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여성 활동가들이 주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독립투사들의 옥바라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립운동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무소에 들어간 이들을 위한 옥바라지를 ‘돌봄’ 운동이라고 부른다. 물론 돌봄 운동을 넘어 직접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우봉운은 철혈 광복단이라고 불리는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전해온다. 철혈 광복단은 항일 무장 투쟁 당시 다량의 무기를 구입하기 위하여 군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간도 15만 원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봉운(禹鳳雲, 1893~?), 김명시(金命時, 1907~1949), 조원숙(趙元淑, 1906~?), 강정희(姜貞熙, 1905~?), 이경희(李瓊姬, 1907~?), 이계순(李桂順, 1910~?), 이경선(李桂順, 1914~?)
7명의 여성 활동가의 움직임을 조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관련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고된 집필 과정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이들의 행적이나 활동 이력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근우회라는 여성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들이 중복되어 나타난다. 근우회는 신간회와 더불어 일제에 항거한 단체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해방을 목표로 전국 조직을 갖춘 단체이기도 하다. 여성 활동가들의 활발한 움직임 이면에는 먹고살기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능력을 아직 알아주지 않았던 시대인지라 고작 신문 구독 권유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1930년대 노동 쟁의의 대명사인 평양 고무공장 쟁의도 바로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참가 인원수만 하더라도 7만 7000여 명에 다 달랐고 쟁의 건수만으로도 897건일 정도로 당시 분위기에서는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여성 활동가들은 대부분 감옥살이를 피할 수 없었다. 조선의용군 출신이거나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탐독하는 독서회에서 활동하고 여성해방 운동, 조선 공산당 재건 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여성이고 그들의 기록들이 남아 있지 않거나 현저히 낮게 평가된 이유도 있다. 저자의 눈부신 조사 활동을 통해 무명에 불과한 여성 활동가들의 모습들이 조금이나마 밝혀지게 되어 그나마 다행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