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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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군데베르토(Gundebert)
축일 2월 21일
프랑스 상스의 주교인
성 군데베르투스(Gundebertus, 또는 군데베르토)는
660년 보다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 주교좌에서
은퇴한 후 보주(Vosges)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고, 세논느(Senones)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곤델베르투스(Gondelbertus) 또는
굼베르투스(Gumbert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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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노엘 피노트(Noel Pinot)
축일 2월 21일
노엘 피노트는 프랑스의 앙제(Angers) 출신으로
교구사제였다. 그는 한 두 본당의 보좌신부를
거치는 동안에 병자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으로
존경받는 사제로 통하였고, 1788년에는
루루 베코네(Louroux-Beconnais) 성당의 주임사제로
활약했는데, 그의 뛰어난 열성과 신심은 많은
영적인 결실을 맺었다. 1790년 루이 16세에 의하여
반포된 소위 '성직자의 시민헌법'은 가톨릭의
체제를 뿌리부터 흔든 악법이었기 때문에
많은 성직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물론 노엘 신부도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는 앙제 법원에서 2년간의 자격박탈을 강요당하였으나
비밀리에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윽고 방데(Vendee) 지방의 봉기가 어느 정도
성공했을 때 그는 공식적인 활동을 재개하며 항거하기
시작했으나 재차 체포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그는 나탈리스 피노트(Natalis Pinot)
또는 나탈레 피노트(Natale Pinot)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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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니엘(Daniel)
성녀 베르다(Verda)
축일 2월 21일
성 다니엘 신부와 성녀 베르다(Verda)는
사푸르 2세 왕의 박해 중에 체포되어 페르시아에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동방 교회에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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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베르토 사우스웰(Robert Southwell)
축일 2월 21일
영국 노퍽(Norfolk)의
호샴 세인트 페이스(Horsham Saint Faith) 출신인
성 로베르투스 사우스웰(Robertus Southwell,
또는 로베르토)은 궁중 관리의 아들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두에(Douai)로 유학을 떠났다가
파리(Paris)로 건너갔고, 그 다음에는 로마(Rome)로
가서 예수회원이 되었다.
그는 1584년에 사제로 서품되자 그 길로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는 런던(London)에 살던
애런델(Arundel)의 앤(Anne) 백작부인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선교활동을 하다가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앤의 남편과 함께 런던탑에 갇혔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옥중에서 여러 편의 시를 썼는데,
이것은 가톨릭 신자들을 격려하는 목적 외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화합을 노래한 것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 외에도 그는
'장례식에서 흘린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물',
'위로의 편지' 그리고 '죽음을 이긴 승리' 등의
글을 남겼다. 그는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
(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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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다미아니(Peter Damiani)
축일 2월 21일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의 어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베드로 다미아니(Petrus Damiani)는
어릴 때에 고아가 되어 형의 도움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형은 라벤나의 사제였는데, 그에게
다미아누스(Damianus)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파르마(Parma)로 보내어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그는 여기서 교수가 되었으며 1035년에는
베네딕토회 회원이 되었지만 자신은 성서 연구에
전념하면서 은수자로 생활하였다.
1043년경 수도원장이 된 그는 은둔소를 다섯 군데나
더 세웠다. 그는 특히 이 세상을 초탈한 인물로
또 성직매매를 극도로 반대했던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1057년 그는 교황 스테파누스 9세(Stephanus IX)로부터
오스티아의 추기경으로 선임되었다.
그 후 수도자의 위치로 돌아온 그는 주로 교회의
개혁운동을 주도하였는데, 특히 대립교황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는 연옥, 성체에 관한 글을
남겼고, 사제 독신제 옹호를 비롯하여 사제들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사후에 즉시 그에 대한 지역교회의 공경이
시작되었고, 1823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가
그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며 보편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1828년 교황 레오 12세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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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마비메노(Peter Mavimenus)
축일 2월 21일
성 베드로 마비메누스(Petrus Mavimenus,
또는 베드로 마비메노)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마주마(Majuma)에서 재판소 기록계로 일하다가
신앙 때문에 다마스쿠스(Damascus)의
아랍 족장에 의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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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룰루스(또는 베룰로(Verulus)
성 세쿤디누스(Secundinus),
성 시리키우스(Siricius),
성 펠릭스(Felix),
성 세르불루스(Servulus),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축일 2월 21일
성 베룰루스(또는 베룰로), 성 세쿤디누스(Secundinus),
성 시리키우스(Siricius), 성 펠릭스(Felix),
성 세르불루스(Servulus),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와 19명의 동료가
북부 아프리카의 하드루메툼(Hadrumetum)에서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은 그들을 반달족의 박해 때 순교한 이들로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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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베리아노(Severian)
축일 2월 21일
451년의 제4차 칼케돈(Chalcedon) 공의회는
에우티키아누스(Eutychianus) 이단과 그리스도
단성론자등을 처단했으나, 이들 이단들은
동방 교회에서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었다.
따라서 교구마다 이단과 정통 교회간의 싸움이
치열했고, 서로를 단죄하는 등 무질서한 상태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들 이단의 우두머리는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였는데, 그는 비타협적이고
잔인하였음으로 예루살렘의 주교 유베날리스
(Juvenalis)를 추방하고 또 일단의 군대를 파견하여
스키도폴리스의 주교인 성 세베리아누스
(Severianus, 또는 세베리아노)를 처치하였다.
군인들은 성 세베리아누스를 붙잡아 도시 밖으로
질질 끌고 가서 무참하게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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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비토(Avitus)
축일 2월 21일
성 아비투스(또는 아비토)는 676년부터 죽을 때까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 지방 클레르몽의
주교로 활동하였다. 그는 그 시대에 성직자 양성에
힘쓴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사후 클레르몽의 주교직은 그의 동생인
성 보니투스(Bonitus, 1월 15일)가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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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Germanus)
축일 2월 21일
부유한 원로원 의원의 아들로 태어난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고향인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의 주교
모도알두스(Modoaldus)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는 17세 때에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그가 열렬히 흠모하던
성 아르눌푸스(Arnulphus, 7월 18일)를 찾아 나섰다.
그 당시 성 아르눌푸스는 메스(Metz)의 주교직을
사임하고 은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되어 그 위대한 성인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그란펠
수도원에서 살다가 군인들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
이때 군인들은 수도원을 불태우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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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오르지오(George)
축일 2월 21일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흑해 근방의 아마스트리스 교외 크롬나(Kromna)에서
태어났다. 자식이 없던 그의 부모가 오랜 기도 끝에
하느님이 주셨다하여 '게오르기우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그가 세 살 때에 집에 불이나 손과
발에 큰 화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는 장성한 후 이제부터 세속에서 철저히 잊혀진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시리크(Sirik) 산의
은둔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고 아마스트리스의
주교가 서거하자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를 주교로
모셔가려 했다. 이때 그는 거절하였으나 대주교
타라시우스(Tarasius)의 강압에 못 이겨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신자들에게 참 목자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교우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고 설교하며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사라센의 침략으로부터 그의 주교좌 도시를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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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테리오(Paterius)
축일 2월 21일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Gregorius, 9월 3일)의
제자이자 친구인 성 파테리우스(또는 파테리오)는
로마의 수사였다. 그는 로마 교회의 서기로
일하다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브레시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성서 주제에 대해 많은
작품을 쓴 저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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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핀(Pepin)
축일 2월 21일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의 공작이자
이다(Ida, 5월 8일)의 남편인 페핀은 클로테르 2세,
다고베르트 1세 그리고 성 지그베르트 3세
(Sigebert III, 2월 1일) 등을 도왔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온 나라에 전파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슬라브족의 침입에서 그리스도교 마을을
사수하였다. 그는 공식적으로 시성된 사실은 없으나
옛 순교록에는 성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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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축일 2월 21일
성 펠릭스는 프랑스 메스의 제3대 주교로 전해진다.
그는 사도 후 시대에 이어 바로 40년 동안 메스의
주교좌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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