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 날, 청주지방법원 223호 법정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 106번 소나티나(BWV 106)가 울려퍼졌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형사 5단독 정우혁 판사는 지난해 7월 15일 아침 14명이 숨진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된 임시제방을 부실하게 쌓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장 소장과 감리단장의 선고에 앞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추모하고 삶을 계속 살아가는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위무하는 의미에서 이 음악을 들려줬다. 법정 안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고 언론은 전했다.
정 부장판사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 겨우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이 앞으로 마주할 고통의 깊이를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며 "이번 판결이 모든 진실을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진상규명의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어 "유족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함께하면서도 피고인에게 그에 합당한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 법관으로서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스물두 살의 바흐가 묄하우젠 시절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장례를 위해 만들었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이토록 심오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보통 ‘Actus Tragicus’(죽음의 칸타타)로 불리며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주님의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로도 통한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에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악투스 트라지쿠스', 그리고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가 등장함은 [육십에 읽고 듣는 클래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바흐, 북스테후데에서 소개한 바 있다. 데미안의 한 문장은 '나는 오늘날까지도 이 음악(마태수난곡)과 바흐의 칸타타 <악투스 트라지쿠스>에서 모든 시와 모든 예술적 표현의 진수를 발견한다'고 돼 있다.
바흐의 칸타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다. 바흐의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필사본이 전해진다. 여러 필사본 가운데 통상 죄르지 쿠르탁이 편곡한 것을 많이들 연주한다. 재판부가 어떤 음악가의 어떤 악기 연주를 들려줬는지 알 길이 없는데 쿠르탁 본인이 부인 마르타 쿠르탁과 함께 포핸즈로 연주한 버전을 골랐다. 부다페스트 뮤직센터에서 녹음한 버전인 것 같은데,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주하는 음색이 소박하고 단백해 바흐의 의도를 잘 살렸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Bach BWV 106 Actus tragicus - Sonatina (trasc. Kurtag) (youtube.com)
정 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증거위조 교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공사 현장소장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다. 현행법 상 법정 최고형이다. 현장소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해 왔다. "임시제방은 기존 제방을 원상복구한 것이라 볼 수도 없고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하지 못한 부실한 제방이 명백하게 인정된다"라며 근거를 하나하나 따졌다고 한다. 그는 또 "임시제방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축조 방법이나 기준 완화된 임시제방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라고 질타했다.
자신이 제대로 제방을 쌓았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란 현장소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기준을 지키지 않은 고의와 같은 과실이라며 예상할 수 없거나 자연재해 때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현행법으로 더 무거운 형을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잘못을 대체로 인정한 감리단장에겐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지하차도에서 숨진 747번 버스 기사 이수영 씨의 아들 이중훈 씨는 법정 최고형이 나온 것에 만족한다면서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등 지자체장들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촉구했다. 앞서 검찰은 제방 공사 과정을 점검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과 금강유역환경청 공무원, 감리단 직원 등 12명과 사고 발생 당시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경찰·소방관 16명을 추가로 재판에 넘겨 앞으로 잇따라 재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바흐 음악을 법정에서 들려준 것에 대해 의아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는 것 같다. 재판장이 쇼맨십에 능한 것 같다고 비아냥대는 이도 있었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기만 한 법조문을 되뇌이는 것보다 희생자들과 유족들, 생존자들의 상흔을 어루만지려는 재판부의 진심을 굳이 곡해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