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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남은 이야기 스크랩 드디어, 봄기운 섞인 훈풍은 불고...
권종상 추천 0 조회 50 09.03.03 23:37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봄은 오는 모양입니다. 어제 우체부는 모처럼 따뜻해진 날씨에 외투를 다 벗어버리고 그냥 반팔 폴로 셔츠 유니폼만 입고 맞는 햇빛이 그렇게 좋았더랍니다. 물론, 시애틀의 날씨 특성상 그 시시각각 변하는 변덕의 마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낮의 날씨는 모처럼 제가 광합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훈풍이 불고, 그 바람을 맞으며, 내리쬐는 햇볕을 맞으며 걷는 것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라우트에 있는 수많은 꽃나무들도 천천히 새로운 생명을 틔우려 준비하고 있는 것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성미 급한 동백들과 벚꽃들은 벌써 꽃을 피워내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봄이 가까이 왔나봅니다. 하긴, 미국에 처음 왔던 지난 1990년, 비갠 후의 시애틀을 바라보았을 때 저를 처음에 압도했던 건 끝없이 울창하게 펼쳐진 아름드리 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들이 하늘로만 하늘로만 쭉쭉 뻗어 있는 모습들이었고, 주택가 골목골목마다 펼쳐져 있는 벚꽃의 향연이었으니까요. 그때가 3월 말이었으니, 이제 미국에 온 것도 꽉 찬 19년. 세월이 이토록 빠르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아무래도, 이맘때쯤이면 향수와 추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첫발을 디뎠던 때가 이때쯤이었고, 아내와 처음으로 '연인'으로서 데이트를 했던 것이 이맘때쯤이었으니까요. 메일맨은 씩씩하게 일했습니다. 조금 많은 우편물의 양 때문에 계단을 올라갈 땐 무릎이 조금 시다고 느끼기도 했고, 무거운 소포를 들고 계단을 올라갈 때는 허리도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저는 되도록이면 제 스스로를 씩씩하다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걸었습니다. 관절들이 조금씩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우편물이 평소보다 많았던 건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 했고, 마침내 마지막 편지 한 장이 제 주인을 찾아갔을 때 몸과 마음은 그만큼 더 가벼웠습니다.

 

이미 그 시간이면, 한낮에 눈 감으면 눈꺼풀위로 느껴졌던 그 따사로운 햇살과는 다른 선선함이 대기를 지배하고 있고, 하늘은 어느새 시애틀 날씨가 부리는 변덕의 마술로 인해 잿빛으로 변해 있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이제 조금 있으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올 터, 그러면 매일매일 맑은 날과 더운 날씨에 지치기도 하겠지요.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사무실에서 클락아웃을 마친 후, 집에 오는 길이 더욱 가볍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돌리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 전날, 아내를 품에 안고 잤던 터라 둘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을 터. "저녁 어떻게 하죠? 오늘도 폭찹 해 줄까요?" 뭐, 기쁜 말씀을. 뭐 해준다고 하는데 절대 '노'라고 말하는 일은 없습니다. 저도 생존의 경력이 몇년인데 그정도 지혜쯤은 생겼겠지요. 요즘들어 비프스테이크가 당기는 때가 가끔 있긴 하지만, 사순 끝나면 먹겠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터입니다. 부활때가 되면, 바비큐 하기 좋은 날씨가 될 테고, 그럼 뒷마당에서 숯불 때 가면서 스테이크 몇 장 구워먹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집에 도착하니 아내의 얼굴은 환합니다. 예쁜 사람. 저는 그녀가 만들어 놓은 폭찹을 보며 여기에 맞출 와인으로 아내의 느낌이 나는 것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상큼하면서도 차분한, 그리고 느낌이 예쁘고... 그리고 복합적이고. 아마 피노느와에 필이 꽂히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끝방에 가서 이른바 '붙박이장 셀라'를 뒤지니 오리건 윌라멧 밸리산인 덕 폰드의 피노 느와가 나오는군요. 아, 2006년산. 특별히 이 해는 오리건 피노로서는 기억해줄만한 해입니다. 장기숙성의 포텐셜도 있고, 와이너리에서도 평소보다 네 달인가를 더 숙성시켜 태닌의 융합을 꾀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깊이와 향기가 뛰어나지요. 오리건주 던디 지역에서 나오는 이 와인은 이미 '와인프레스 노스웨스트' 잡지에서도 최고 등급인 '아웃스탠딩' 판정을 받았지요. 체리, 딸기, 약간의 향초 향, 그리고 밝고 풍부한 느낌들을 충분한 산도가 잘 받쳐주는 느낌입니다.

 

둘 다 얼굴이 발그스름해졌을 무렵, 우리는 다시 아이들을 어떻게 재우는 데 성공합니다. 아무튼, 애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혼자 자는 게 이렇게 무서우니, 원.

 

이제 아주 초봄일 뿐인데, 이리도 훈풍이 부는군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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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3.04 00:15

    첫댓글 봄은 그렇게 따뜻안 기억 속에서 우리들 곁으로 찾아 오나 봅니다...넓고도 맑은 마음의 향기가 이미 봄꽃의 향을 저만치 데불고 오는 것을 느낍니다....멋쟁이 로맨티스트... 한결같은 마음이기를 두손 모아 빌어 드립니다...

  • 09.03.04 04:25

    리마도 봄이 오고 있습네까? 형님...

  • 09.03.04 04:25

    강산이 벌써 두 번 변했군요. 저리 혼자 자는 게 무서울만큼 아직 젊습니다 그려~~~ ㅋㅋㅋ ^.^

  • 작성자 09.03.04 09:27

    오늘도 혼자 자게 될까봐 두려워요, 흑... 애들이 무서워.

  • 09.03.04 10:10

    주무시다가 베개 들고 이동하시면 되쥐~~~

  • 09.03.04 11:14

    삶의 향기가 와인 향으로 상큼하게 묻어납니다~행복한 모습이 보기 참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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