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무언가(something)를 이야기 할 수 있을 뿐이죠.
매 순간 상황마다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은 단면일 뿐이고 세계는 온전히 드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어차피 언어(메시지)는 세계를 분절할 수 밖에 없고 그 단면 마다의 간격은 불연속의 심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이의 공간을 상상하거나 재구성해서 완결된 서사로 인식합니다.
영화 <텔미 썸딩>을 보면서 우리들은 내게 말해지는 그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원천적으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릴러 추리 영화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반전이 있었는지가 영화의 묘미이겠지요.
14년전 스릴러 영화로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장윤현 감독의 영화 <텔미 썸딩>은 열린 결말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데요...
제 견해는 이렇습니다.
먼저, 수연에게 근친상간을 저질렀던 수연(심은하 분) 아버지의 살해범은 사진속 인물들이 모두 공범입니다.
사진 속 남자들은 모두 심은하를 사랑했던 사람들로 심은하 별장에 초대되어 살인을 공모하게 되고 기념 사진을 찍게 되지요.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살해된 심은하의 애인들이 별장에서 한 사진속에 함께 있을리도 없고, 사진을 보고 그것을 직감한 오형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이유도 없는 거겠죠.
두 번째 연쇄 살해된 남자들은 – 시체를 토막내고 방부 처리하던 702호 실을 엿보던 어린 학생의 죽음을 포함하여 – 모두 심은하가 죽인 것입니다.
살해 동기는 아버지 살인에 대한 완전 범죄 혹은 자신을 육체적으로 욕망하는 남성에 대한 극단적 혐오 (트라우마)일 수 있겠지요.
세 번째 오형사(장항선 분)의 살인은 오승민(염정아 분)이 한 것입니다.
오형사가 죽는 장면에서 수연은 조형사(한석규 분)와 함께 있었고, 오형사가 낌새를 느끼고702호실을 찾아 갔기에 수연이 위기에 처할 것을 염려한 수연의 친구 승민이가 저지른 살인입니다.
승민이는 어린 시절부터 옆집에 살면서 수연이 아버지로 당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연민을 느끼어 왔고 그것이 사랑의 감정으로 전이됩니다.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 남자애로 묘사되지만 뒤에 여자애로 밝혀지지요^^-
수연을 사랑했던 승민이는 수연의 범죄를 자신이 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피를 화장실에 뿌리고 손으로 덫칠하지요.
그리고는 수연이를 레코드점으로 불러내 오형사 앞에서 칼로 수연의 목에 상처를 내는 행위를 연출합니다.
마치 자신의 살인을 알고 있는 수연을 해치기 위한 의도로 보이게끔 오형사에게 덫을 놓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예감했던 수연은 냉혈하게 자신의 애인 승민을 총으로 쏴 살해하지요...
결국 영화는 수연의 완전 범죄로 끝이 나고 수연이 프랑스로 떠나고 난 후 우연히 수연의 비디오 클립을 감상하던 조형사는 화면속에서 결정적 단서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702실을 엿보다 죽은 어린 학생의 옷에서 뜯겨졌던 단추와 702호실 열쇠이지요.
-단추와 702호는 영화 앞부분에 복선으로 배치됩니다-
장윤헌 감독이 음악을 먼저 생각하고 그 음악에 맞는 영화로 <접속>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텔미 썸딩>에서는 회화 그림 2점이 결정적 모티브로 나옵니다.
다비드의 <캄뷰세스 왕의 재판>과 네버릿 밀레이의 <오필리어의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다비드의 <캄뷰세스 왕의 재판>에는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죄를 자신이 살인으로서 재단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구요...
네버릿 밀레이의 <오필리어의 죽음>에는 사랑하는 오빠 햄릿의 선왕에 대한 복수를 자신의 것으로 것으로 치환해 놓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순수를 향해 죽어가는 오필리어의 모습을 자신으로 바꾸어 놓은 그림이 자주 등장합니다.
박물원 유물 복원가인 채수연은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조각내어 다음 살인을 예고하는데요... 정작 수연은 자신은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조각 살인은 스릴러 영화의 긴장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읽힐 뿐 수연의 특별한 심리나 욕망을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수연에게서 무엇인가(something)를 눈치 챘을 뿐 전부(everything)를 알 수 없을 테니깐요...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도 우리는 여전히 수연이 마음과 승민의 마음 그리고 조형사의 마음이 온전히 어떠했는 지를 알 수 없는 여운 속에 남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여전히 어떤 썸딩의 빗장을 끊임없이 열어 나가는 것이겠지요.
첫댓글 보거스님 고맙습니다.
보편적 이해력이 부족한 관계로 읽는데 20분이나 걸렸지만 읽는동안 행복했습니다.
보거스님의 해박한 지식의 설명이 아니라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영화로 남을 뻔 한
텔미썸딩. 이제 잘 알 수 있겠어요. 몇번을 봐도 도대체 알 수 없는 영화라서
영화 마지막 자막에 감독이 설명이라도 좀 올려 주면 좋겠다고 할 만큼
답답하면서도 애착이 가는 영화 였지요.
기념으로 다시 한 번 보아야 겠네요.
보거스님 참 고맙습니다~^ ^
덧붙임은 이글의 조회수가 0일 때 제가 보았습니다.
완전 저만을 위한 글이 되었음에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새비나무는 제가 좋아하는 보라색꽃이 피고 보라색열매가 달리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마편초과 야생나무 입니다.
새비나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보라색 꽃망울이 예쁘네요.
봄에 남해가면 꼭 찾아보고 싶네요.
어쩐지 고독한 우아함이 서려 있는 것 같아요
새비나무님도 그러한가요...
한사람만을 위한 글은 대개는 서신일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새비나무님만 보세요 하니깐
금새 들킬 비밀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야~이건... 하면서 훔쳐(?) 볼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