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21~22)
'새 천 조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찾아온 새로운 복음의 질서를 상징하는 반면에, '헌 옷'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문자적인 준수에 얽매이는 구질서를 상징한다.
'새 천 조각'에 해당하는 '에피플레마 라쿠스 아그나푸'(epiblema rekous agnaphou; a piece of
unshrunk cloth)는 세탁을 한 적이 없어 줄지 않은 옷감을 말한다.
그러니까 마르코 복음 2장 21절의 의미는, 이러한 '새 천 조각'이므로 '헌 옷'을 기우게 되면 그
기운 옷을 세탁할 때 아직 줄어들지 않았던 '새 천 조각'이 물을 흡수하여 급격히 줄어들면서 '헌 옷'을
망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 뜻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유대교의 전통은 함께 조화될 수 없으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상충적 관계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구시대의 질서인 단식의 문제를 가지고, 하늘 나라의 신랑인 예수님
을 맞이하여 기쁨의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2장 22절의 '새 포도주'의 '새'는 '네온'(neon; new)이지만, 후반절에 나오는
'새 부대'의 '새'는 '카이누스'(kainous; new)이다.
전자의 원형 '네오스'(neos)는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이고, 후자의 원형 '카이노스'(kainos)는 본질적
으로 새롭다는 뜻이다.
특히 '카이노스'(kainos)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더러운 영이 들린
자를 고치셨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라고
했을 때의 '새롭고'에 해당하는 단어의 원형과 같다(마르1,27).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발효가 시작되면서 그 부피가 늘어난다.
이 때 새 가죽 부대는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어서 변화에 따라 늘어나지만, 헌 가죽 부대는 그 변화를
견딜 수 없고 곧 터지고 만다.
말하자면,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낡아서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인
들의 전통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들의 슬픔의 단식은 합당하지
않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기쁨의 혼인 잔치와 같은 축제가
합당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 '혼인 잔치 집의 비유(마르1,19~20),
'새 천 조각의 비유'(마르1,21), '포도주와 부대 비유'(마르1,22)를 연이어 말씀하셨다.
과거의 전통적인 종교 관습을 기준으로, 단식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비난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질문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모든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이 갖고 있는 역동성을 이런 비유들로
밝히신 것이다.
출처: 피앗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