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12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개역개정판)
이사야 1: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개역개정판)
여름은 지옥을 닮았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 생을 마감한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단, 그 혜택은 소수의 사람들만 누리고 있는 것이 특징)에 내려진 형벌은 무엇일까?
폭염이라는 말은 안했다.
그것도 그거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내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 상태 같은
국제 정세와
우리의 살림살이 정황을 보면
우리네 삶이 천국을 닮았는지 지옥을 닮았는지 대충 보인다.
잠언 1장에 나오는 악한 자는
왜 잠언 기자의 아들을 꾀려고 했을까?
잠 1: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개역개정판)
학교폭력의 시작은
사실 나쁜 녀석들, 불량 학생들의 세력화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완전히 질이 나쁘지 않은 애들이
질 나쁜 아이들과 세력화가 되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학교폭력이 발발하는 이유는
같은 학교 친구들을 괴롭혀서 돈을 편취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악 그 자체의 발현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냥 상대방이 싫고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 즐겁고...
나와 다른 상대방을 따돌리는 것이 은근히 재미있기도 하고...
코로나19가 발발했던 2020년 1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이들이
올해 26학번이 되었는데..
그 당시 뭐 뉴노멀 그러면서 세상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또 일부는 그런 측면이 있었으나
뭐...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학교 폭력 문제만큼은 좀 줄었겠지...하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시장이 생길만큼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함과 예민함도 이미 수위를 넘었다고 본다.
친구를 괴롭혀서 얻는 편익은
감정적 편익 외에는 크지 않다.
친구에게서 돈을 빼앗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입히거나 입게될 금전적 피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사야는 서글픈 시대에 태어나
서글픈 메시지를 전했던 사람이었다.
이전 세대의 엘리야, 엘리사 같은 선배들처럼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보기도 좀 애매하다.
(물론 히스기야의 생명이 연장되거나, 앗수르의 산헤립이 몰고온 185,000명의 군대가 몰살당하는 엄청난 일들을 목도하기는 했다.)
이사야 1장부터 나오는 시대적 분위기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사야는
성경 66권의 요약본이라고도 일컫는
시편 다음으로 긴 분량의 예언서를 통해
복음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이사야 1장 17절은 더 분명하다.
선행을 배우며...
선행을 배워야 한다.
악인도, 더위도,
지옥을 닮아서
스올 같이 산채로 사람을 삼켜버리는 이 시대라면
더욱 그리해야 한다.
선행을 배우길
가르쳐 주시길
그리고...
분명히 변론하자고 하셨으니...
세상의 임금들, 주권자들, 주관자들, 그 양반들은
“시끄럽다. 날도 더운데 어디서 감히 (씰데없이) 헛소리하고 있노?”
하면서 입막음을 시도하겠지만,
내가 성경을 통해서 알게된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시는 좋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입다물고 그저 율법이나 지키라 하지 않으시고 변론하자 하신다.
묻고 항변하고 절망을 쏟아내는 자리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변론의 장은
의심나면 묻고, 억울하(다고 느껴지)면 항변하고,
답답함이 있으면 호소하고, 절망스런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그대로 쏟아놓는 것이다.
그게 진짜 교제고,
하나님도 그걸 바라신다.
날도 더운데
종교적인 절차까지 지키느라 고생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변론하자고 말씀하셨다.
이 더위에 대해서는 항변해야겠다.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하셨죠?
알겠습니다. 힘 닿는데 까지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학대 받는 자와 고아와 과부는 물론 온열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이 더위를 그치게 하시고, 더 이상의 온열질환자가 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름 기둥을 보내주십시오.
변론하자고 하셨으니
이제는 응답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