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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블록버스터의 숨결이 사그라지자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공습이 시작됐다. 샌드라 불럭의 <프로포즈>와 캐서린 헤이글의 <어글리 트루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프로포즈>는 북미에서 어마 어마한 흥행 성적을 올리며 꺼져 가던 샌드라 불럭의 경력을 되살려 냈다. 캐서린 헤이글의 <어글리 트루스> 역시 북미에서 1억 달러에 가까운 예상 밖의 흥행 성적을 기록 중이다. 지난 20여년간 전성기를 맞이한 뒤 점점 장르의 관습 속에서 헛발질을 계속하던 이 서브 장르가 되살아난 것일까 혹은 죽기 전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것일까. 분명한 건 지금이 바로 80년대 시작된 현대적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를 정리할 시간이라는 거다.
로맨틱 코미디는 어떤 장르이며, 어떻게 진화해 왔나 로맨틱 코미디는 우리의 실제 연애 생활에 해악을 끼칠까요? 2009년 1월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의 노팅힐 효과라는 기사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 영국의 몇몇 대학 교수들이 로맨틱 코미디가 실제 연애에 끼치는 영향을 실험한 모양입니다. 왜 학교 지원금을 이런 연구에 써야 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어쨌든 홈스라는 선임 학자가 말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사람들이 실제 연애 생활에서도 비현실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로맨틱 코미디를 본 사람들이 다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실험도 했습니다. 100명의 학생들에게는 <세렌디피티>를 보게 하고, 나머지 100명에게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보게 했죠. 그들이 말합니다. “린치의 영화를 본 학생보다 <세렌디피티>를 본 학생들이 운명적인 사랑을 더 많이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비교 체험 극과 극이 따로 없습니다.
이런 실험은 한국의 어머님들로 구성된 미디어 단체도 종종 하는 걸로 압니다. 결론은 아마 “호러 영화를 보는 학생들이 향후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정도겠지요. 여하튼 영국 학자들의 의도는 다분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운명적 사랑이라는 말도 안되는 종교를 신봉하는 여자들(그리고 일부의 남자들 혹은 여자들을 따라서 극장에 들어간 남자들)이나 보는 영화라는 거죠. 그럼 건강한 영국 남자들은 뭘 보나요?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건강한 영국 남자들은 영화 따위 보지 않고 축구장에 갑니다. 극히 일부의 남자들은 화끈한 카체이스가 나오는 액션 영화를 주로 봅니다. 요즘 들어 과속으로 인한 교통 사고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그럼 제이슨 본 때문일까요?
로맨틱 코미디는 이리 저리 채이는 장르입니다. 심지어 요즘 로맨틱 코미디는 칙릿(Chick-Lit)이라 불리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계집애들이나 보며 울부짖는 영화란 소리겠죠. 그러다보니 이 장르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뭘까요? 간략하게 말하자면 로맨스 장르와 코미디 장르의 요소들을 취합해서 만든 일종의 서브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이렇게 정의해 놨습니다. “두 주인공이 첫 만남 뒤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하거나 대립을 겪고는 결국 다시 합치게 된다는 이야기.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들은 관계의 중요함에 대한 내용을 담는다.” 그렇다면 장 비고의 <라탈랑트>(L’Atalante, 1934)도 로맨틱 코미디일까요? 한 미국의 영화 사이트는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1위로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뽑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와 <라탈랑트> 사이에는 조금 불안한 다리가 있을 겁니다.
속사포 대사로 승부하는 스크루볼 코미디가 원조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가 30년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성격과 계급이 다른 남녀가 끊임없이 티격 태격 하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빠르고 위트 넘치는 대사로 표현하는 장르입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이른바 발성 영화 시대의 창조물이었습니다. 말로 승부하는 스크루볼 코미디는 무성 영화의 종말과 함께 사라진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멋지게 대체했지요. 많은 영화 학자들은 시초를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 영화에는 우리가 스크루볼 코미디로부터 기대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백만장자의 딸과 평범한 계급의 신문 기자가 끊임없는 말 싸움을 벌이다 결국 계급의 차이를 뛰어 넘는다는 이야기니까요.
스크루볼 코미디가 대중화됨에 따라 초기 스크루볼 코미디의 사회·계급적 갈등은 점점 옅어졌습니다. 대신 남녀의 성 대결에 더 확연하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루볼 코미디를 포함한다면 로맨틱 코미디 영화 베스트에서 1위를 차지함이 마땅한 조지 쿠거의 <필라델피아 이야기>(1940)만 하더라도 프랭크 카프라의 초기 작품들보다 남녀의 대사발에 더 집중하는 편입니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정서적으로 메마른 관객이 스크루볼 코미디에 흥미를 잃었다지만 더 큰 이유는 TV의 발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남녀의 속사포 같은 입씨름을 다루는 스크루볼 코미디는 대사에 좀 더 긴 호흡을 제공하는 TV에 어울리는 장르였으니까요.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곳 역시 <윌 & 그레이스>나 <프렌즈> 같은 시트콤의 세계 속입니다.
그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60년대 록 허드슨과 도리스 데이 영화들에서 원류를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서브 장르는 확실히 80년대 이후의 산물입니다(우디 앨런의 <애니 홀>(1977)이라는 고결한 선례가 있지만). 조너선 드미의 <썸딩 와일드>(1986), 게리 마셜의 <환상의 커플>(1987)이 이 장르의 기초를 닦고 롭 라이너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가 완벽한 형식적 선례를 남겼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후 로맨틱 코미디는 20여년간 전성기를 이어 오며 수많은 유형(참조)을 만들어 내고 수많은 여배우(참조)들을 할리우드의 여왕으로 등극시켰습니다. 이제 로맨틱 코미디는 단순한 서브 장르를 떠나서 하나의 영화적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할리우드 영화사의 진출도 잇따라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할리우드만의 산물은 아닙니다. 90년대 후반에는 점점 진부해지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 상호 영향을 끼치며 장르를 진화시킨 영국의 워킹 타이틀이 등장했습니다. 기욤 카네와 마리안 코티아르가 주연한 <러브 미 이프 유 대어>(2003)나 오드리 토투의 <프라이스 리스>(2006)처럼 프랑스도 할리우드의 영향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냅니다(한국은 불행하게도 이 장르를 아직 한국화할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는 여전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의 민망함과 강남을 맨해튼으로 착각하는 촌스러움 사이의 어딘가에서 방황 중입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는 가벼운 장르입니다. 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심지어 60년대 록 허드슨·도리스 데이 영화)들이 가졌던 영화적 근심은 거의 없습니다.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는 일반 여성 관객의 구미에 정확하게 맞추어진 공장 조립품의 향취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는 각각 다른 시대,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의 환상을 공유하는가를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로마의 휴일>(1953)과 <내 남자 친구는 왕자님>(2004)은 50여년 만에 판타지의 대상이 공주에서 왕자로, 능동적인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로 변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샌드라 불럭의 <프로포즈>는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의 성적인 주종 관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영화입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애 딸린 사별한 유부남의 로맨스를 볼 수 있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나쳤지만 사실 꽤 잘 만들어진 청춘 로맨스 <우리 사랑일까요?>(2005)는 수백년 뒤 1990년대 X세대라 불리던 젊은이들의 문화와 행동 양식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료로 남을겁니다.
<프로포즈> 관습의 종말 될지도 물론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한 기운이 역력합니다. 샌드라 불럭 역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미국에서 거둔 <프로포즈>는 사실 지난 20여년간 개봉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을 모조리 가져와서 짜맞추어낸 듯한 영화입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직장 내 주종 관계, <스위트 알라바마>의 귀향 로맨스, <그린카드>의 위장 결혼이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의 오마주와 뒤섞여 있습니다. 어쩌면 <프로포즈>는 관습적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마지막 불꽃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라는 대중적 장르의 힘은 여전하며, 이 서브 장르 역시 꽤 흥미진진한 내부 실험을 계속 진행해 왔습니다. 도리스 데이·록 허드슨 영화들을 거의 완벽하게 패러디한 르네 젤위거의 <다운 위드 러브>(2003), 작가주의 로맨틱 코미디라 할 만한 <펀치 드렁크 러브>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장르의 관습 속에 머물면서도 장르의 관습을 벗어 버린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는 고전으로 남을 만한 장르의 걸작입니다. 주드 애파토우의 <사고친 후에>와 <40살까지 못해 본 남자>는 할리우드 스토너 코미디(Stoner Comedy, 대마초에 전 루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성 코미디. 요즘은 그냥 루저들이 등장하는 코미디를 지칭하기도 한다)와 로맨틱 코미디를 합방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로맨틱 코미디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이름이 바뀌겠지요. 20여년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사라진 스크루볼 코미디가 사실은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기초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입니다. 몇 십년 뒤에는 로맨틱 코미디를 대체하는 새로운 단어를 누군가가 발명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오늘 이후 로맨틱 코미디들을 너클볼 코미디나 자이로볼 코미디라고 부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름이 어찌 되었건 그 장르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로맨스와 코미디일 건 분명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한 <씨네 21> 기자가 말합니다. “로맨틱 코미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재미있게도 한창 브란젤리나에 시달리던 제니퍼 애니스톤도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인생은 웃겨요. 코미디, 드라마, 액션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죠. 왜 그저 로맨틱 코미디일 수는 없는 건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왜 삶은 그저 로맨틱 코미디일 수 없는 건지. 어쩌면 그런 체념이 우리를 로맨틱 코미디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잡아채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김도훈
Romantic Comedies의 여섯 유형 로맨틱 코미디의 내용이 다 똑같다고?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혹은 그 비스무리한 것)에 골인한다는 이야기의 뼈대 자체가 똑같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연애담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듯이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도 여러 가지 서브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프로포즈>처럼 여러 유형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영화들도 있다.
1. 마님 개과천선형 <환상의 커플>(1987), <노팅힐>(1999), <프로포즈>(2009). 도도한 마님이 하찮은 남자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 유형. 여기서 마님은 영화 배우(<노팅힐>), 갑부(<환상의 커플>), 여자 상사(<프로포즈>) 등 다양하다. 이 유형은 생각만큼 자주 영화화되지는 않는다. 도도한 마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관객이 적기 때문일까. <프로포즈>는 아래 설명할 적과의 동침형과 귀향 온고지신형을 모두 참고한 작품이다. 좀 더 모던한 마님 개과천선형이라고 할 수 있다.
2. 캔디 신분 상승형 <귀여운 여인>(1990),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러브 인 맨하탄>(2002), <내 남자 친구는 왕자님>(2004). 미천한 캔디형 주인공이 결국 신분이 높은 남자의 마음을 획득한다는 이야기.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장 전통적인 이야기지만 21세기에 반복하기에는 지나치게 구식이라 <귀여운 여인> 이후 볼 만한 작품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제니퍼 로페즈같은 여배우를 호텔 직급이라고 우기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3. 적과의 동침형 <프렌치 키스>(1995),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유브 갓 메일>(1998), <투 윅스 노티스>(2002),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2007), <사고친 후에>(2007), <뉴욕은 언제나 사랑중>(2008), <프로포즈>(2009), <어글리 트루스>(2009). 요즘 가장 인기있는 로맨틱 코미디 유형. 성격도 성향도 판이하게 다른 남녀가 끝없이 툭탁거리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전통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발전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의 멕 라이언과 2000년대의 샌드라 불럭이 이 유형을 도맡아서 연기한 대표적인 여배우들이다. 로맨틱 코미디 중에서도 비교적 덜 느끼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장점이다.
4. 고진감래 천생연분형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케이트와 레오폴드>(2001), <세렌디피티>(2001), <우리 사랑일까요?>(2005). 이 유형의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알고 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운명적으로 맺어지도록 하늘에서 점지한 사이라는 걸. 주인공들이 수많은 우연의 고난을 뚫고 결국 어떻게 사랑을 쟁취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 소개한 6가지 유형 중에서 코미디적인 요소가 가장 덜한 동시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5. 귀향 온고지신형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1997), <스위트 알라바마>(2002), <프로포즈>(2009).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차가운 도시 여자, 내 남자에게만은 따뜻하겠지형. 성공적인 도시형 커리어우먼이던 여주인공이 여차 저차 해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거기서 깨닫지 못했던 따뜻한 시골형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가장 미국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형태지만 한국에서도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라는 성공적인 변용이 있다.
6. 판타지 권토중래형 <사랑의 블랙홀>(93), <왓 위민 원츠>(2000), <케이트와 레오폴드>(2001),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2004), <첫 키스만 50번째>(2004). 종종 로맨틱 코미디에도 판타지나 SF적인 설정이 양념으로 첨가된다. 주인공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케이트와 레오폴드>), 시간에 발이 묶이거나(<사랑의 블랙홀>),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거나(<왓 위민 원츠>), 말도 안 되는 병을 얻는다(<첫 키스만 50번째>). 물론 이 모든 건 주인공으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하려는 시나리오 작가의 농간이다.
글 김도훈
Romantic Comedies Best 20 베스트 로맨틱 코미디 스무 편을 뽑았다. 다만 1977년 <애니 홀> 이후를 기점으로 잡은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에만 리스트를 한정했다. <해롤드와 모드>(1971), <모퉁이 서점>(1940),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무엇보다도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 같은 훌륭한 클래식 로맨틱 코미디들을 제외하는 게 가슴 아프긴 하다. 하지만 클래식 로맨틱 코미디와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는 어느 정도 다른 장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1.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My Best Friend’s Wedding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은 유독 국내에서만은 비평적으로 응당 받아야 할 찬사를 충분히 받지 못한 편이다. 줄리아 로버츠의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편견으로 이 영화를 놓친 관객이라면 다시 한 번 DVD를 감아볼 필요가 있다.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의 매력은 장르의 관습 속에 머물면서도 단 한 순간도 관습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마술 같은 플롯과 캐릭터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관객은 남자를 빼앗긴 줄리안(줄리아 로버츠)의 처지를 동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카메론 디아즈가 연기하는 머리 나쁜 금발의 상속녀 역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P. J. 호건은 두 여성 캐릭터 어디에도 무게 중심을 두지 않거나 혹은 모두에게 무게 중심을 두는 것으로 인생의 선택에 대한 우화를 완성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장르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다층적 페이소스로 가득하다. 줄리안의 시도는 실패한다. 결국 남자 친구는 키미와 결혼한다. 결혼식장에서 슬퍼하던 줄리안은 게이 친구 조지(루퍼트 에버렛)와 백만불 짜리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춘다. “서로 결혼하지 않고 섹스하지 않는다고 춤까지 멈춰서는 안돼.” 비평가 앤드루 새리스는 이 영화를 감히 에릭 로메르의 영화와 비견했다. 당연하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할리우드 상업 영화가 낳은 가장 훌륭한 로맨틱 코미디다. 먼 훗날에는 분명 클래식으로 평가받게 될 거다.
2. 애니 홀 Annie Hall 70년대 미국 영화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애니 홀>은 슬랩 스틱 개그로 시작한 우디 앨런의 재능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발전한 첫 작품이다. 누구 말마따나 프로이트, 베리만과 장 뤽 고다르가 합심해서 만든 듯한 코미디 영화라고 할까. <애니 홀>이 이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 자체가 불만인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디 앨런의 이 신경증적인 걸작처럼 로맨틱하고 코미디한 영화를 어디서 또 찾겠는가. <애니 홀>이 이후 관습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주드 애파토우의 <40살까지 못해 본 남자>나 해럴드 래미스의 <사랑의 블랙홀> 역시 우디 앨런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나오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1977년 오스카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나태한 오스카의 가장 현명한 선택 중 하나였다.
3.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이야 해묵은 질문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꽤 도발적인 물음이었다. 해리와 샐리가 10분 넘게 설전을 벌일 정도로 말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1990년대 연애담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영화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 끊임없이 애정을 확인하는 샐리 캐릭터는 이후 많은 연애물에서 수차례 반복됐다. 노년 커플들의 회상신을 삽입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구성은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긴 시간을 함께 하며 몸으로 부딪히고 느끼는 두 주인공의 사랑 혹은 우정은 여전히 그럴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멕 라이언의 달콤한 미소로 가득한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다.
4. 핑크빛 연인 Pretty in Pink 한편은 이 리스트에 들어가야만 했다. 문제는 그 많은 존 휴스의 브랫팩 틴 에이지 로맨스 중 뭘 골라야 하냐는 거다. 고민 끝에 고른 게 (아마도 가장 로맨틱 코미디적이라 할 만한) 몰리 링월드의 <핑크빛 연인>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존 휴스가 각본을 쓴 이 영화는 가난한 고등학생 소녀와 부잣집 소년, 가난한 소년의 삼각 관계를 통해 청춘의 풋사랑과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OMD의 주제곡 <If You Leave>만 들으면 몰리 링월드가 되어 핑크 드레스를 입고 춤추고 싶은 386세대 독자들 분명 있을 거다.
5.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라디오 방송과 테디 베어가 삐죽 나온 백팩.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떠올리면 이 두 가지가 먼저 생각난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고 장난 같은 운명에 몸을 내맡기는 용기는 모두 사소한 매개체를 통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편지와 그 마음에 연정을 느끼는 여자의 감정. 마술 같은 사랑은 시카고와 볼티모어 사이의 거리도 초월한다. 캐리 그랜트와 데보라 카의 <어페어 투 리멤버>를 인용한 엠파이어 빌딩에서의 첫 만남 장면은 지금 봐도 아찔하다.
6. 환상의 커플 Over board 한예슬과 오지호가 주연한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오리지널. 초호화 여객선을 소유한 백만장자 부인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뒤 무례하게 굴었던 목수에게 속아 평민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다. <환상의 커플>은 수많은 마님 개과천선형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을 제공했을뿐더러 현재는 미국 문화계의 상징적인 아이콘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후 게리 마셜 감독은 <귀여운 여인>, <프린세스 브라이드>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 주자로 한동안 군림한다. 케이트 허드슨의 엄마인 골디 혼의 매력이 절정에 달한 작품. 물론 형만한 아우 없고, 엄마만한 딸 없다.
7. 노팅 힐 Notting Hill 이 영화 때문에 노팅 힐을 찾은 사람이 많았다. 한창 유럽 여행에 바빴던 대학생들은 베낭을 메고 올랐고, 영화를 보며 군침을 흘렸던 청춘 남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톱 여배우와 책방 주인의 사랑이 펼쳐질 것 같은 곳. 동화 같은 사랑은 없어도 확실히 노팅 힐의 주말 시장은 다채로운 만남이 많아 보였다. 가볍게 들어간 가게에서 누군가가 당신의 옷에 오렌지 주스를 쏟는다면. 영화를 본 지 10년이 지났어도 왠지 들려올 것 같다. “제 아파트로 가시죠. 다른 옷을 드릴게요.” 이 대사가 말이다.
8.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사랑의 블랙홀>은 개봉한 지 어언 20여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잃어 버리지 않고 있다.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해럴드 래미스 각본의 위트있는 설정 덕분이다. 남겨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순간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의 덫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결말이 좀 진부하긴 하지만 빌 머레이의 시니컬한 매력이 약점을 상쇄한다. 90년대 초 로맨틱 코미디 전성 시대의 절정이자 빌 머레이식 코미디의 완성판. 혹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뛰어 넘는 인생의 우화. 한국어 제목이 썩 괜찮은 드문 영화이기도 하다.
9. 프리티 우먼 Pretty Woman 알고도 빠진다. 그게 사랑이다. 그리고 그게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다. 백마 탄 왕자와 몸 파는 여자의 만남 그리고 사랑을 그린 <프리티 우먼>은 줄리아 로버츠에게 할리우드 여왕의 왕관을 씌어준 작품이다. 현실감 제로인 것 같은 스토리지만 당시 트렌드를 재빠르게 잡아 적당히 버무리고 팝하게 터뜨린 영화는 1990년 미국 개봉 당시 5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거뒀다. 이 숫자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 역사상 톱 5 안에 들어간다.
10. 당신이 잠든 사이에 While You Were Sleeping “어차피 나는 혼자예요.” 쓸쓸히 내뱉던 외로움이 찡하게 다가왔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초등학생 시절 크리스마스 시즌의 영화가 <나 홀로 집에> 시리즈였다면 중학교에 들어와서 3년 내내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봤다. 1달러 50센트 짜리 토큰만 받으며 재미없게 살던 여자 루시가 한 남자를 기적적으로 구해주며 새로운 인연과 만난다는 이야기는 진부해도 절절했다. 사실 연애에 대한 꿈은 고독을 누일 자리를 찾으려는 마음과 같으니까. 세상 일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는 루시 부친의 말은 솔직히 우리 맘 속 깊이 숨겨 있는 바람일지 모른다.
11. 사고친 후에 Knocked Up 주드 애파토우의 영화가 코미디긴 하지만 로맨틱한가? 물론이다. 로맨틱하다. 다만 주드 애파토우의 캐릭터들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에 속한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에 좀 달라 보일 따름이다(다시 말하자면 루저들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다). 첫 주연을 맡은 세스 로건과 캐서린 헤이글의 연기 역시 미묘하고 현실적인 뉘앙스로 가득한 이 영화는 국내 개봉 없이 DVD로만 출시됐다. 이걸 놓친다면 21세기 가장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를 놓치는 거다. <40살까지 못해 본 남자> 역시 빼놓지 말자.
12.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이건 어른들의 이야기다. 아빠 손 잡고 가는 결혼식 말고 자기 이름 적은 봉투 내고 식장을 찾아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인생의 한 포인트를 지나며 혹은 누군가의 그 포인트를 지켜보며 깨닫는 인생 이야기는 가볍게 뿌리칠 수 없는 힘이 있다. 휴 그랜트가 세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다녀 오면서 그리고 자신의 첫 결혼식을 올리면서 얻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결론은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은 청춘에게 쓰리게 다가온다. 예상외의 흥행을 한 이 영국산 로맨틱 코미디는 미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둬 들였다.
13. 문 스트럭 Moon struck 노먼 주이슨의 로맨티스트적인 면모가 절정에 달한 영화. 30대 과부 셰어와 약혼자의 동생 니콜라스 케이지가 오로지 보름달의 마력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문 스트럭>은 처음부터 끝까지 푸치니의 <라보엠> 선율에 기분좋게 넘실댄다. 가수 출신 셰어는 이 작품으로 그 해 최우수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레드카펫 드레스가 아주 유명하다). 노먼 주이슨은 이후 마리사 토메이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온리 유>를 만들었다. 소문만큼 나쁘진 않다.
14.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 레코드 가게나 비디오 렌털 숍은 테이프를 고르는 옆 사람의 손끝이 은근히 신경 쓰이는 곳이다. 묘한 긴장도 흐른다. 잘하면 상대를 알 것 같고, 혹은 내 마음도 열어 보일 것 같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챔피언십 비닐도 그렇다. 손님으로서도 꼭 갖고 싶은 가게다. 고집스런 주인 롭 고든(존 쿠색)이 외모부터 성격까지 판이한 두 친구 딕, 배리(잭 블랙)와 어울리듯 싸우듯 시간을 보냈던 곳. 롭이 실연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도 챔피언십 비닐의 힘이다. 닉 혼비의 동명 소설을 느슨하게 기초해 만든 이 영화는 닉 혼비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15. 투씨 Tootsie <투씨>가 창조해낸 할리우드 코미디의 서브 장르가 하나 있다. 여장 남자 코미디 말이다. 마릴린 먼로 주연의 <뜨거운 것이 좋아>라는 원조가 존재하긴 하지만 남자 배우가 여자를 연기하는 상업 코미디 영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투씨> 덕분이었을 거다. 더스틴 호프먼의 여장 연기는 지금 다시 봐도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 학원 초급생으로 보일 만큼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호프먼은 83년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간디>의 벤 킹슬리에게 내줬다. 말이 되냐고요.
16. 제리 맥과이어 Jerry Maguire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업 멘트 중 하나를 남겼다. 르네 젤위거가 톰 크루즈에게 던지는 “You had me at hello” 말이다. 해석하자면 “첫눈에 반했었어요”다. 혹자는 영화 사상 가장 느끼한 작업 멘트라고도 하던데 여하튼 <제리 맥과이어>는 카메론 크로의 덜 자란 소년 같은 감성이 주류 할리우드식 각본과 멋지게 맞아 떨어진 영화다. 사실 이 자리에 카메론 크로의 데뷔 작품인 <금지된 사랑>(Say Anything, 1989)을 넣을까 하다가 관뒀다. 그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기엔 지나치게 가슴이 아프다.
17. 나의 그리스식 웨딩 My Big Fat Greek Wedding 문화 충돌이 로맨틱 코미디의 주요 모티브인 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얘기지만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이를 미국과 그리스의 충돌로 설정하면서 왁자지껄한 드라마를 끌어냈다. 그리스의 전통 문화를 고집하는 가정에서 불만스럽게 살아왔던 여자 툴라(니아 바르달로스)가 미국인 남자 이안(존 코베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사고 방식, 가치관 차이 정도의 충돌이 아니다. 서로의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소동이 쌓이고 쌓이면서 간신히 로맨틱한 결합이 이뤄진다. 단 한 차례도 1위를 하지 못했지만 기록적인 장기 상영으로 4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 수익을 냈다.
18. 뮤리엘의 웨딩 Muriel’s Wedding 성공이 최고의 복수라고 했나. 뮤리엘의 2막을 보는 건 신이 났다. 아바 음악에 빠져 살지만 친구도 애인도 없는 뚱보 뮤리엘은 부케를 받고도 결혼을 하지 못하는 여자다. 데이트 한 번 해본 적 없으니 처량한 신세를 부정하지도 못한다. 그녀가 시드니에 정착해 제2의 삶을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긴다. 가게에 오는 손님에게 데이트 신청도 받고 남자와의 첫 키스도 경험한다. 토니 콜렛이 무려 15kg을 찌워서 출연한 이 영화는 미운 오리의 판타지로 시작하지만 끝내 행복한 삶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 하나를 남긴다. 유쾌한 삶은 좋다. 하지만 모든 행복은 거짓없는 프라이드에서 온다고. 청춘을 위한 지침서가 있다면 꼭 챙겨 넣어야 할 영화다.
19. 내가 사랑한 사람 The Object of My Affection <프렌즈>가 차츰 인기를 모아가던 1998년에 제니퍼 애니스톤은 첫 번째 로맨틱 코미디 주연 작품을 내놨다. 역할은 경쟁 시트콤 <윌 & 그레이스>의 그레이스를 비극의 히로인으로 만든 듯한 게이 룸 메이트와 사랑에 빠져 괴로워하는 유대인 여자다. <조지 왕의 광기>와 <크루서블>의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은 이 전형적인 게이 스트레이트 러브 스토리에 현명함과 나이듦의 상관 관계에 속깊은 우화를 첨가해 낸다. 니콜라스 하이트너나 제니퍼 애니스톤의 팬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20.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 다소 시들 시들해진 속편은 보기 안쓰러웠지만 1편만큼은 유쾌하고 시원했다. 브리짓이야말로 30대 싱글 여성 캐릭터의 원조가 아닐까. 삼순이도 여기에 밑지는 게 많다. 애인은 물론 친구도 얼마 없어 홀로 죽어 방치되는 게 두려운 브리짓에게 두 남자가 찾아온다. 한 명은 매력적인 회사 보스 다니엘이고, 다른 한 명은 어릴 때 학급 친구였지만 지금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다아시. 신데렐라 판타지와 소꿉 친구 클리셰를 양축으로 리듬감 좋은 드라마를 뽑아낸 이 영화는 워킹 타이틀의 크레딧을 주목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글 김도훈
오드리 헵번부터 샌드라 불럭까지 로맨틱 코미디의 변천사와 얼굴들 샌드라 불럭의 신작 <프로포즈>를 본 관객은 대부분 여행 끝에 자기 집에 돌아온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도입부에 나오는 주인공의 마녀 캐릭터 묘사를 제외하면 <프로포즈>는 전형적인 샌드라 불럭식 로맨틱 코미디다. 불필요한 애교를 떨지 않고 친근하고 단순하며 귀엽다. 불럭은 결코 연기 폭이 좁은 배우가 아니고 출연한 작품들의 장르 역시 호러에서 아카데미표 드라마까지 넓게 펼쳐졌지만 대부분 관객은 이른바 샌드라 불럭표 영화가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주로 평범하고 감정 이입하기 쉬운 주인공을 내세운 여성 주도 영화로 여성간의 연대를 다룬 멜로 드라마이거나 로맨틱 코미디다. 여기서 불럭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에 제한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자. 불럭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불럭식 연기를 표출할 수 있는 익숙한 공간 중 하나다. 이 경우 로맨스 자체보다 이런 환경에서 불럭식 캐릭터의 주체성과 평등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불럭보다 몇년 전에 미국 로맨틱 코미디 시장을 평정했던 멕 라이언과 불럭을 비교해 보면 이 차이는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속해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성격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멕 라이언의 캐릭터들은 샌드라 불럭 캐릭터들의 주체성을 지니지 않았다. 그들은 씩씩한 현대 커리어우먼이기는 해도 그 귀여움으로 양성 관객 모두에게 어느 정도 타자화되어 있으며 비교적 쉽게 로맨스에 몸을 던진다. <프렌치 키스> <유브 갓 메일> <케이트와 레오폴드> 같은 영화들의 결말에 반복되는 포기의 모티브에 주목하자. 라이언 캐릭터는 로맨스가 진행되는 동안 국적을 포기하고 가게를 포기하며 심지어 나중엔 자기가 사는 시대까지 버린다. 라이언 영화에서 로맨스는 현실을 능가하는 절대성을 부여받으며 캐릭터의 주체성이나 평등성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라이언 캐릭터의 수명은 불럭 캐릭터의 수명보다 짧다. 불럭은 라이언과 달리 관객 앞에서 귀여움을 떨어야 할 필요가 없다.
멕 라이언이 빠진 함정은?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로맨스는 양날의 칼이다. 이 장르는 여자 주인공에게 평등한 역할 또는 거의 전적인 주도권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로맨스를 따라가다 보면 여성성과 전통의 영역에 서 어느 정도 타협을 보아야 한다. 성공적인 로맨틱 코미디 배우들은 대부분 이 아슬 아슬한 줄타기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전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만 몸을 담그는 사람들은 예상외로 적다.
이 장르에서 쉽게 떠올릴 만한 배우들인 르네 젤위거, 줄리아 로버츠, 드루 배리모어, 리즈 위더스푼과 같은 배우들을 보자. 이들은 모두 친근한 외모와 적절한 코미디 감각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이들 중 정작 로맨틱 코미디에만 매진하는 배우들은 찾기 힘들다. 이들 중 그나마 진짜 전문가라고 할 배우는 <웨딩 싱어> 이후 꾸준한 로맨틱 코미디의 계보를 이어 왔던 드루 배리모어 정도. 배리모어도 <미녀 삼총사> 시리즈처럼 장르 외의 히트작들을 많이 가졌다. 이들 중 리즈 위더스푼처럼 이미지와 달리 로맨틱 코미디는 손에 꼽을 정도인 배우들도 있다(깜빡 잊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금발이 너무해> 시리즈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성공적인 로맨틱 코미디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꾸준한 현실 감각이 필수적이며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결코 장르에 갇혀서는 안된다. 바로 그것이 멕 라이언이 빠진 함정이다.
1950년대엔 오히려 남성이 최대 스타 그럼에도 우리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는 말을 이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한다는 건 여전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의심이 된다면 멕 라이언 이전에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몇이나 되는지 보자. 생각외로 별로 없다. 다이앤 키튼은 어떤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배우지만 <애니 홀>과 같은 키튼의 로맨틱 코미디 대표 작품들은 대부분 우디 앨런 영화이다. 키튼보다 앨런이 먼저다.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하오의 연정>, <샤레이드>와 같은 작품들에 출연했던 오드리 헵번은 어떤가? 모두 매력적인 작품들이고,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도 어울리며 헵번의 개성도 완벽하게 반영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린 오드리 헵번을 로맨틱 코미디의 전문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로맨스가 가미된 뮤지컬 코미디 영화가 대표작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릴린 먼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칙 플릭 또는 칙릿 시대를 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로맨틱 코미디와 당시의 로맨틱 코미디 사이에는 분명한 개념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사회와 함께 변화한 여성 관객이다. 당시 여성 관객도 로맨틱한 코미디에 출연하는 오드리 헵번과 마릴린 먼로를 바라보면서 그들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헵번과 먼로는 그들이 현실 세계에서 도달할 수 없는 꿈의 영역에 존재하는 감상과 환상의 대상이었다. 특히 마릴린 먼로에 온전히 감정 이입할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멕 라이언 이전에도 이 장르의 전문가로 분류되는 여성 배우들은 꾸준히 존재해왔다. 이 경우 멕 라이언처럼 여자들의 이름만 뜨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도리스 데이는 어떤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만을 이야기할 때 데이의 이름은 혼자 뜨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는 언제나 데이를 록 허드슨의 짝으로 기억한다. 캐서린 헵번은 어떤가? 물론 이 사람 옆에는 스펜서 트레이시가 있다. 윌리엄 파웰이 없는 머나 로이, 프레드 아스테어가 없는 진저 로저스를 상상하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 장르에서 최대 스타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 그는 캐리 그랜트다. 요새 로맨틱 코미디의 남성 전문가로 불리는 휴 그랜트와 캐리 그랜트의 입지를 한 번 비교해 보라.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보인다. 40년대나 50년까지만 하더라도 로맨틱 코미디는 여자들만 보는 장르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개념이 아직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보면 당시의 스크루볼 코미디는 모두 로맨틱 코미디지만 그럼에도 로맨스라는 단어를 장르 이름에 부착하지는 않았다.
시작은 혁명적이지만 안주하는 현실은 아쉬워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캐서린 헵번이나 로잘린드 러셀, 바버라 스탠윅과 같은 배우들이 이런 식의 코미디에 출연했을 때 영향력이 더 컸다. 위트의 성 대결이라고 할 이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화려하게 여신화된 할리우드식 여자 주인공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의 캐릭터로서 세계에 참여했다. 그 세계라는 것이 존재 자체가 괴상할 정도로 괴상한 논리에 의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곳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 세계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헵번·트레이시 코미디가 그랬던 것처럼 비교적 현실에 가까운 세계를 사는 현실적인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물론 1950년대의 사내 정치가 <데스크 세트>와 같은 것이었다고 순진하게 믿을 필요는 없다. <프로포즈>의 출판사 묘사가 사실적이라고 우길 필요도 없지 않은가.
지금 와서 비교해 보면 지금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는 당시 스크루볼 코미디가 가졌던 혁명성이 없으며 그것은 당연하다. 당시에는 혁명을 통해서만 쟁취할 영역이 지금은 안주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이후 20년 가까운 시기를 지나오는 동안 로맨틱 코미디의 영역은 기성품화되었다. 우리에게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바로 그 기성품화된 성격 때문이다. 이것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명칭은 이전처럼 배우들의 입지를 강화해주지는 못한다. 멕 라이언과 샌드라 불럭은 적절하게 흐름을 타고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았다. 그 중 불럭은 40대 중반인 지금도 꾸준히 불럭표 영화를 만든다. 그 자리가 캐서린 헤이글이나 아만다 바인스와 같은 새로운 배우들이 편안하게 안주하며 팬들을 끌어 모을 만한 자리이긴 할까? 20년은 긴 시간이다. 배우이건 장르이건 슬슬 변화를 준비할 때가 된 것이다.
글 듀나(DJUNA) SF 작가·영화 평론가
개봉 대기중인 Romantic Comedies 7편
<S러버> Spread 데이비드 매킨지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다. 의외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사실 <할람 포>와 <영 아담>도 로망스에서 시작한 드라마였다. 곧게 뻗지 못한 욕망이 음침한 그늘을 만들었고 인물들은 그 안에서 소동했다. 패트릭 맥그래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어사일럼>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릴러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영화는 일상의 구멍으로 사람들을 밀어넣고 그들의 솔직한 욕망을 지켜봤다. 가장 온건하게 변하긴 했겠지만 <S러버> 역시 데이비드 매킨지의 특색이 묻어나는 영화다. 주인공 니키(애시튼 커처)는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하며, 관능적이고 은밀한 남자. 솔직한 욕망과 대범한 생활의 주인공이다. 변호사인 사만다(앤 헤이시)와 동거 생활을 하면서도 자유로운 연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양지에 나온 데이비드 매킨지의 인물 같다. 하지만 사건은 새로운 여자의 등장이다. 바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자 헤더(마가리타 레비에바)는 니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연애의 난관 앞에서 니키는 고민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알게 된다. 주로 달콤한 장난꾸러기였던 애시튼 커처가 당돌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어글리 트루스> The Ugly Truth 연애의 8할은 싸움이다. 이 추한 진실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지 못하는 연애의 속성이다. 말이 너무 많아서 싸우고, 말이 너무 적어도 싸우고, 마음이 찰떡같이 맞으면 싫증이 나 싸우고, 너무 어긋나면 한계를 느껴 싸우는. 끝이 없는 전쟁이다. <어글리 트루스>의 두 남녀 애비(캐서린 헤이글)와 마이크(제라드 버틀러) 역시 마찬가지다. 모닝뉴스쇼의 PD로 일하는 애비와 심야 TV쇼의 섹스 카운슬러로 일하는 마이크는 일단 서로 너무 다르다. 순애보의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남자 앞에만 서면 긴장하는 애비와 달리 마이크는 여자의 마음속을 10리 너머까지 들여다본다. 그러니 둘이 부딪치면 싸움이 날 수밖에. 영화는 시끄럽기만 했던 애비와 마이크의 싸움을 연애 코치와 제자의 관계를 만들어 접점을 찾아낸다. 내숭 9단 애비는 스스로 부정했던 여자의 속성을 마초 9단 마이크의 지적으로 깨닫는다. <300>의 짐승 같은 주인공 제라드 버틀러가 마이크로, <그레이 아나토미>의 똑 부러지는 여자 캐서린 헤이글이 애비로 출연한다.
<러브 매니지먼트> Management 로맨틱 코미디의 소장르처럼 되어 버린 게 싱글녀들의 솔로 탈출기다. 탄탄한 직업에 그럴싸한 외모, 원만한 성격에 나쁘지 않은 패션 센스까지 가졌지만 남자 친구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이들. 어쩌다 만난 남자일 테니 실수도 많고 좌충우돌도 많은 게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밖에. 제니퍼 애니스톤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러브 매니지먼트> 역시 같은 유의 영화다. 일의 스케줄 관리는 물론 인생의 모든 걸 철두철미한 계획과 확고한 철학으로 관리하는 수(제니퍼 애니스톤)는 사랑이 기다리면 절로 찾아오는 건 줄 알고 살았다. 주변의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남녀처럼 일정 나이가 지나면 애인이 생긴다고 믿었다. 이게 철 없는 어린 아이의 망상이란 건 누구나 안다.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남자에 지쳐가던 수. 우연히 마이크(스티브 잔)란 남자를 만나긴 하는데 연애 관리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통 모르겠다. 최근 <선샤인 클리닝>, <퍼펙트 겟어웨이> 등에 출연한 스티브 잔이 제니퍼 애니스톤의 상대 역활이다.
<이지 버츄> Easy Virtue 영국과 미국이 부딪힌다. <이지 버츄>는 미국 여자와 영국 귀족 남자의 연애담이다. 동시에 미국 며느리와 영국 시어머니의 대결담이기도 하다. 노엘 코워드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이지 버츄>는 20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가문을 중시하는 집안의 존 휘태거(벤 반스)가 우연히 만난 미국인 라리타(제시카 비엘)와 사랑에 빠지고 몰래 남프랑스에서 결혼식까지 올린 다음 시댁에 간 존과 라리타는 사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난관에 부딪힌다. 시어머니인 베로니카(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평범한 미국인 며느리가 탐탁지 않아 그녀의 과거를 캐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라리타가 과거 이미 한 번의 결혼을 했고, 전 남편과 사별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시어머니와의 갈등뿐 아니라 이젠 남편과 틀어진 사이도 고민해야 하는 라리타. <프리실라>, <아이 오브 비홀더> 등을 연출했던 스티븐 엘리엇이 메가폰을 들었고,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의 왕자 벤 반스가 영국 귀족 남자로 출연한다.
<처음 본 그녀에게 프로포즈하기> Wedding Daze 연애가 매번 어려운 것도 아니다. 보통은 긴장한 상태에서 뜸들이고 사랑 고백을 하겠지만 별 고민없이 프러포즈를 할 때가 있다. <처음 본 그녀에게 프로포즈하기>가 딱 그런 경우다. 약혼녀의 죽음으로 1년을 폐인처럼 산 앤더슨(제이슨 빅스)은 친구의 충고에 객기로 청혼을 한다. 상대는 처음 본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케이티(아일라 피셔). 그런데 대답이 예스다. 전날 남자 친구에게 받은 프러포즈가 좋지도 싫지도 않았던 케이티는 처음 보는 남자의 엉뚱한 제안을 받아 들인다. 이렇게 시작된 연애가 쉬울 리 있나. 상대 마음을 뒤집었다 내 마음을 의심했다를 수십번. 영화는 코미디와 로맨스를 뒤죽 박죽 오간다. 코미디언 출신의 마이클 이안 블랙,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의 제이슨 빅스가 뭉쳤으니 화장실 유머도 물론 듬뿍 들어 있다. <쇼퍼 홀릭>의 아일라 피셔 역시 망가지며 그 유머에 대응한다. 2008년 영국에서 개봉해 첫 주 박스 오피스 2위에 올랐으며, 토론토 국제 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
<대화가 필요해> Couples Retreat 어른들의 디즈니랜드 보라보라 섬에 네 커플이 여행을 간다. 한 커플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휴양지에서 주고 받고, 나머지 세 커플은 제트 스키와 스파를 즐기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태닝과 물놀이, 시원한 바람과 푸짐한 먹을거리가 즐겁지만 갑작스레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네 커플 참여 조건부를 단 이 패키지의 여행은 커플 치료 상담을 필수 항목으로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문제를 하나 둘씩 품고 있었던 네 커플은 속내를 꺼내 놓아야 하는 상담 치료 앞에서 심각한 상황과 마주한다. 빈스 본의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배우 존 파브로, <라스베가스에서 생긴 일>의 각본가 다나 폭스가 시나리오를 썼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커플의 작지만 다채로운 소동이 볼거리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샬롯, 크리스틴 데이비스가 빈스 본과 커플을 이뤘다.
<까칠한 그녀의 달콤한 연애 비법> Cake 결혼은 커리어우먼에게 끝이다. 피파(헤더 그레이엄)의 신조다. 연애는 하나 결혼엔 반대인 피파는 일과 사랑을 모두 손에 넣은 완벽한 여자다. 8년 동안 세계를 돌며 여행 작가로 일하는 중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로맨틱한 웨딩 잡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쓰러져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묘안이니 거절할 수도 없다. 결혼을 끔찍이 싫어 하는 피파가 결혼을 클래식한 아름다움의 결실처럼 꾸며야 한다. 게다가 포토그래퍼 헤밍웨이(타예 딕스)와 아버지의 부하 이안(데이비드 서클리프)은 피파의 독신 철학을 테스트하기 시작한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여의사 샌드라 오가 감초 같은 피파의 친구로 등장한다.
글 정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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