 보낸 1년은 자칭 '내 인생의 푸른 시절'이었다. 앞으로 나에게 가슴 설레는 이런 귀중한 방문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전효택
계간현대수필. 상임고문,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후정문학상, 서초문학상 수상 산문집 내 인생의 푸른 시절. 외 3권 chon@snu.ac.kr "What is new today? What should l do next? What can I do for you?"(오늘 새로운 것은 무엇? 다음에 무엇을 하여야만 하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