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새벽에 드리는 ‘고난기도회’(월)
“굿모닝!”
⁋ 묵상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1-3)
⁋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 성경- 마가복음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 말씀
고난주간 월요일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날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마지막 사역은 갈릴리에서 첫 사역과 대비된다.
성전 정화(엘 그레코, 1610-1614)
안식일에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 들어 가셨다.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주요 지역으로 해변길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 만큼 소문이 빨리 퍼지는 곳이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하였다. 먼저 나사렛 목수 출신인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지혜를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22).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내용에서 다른 종교인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설교는 어땠을까? 아마 종교인이며 지식인들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무관했을 것이다. 형식적인데 얽매여 고루하였고, 별 것 아닌 주제로 시간을 낭비하며, 중언부언하였을 것이다.
떠돌이 설교자에 불과한 예수님을 당시 신학전문가인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비교한 것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예수님의 권위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중에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
더러운 귀신에 들린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악령의 포로가 된 채 선한 의지와 도덕성이 완전히 상실된 존재이다.
더러운 귀신은 회당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즉각 예수님과 자신 사이에 방어벽을 치면서 경계한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24).
여기에서 나사렛 출신을 강조한 것은 예수님을 조롱하려는 의도이다. 비천한 동네에서 온 설교자임을 밝혀 예수님과 청중들을 분리시키려고 한다. 자기는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아마 영적으로 피차 알만한 사이이니,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타협안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귀신들린 자를 꾸짖으신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5).
귀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끼어 들 여지가 없다.
예수님의 방법은 당시 귀신을 쫒아 내는 사람들과 방법이 달랐다. 퇴마사들은 주문이나, 요술, 마술적 의식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고 간단하게 명령하셨다. 그 결과를 보라.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26).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느낀 진정한 권위는 권위 있는 말씀과 권위 있는 행위 때문이었다. 그들은 평생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악한 귀신조차 순종하는 권위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복음은 악한 세력과 영적인 싸움이요, 악의 지배에 대한 의의 전쟁이었다.
공포에 싸인 당시 사회를 향해 평안을 전하는 일이었다.
더러운 영의 지배를 받고 사는 고달픈 인생에 대한 자유함의 선언이었다.
안셀름 그륀은 예수님의 악령치유 기적을 가리켜 “무의식의 은신처에 숨어있는 더러운 영을 밖으로 끌어낸 일”이라고 보았다.
세상에!
회당 안에 귀신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회당은 더러운 귀신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곳은 지역에서 영적 중심이며, 기도와 가르침의 장소인 회당이 아닌가?
만약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사람들은 ‘거룩함’이 아닌, 그런 귀신의 존재 때문에 ‘더러움’을 계속 배웠을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예수님이 회당에 오심으로 회당이 회당다워졌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27).
사람들이 놀란 까닭은 ‘권위 있는 말씀’ 때문이고, 귀신을 쫓아낸 신적 능력 때문이고, 회당을 회당답게 하신 때문이었다.
‘새 교훈’은 세상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참 권위는 바로 악을 몰아내는 능력, 아픔을 치유하는 능력,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는 능력,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복음에는 거룩하고, 생명력이 있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가버나움으로부터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나갔다. 새 교훈 때문에 회당은 회당다워지고, 거룩함을 회복하였다.
고난주간 월요일은 성전정화의 날이다.
성전개혁은 어떠한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진짜 계명’, ‘진짜 예배’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진짜인가?
과연 우리의 교회는 성전다운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못하면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입에 발린 ‘복음적’이 아니라, ‘예수복음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소굴을 뒤집어엎고, 참 성전을 회복하자.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쳐주시고, 그리 행동하셨더라.
지금 내 마음의 성전은 어떤가? 내 마음은 거룩하고 참되게 예배하는가? 아니면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는 않던가?
우리는 순간순간 바른 선택을 위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야 한다.
고난주간은 다시 예수님을 배우고, 닮고, 따르려는 시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 집중함으로써 나를 새롭게 하고, 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기도
이 시간 부족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난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마음으로 고난주간 새벽기도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하는 귀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주님 주의 피 값으로 구원하신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이 땅의 교회들이 온전히 주님의 공의를 회복하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의 삶을 위해 일용할 양식들을 구합니다.
먼저는 이 나라에 항구적인 평화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잡힐 것만 같았던 화해와 공존의 발걸음이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습니다. 우리와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의 평화와, 이 땅의 평화를 통한 인류 평화의 소망이, 주님의 주권적 역사로 실현될 것을 믿습니다.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색동공동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몸이 아픈 교우들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지금처럼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의 전통과 품성을 지켜가게 하옵소서.
색동공동체 안에 속해 있음으로 얻는 평화와 안정이 우리 각자의 삶에 응원과 양식이 됨을 고백합니다. 주님 허락하신 이 축복과 감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믿음의 유산으로, 신앙의 표징으로 전하게 하시고 우리 교회학교와 청년들에게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각자의 삶속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톨레레게를 통한 말씀의 양식을 주시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가정을 부양할 물질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맺어가는 관계를 살피소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평화를 나누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우리가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로 모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되게 하시고, 오고 가는 새벽길, 안전으로 동행하여 주옵소서. 고난주간을 지내는 우리의 삶도 기도와 경건으로 채워지게 하시고, 고난 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아픔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며 내 몫의 십자가를 살피는 고난주간 되기를 소원하며,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기도문
“오늘도 주님의 평화!”
* 위 기도문은 남궁상 집사님이 드린 고난기도문입니다. (2019년 4월 15일, 월)
첫댓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참된 예배자로 바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 집중하는 고난주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고난주간이 되려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아픔을 함께 하는 기간되기 원합니다.
나를 도우소서
https://youtu.be/ELodMBRrK9k
PLAY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를 통해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경건한 한 주간의 삶을살게하소서.
주님. 바르게 서게 하옵소서. 주님 저를 바르게 서게 하옵소서
먼저 제 마음의 성전이 바로서게 하옵소서.고난주간동안 십자가의 보혈을 묵상하며 새롭게 거듭나길원합니다.
무의식의 은식처에 숨어있는 더러운 영
을 끌어내 마주서고. 주님께 영광
이번 고난 주간을 통하여 내 마음의 성전이 깨끗이 정화되고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 하며 내 삶이 변화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예수여, 주시는 말씀의 능력을 통해 내 삶이 진정한 '복음적' 삶의 모습으로 고쳐지고 회복되도록 오늘도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악으로부터 구하여 주소서. 매일 매일 내 마음의 성전을 깨끗이 할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이 떠져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귀와 기도하는 입이 주님을 향하여 열리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고난주간을 맞아 나부터 정화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