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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 왕의 만남"
말하고 난후,낙랑 왕의 간곡한 부탁에...고걸 거절 할 수 없었던 호동은 낙랑 궁궐에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낙랑 공주를 만나게 되고 낙랑공주의 미모에 반해서 고만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혼인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애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호동왕자는 아버지인 대무신왕의 허락을 받고 오겠다며 길을 떠났습니다.
"결혼을 허락 받으로 가는 호동왕자"
호동왕자가 떠나고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낙랑 공주는 애가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동왕자가 사자편으로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그 편지 내용은 너무나도 뜻밖에 내용이었습니다. 편지 안에는 “공주, 낙랑의 무기고로 들어가 북과 나팔을 찢어 주시오. 그렇게 하면 고구려의 왕인 아버지께서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했소, 허나 그렇치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거요.” 라는 요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호동왕자가 말하는 북과 뿔나팔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북과 뿔나팔이 아니라 누가 불거나 누가 치지 않아도 적군이 오면 스스로 우는 그런 낙랑의 국보급 보물인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북과 나팔을 부수는 낙랑 공주"
낙랑공주는 갈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날 몇일을 나라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낙랑공주는 결국은 사랑을 선택하고 낙랑군의 무기창고에 몰래 들어가서 나라의 국보인 뿔나팔과 북을 자기의 손으로 부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호동왕자에게 이 사실을 알린 다음 왕자가 자신을 데리러 올 날만을 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허나 공주의 소망대로 일은 그렇게 쉽게는 되지 않았습니다. 호동은 대무신왕에게 낙랑의 보물인 나팔과 북이 무용지물이 돼었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왕은 결혼을 미루고 군비를 갖추어 낙랑으로 쳐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북과 나팔의 파괴로 대비책이 없는 옥저를 쉽게 정복하는, 고구려의 군사들"
그래서 호동은 낙랑으로 진격했으나, 북과 피리가 울리지 않아서 아무 대비를 하지 않은 낙랑군을 쉽게 정복해서 승리를 거둘수가 있었습니다. 낙랑의 최리왕은 낙랑의 보물인 나팔과 북을 부순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단칼로 공주를 베어버렸습니다. 낙랑공주의 죽음을 알게 된 호동왕자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곳으로 공주의 시신을 울며 안고 가서 안장하면서 자신의 선택의 잘못을 후회하며 통곡했습니다.
"낙랑공주의 죽음"
이 전쟁에서 호동왕자는 큰 공을 세워 왕과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나 그러나 홍동왕자는 공주를 잃은 슬픔에 마음이 늘 편하지 않았습니다. 호동은 대무신왕의 둘째 왕비의 소생이었습니다. 그런 호동왕자가 공을 세워서 더욱 왕의 사랑을 받게 되자 첫째 왕비는 불안해지기 시작 하였습니다. 왕비는 궁리 끝에 호동왕자를 모함하기 시작 하였는데 계속되는 모함에 왕은 왕비의 말을 믿게 되어 호동왕자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하들이 왜 왕자에게 사실을 밝히지 않느냐고 묻자 “내가 사실을 아뢰어 왕비의 모함을 밝힌다면, 그 또한 아버지께 걱정을 드리는 것이니 그건 효가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궁을 떠나고 맙니다.
"자결하는 호동 왕자"
그 후,자기의 잘못으로 낙랑 공주를 잃은 슬픔에 늘 괴로워하던 호동 왕자는 자기의 과오로 저세상에 먼저간 낙랑 공주만을 그리워하다가...결국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용서를 빌며 사죄하려고 공주의 무덤을 찾아가게 됩니다.그리고 그곳에서 자결해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이 설화는 삼국시대의 왕족들간에 있었던 비련의 사랑 이야기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이야기를 연상게 하는 전설이야기 로 삼국사기에 기재돼 전해오는 설화입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