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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7회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현상공모 수상자 특집
흉터
김미연
이미 엎질러진 계절이야
청량한 햇살이 한껏 발돋움을 하며
허공 속 무수하고 울창한 틈새와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앓는 새들을 끌어와
화분에 심었지.
씨앗이 발아할 때쯤 다시 찾아올 봄날을 화분에 밀어 넣고
얼마 전,
에메랄드빛의 은하수를 본 적 있어.
다시 찾아올 그 계절엔
유독 태양이 뜨겁겠어.
화분에 물을 주는 건
마음속 잘 익은 감정의 개수를 추려내기 위하여,
통증의 능선을 올라타 호발 되는 설움의 경계를 짓기 위하여,
초록을 상실한 잎새가 상처가 여전히 웅크리고 있다고 속삭여주겠지.
상처의 한복판에서
나는 미동도 없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았네.
화분 속 작은 소란은 바깥 세상과 인과율이 없단다.
흉터는 가피痂皮가 되었다가
점점 아무도 모를 것이 되어
잊힌 듯이 툭 내뱉어지고 말아,
아마도
바람이 묽은 하루가 지날 무렵이겠지.
손에 쥔 것
손 안에 달라붙은 지도를 찾아 걷다 보면
간혹 손금을 잃곤 합니다.
상실된 손금이 당신의 행방을 묻습니다.
없는데요 하는데 아니요 라며 위로를 건네듯
손아귀에 서서히 굴곡이 쥐어집니다.
소실점을 따라 휘어지는 곡선이 손금은 아니지요
어느새 당신에게 굴러가 버린 마음
지금의 거리에서 기록이 필요한 건,
당신의 시절을 읽어내기 위함이에요.
시절,
가욋의 부록을 짚어내는 손가락이
그리움에 서서히 젖어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겨우내 입 안에 머물던 문장들이
재채기처럼 입 밖으로 뛰쳐나오는 봄입니다.
나른하고도 추운 봄날을 견디는 곳은 의외로 토마토의 겉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건 중립의 초상화
불화했던 모든 인연들을 정리하는 봄의 시간
새벽 사이에 조금씩 스며드는 일출에서 검출된 그림자처럼
암묵적으로 합의된 질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아세요?
바람결에 단어가 흐트러져 뒹굴고,
해독 불가한 중세의 단어가 배설물처럼 오후 속에 쌓여갑니다.
굴절된 오후 사이로 자꾸만 틈이 자라납니다.
완벽하게 봉인된 하루에 발견된 드문 광경이죠.
타인의 손금은 새벽달처럼 묽기만 하네요
그리고 내 손안에서는 자꾸만 구멍이 자라나고 있어요.
실존과 본질 사이에 숨은 시 찾기
“실존은 본질을 우선한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차치하고라도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순간에 자율성을 가지며 선택에 직면하는 가투의 존재이다.
철학에 있어 실존주의는 본질주의와 대립이 되는 개념이지만 나는 시를 쓰며, 시라는 문학이 실존과 본질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상호보완 되어 문학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을 느꼈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 시는 무엇인가, 시는 어떤 목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는가 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공부하다 점차 자신만의 견고한 시적 철학이 확립된다면 그때부터는 시어부터 주제까지 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시인 개인의 선택이라는 자율성이 끼어들게 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인 비유와 은유 등의 기법이 바로 시인의 자율성에 근거하고 있다. 흔히 시적 허용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에서만 통용되는 단어, 또는 더 나아가 문장의 자율성은 타 문학의 그것보다 더욱 확장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치환된다.
작가가 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와 그것이 지향하고 바라보는 주제는 곧 작가의 인생 전반에 걸쳐 만든 가치관과 그 결을 같이 한다.
시인이라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한 개인이 평생을 지나오며 선택을 해온 인생의 과정들이 시어에 배어들고 이는 하나의 주제로 함축된다.
시인은 이렇듯 개인의 실존론적인 성향을 시에 투영함으로써 시를 읽는 독자에게 시의 본질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심어줄 수 있다.
나는 실존의 개념으로서 시인의 가치관이 시에 그대로 투영돼 치유와 독자와의 공감 및 나아가 사회적 담론의 연대 등의 목적을 지닌 시의 본질에 다가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가치관의 표출로써 치유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형태의 효과를 가져다준다면 이는 시의 본질이 주는 가장 순기능이지 않을까?
간혹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시를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는 시의 본질에서 어긋나는 형태일까? 나는 부조리한 시가 부정적인 것만을 설명하진 않는다고 믿는다. 역설적으로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는 직시할 때 오히려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며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외려 삶에 대한 비극적이고 어두운 부분을 묘사하는 시가 독자에게 있어 인생에 대해 성찰을 하게 하는 순기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로써 부조리한 시 또한 시의 본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나는 시를 통해 긍정적인 확언과 가치관을 심어줄 실존을 얹어 시의 본질을 명확히 밝히는 시인이 되고 싶다.
꽃은 핀다
강신명
여물지 않아 눈부신 시절, 감나무 너머 산이 붉게 물들 무렵이면 봉분 위를 굽이굽이 올랐다 고단함을 누여 고단함을 벗은 발자국 따라 고단해질 눈망울로 풀을 뽑았다 그리고 남겨진 땅의 향기를 맡았다 길은 숙명적으로 고단하다 고단함은 바람 소리로 이어진다 너로 걷는 시간이 많을수록 마당 뒤꼍 그늘은 깊어졌다
온기와 냉기 틈새로 사는 숨, 자라지 못해 멈춘 상처는 긴 그림자를 가졌다. 소리마다 자물쇠를 채웠던 적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파동이 결박해 놓은 기억은 깨진 거울처럼 날이 바짝 서 있었다 분리불안에 떠는 강아지의 하울링인 듯 맴도는 밤, 슬픔이 새겨놓은 무늬, 지울수록 견고해지는 저녁에 기댄 겨울이 낡은 문턱을 힘들게 넘는다
화산재가 뒤덮인 곳에서도 꽃은 핀다 입김이 흩어진다 태초의 빛이었을까 봉인된 소리를 여는 살갗의 감촉이 걸음을 다시 내 안에 불러들이고 안부를 물었다 침묵을 깨트리면 시곗바늘이 움직였다 처음을 모르는 꿈은 늘 깨어 있어 앞뒤가 없다 고단한 하루는 익숙해진 생존이다 마지막 풍경은 나에게 아직 곁을 내주지 않았다
월요일을 쓰다
비가 오래 내렸다
너는 월요일이면 비가 그칠 거라 했다
나는 구름의 일을 맞추는 것은
처음이 마지막의 안부를 묻는 것과 같다며
창문을 열지 않았다
기억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으나 우리는
불안을 걸러내며 흘렀다
폭우가 매번 월요일을 삼키듯이 쏟아졌다
틈새에 갇힌 습기가 벽을 만드는 동안
나는 너로 인해 달이 떴다고 웃었다
너는 나로 인해 해가 떴다고 울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월요일을 맞았다
달을 연민이라 쓰고 해를 신파라 읽어도
바람은 물속에서 자유로웠다 그때,
우리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침묵이 멈춘 배경으로 남아
물에 잠긴 징검다리를 무사히 건너는 일
우리는 시작이 보이는 끝과 끝으로 돌아섰다
누구도 길의 향방은 묻지 않았다
낮달이 너무 밝아 넘기지 못한 달력이
빗물에 더 이상 젖지 않을 때쯤
우리는 몸을 비웠다
햇빛이 땅 위에 다시 요일을 쓰기 시작했다
뒷면 없는 월요일이 쑥쑥 자랐다
광화문 뒷골목과 사람들
아주 오래전 자주 지나던 길 위에 앉았다. 두 눈 가득 번지는 햇살은 변함없이 녹진한 향기로 스미지만, 세종문화회관 광장 너머 모이는 바람의 표정이 낯설다.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온다. 언제 들어도 꾸밈없고 정감 어린 목소리에 애잔한 감성이 녹아든다. 삐걱대는 육중한 나무문과 별 헤는 뒷마당 쪽 작은 쪽문이 있던 한옥, 좁고 긴 골목이 끝나갈 때쯤 아랫목에 고단한 다리를 누이고 여린 손톱마다 봉숭아 꽃물 들이던 내 젊은 시절을 같이 한 집이 있었다.
그곳엔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골목마다 서까래 냄새가 그윽했고 열두 대문을 가진 집은 전설로 서 있었다. 아침이면 벽에 걸린 카라얀이 곱슬머리에 눈을 부릅뜬 운명을 지휘했다. 환희의 송가가 곤히 잠든 땅에 입 맞추면 붉은 장미꽃이 만발했다. 거리엔 청춘들이 토끼 눈 비비며 학원 문을 들락거리고 다이아몬드바늘 즐비한 레코드 가게에선 시대를 말해주는 음악이 고뇌를 접수하며 발길을 잡아끌었다. 새 바늘 매단 날렵한 엘피판에선 살아 숨 쉬는 하루가 흘러나왔다. 빨간 별 깜빡이는 낡은 전축은 카페의 이별을 예감하듯 상심한 눈을 감겨 주고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 킹 크림슨의 Epitaph가 서둘러 저녁의 문을 닫았다.
밤이면 그 골목엔 속눈썹 긴 총각 데생 선생님이 술 취한 조각상을 그리곤 했다. 그 옆엔 나의 푸른 물감이 풋사과를 조금씩 베어 먹고 있었다. 사거리 밝히는 동상도 잠든 새벽, 공중탕 첫 마중물에 젖어 들던 꿈처럼 나이는 나이의 주인을 늘 앞서갔다. 별빛은 밤새 문살 사이로 흘러내려 심장에 쩍쩍 붙은 파편을 떼어내던 바람이었다. 그 바람의 땅은 이제 오피스텔 숲속에 낮은 하늘로 저물고 광화문 뒷골목엔 여전히 그때의 얼음알갱이가 발자국마다 박힌다.
함께 걷던 많은 인연이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낮게 기댄 담장은 허물어지고 우뚝 솟은 빌딩 숲과 넓은 길에는 넘쳐나는 차들로 옛 정취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새 길은 새 지붕을 만들고 새 지도를 그리며 삶을 이어갈 것이다. 기억 깊은 곳에 존재하는 쓸쓸한 골목길, 검은 고양이 울음소리에 하이힐 종종걸음치던 밤을 지나 세월 바깥 마주 선 내가 보인다. 환히 불 켜진 골목 어귀 꽃집에서 마지막 연인이며 한없는 상실을 소유한* 릴케의 장미를 받아 든다. 시린 계절 이기고 꿈에서 걸어 나온 나는 아직도 장미 한 송이의 가난을 소중하게 음미하는 중이다. 시작과 끝을 한 걸음씩 내어주다 돌아본 시간은 모두가 앞날에 다시 필 청춘이었다.
* 릴케의 연작시 ‘장미들’에서 가져옴
각자의 미식
양우정
당신이 원하는 게임 속 서사는 흑일까? 백일까
비극이 많을수록 축제는 길어질 거라는
감미로운 귓속말을 할 때 알았어
목구멍에 걸린 하루를 은밀하게
삼켜야 한다는 것이 식욕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조화 속 파괴의 씨앗이 운명이라며
견딤에 멀어져 가는 분침과 초침의 바늘은
가까우면서 먼 당신과 나를
반으로 가르며 우리가 될 수 없다 했지
죽은 기억을 바라보는 무심한 눈으로
물음 따위는 필요 없으니
허술한 식욕을 들키지 말라며
유효기간이 없다는 주관과 객관 사이의 경계를
아바타의 변주라 하던 당신
모든 아침의 형식은
흰빛에 숨은 검은색 이거나
검은색에 스며있는 흰빛이라던
당신의 기운 어깨 위
언제나 아슬아슬한 공포와 탐닉의 나침반이 있는
감춰진 상실 속 편린의 날들
갇힐수록 안쪽은 넓어질 것이라는
일면에 장식될 당신의 화려한 식단
오늘은 또 어떤 것일지
궁금하긴 해
프리마켓
극적인 경험을 사유하다 아득해진
단서를 꼭꼭 숨긴 장르의 뒤편
세기마다 빼곡했을 이루지 못한 꿈들
뽀얀 화장을 했던 황금 시절을 숨긴 채
너울너울 춤을 춘다
여전히 의문뿐인 야생적 물음들의 매복 사이를
싱싱하게 뛰어다니던 한때의 목적어들
어둠과 적막의 절망 속 공리를 잊지 않고
찾아낸 출구로 이름이 반짝거린다
성자의 이목구비에 야수의 주름을 가진
꿈이 절반이었다는 주인처럼
장면이 수없이 바뀌어도 여전히 뒷모습뿐인
목격자이면서 증언자라는 꼬리가 잘린 물건들
팔거나 사거나 관망하며
끝말잇기를 이어가는 전설 같은 설렘을
절반의 절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무단출입이 금지된 은신 술사들의 치명 속으로
말랑말랑해지는 하루의 끝자락
아직도 환청으로 남아 있을
신화 속 동사가 되고픈
각기 다른 모국어들
먼지를 툭툭 털며 보이지 않는 별 찾기에 한창이다
세랭게티 구멍가게
밤이 뒤꿈치를 감출 때까지 작지만 무한으로 꿈의 길이를 늘이며 피로의 길이를 둥글게 만들던 내력을 읽는다. 마을 이루샤로 향하는 길목에는 천적이 없는 세렝게티 구멍가게들이 있다.
동전 하나로 발바닥이 데이도록 달려가던 누 가젤 얼룩말 초식 아이들 엄마의 슈퍼 머리새 위로 태양이 자란다.
설산 고도를 다녀온 사자, 점박이하이에나, 황금자칼의 영역에는 가장들이 쉬어가던 샘터 상회가 있고 담벼락 조그만 우체통 옆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아프리카코끼리, 검은코뿔소, 하마의 넉넉한 마음 마트가 있다. 그리고 양철지붕 아래 장독 늘어선 만물상 사랑방으로 모여들던 뱀잡이수리 관두루미, 붉은 목 박새의 노장 어르신들이 있던 곳.
흙에 체온을 넣던 달항아리를 닮은 사람들, 등 시리게 밀려나도 미래의 기억을 꿋꿋이 심던 세렝게티의 초원이었다.
관성으로부터 분리된 마을의 이력이 펼쳐진 풍경을 본다. 그 수많은 행간에 다정한 밑그림을 그리다가 지는 해의 어둠 속, 그늘 깎아 만든 모서리로 내일을 구상한다.
그러나 사냥 구역이 풀리면서 동그랗던 시대는 관성적인 24시에 길들어 버렸고 내일이 없는 총알이 반성을 모르고 날아와 박혀 나무와 숲은 사라져갔다.
매일 낯선 곳으로 출근했다 돌아오는 새벽길, 영혼 없는 승리의 풍선 인형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24시 편의점. 차가운 유리 벽으로 노을이 번질 때면 오래된 옛길에 우연히 만나는 느티나무 평상 아래 그늘처럼 펼쳐지는 상상의 꿈속에서 한 폭 그림으로 남아있는 동화 같은 모습들이 더없이 그리운 날이 있다.
타인의 세계 혹은 누군가의 얼굴을 빌리지 않고 계곡과 가파른 능선을 오르던 푸른 등 민낯의 얼굴들과 발신자와 수신자가 명확했던 유난히도 투명하고 맑고 길던 밤처럼 별의 지도를 읽고 길을 찾아 만나게 되는 오래 두고 바라보고 싶은 그런 풍경이 있다.
네모가 떠난 자리
- 곡우
김 우
네모에 빠진다는 건
알몸으로 네모에 투신하는 일
여섯 번째 사랑으로 내리던
비릿한 밤,
내일은 네모를 삼키며 일어나는 거예요
기억하세요
바람을 등진 네모는 체적이 없어요
바람을 섞은 네모
네모를 품은 검은 바닥
사랑한다며 알몸 뼛속까지 부수던,
그날 밤
네모가 바닥을 찢고 스미는 소리에
움직이는 것들은 밤새 성장통을 앓았어요
네모 크기에 따라 흔들리는 체온들
내일을 움켜쥔 네모 손짓,
소생하는 소리가 스테레오처럼 번져요
구멍 난 바닥, 검은 아우성
물컹해진 바람에 버려질까 몸 달은 네모들
따닥 딱- 다닥
생명을 깨우는 소리
내일로 비상하며 사라지는 네모
텅 빈 허기를 메워 줄 증발의 출입구
다음 바람 불어오면,
다음 계절
네모가 떠난 다음 네모
봄이 성큼
이 달그락
이 윤택해지는
소리
네모 발자국
둥근 탄생
역마살 뭉치들이 향일암에 걸린 둥근 입을 가려요
언어가 사라진 검은 침묵들
소리도의 낯선 포구를 배고픈 바람처럼 배회하죠
바람의 크기를 재단하는 간출여 이마,
입을 여세요
빛을 뱉으세요
파란 멍들이 넘실거려요
허공에서 교접하는 바람과 둥근 숨,
밤의 닫힌 입과 한낮의 견고한 혀는 한 몸 같은 둥근 족속이에요
간기 밴 생애의 안팎들이 향일암에서 돌산도 앞바다까지
+와 -로 반복되는 거예요
태초에 인간으로 변한 곰의 가슴에 숨어들거나
봄볕이 따스한 여수 바다에 드러누운 윤슬들, 그래요 느긋한 휴식이 되고 말죠
돌산 밤하늘, 소란스런 미세먼지 무리들이 비치면
크고 둥근 입은 사라져요
물살에서 뛰노는 빛은 탁하고 희미해져요
미늘이 한려수도 심장을 관통한 날
선혈로 헹군 물살의 정강이 근처, 플랑크톤 시체들 조등처럼 은은해요
간혹 남쪽에서 이사 온 낯선 바람이
마지막 해전을 준비했던 이순신광장의 경건한 적막을 흔들곤 하지만
목숨을 던지는 유성우를 관찰하기에는, 캄캄한 밤이 좋아요
향일암에 걸린 둥근 입 안으로 목탁 소리 투신하던 밤
회칼 같은 바람이 창백한 허공을 가르면
역마살 뭉치들 실처럼 잘려 나가고 각설탕 같은 반짝이,
여수 밤바다로 쏟아져요
숨들이 출렁대는 바다 곳곳 둥근 정원이 생겨요
수면 위 자궁이 열려요
함박,
커다랗고 새하얀 둥.근.
겨울 지나고 다시 봄,
십이월의 마지막 아름다운 불금입니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또 한 해가 과거라는 시간으로 소천합니다.
지난봄, 화담숲 벚꽃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하얀 색깔을 감추었습니다. 경포대의 파란 여름은 종량제봉투 두루마리를 걸치고 다비식을 거행했고요, 홍천의 은행나무 숲의 노란 가을은 꽁꽁 언 채로 기억의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그 자리 그대로 두는 게 아름다운 법입니다. 아쉽거나 후회스런 부분이 있더라도 이미 다 지난 과거의 속삭임일 뿐입니다. 미련이란 놈은 얼마나 유혹이 달콤한지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 봤자 결국은 아무 의미 없는 행위인 줄, 시간이 지나야 또 후회를 앞세웁니다. 그래서 미련은, 싹이 돋는 대로 잘라 버려야 그나마 남아 있던 미련마저 수그러들지요.
고단했던 한 해의 마지막 달 십이월, 겨울 초입에서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부분을 전지剪枝하며 견고한 숨을 고릅니다. 싱싱한 봄을 살려내는 겨울의 희망을 단단히 움켜쥡니다.
바람이 시작되는 수평선 너머 새해의 새 해가 떠오릅니다. 다시 시작하는 또 한 번의 한 해가 지천명의 부스러기 눈길을 받아먹으며 발갛게 달아오릅니다.
나이는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저절로 더해지지만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은 스스로 가꾸어야만 질기고 질기게 기록됩니다.
겨울 한기가 몸을 덮을수록 총총 걸음으로 오는 봄, 더 기다려지네요. 이런 때, 동반자 하나쯤 있으면 얼마나 감사하게요. 아무 말 없더라도 동행의 눈빛만으로도 포근합니다. 꽃샘바람 피하는 든든한 벽이 되고 말고요.
사랑하기 좋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사랑받기 좋은 완벽한 봄,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