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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성산 남릉, 앞은 삼각봉, 멀리 가운데 흐릿한 산은 관음산
인젠 실컷
산 내음을 맡을 줄 안다.
그런 짐승이 되었나 보다.
바윌 넘어서
숲을 헤쳐서
제법 날쌔게 쏘다닐 줄 안다.
손이랑 무릎이랑
실캐어
꽃도곤 고운 피를 흘렸다.
―― 신석정(辛夕汀, 1907~1974), 『山의 序曲』의 ‘산2’에서
▶ 산행일시 : 2021년 11월 20일(토), 안개와 미세먼지
▶ 산행인원 : 4명(자연, 하운, 메아리, 악수)
▶ 산행시간 : 9시간 17분
▶ 산행거리 : 도상 14.1km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와수리 가는 시외버스 타고 자등리에서 내림
▶ 올 때 : 산정호수 버스승강장에서 도봉산역까지 간다는 공공버스 타고 포천에 와서, 저녁 먹고 무정차
시외버스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옴
▶ 구간별 시간
06 : 20 - 동서울터미널, 자등리 경유 와수리 가는 시외버스 출발
07 : 43 - 자등리, 산행시작
08 : 50 - 자등현에서 오는 주등로 진입
09 : 36 - 각흘산(角屹山, △836.8m)
10 : 15 - 764.9m봉
10 : 34 - 716.4m봉
11 : 05 - 약사령(藥寺嶺, 535m)
11 : 45 ~ 12 : 38 - 729m봉, 헬기장, 점심
12 : 45 - ┣자 갈림길 안부, 구 약사령, 명성산 정상 1.5km
13 : 08 - ┳자 갈림길, 명성산 정상 0.3km
13 : 29 - 명성산(鳴聲山, △922.0m)
13 : 37 - 870.2m봉
14 : 06 - 궁예봉(823m)
14 : 52 - 다시 명성산
15 : 11 - 삼각봉(906.6m)
15 : 37 - 894.4m봉
16 : 00 - ┫자 갈림길 안부, 팔각정
16 : 25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자인사 가는 길
16 : 55 - 비선폭포
17 : 00 - 주차장, 버스승강장, 산행종료(17 : 20 도봉산역 가는 공공버스 출발)
18 : 20 ~ 19 : 50 - 포천, 저녁
20 : 34 - 동서울터미널, 해산
2-1. 산행지도(각흘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갈말 1/25,000)
2-2. 산행지도(명성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갈말 1/25,000)
2-3. 산행지도(명성산 남릉 끄트머리,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갈말 1/25,000)
▶ 각흘산(角屹山, △836.8m)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의 시 「임께서 부르시면」의 일부다. 요즘 만추의 도회지 거리에는 은행잎이 방향 없이 어지러이 날리고,
특히 오늘은 새벽부터 안개가 자욱하여 오리무중보다 더 캄캄하다. 신석정의 위 시의 ‘임’은 나에게는 애오라지
‘산’으로 읽힌다. 이 시의 정조가 이른 아침 자등현 가는 버스에서 차창 밖의 풍경을 망연히 바라보는 나의 심사
다. 신석정도 『山의 序曲』에서 보듯이 산을 무척 좋아했다.
각흘산을 오르기로는 그 주릉인 자등현이 가장 가깝다. 버스는 자등현 고갯마루에 서지 않고 자등리 상해계곡
입구에서 선다. 그러자면 우리는 자등현까지 적어도 2.6km는 뒤돌아 걸어와야 한다. 버스기사님에게 우리의 사
정을 얘기하고 제발 자등현에서 내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기사님은 버스승강장이 아닌 아무데나 서
기가 무척 어려운가 보다. 그래도 우리의 부탁을 모른 체 할 수만은 없어서 자등현을 약간 내린 갈림길 갓길에
세워준다.
47번 국도 따라 자등현을 오르는 도중에 오른쪽의 잘난 임도(백골부대 군사도로다)가 우리를 유혹한다. 지도를
자세히 읽으니 그리로도 각흘산이 이어진다. 백번 바라는 바다. 냉큼 든다. 한 차례 산굽이 돌자 너른 개활지가
나온다. 백골부대 전차 훈련장(?)이었다. 전차 주차장은 마른 억새가 장악했다. 여러 갈래의 임도 중 산등성이를
오를 임도를 붙잡는다. 마른 계곡 건너고 잡목 헤쳐 생사면에 덤빈다.
가파른 오르막에 햇낙엽이 수북하니 쌓였다. 낙엽이 눈길 헤치기보다 더 힘들다. 앞사람의 러셀이 아무 소용없
다. 숫제 늪이다. 쭉쭉 미끄러지다 엎어지고 고꾸라진다. 오기가 난다. 긴다. 능선은 길게 오르다 잠깐 멈칫하기
를 반복한다. 그 틈에 얼른 가쁜 숨을 고르곤 한다. 그래도 자등현에서 오르는 주등로보다는 훨씬 낫다. 무엇보
다 여기는 길 없는 우리의 길이다. 한갓지다. 비록 빈 눈일망정 좌우의 사면을 누비며 오른다. 비지땀이 짭짤하다.
주등로의 615.3m봉을 지난 오르막에 진입한다. 길이 풀렸다. 첫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로 목 축인다. 한 피치
오르면 등로를 약간 비킨 오른쪽에 헬기장이 있다. 진지구축 작업(?) 중인 군인들의 장비(톱, 삽, 비, 판초우의
등)가 널려 있다. 오랜 된 교통호와 이웃하며 간다. (더)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은 옛말이다. 덕순이도 거
리 두기를 하는가 보다. 돼지열병 확산방지 철조망문 열고 올라 각흘봉 동서주릉이다.
왼쪽으로 직각 방향 틀고 바위 턱 오르면 정상이다. 삼각점은 ‘갈말 311, 2007 재설’이다. 각흘산(角屹山)은 이
름 그대로 뿔처럼 우뚝 솟았다. 정상과 주릉은 포사격 훈련으로 사계청소하고 수풀이 없어 사방 트인 일대 경
점인데 오늘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원경은 물론 근경도 답답하리만치 가렸다. 그래도 정상 표지목 옆 공터에서
배낭 벗어놓고 정상주 탁주 분음한다.
3. 각흘산 주릉을 향하여, 낙엽을 지치며 오르고 있다
4. 각흘산 교통호 너머
5. 각흘산 북릉
6. 각흘계곡 주변
7. 각흘산 남서릉, 멀리 오른쪽은 명성산
8. 각흘산 남서릉
9. 각흘산
10. 각흘산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11. 각흘산
12. 약사령
▶ 명성산(鳴聲山, △922.0m), 궁예봉(823m)
각흘산의 벌거숭이 능선을 간다. 바윗길을 주춤주춤 내리고 맨땅에서는 줄달음한다. 능선 왼쪽은 전에 없던 돼
지열병 확산방지용 철조망을 길게 둘렀다. 벌거숭이 능선은 ┣자 능선 분기봉인 760m봉까지다. 오른쪽 능선은
출입금지다. 직진한다. 하늘 가린 숲속을 간다. 764.9m을 넘어 완만하고 길게 내리다 716.4m봉에서 잠시 멈칫
한다. 원경이 캄캄하여 발품 덜었다. 등로 벗어난 경점일 봉봉을 들리지 않는다.
716.4m봉 넘고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낙엽에 가린 바위 섞인 길이라 무척 미끄럽다. 차라리 등로 약간 비켜 사
면 도는 교통호로 들어가서 내리는 편이 낫다. 낙엽은 무릎을 넘는다. 신나게 지친다. 약사령은 깊은 절개지라
그에 가까워서는 왼쪽 사면의 목재계단으로 돌아내린다. 약사령(藥寺嶺). 임도(군사도로)가 지나는 바닥 친 안
부다. 고갯마루에는 대전차방호 방편으로 도로 양쪽에 바위를 포개어 놓았다.
등산안내도는 명성산을 3개 코스로 안내한다. 우리는 그중 3코스로 간다. 3코스가 2.4km로 가장 길어 맘에 든
다. 등로는 예전부터 잘 다듬었다. 골짜기 목재계단을 오른다. 계단이 깊은 낙엽에 파묻혀 오히려 걸림돌이다.
사면 돌아 주릉에 들고 얼마 안 가 주릉은 칼날 암릉이라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이 트래버스 하는 긴
사면 길이 상당히 가팔라 외줄의 밧줄이지만 이 난간이 없다면 겁난다. 눈 쌓인 겨울에는 더욱 험로였다.
729m봉. 헬기장이다. 따스한 양광 받으며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이 점심시간이 9시간이 넘는 산행 중 가장
느긋하고 편안하다. 오늘은 하운 님이 이 오라버니 마시라고 양주(조니워커 블루 맛이다)를 가져왔다. 혀끝부터
향기롭고 부드럽다. 하여 성찬이다. 식후 커피에도 살짝 넣어 마셨는데 그 향과 맛이 무덤덤하여 마가목주보다
당최 못하다. 이제 사납던 길이 부드러워졌다. 억새 평원을 간다. 비록 원경이 흐리지만 억새 너머의 옅은 실루
엣은 가경이다.
메아리 님과 나 둘이는 명성산 북서릉의 궁예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명성산 정상에서 도상 1.1km의 거리다. 줄
달음한다. 옛날 약사령인 ┣자 갈림길 안부를 지나면 줄곧 오르막이다. 조금만 가파를만하면 목재계단을 놓았
다. 뒤돌아보면 각흘산이 어느새 납작해졌다. 명성산 남북주릉 ┳자 갈림길에 올라서면 명성산 정상은 0.3km
다. 완만한 바위 슬랩 올랐다가 잠깐 내리면 야트막한 ┫자 갈림길 안부의 왼쪽은 신안고개를 오가는 길이다.
다시 한 차례 완만한 슬랩을 밧줄 잡고 길게 오르면 명성산 정상이다. 멋없이 뭉툭한 화강암의 정상 표지석(글
씨만은 명필을 집자하거나 돈을 좀 들여서라도 당대의 명필을 새겼으면 좋겠다) 앞에 있는 삼각점은 2등이다,
갈말 24, 1983 재설. 남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인다. 따지고 보면 사진은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찍을 때이다.
오늘 안개와 미세먼지가 자욱한 중에 원근의 첩첩 산이 과감한 생략과 농담만으로 가경이다. 이런 때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라 불만이 전혀 없다.
명성산 정상 넘어 서릉의 궁예봉 가는 길도 좋다. 길게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로 왼쪽은 신안고개를 오간다.
자연 님과 하운 님은 여기서 신안고개로 하산하였다. 870.2m봉 오르는 길. 껄끄럽다. 가파른 슬랩의 바윗길이
다. 밧줄이 매여져 있지 않다면 퍽 애 먹겠다. 정상은 널찍이 평평하고 절벽에 다가가면 명성산과 그 남릉의 너
른 품이 한눈에 가득 찬다. 가을이 떠나간 자리라 공산으로 적막하다.
13. 멀리는 각흘산, 억새 숲을 헤쳐 오르는 일행들
14. 멀리는 감투봉
15. 멀리는 각흘산, 그 오른쪽 뒤 흐릿한 산은 광덕산
16. 명성산 남릉, 앞은 삼각봉
17. 왼쪽 암봉이 궁예봉이다
18. 명성산 남릉, 앞은 삼각봉
19. 명성산, 오른쪽은 삼각봉
20. 궁예봉 남벽
21. 궁예봉에서 남서쪽 조망
22. 명성산 남릉의 서쪽 자락
870.2m봉 내리는 길이 애매하다. 능선 마루금은 넙데데한 사면에 묻혔다. 여기저기 쑤셔 낙엽에 가린 흐릿한
인적을 찾아낸다. 암봉인 830m봉(정상에 궁예가 누웠던 자리라는 침전바위가 있다)은 오른쪽으로 돌아 넘는
다. 밧줄 잡고 5m쯤 되는 직벽을 오른다. 또 하나 (숨은) 암봉이 있다. 살금살금 오르내린다. 궁예봉은 암봉이다.
그 남벽은 깊은 절벽이다. 동릉을 오른다. 밧줄 달린 가파른 슬랩이다.
궁예봉. 왕수산악회에서 아담한 정상 표지석을 세웠다. 조망 훤히 트이는 경점이다. 궁예를 새삼 생각한다. 그
를 망하게 한 건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미복차림으로 도망가다 평강 백성들에게 살해될 때도
조차 자기가 어쩌다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정 강회백(通亭 姜淮伯,
1357~1402)의 「철원회고(鐵原懷古)」는 음미할 만하다.
山含故國千年恨 산은 옛 나라의 천년 한을 머금었고
雲抱長空萬里心 구름은 드넓은 하늘의 아득한 꿈을 담았다
自古興亡皆有致 옛적부터 (나라의) 흥망엔 다 까닭이 있으니
願因前轍戒來今 자취에 남은 원인을 살펴 앞날을 경계할지니
다시 명성산을 오른다. 침전바위는 들를 여유가 없다. 올라갈 때 본다. 내려갈 때 보지 못한 덕순이다. 아까 명
성산 정상에는 꽤 많은 등산객이 있었는데 텅 비었다. 미세먼지는 많이 잦아들었다. 광덕산과 국망봉 연릉, 관
음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마른 목 축이고 줄달음한다. 그래도 봉봉을 직등한다. 첨봉인 삼각봉은 경점이다. 이
다음 900.7m봉은 암릉 암봉이다. 남들처럼 왼쪽 사면(밧줄 달린 바윗길이다)으로 돌아 넘는다.
894.4m봉은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조망이 가렸다. 완만한 바윗길 내린 863.1m봉은 명성산(鳴聲山)의 명성(名聲)
을 한껏 높인 억새 평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너른 평원의 억새꽃은 다 졌다. 시절과 더불어 황혼이라 그 모색으
로 쓸쓸한 기분이 든다. 안부에는 팔각정과 1년 후에 배달된다는 우체통이 있다. ┫자 갈림길. 등로가 부드럽기
는 왼쪽이다. 직진은 봉봉을 숨차게 오르내리지만 볼거리는 더 많다. 직진한다. 다시 산을 간다.
오른쪽 사면은 바위 절벽의 연속이다. 등로 벗어나 조심스레 수렴 걷고 들여다보곤 한다. 위압적인 테크계단 내
린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자인사를 오가는 길이다. 일로 직진한다. 책바위 그 갈피는 데크계단이다. 계단
마다 경점이다. 저 아래 산정호수 놀이시설 진행자의 온 산을 울리는 목청이 야바위꾼의 그것처럼 들려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데크계단이 끝나고 가파름도 수그러들어 잣나무 숲길 총총 걸음하여 내리면 대로의 비선
폭포 앞이다. 선녀는 이미 날아갔다. 그래서 폭포 물줄기가 보잘 것 없다.
서울 가는 길. 공공버스로 운천에 가서 동서울 가는 시외버스 타는 편이 가장 빠르다. 공공버스는 버스승강장마
다 들러 도봉산역까지 간다고 한다. 소요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우리는 공공버스가 운천5리 군부대라며 몇 번
들르는 바람에 운천을 지나치고 포천까지 간다. 잘됐다. 아무렴 그래도 포천이 대처라 음식점도 나을 것. 행인
에게 맛집 물어 찾아간다. (덕순주) 술잔 높이 들어 무사산행을 자축한다.
23. 산정(山井)호수
24. 왼쪽 암봉이 궁예봉이다
25. 왼쪽 멀리 흐릿한 산은 관음산, 가운데 중간은 산정호수
26. 멀리 가운데는 사향산
27. 멀리 가운데는 사향산, 가을이 머물다 간 자리는 적막하다
28. 명성산 억새, 씨방은 먼 길(?) 떠나고 쭉정이만 남았다
29. 팔각정 주변, 멀리 가운데는 사향산
30. 책바위 주변
31. 책바위 주변
32. 책바위 주변
첫댓글 아직 명성산 억새가 좋네요. 처음 산에 다니던 1998년 늦가을, 바람 심하게 불 때 홀로 삼각봉 오르던 중 웬지 격한 슬픔이 느껴져 눈물 흘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자신감도 없고 컴플렉스가 심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요...
억새꽃은 졌고 좀 더 일찍 갔더라면 좋을 뻔했습니다. 억새는 황혼녘에 역광으로 보아야 멋있습디다.^^
킬문 님이 센티멘탈할 때도 있었네요.
억새평원이 엄청나더군요,,,조금 일찍 갔더라면 좋았을텐데,,,다음 가을에는 좋은 억새철 때 하시죠^^
이왕 갈 거 때를 가려서 갈 필요가 있겠어요.^^
간만에 봅니다...덕수니 덩굴도 뵈내요??? 먼지도 많은데 대충 하시지~ㅠ
덕순이를 보더라도 명성산은 역시 명산이었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