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비로 파주최초도서관을 일군 설립자
가을이 익어가는 9~10월은 양식의 곳간을 채워주는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인성을 키워주는 독서의 계절인 동시에 문화의 달이다.
금촌도서관정문에 세워진 감사비
참으로 우연히 파주최초도서관과 문화원을 설립한 사람이 이달형(82)파주노인복지관회원임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잠시 고향(교하읍)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었다니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옛날 얘기다.
당시(1958년) 전후(戰後)의 파주지역농촌과 접적(接敵)기지주변에는 가난으로 중고등학교진학을 포기하고 부대주변이나 우범지대에서 방황하던 청소년들의 모습을보게 되었을 때 뭔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감 같은 게 느껴져 딱히 정규교육과정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향학열도 충족시키면서 일인일기(一人一技)를 습득시켜 장차 자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자는 염원에서 교육사회사업으로 농촌복지학원을 운영(1958년~1961년)하게 되었다.
구 파주교육청건물(현재 파주축협건물 위치)에서 시작한 복지학원은 수업은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지도교사는 고향의 학사출신들의 봉사로 학원 문은 열었으나 학생들의 교재와 운영자금이 큰 문제였다. 당시로서는 외부지원을 받는다는 건 생각조차 못하던 때였는지라 부친이 농토를 매각해서 도왔으며, 때마침 본인이 교하면장으로 발탁이 되어 그 급료가 운영자금이 되었다.
처음 소수학생으로 시작한 학원이 얼마 지나지 않아 1,700여명으로 늘어나다보니, 교재의 부족은 물론이려니와 알고자하는 지식을 전달받을 도서문고는 그림의 떡이었다. 학생들의 열망을 해소시킬 방법을 궁리하던 중 시골이면 어디서나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싸리비를 각자 만들어 오게 하여 모아진 2,000여 자루를 서울시청소용으로 전달하고 “빗자루와 책을 바꿉시다.”라고 요구하였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서울시(당시서울시장윤태일)에서는 원생들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었고, 박현식 교육감으로부터 4,600여권의 교양서적을 전달해왔었다.
더욱 고마웠던 일은 싸리비 이야기가 소년한국일보에 실리자 서울대, 연대, 고대, 이화여대 등에서 일요일이면 기차를 타고 내려와야 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봉사를 자청하는 대학생교사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소년한국일보에 실렸던 기사
교사가 많아짐으로서 배우고자하는 파주지역 모든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 편의상 본교는 금촌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하였고, 면단위로 분교를 두었다. 교하면에는 지산분교, 탄현면엔 갈현분교, 문산엔 문산 분교를 두었으며, 판문점 대성분교는 출입이 통제되어 이 선생님과 신부님이 매주 수요일마다 방문교육을 했다.
이처럼 원생들의 열의가 커지자 파주교육청에서는 원생들의 일인일기직업보존교육기관 즉 실업고등학교 급의 직업학교로 육성하려고 1960년도에 이미 부지(주내)내정과 학교건축설계작성이 완료단계였었는데 5.16군사혁명으로 미8군민사처와의 학교설립지원약속이 무산되어 안타깝게도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더 추진하지 못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선생의 공직발탁임용으로 부득이 후배에게 인도(引渡)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학교설립은 이루지 못했었지만, 싸리비로 기증 받았던 도서는 복지문고로 운영되다가 파주 군에 기증이관 되어 군립도서관의 밑거름이 되었고, 그 후 파주 시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청소년들의 마음의 양식이 되고 있는 이 문고들이 파주최초도서관을 설립하는 초석
이 되었고, 파주의 문맹을 깨우치는데도 일익을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감사패 뒷면
몇 년 뒤, 위 기사의 종적을 인정받아 1964년도 정부에서 제정한 향토문화공로상제3회 수상자가 되었다.
먼 날의 긴 이야기를 오랜 시간 하면서도 지치지도 않고 날짜, 장소까지 마치 책을 읽듯 술술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복지학원에 얼마나 많은 애정과 열정을 쏟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사람의 순수한 열정이 절망의 늪에서 방황하던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미래를 열어준 뜻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사랑이요, 애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 후에도 후진들의 지적배양에 대한 애착은 식지 않았고, 공직생활 중에도 농촌도서보급에 앞장섰으며, 2004년도에는 소장하고 있던 서적1000여권을 금촌도서관에 기증하였으며, 2008년 교하도서관이 개관될 때에도 아껴오던 학술서적, 고서 등 650권을 미련 없이 내놓았다. "지식은 나눌수록 가치가 배가 된다."는 신념으로 사는 분이니 앞으로도 도서기증의 손은 놓지 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