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구속사 강해
하나님 나라의 ‘의’
노아 시대 사회는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덮어버릴 정도였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함으로서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여야 할 아담의 후손들마저도 가인의 후손들과 다를 바 없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의와 사랑으로 다스려지지 아니하고 인간의 힘으로 말미암아 지배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창 6:1-4). 더욱이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상대적이어서 누가 더 큰 통치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지배층이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횡포는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되었고, 이러한 악순환은 마침내 이 땅을 포악한 세상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사람들은 자기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본능적 행위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당대의 사람들은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의미 즉 인간의 본분(Being)에 대한 관심보다는 각기 자기들의 일상 생활에 대한 관심사에 깊이 침몰할 뿐이었다. 그 시대의 특징에 대하여 예수님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눅 17:27)라고 지적하심과 같이 일상의 항다반의 일에만 모든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이미 존재의 본분을 상실한 인류는 죄악의 아비인 사탄과 같이 악랄한 방법으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을 갔던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진행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인생살이를 경영하는 것이 전부였다.
1. 인간의 본분을 확인한 노아
노아는 당대의 사람들과 같이 일상의 관심사에 전념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통치하시기를 원하는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상의 삶 속에 깊이 빠져들어 있을 때 유독 노아만이 인생의 본분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지금까지의 시대적 흐름에 대하여 바르게 통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아버지 라멕을 통하여 이 땅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심판에 이를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진정한 안식을 가져다주실 것을 믿고 있었다(창 5:29). 때문에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괴악한 방법으로 자기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거부하고 있을 때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에 대하여 민감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실 때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즉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신 그 심판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창 6:13).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통치하실 것인가를 바르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한 자기의 본분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 남아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계승하여야 할 ‘여자의 후손’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각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에녹이 예언(유 14-16)한 바 있고 라멕에 의해서 그 시기가 멀지 않았음을 익히 경고한 바 있기 때문에 노아는 더 이상 사람들을 향해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경고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분명하게 보여진 만큼(창 6:13)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그 시대에 노아가 할 일은 그 심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노아의 진정한 신앙의 자세이다.
이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보아 시대적 사명을 각성하고 그 사명을 완성함으로서 인간의 본분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노아는 당대에 그 시대를 대표할 만큼 진정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여 그 시대적 특징을 종합하고 장차 새로운 역사가 노아로 말미암아 발생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모세는 “노아의 사적(תודלות)은 이러하니라”(창 6:9)고 의도적으로 노아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노아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신앙의 조상이 된 것이다.
2. 노아의 ‘의’
모세가 노아를 ‘당대의 의인이며 완전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위에서 본 것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노아의 신앙을 근거로 한 것이다. 언뜻 노아가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살리기 위해 방주를 만든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이라고 여기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사탄적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패괴하여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과 이미 에녹과 라멕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충분히 예언되고 경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일상의 일에 전념하고 있다는 현실을 놓고 볼 때 묵묵히 방주를 건설하는 노아야말로 그 시대에 대하여 진정한 공의를 행사한 사람인 것이다.
공의와 불의와의 관계는 인간의 도리를 다 하여야 한다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 것인가를 각성하고 그것에 따라 신앙의 양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공의이며 반면에 인간의 도리에 충실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거부하고 배역하는 것이 불의인 것이다. 마땅히 자기가 하여야 할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실 된 삶의 자세이다.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모세는 노아를 가리켜 당대에 의인이며 완전한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노아를 향해 이렇게 선언하신다.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창 7:1하).
이처럼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노아에게 바라셨던 일에 노아가 전심을 다 했기 때문이다. 노아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돌이켜 회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일은 라멕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노아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새롭게 천지창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살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자기의 본분이었던 것이다.
만일 노아에게 그만한 안목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명백한 계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심판이 임할지 파악하지 못하거나 혹은 홍수에 대비하는 일에 등한시하거나 게을리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노아는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때가 왔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짓고 방주에 들어 갈 생물들을 위한 양식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보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그의 일꾼을 통해 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에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대강 그렇게 될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하여 행하여지지 아니하고 매우 현실적이며 구체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노아가 임박한 홍수에 대하여 긴장감을 갖고 즉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홍수에 대비한 것 역시 노아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 그만한 신앙을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 세상에서 구현하고자 하실 때, 지체하지 않고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그 동안 역사의 진행을 통해 면밀히 지켜보고 자신을 준비하고 있다가 자신을 조금도 남김 없이 헌신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위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