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1: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개역개정판)
잠언 31:14 또한 상인의 배와 같이, 먼 곳에서 먹거리를 구하여 오기도 한다. (새번역성경)
성경에 현숙한 여인이 등장하긴 하는데,
수십명씩 등장하거나 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와부터 시작해볼까?
...
아닌 걸로...
사라?
리브가?
글쎄...
브리스길라 정도 되면 모를까?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없어서일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들보다
이름 없이 섬긴 여인들이 더 많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는 것은
지금처럼 컴퓨터 앞에서 고생하는 것도 고생이겠지만
어마어마하게 위험천만하고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보험도, 차량도, 내비는커녕 제대로 된 지도도 없던 시절
무역이라는 것이 쉬웠을까?
그걸 해냈고,
그걸 해냈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럼 룻은 뭐 식량을 축내기만 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룻의 수고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살리고, 가정과 가문을 넘어, 그리스도의 계보에 이르기까지
그의 역할은 지대하다.
무더운 여름...
먹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전세계가 그러한 경향 속에 빠져들고 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조차
불확실성 속에 산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는
어느 초인 같은 존재를 기다려야 하나?
룻에서 답을, 아니 힌트 정도를 얻었다.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하는 것이다.
친정으로 가도 괜찮았지만
믿음으로 시어머니를 따라갔다.
아무 소망도, 아무 대책도 없어 보였다.
그 가운데 그것을 감당한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어차피 먼데서 양식을 가져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내가 내 주도적인 능력으로 경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룻은 믿었을 것이다.
어디가서 부르짖었는지, 눈물로 기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했든지, 안했든지
그리고 내 기도가 기록에 남을 기도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기도하면 된다.
그러면
먼데서 양식이 온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총리가 되어 양식을 싣고 오며
죽을 줄 알았던 유다인들이 도리어 대적을 공격하며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데 큰 역할은 한 에스더도 있다.
그 누구도 본인이 경작을 해서, 그걸 팔아 무역을 하여, 먼데서 양식을 직접 싣고 오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하신다.
그걸 믿는다.
이 사이클의 반복이다.
무더운 여름...
이 여름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인간의 탓이 크지만
이 여름을 원래 이렇게 만드신 의도는 하나님께 있다.
땀흘려 일하되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상황에 맞게, 내 스타일 하에, 내 주도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는 계절이다.
시간이 가야 저녁도 오고
시간이 가야 가을도 오며
시간이 가야 양식도 온다.
먼데서 온다.
내게서 비롯되어, 내가 나눠주고 어쩌고 할 성분이 아니다.
어차피 주님은 쉼을 말씀하셨다.
그 쉼은...
어느 신학대 교수님의 표현대로
노동과 생산성이라는 원청의 하청이 되어서는 안된다.
늘 원청의 허락과 발주를 기다리며
일을 충분히 해야, 성과를 내야, 그제야 쉴 수 있는 세상...
몸이 경고를 보내다 못해 완전히 녹초가 되고,
관계가 금이 가다 못해 완전히 갈라진 후에야 슬그머니 찾아오는
그것도 제일 마지막에야 배정되는 그런 쉼...
그때는 회복이 아니라, 응급처치의 수준이 되어버리는 그런 쉼...
그리고 다시 노동과 생산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그런 잠깐의 쉼.
단물을 빨아 먹는 인간도 있겠지만...
그 단물 빨아먹느라... 본인도 몸고생, 마음고생...
사탄 마귀가 뒤에서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을
바빠서 잘 생각 못하겠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쉼이란게
그런 치열한 삶 이후에 찾아오는 그런 휴식일까?
어느 정도는 그런 것이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지가 않다.
잠언 31장 바로 뒤에 있는 전도서에서도 그 시작부터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전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개역개정판)
먼 곳에서 양식이 온다.
나의 수고도 필요하겠지만
나의 수고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출애굽기 16장 27절에는 나오는 것처럼
그 안식일 다음날에도 만나와 메추라기가 좀 더 있지 않을까 찾으러 갔다가
욕만 먹고 돌아오는 (출 16:28) 일도 있다.
왜 만나와 메추라기를 정한 때만 주냐?
하나님 손도 안 짧으면서
왜 이렇게 하시냐고...
(그렇게 저항할 것 같으면
본인이 하나님이 되어서
창조도 하고
피조물들도 먹이고
그런 다음
하나님과 겨우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되겠지만..
인간이 그런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를 위한 사역과 헌신을 대충해서도 안되겠지만
먹고 살기 위해,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기 위한 노오~력을 목숨과 바꾸는 것은 어리석다.
먼데서 양식을 가져오는 일을
그때나, 오늘이나 감당해야 하겠으나
그 시작과 끝이 나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의지하는
이 혹독한 계절에도
이 서글픈 시대에도
현숙한 여인 같은
슬기로운 사람들이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고 있음을
믿는다.
그 양식을 싣고 오는
수고한 이들에게
양식 뿐 아니라
구원의 우물들에서
시원한 물도 제공될 것이다.
이사야 12: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개역개정판)
첫댓글 https://youtu.be/noxbh4XikV0?si=fsMVZ66RwS01d7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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