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17 (화) 윤석열의 초라한 퇴장… "결코 포기않겠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12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1시간 뒤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저는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 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 1시간 지나 그의 직무는 정지됐다. 마지막 메시지에 반성과 사과는커녕 지지층을 향한 자극적인 발언이 넘쳤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앞둔 상황에서 또다시 국론 분열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발언 수위에 비해 초라한 퇴장이었다. 2016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직후 국무회의를 열어 국정과제 이행을 당부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앞서 12월 3일 불법계엄 선포 과정에서의 국무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요구가 거센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12월 15일 “당초 국무회의가 열릴 계획도 없었지만 어떤 부처도 탄핵 당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 임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신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 없는 메시지를 통해 지지층에 직접 호소했다. 대통령실을 통해 낸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는 무너져 있었다”며 “자영업자의 절망, 청년들의 좌절이 온 나라를 채우고 있었다”고 전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끝까지 몰아세웠다. “이제 폭주와 대결의 정치에서 숙의와 배려의 정치로 바뀔 수 있도록 정치문화 제도를 개선하는 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고 야당을 거듭 겨냥했다.
한남동 관저에서 탄핵안 통과 상황을 지켜본 윤석열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탄핵심판과 내란죄 혐의 수사, 재판에 대한 준비에 나섰다. 조용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계엄 선포 이후 이미 주변에 “직접 변호하겠다”, “변론 요지서 써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직무가 정지된 만큼 대통령실이 직접 조력할 수는 없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외 인터뷰나 메시지를 전파하는 방식을 쓸 가능성도 거론된다.
직무정지 상태에서는 국군통수권, 공무원 임면권을 비롯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일절 행사할 수 없다. 국무회의 주재 등 국정 관련 업무도 모두 중단된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통령이라는 신분은 박탈당하지 않는다. 경호처의 보좌와 의전도 그대로 유지된다. 관용차와 전용기도 법적으로는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출국금지된 상태다. 관용차로 개인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 기간에도 업무추진비 등을 제외하곤 월급을 그대로 받는다. 대통령실 참모들과 간단한 비공식 접촉은 할 수 있지만 공식 보고나 업무와 관련한 지시는 금지된다. 참모들도 서로 왕래하기엔 부담이 크다. 과거 청와대를 집무실로 쓰던 때는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관저가 청와대 내에 위치해 은밀하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현재는 대통령실과 관저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동선이 곧바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 윤석열 똑닮은… '탄핵 평행이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2월 14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2024년 한국 사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2016년의 한국 정치·사회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평행이론이 재조명 받고 있다. 2024년에도, 2016년에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이나 글로벌 밴드 콜드플레이가 내한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다만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은 탄핵소추안 ‘이탈표’ 규모다. 8년 전 탄핵안 표결 땐 이탈표가 60표를 넘어섰으나 이번에 나온 이탈표는 12표 안팎에 그쳤다.
12월 14일 두 번째 시도 만에 가결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여당에서 최소 12명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은 무기명 비밀투표 결과 재석 의원 300명 중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집계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포함해 범야권 192명이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여당 의원 108명 중 12명이 '가(可·찬성)'를 적었다는 것이다.
기권·무효투표 11명까지 더해 '반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탈 규모를 23명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원내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이탈표는 찬성 투표한 12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이탈표 규모는 8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안 표결 때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서 나왔던 이탈표에 견줘 봤을 때 예상만큼 많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2016년 12월 박근혜 탄핵안 표결에는 1명이 불참했고, 234명이 찬성, 56명이 반대, 7명이 무효표를 던졌다. 당시 범야권 의석 172명을 고려할 때 새누리당 128명 중 62명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에서 나온 이탈표의 5배가 넘는 규모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 국민의힘 이탈표 규모를 두고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친다"며 "우리 원내지도부 차원에서 파악했던 것보다 작은 규모"라고 말했다.
담 넘고, 집에 안 가고… 우원식 신뢰도, 이재명·한동훈 앞섰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탄핵 정국 속에서 법 절차를 준수하며 안정적으로 입법부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덕수 국무총리,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을 제치고 정계 요직 인물 신뢰도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12월 15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12월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2명에게 최근 정계 요직 인물에 대한 개별 신뢰도를 물은 결과 우원식 의장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6%로 1위였다.
신뢰하지 않는다(불신)는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정치인 중 신뢰가 불신보다 높은 유일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여야의 차기 대권 후보나 한덕수 국무총리 등보다도 월등히 앞섰다. 이재명 대표는 신뢰한다는 의견이 41%(불신 51%)였고, 한덕수 총리는 21%(불신 68%)였다. 한동훈 대표는 신뢰도가 15%(불신 77%)에 그쳤다. 해당 조사는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조사는 아니었으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나온 수치인만큼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수습 국면에서 우원식 의장의 리더십은 재평가 받고 있다. 특히 비상계엄 당시 우원식 의장은 67세의 나이에도 경찰과 계엄군이 국회를 봉쇄한 국회의 담장을 넘어 본관으로 진입, 계엄 해지 결의안이 가결되기까지의 과정을 이끌어 호평을 받았다. 당시 개의 준비 동안 국회 본청에는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진입해 이를 막아서는 의원 보좌진들과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은 “당장 개의해서 계엄 해제 요구안을 상정하라”며 재촉했지만, 우원식 의장은 “절차적 오류 없이 의결해야 한다.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그는 “밖의 상황을 잘 안다. 이런 사태엔 절차를 잘못하면 안 된다. 비상한 각오로 다 바쳐서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후에도 우원식 의장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공관으로 퇴근하지 않고 국회 집무실에서 비상대기하겠다”고 밝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우원식 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부딪혔기에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국회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며 “김근태 형님의 유품인 연두색 넥타이를 매고 속으로 ‘형님,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라고 다짐했다”고 적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끝까지 적법하게 절차를 준수해 최종적인 해제 결의까지 끌어낸 과정이 저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과도하게 정국에 개입하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주 16%에서 11%로 5%포인트 하락하며 또다시 최저치를 경신했다.
직무 수행 부정 평가 이유 1위는 ‘비상계엄 사태’로 49%를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동반 하락해 지난주에 비해 3%포인트 떨어진 24%를 기록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다. 민주당 지지도는 지난주 37%에서 40%로 3%포인트 오르며 현 정부 출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12월 13일 공개된 이 조사는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5.8%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참고하면 된다.
서예가 이철경(李喆卿) 1914 – 1989 / 호 갈물
본적을 강원도 원성군 지정면 간현리로 두고, 1914년 6월 3일 경기도 개성시에서 출생하여 1989년 6월 14일 서울에서 76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는 교육자, 의사, 한글학자, 민족주의자인 이만규의 3녀로, 전 서울고교 교장이었던 교육자 서정권의 부인으로, 가수이자 방송인인 둘째 아들 서유석 등 3남 2녀의 어머니로, 40년을 교육자로, 60년을 예술가로, 수십 년을 여성운동가로 일인 다역의 삶을 살아온 추앙 받는 모범여성이다.
그는 예술가로의 우리말조차 사용하기 어렵던 일제시기와 현대를 살면서 자신의 전공인 음악 보다 한글서예가로 남궁억(1863~1939), 윤백영(1888~1986) 등과 더불어 한글궁체의 서 예술화 활동을 왕성하게 해왔고, 더불어 오늘의 한글서예를 정착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철경․각경(珏卿)․미경(美卿) 세 자매가 모두 한글서예에 침혹(沈惑)하여 뛰어난 필재(筆才)를 발휘하였는데, 각경과는 쌍둥이다.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를 졸업, 1938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강사, 배화․이화․진명․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고, 1960년부터 1979년까지 금란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일찍이 1948년 문교부 검인정교과서 검정위원과 서예교과서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갈물한글서회를 창설하였으며,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 여성교육자회 회장, 사단법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한일여성친선협회 이사,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단 자문위원,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회장, 국정자문위원 등을 두루 역임하여 여성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8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고, 미경과 자매전을 캐나다와 미국에서 열었으며, 1991년 《갈물 이철경서 집》을 발간하였다. 이밖에도 많은 단체전에 참가하였으며, 수상으로는 1929 ~1930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국학생작품공모전 서예부문에 입상하였고, 1969년 제1회신사임당상, 1974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궁체쓰는 법》․《초등글씨본》․《중등글씨본》․《한글습자 가정편지틀》․《한글서예》․《한글》 등이 있다. 초,중등글씨본 6권은 우리나라 최초의 글씨본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관동별곡〉․〈속미인곡〉․〈김활란박사 묘비〉․〈신사임당동상 명문〉․〈육영수여사 묘비〉․〈유관순열사 기념비〉․〈독립선언문〉․〈고당 조만식선생 어록비〉․〈이승만박사 어록비〉․〈나의 소원〉(白凡 金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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