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교과서회는 골빈 꼴통들의 집합인가?
기본적인 산수계산도 못하는 똘아이가?
북한 평양이 고구려 수도라고?
지랄하고 자빠졌네.졸라 병신새끼들 아이가.아~씨발 씹새끼들아!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 수준 알 만하다.
이제부터 이 집단의 머저리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하겠다.
국립국어원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검증 안하고 소설 쓰냐?
공부하기가 귀찮아서 그런가?
하여간 여기는 머저리들의 집합체.
위의 지도가 실제라고 치자.
당서에서 안시성과 평양의 거리는 200km 쯤 된다고 하였는데 과연 맞을까?
비사성 다렌시를 고구려의 평양이라고 하면 얼추 맞을 듯하다.
북한의 평양을 고구려 수도라고 하면 거리가 500km이상인데 너무 오차가 크다.
그런데 이제까지 내가 병신짓 한 거 알고있나?
문제인식 부터 잘못하는 제 3종오류를 범하고 말았슴.
고대의 요동의 지금의 요동이 아닌 북경과 텐진을 주변으로 하는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헛지랄을 한 것이지.
기준을 거기로 잡고 계산하면 진짜 평양성이 어디인지 답이 나온다.
열하일기 박지원/그린비
1780년 5월25일 한양 출발 6월24일 압록강을 건넜다
의주관 –압록강(6/24) - 구련성(6/24-6/25) - 금석산,총수(6/25)-봉황산(6/27) , 책문- 봉황성,설리점(6/28)-삼가하, 통원보(6/29)- (7/1)-비(7/2)-큰비 결혼행렬(7/3)- 비(7/4)- 강물 불어남(7/5)-초하구 답동, 연산관(7/6)- 마운령 천수참, 낭자산(7/7)- 구요양, 요양성, 태자하(7/8)- 장가대, 난비보,십리하(7/9)-백탑보, 성경(심양)(7/10)-심양(7/11)-고가자(7/12)-백기보(7/13)-은적사, 소흑산(7/14)- 구광녕, 신광녕, 광녕성(7/15) - 십삼산(7/16)-대릉하점(7/17)-고교보(7/18)-탑산 영녕사, 영원성밖(7/19)-동관역(7/20)-비(7/21)-
중후소하, 전둔위(7/22)-강녀묘, 홍화포(7/23)
도강록서
후삼경자- “후”는 숭정(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 시기의 연호)의 뒤를 잇는 시기, 삼경자는 숭정 황제가 즉위한 지 세 번째 맞는 경자년 이다.
숭정 156년 계묘, 정조4년(1708년) 청 건륭 45년 이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내부통치 및 권력투쟁을 위한 이념으로 청나라 만주족을 물리치고 중원을 회복하자는 북벌론이 판을 치고 연도를 기재할 때도 명나라 연호인 숭정 기원후를 고수하였기에 이들의 예봉을 피하며 자신의 입장을 담아내기 위해 후삼경자라는 연도 표기에 대한 변으로 글을 시작하였다.
p44 6월24일 – 오후에 압력강을 건너 구련성에서 노숙하였고 밤에 큰비가 퍼붓다 그쳤다
<당서> 고려의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장백산=백두산)에서 나오는데, 물빛이 마치 오리(鴨압) 대가리처럼 푸르다(綠녹)해서 압록강이라 부른다.
장마로 열흘이나 객관에 머물다 강을 건너기로 하였다.
p52 “자네 길을 아는가? 길은 언덕과 물 그 ‘사이’에서 있는 것이지”
p66 봉황산- 빼어난 산봉우리를 도끼로 깍아 놓은 듯 무어라 형용키 어렵다. 다만, 밝고 윤택한 기운이 없는 것이 아쉽다. 서울의 도봉산과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p71 의주 장사꾼들의 농락으로 물건 값이 날로 오른 것이다
p73 벌여놓은 그릇들은 모두 그림을 그린 도자기다, 그 모양새가 어디로 보나 시골티라곤 조금도 없다, ...중국의 동쪽 끝 촌구석도 이정돈데 도회지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니 기가 팍 죽는다.
p81 책문 안의 술집의 주변 진열 상태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넉넉지 못하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서경> 正德利用厚生惟和정덕이용후생유화 : 덕을 바로 잡으려면 삶을 이롭게 하고 생활을 두텁게 해야 한다. 이용이 주로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라면, 후생은 구체적인 의식주에 해당한다.
p95 봉황성을 안시성이라고 한다. 고구려 방언에 큰 새를 ‘안시’라고 한다. 그러니 수당 때에 이 지역 말을 좋아 봉황성을 안시성으로 했다는 말이 상당히 그럴 듯하다.
p96 <당서>에 보면 안시성은 평양에서 거리가 500리고, 봉황성은 왕검성이라고도 부른다. <지지>에서도 봉황성을 평야이라 부른다. 만일 이 성을 옛 평양성이라 한다면, <당서>에 기록되어 있는 ‘500리’란 말과 서로 부합된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단지 지금의 평양만 안다. 봉황성이 바로 평양이라고 하면 크게 놀랄 것이다,. 더구나 요동에도 또 하나의 평양이 있다고 하면 이는 해괴한 말이라고 꾸짖을 것이다. 그들은 요동이 보시 조선의 옛따이며 숙신•예• 맥
등 동이의 여라 나라가 모두 위만의 조선에 예속되었던 것을 알지 못한다.
아! 후세 사람들이 땅의 경계를 자세히 밝히지 않고 제멋대로 한사군을 되다 압록강 안쪽에 몰아넣어 견강부회하면서 구차하게 배치해 놓았다.
벽돌로 쌓은 성이 더 만들기 쉽고 단단하다.
p114 벽돌가마를 보고 가마 만드는 방식을 고치면 비용과 크기조절이 쉽게 될 것이다.
p126~127 중국의 구들을 보며 우리 구들의 6가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쉽게 온돌을 만드는 중국 온돌을 이야기함
p130답동(답자는 원래 없는 글자인데 우리나라 아전들이 장부에 물 水수와 밭 田전 두 글자를 합해서 논이란 뜻을 붙이고 畓답이라 불렀다)
p135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p136 이제 요동벌판을 앞에 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성경잡지
예속재에서 만난 친구들
가상루에서의 아름다운 만남(상루필담)
p200~201 우리들은 모두 벗을 사귀는 일에 지극한 정성을 다한답니다. 옛글에도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 될 이가 있다 하였고, 또 두 사람의 마음이 합하면 굳은 쇠라도 끊을 수 있다 하였으니,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p209~2010 땅을 개간하여 논을 만든다면 몇 만섬의 벼를 거둘 수 있으나 ...늘상 이런 밥을 먹어 버릇한다면 ...용맹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라리 수수떡과 거친 밥을 먹게하여 그들로 하여금 주림을 참고 혈기를 돋우어 구복의 사치를 잊어 버리게 함만 못하리라.... 그런 깊은 뜻이 있으리라
p213 요동 천 리는 흙이 떡가루처럼 보드라워 비를 맞으면 반죽이 되어 마치 흐물흐물한 엿가락처럼 되고 만다, 자칫하면 사람의 허리와 무릎까지 빠지고 간신히 한 다리를 빼면 또 한 다리가 더 깊이 빠져든다.
영안교에서부터 나무를 엮은 다리를 만들어 고가포 까지 이르는데 200여리에 걸쳐 있다,
p214 상가집 ,의무려산(요녕성 북진현 서쪽산 ‘여산’이라고도 한다)이 보임, 척계광이 만든 팔백망, 만취당 점포에서 액자를 써 주려고 하다가 ‘기상새설’을 어제 전당포에서 잘 못 써 준 것을 알게 됨. ‘부가당’(장식을 갖춘다)이란 석자를 써주었다. <시경>의 ‘부계육가’란 구절이 완전히 부합한다 할 수 있지요.
‘기상새설’ 이란 넉자를 볼때마다 음 필시 국숫집이로군 했다. 그 주인장의 심지가 밝고 깨끗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 면발이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p226 입과 귀에만 의지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학문에 대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 평생토록 뜻을 다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학문이 아니던가
p226~227 일신수필 서
하나의 옛날이나 오늘은 또한 크게 눈 한 번 깜빡하고 크게 숨 한번 쉬는 사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찰나에 불과한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고 공을 세우겠다고 욕심을 부리니 어찌 서글프지 않겠는가?
p231 일류선비, 이류선비, 삼류선비의 역설
일류-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 황제와 선비, 서민까지 머리를 깍은 것 만 보고 오랑캐라 한다.
이류- 겉만 화려한 성곽이고 언어조차 오랑캐의 말로 바뀌었다 한다.
p234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원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굽기, 풀무부리부터 공업, 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열을 배우면 우리는 백을 배워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 우리 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 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 저 똥덩어리에 있다.”
p239~244 수레제도
사방이 수 천리나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 나라 안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 양반네들은 평소 글을 읽을 때 떠들어대나,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운행하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조건 글만 읽는다.... 이런 공부가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p291 우리나라에서 쓰는 털모자는 다 이곳에서 만든 것이다.
천 년을 가도 썩지 않는 은을 가지고 한겨울 쓰면 다 해져 버리는 모자와 바꾸고, 산에서 얼마 안되는 은을 캐다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땅에 갖다 버리니, 이 얼마나 개념없는 짓인지.
p298 장대에 오르내리기가 벼슬살이 같구나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이 얼마나 큰지 모를 것이고,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벼슬살이도 이와 같아서, 위로 올라갈 때엔 한 계단 반 계단이라도 남에게 뒤질세라 더러는 남의 등을 떠밀며 앞을 다투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높은 자리에 이르면 그제야 두려운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땐 외롭고 위태로워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서자니 천 길 낭떠러지라 더위잡고 내려오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법이다. 이는 오랜 세월 두루 미치는 이치다.
p299 산해관에 올라 고금의 역사를 생각한다
몽염이 장성을 쌓아 오랑캐를 막으려 하였건만 진나라를 망칠 오랑캐는 오히려 집안에서 자라났고, 서중산이 이 관을 쌓아 오랑캐를 막고자 하였으나 명의 장수 오삼계는 이 관문을 열어 적을 맞아들이기에 급급하였구나
천하가 무사태평한 지금, 이곳을 지나는 장사치들과 나그네들에게 공연히 비웃음만 사게 되었으니, 실로 뭐라 할 말이 없다.
출처:http://blog.daum.net/stkim123/16155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