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올림픽공원의 언덕으로 바뀐 몽촌토성과 그 토성에 설치했을 것으로 보는 '목책의 재현품'이다.
한성 백제의 역사시작은 하남 위례성이라 했지만,
그 동안 발굴 결과로는 궁궐이 들어설 만한 곳들에 대하여는 추정할 뿐 정확히 어디가 백제의 궁궐터였고,
관아와 민가들은 어디였는지, 또 그 규모는 어떻했는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동안 급속한 개발과정에서 온국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지로
국가가 살피지 못하는 사이에 땅속의 유물들이 손실되어갔고, 성내 궁궐과 관아터들도 많이 손실된 탓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로는 풍납동 풍납토성 안쪽에 아파트 재개발을 위해서 지하실을 파다가 발견된 유물들
그리고 일부 백제의 건축물 유구와 도로유구등이 발견되어,
풍납토성의 안쪽이 궁궐등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고,
이곳 몽촌토성도 백제시대의 토성이었음은 분명히 밝혀졌고,
백제시대의 읍성의 형태와 규모도 일부 발굴조사되었다.
그 유물들은 현재 몽촌토성 안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너무도 미흡하지만 백제시대의 생활상에 대하여 조금은 알 수 있다.
몽촌토성은 말 그대로 흙을 다짐해서 쌓은 성곽으로, 돌을 구하기 어렵고,
또 초기의 성곽으로는 어디나 대부분 토성으로 높이 쌓아 방어시설을 하였다.
토성의 높이는 현재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고, 경사도 급했을 것이나,
현재는 성이라기 보다는 구릉진 아이들놀이터나 작은 언덕처럼 보인다.
토성의 동측 외곽으로는 성을 쌓으면서 파낸 흙들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해자가 되어 물이 고인 호수가 되어있어 적의 침입을 어렵게 하였고,
호수가 아닌 곳에는 토성의 아래로 목책을 둘러싸서 적의 침입이 어렵게 하였다.
부분적으로나마 재현해놓은 목책으로
옛날 몽촌토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목책을 돌아보면서 1500년 이전의 백제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