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건강] 트라우마 극복하기 (상)
우리 뇌에는 무수한 '트라우마'가 저장돼 있다
끔찍한 사고나 사건을 당하면 뇌 속에 트라우마(trauma)가 생겨 작동하기 시작한다. 사고 당시 비참한 상황과 감정이 끊임없이 재현되면서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 우울, 분노를 느끼는 정신적 외상(外傷)이다. /셔터스톡
일반적으로 평범한 일상의 기억은 아주 쉽게 잊힌다. 우리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이 불필요한 정보는 덜어내고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정보만을 저장하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라우마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끔찍한 사고나 사건 등 ‘빅 트라우마(big trauma)’는 결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느낀 충격적인 시각적·신체적 감각과 감정이 더 생생하게 살아남는 특징이 있다.
설령 긴 세월이 흐르고, 행복스런 시간 속에 살고 있더라도 트라우마는 사소한 빌미만 제공되면 언제든지 튀어나와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이유 없이 두려움에 떨고, 불안에 사로잡히고, 갑작스럽게 분노가 폭발해 나온다. 자기 주장을 조리 있게 하거나 입증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부드럽게 설득하지 못한다.
중년·장년·노년의 나이가 돼도 옛날 옛적 코흘리개 시절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가득찬 기억의 파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빅 트라우마 뿐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었던 무수한 ‘스몰 트라우마(small trauma)’도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일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경험, 부모님의 잦은 부부 싸움, 아빠·엄마로부터 받은 질책이나 폭력, 학교에서의 왕따, 친구와의 싸움에서 진 일, 발표시간 때 실수,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질책,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한 경험, 동네 깡패들에게 얻어맞았을 때 등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자잘한 사건 등등….
상대적으로 정신적 충격이 적은 이 트라우마들은 인간 뇌의 메카니즘에 의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에서 사라져, 의식 너머 저편 무의식의 저장창고로 넘겨지게 되나 언제 어디서든 여러 행태로 되살아날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을 보고 섬뜩한 무서운 인상을 받았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아주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힌 동네 어른의 인상과 비슷하다던가, 특정음식만 보면 속이 불편해지는데 실은 과거 그 음식을 먹고 체한 경험이 있었다던가 말이다.
만약 ‘스몰 트라우마’를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번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면 이것은 ‘빅 트라우마’ 못지않거나, 그보다 더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어린 시절 가족·친지 등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받은 조롱·학대·성폭력 등은 일반 트라우마보다 더 심한 ‘외상(外傷)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발전돼 극도의 자기부정이나 파괴적 인간관계로 이끈다.
미국에서 가끔 일어나는 학교 동료를 상대로 한 청소년들의 총기난사사건등을 추적해보면 이런 주변 인간관계에서 받은 트라우마들이 가해자의 인생경력에서 발견된다. <계속>
글 |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