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JW 의 최근 글을 충분히 숙독하고서야
여호와의 증인들의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기원전 607년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보다 명확히 알게 되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헐리웃 영화 '차이나 신드롬'이라는 영화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중역이자 전문가인 주인공(잭 레먼)이 생중계되는 방송에서
원전이 안고있는 문제점을 설명하려 하지만 일반 대중이 쉽게 알 수 있는
수준과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장면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확실이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종교다.
하지만 일방적인 평결과 실제로 어떤 부면이 왜 문제인지
보다 설득력있고 쉽게 설명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Insight JW의 글들은 충분한 근거 자료들과 함께
차분하고 핵심적인 설명과 논리로 잘 풀어내려간 수준높은 글들로
평가된다. 각고의 시간과 노력이 곁들여졌을 것이 분명한
그 글들에 대해 블로그 쥔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기원전 607년과 관련하여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세속 연대와 천문 자료가 어떻든 기원전 537년이라는 기준년에 근거해
성서 여러 곳에서 언급한 70년을 소급해 올라가보면 기원전 607년이
계산되어 나온다.
여호와의 증인이 나보니더스 연대기가 어떻든 그 점을 들어
70년을 소급한 기원전 607년을 믿겠다고 한다면 문제 지적은
당연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참조할 수 있는 고대 바벨론의 연대가 거의 나보니더스
석판 밖에 없기 때문에 기원전 587년이 느부갓네살 통치 18년으로 계산되어
공인 세속 역사로 인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100퍼센트 영구적 확증 사실로 단언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의 역사를 기원전 3500으로 추정하게하는 연대계산의
근거는 기원전 3세기 경의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의 '저술물'이다.
고대 이집트 왕조를 집대성한 기록이 마네토의 저술물 밖에 없다고 해서
고대 이집트의 역사 기원전 3500년을 확증된 사실로 받아들여야하는가?
노아 홍수는 기원전 2340년 경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고대 이집트가 일정 기간 여러 왕조가 분할 통치한
기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마네토의 기록에 근거한
이집트 역사의 기간이 상당히 부풀려져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이집트의 고대 역사에는 모세와 이스라엘의 탈출 기록이 없다.
세속 기록에 없다고해서 모세와 이스라엘의 탈출은 없었던 것이라고 단언해야 하는가?
하지만 느부갓네살 18년의 경우는 천문학적 자료와 함께 그런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고 거의 확정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필자는 그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사라진 20년과 관련하여 1914년이라는 연대계산에는 분명 문제가 많으며
논리적 오류가 명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필자가 제시하고 싶은 더 큰 문제는
보편적인 여호와의 증인들이 관심자적 시절 기원전 607년을 처음 성서연구할때
나보니더스 연대기와 천문자료에 관한 지식을 곁들여서 세속 역사와 20년이
차이가 나며 세속 역사대로 하자면 느부갓네살 18년이 전혀 다른 연대로
계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주지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심지어 우리 주변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사실에 관해 얼마나 그리고
어느 정도 깊이있고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병백히 드러난 차이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이 기원전 607년을 마치 일반적인 역사 연대처럼
여전히 관심자들에게 주입하고 가르친다면 이것은 불공정 관행이며,
일종의 종교적 사기에 해당한다.
사실상 여호와의 증인은 이런이런 이유로 세속 역사보다 기원전 607년이
이스라엘 왕조가 무너진 해로 믿겠다는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일반 증인 신자들에게 애초에 처음부터 세속연대 자료와 그것을 기초로했을때
어떤 차이와 모순이 있는지를 알리지 않고 마치 기원전 607년이 일반적으로
공인된 고대 예루살렘 멸망의 해인 것처럼 반복 주입하고 가르쳐온
그 불공정 관행과 조기 고지의무의 불이행으로 종교적 사기를 쳐온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자신들은 삼위일체와 관련된 온갖 자료들로 삼위일체의 오류를 그렇게 철저하게
토론하고 발가벗겨 왔으면서 정작 자신의 신자들에게는 사실을 살피는데 필요한 자료와
논리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심지어 문제제기가 어려운 분위기와 환경으로
신자들로부터 인간으로서 사유하는 고귀한 특성을 소멸시키고 앗아가버린
이들의 행위와 역사가 하나의 심각한 죄악이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걸까?
증인들의 오류는 여기에 있습니다. 기원전 537년에 고토로 회복된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70년 전으로 가면 607년이 됩니다. 문제는 607년이 예루살렘이 멸망된 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멸망된 해는 연대 계산상 587년이 맞습니다. 그러면 607년은 무슨 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해는 다니엘을 비롯한 예루살렘 왕가의 후손들이 바벨론으로 1차로 포로로 끌려간 해입니다. 그러니까 70년의 시작은 1차 포로로 잡혀간 기원전 607년부터 계산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통치체는 예루살렘 멸망부터 계산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607년을 고집세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황폐의 시작이 예루살렘 멸망이 아니라 1차 포로로 끌려간 해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70년의 황폐기간이란? 1차 포로로 잡혀간 해부터 계산해야 한다. 그해가 기원전 607년이다. 그런데 증인들은 예루살렘 멸망부터 계산하기 때문에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었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은 기원전 587년이 맞다. 문제는 필자가 지적하였듯이 수정하지 않는 고집불통에 있다. 삼위일체처럼 파헤친다면 쉽게 잘못을 발견할수 있다. 아마도 프랜즈씨가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와서 쉽게 수정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이 연대를 수정하면 1914년을 수정해야 한다. 이것은 조직이 파괴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퇴양란에 빠져 있다고 본다.
레이몬드 프랜즈 (4대 협회장 프레더릭 프랜즈 형제의 조카이며“통찰”책 저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형제)는 자신의 회고록인 “양심의 위기”에서 기본 교리의 재 검토과정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통찰책을 집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세상 출판물 접하면서 수년 이내에 내용을 변경하고 수정해야 하는 통치제의 출판물과 달리 기록된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한 세상 출판물과의 현격한 차이에 충격을 받았고 1914년을 고집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유물인 모든 석판을 다시 써야하는 전혀 불가능한 작업이 전재 되어야 함을 깨달게 되었고 성서를 이해하는 안목을 한 차원을 높였으나,
예전에 봉사하다가 607년은 증인만 주장하는 연도라는말을 들었는데 알아낼 길은 없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덮어두고 믿자.. 라고 넘긴 것 같네요. 글쓴분 말씀대로 협회가 난처함을 피하고자 정보를 선택적으로 숨겼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네요. 속은 느낌이 듭니다. 관련된 점을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 링크라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무래도 데이빗 롤의 엉터리 연대기 책을 보신거 아닌가 싶군요..
증인들의 오류는 여기에 있습니다. 기원전 537년에 고토로 회복된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70년 전으로 가면 607년이 됩니다. 문제는 607년이 예루살렘이 멸망된 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멸망된 해는 연대 계산상 587년이 맞습니다. 그러면 607년은 무슨 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해는 다니엘을 비롯한 예루살렘 왕가의 후손들이 바벨론으로 1차로 포로로 끌려간 해입니다. 그러니까 70년의 시작은 1차 포로로 잡혀간 기원전 607년부터 계산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통치체는 예루살렘 멸망부터 계산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607년을 고집세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황폐의 시작이 예루살렘 멸망이 아니라 1차 포로로 끌려간 해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70년의 황폐기간이란? 1차 포로로 잡혀간 해부터 계산해야 한다. 그해가 기원전 607년이다. 그런데 증인들은 예루살렘 멸망부터 계산하기 때문에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었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은 기원전 587년이 맞다. 문제는 필자가 지적하였듯이 수정하지 않는 고집불통에 있다. 삼위일체처럼 파헤친다면 쉽게 잘못을 발견할수 있다. 아마도 프랜즈씨가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와서 쉽게 수정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이 연대를 수정하면 1914년을 수정해야 한다. 이것은 조직이 파괴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퇴양란에 빠져 있다고 본다.
nimicypals님이 닉네임을 바꾸셨군요.
레이몬드 프랜즈 (4대 협회장 프레더릭 프랜즈 형제의 조카이며“통찰”책 저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형제)는 자신의 회고록인 “양심의 위기”에서 기본 교리의 재 검토과정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통찰책을 집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세상 출판물 접하면서 수년 이내에 내용을 변경하고 수정해야 하는 통치제의 출판물과 달리 기록된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한 세상 출판물과의 현격한 차이에 충격을 받았고 1914년을 고집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유물인 모든 석판을 다시 써야하는 전혀 불가능한 작업이 전재 되어야 함을 깨달게 되었고 성서를 이해하는 안목을 한 차원을 높였으나,
통치체의 핵심 교리인 연대계산, 이방인의 때,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큰 무리 등의 항목을 기술할 때는 통치체의 성원이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달리, 통치체의 독특한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봉사하다가 607년은 증인만 주장하는 연도라는말을 들었는데 알아낼 길은 없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덮어두고 믿자.. 라고 넘긴 것 같네요. 글쓴분 말씀대로 협회가 난처함을 피하고자 정보를 선택적으로 숨겼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네요. 속은 느낌이 듭니다. 관련된 점을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 링크라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log.naver.com/utshelter 네이버 블로그이데, 쥔장이 어떤 분인줄 모르겠습니다만, 대단한 조사와 추리와 논리 그리고 필력을 가지고 계시네요. 블로그의 최근 BC 607년과 관련된 3개의 글은 기원전 607년의 모든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글쓴님도 충분히 알아본뒤 단언표현을 써야 합니다. 나보니더스 연대기만 있다고 쓰면 다들 진짠줄 알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중첩 자료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