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의 주련] 35. 창원 불곡사 명부전
번뇌 망상 없이 유유자적한 마음의 경지
송나라 고승 단하자순 선사 게송
사념 없는 것을 맑은 거울에 비유
단하자순 선사 경지 엿볼 수 있어
一念蕭蕭不記年 皮膚脫落自完全
일념소소불기년 피부탈락자완전
長天夜夜清如鏡 萬里無雲孤月圓
장천야야청여경 만리무운고월원
(한 생각이 소소하니 세월을 모르겠고/ 피부가 벗겨져도 그대로 온전하다./ 밤새도록 사념이 없으니 거울처럼 맑구나./ 구름 없는 하늘에 뜬 달은 홀로 둥글도다.)
이 주련은 송나라 때 조동종(曹洞宗)의 고승이었던 단하자순(丹霞子淳) 선사의 게송이다. ‘단하자순선사어록’ 제2권, ‘선림류취’ 제17권, ‘사가록(四家錄)’ 제4권, ‘선문염송집표주’ 권제216, ‘임천노인평창단하자순선사송고허당집’ 권4 등에 실려 있다. 참고로 ‘단하소불’로 유명한 당나라 때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선사와 단하자순 선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소소(蕭蕭)라는 표현에서 소(蕭)라는 글자는 ①쑥이라는 식물을 나타내는 ‘쑥 소’, ②시끄럽거나, 바쁘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시끄러울 소’, ③바람이 부는 소리를 나타낼 때는 ‘불 소’, ④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나타낼 때는 ‘떨어질 소’, ⑤말이 우는 소리를 나타낼 때는 ‘울 소’, ⑥물체의 소리를 나타낼 때는 ‘물건 소리 소’, ⑦물건이 많은 양을 나타낼 때는 ‘많을 소’, ⑧성(姓)을 나타낼 때는 ‘성 소’, ⑨쓸쓸하다고 나타낼 때는 ‘쓸쓸할 소’로 쓰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쓸쓸할 소’라는 표현을 중복적으로 사용해 소소(蕭蕭)라고 나타내었기에 ‘고요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를 다르게 표현해 소삼(蕭森)이라고 하면 ‘적적하다’ ‘쓸쓸하다’라는 뜻이 되고, 소산(蕭散)이라고 하면 ‘조용하고 한가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한 생각이 고요하면 일념소소(一念蕭蕭)이다. 고로 소소는 번뇌 망상이 없이 유유자적한 마음의 경지를 말함이다. 이어지는 불기(不記)라는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세월을 말하는 년(年)을 덧붙여서 ‘세월이 어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라는 표현이 된다.
명나라 때 감산덕청(敢山德淸 1546~1623) 선사의 법문에 보면 그 고요한 경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념망연적적 고명독조성성(一念忘緣寂寂 孤明獨照惺惺) 간파공중섬전 비동일하비형(看破空中閃電 非同日下飛螢), 일념으로 망연(妄緣)을 잊으니 고요하고 고요하여서/ 밝은 달 홀로 비추니 성성(惺惺)하도다./ 공중의 번갯불처럼 순식간에 간파하면/ 대낮에 나는 개똥벌레 같지는 않으리.”
피부탈락자완전(皮膚脫落自完全), 피부(皮膚)가 벗겨져도 그대로 온전하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피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피부는 잡다한 망연(妄緣), 번뇌, 망상 등을 말함이다. ‘벽암록(碧巖錄)’ 제27칙에 보면, “어떤 스님이 운문문언(雲門文偃) 선사에게 물었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질 때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운문 선사가 말했다. ‘가을바람에 온몸이 드러났다.’” 이를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낙엽은 번뇌, 망상 등을 말함이다. 피부가 벗겨지면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일물(一物)이 항상 소소영영(昭昭靈靈)하게 드러남을 말함이다.
장천야야(長天夜夜)는 ‘밤새도록’ 이러한 표현이다. 밤새도록 사념(邪念)이 없으니 이러한 경지는 마치 맑은 거울과 같음이다. 사념이 없는 것을 맑은 거울에 비유하여 자신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고로 이를 다시 살펴보면 ‘긴긴 밤하늘이 마치 맑은 거울과 같다.’라고 비유를 하고 있으니 단하자순 선사의 경지도 어지간함을 엿볼 수가 있다.
만리무운(萬里無雲)에서 만리는 먼 거리를 말함이다. ‘먼 거리에 구름 한 점 없다’라는 표현이 되고 이는 위에서 표현한 장천야야(長天夜夜)와 엇비슷한 구절로 마음에 사념이 없으니 마음이 허허로움을 말함이다. 홀로 뜬 밝은 달은 일심(一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서 말하기를, ‘창천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밝은 달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