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의 노래, 소슬바람, 하늬바람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 ◼박강수
◀숨어 우는 바람 소리 ◼전유진
◀갈바람 ◼전유진
◀하늬바람 ◼정다경
◀바람 바람아 ◼정서주
◉ 초가을로 들어서면서 뒷산 계곡 주변 습지에 별사탕이 잔뜩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만났던 바로 그때 그 자리입니다.
논두렁 근처에도 요즘엔 이 별사탕이 흔합니다.
군대에서 건빵에 보너스로 들어있던 별사탕과 같아서 보는 순간 입안에 단맛이 돕니다.
바로 초가을 습지식물의 대표주자 고마리입니다.
◉ 핑크색과 하얀색이 섞인 별사탕 닮은 꽃을 피우는 고마리는 꽃이 작습니다.
그래서 열 개, 스무 개 무리 지어 피면서 하나의 꽃 무리를 이루어 벌들을 부릅니다.
그런 전략을 쓰지 않아도 어차피 벌들이 찾아오게 돼 있습니다.
가을로 접어든 시기에 대표적인 밀원식물이 바로 고마리이기 때문입니다.
별사탕을 깨물어 먹듯이 벌들도 고마리의 달콤한 꿀을 뽑아갑니다.
고마리의 꽃말이 ’꿀의 원천‘이 된 이유를 알만합니다.
◉ 고마리는 곤충에게만 인기 있는 식물이 아닙니다.
지상보다 두 배 이상의 몸체가 땅속에 있습니다.
그 뿌리들은 지저분한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고 물고기에게 산란장소를 제공합니다.
갈대의 물속 잔뿌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고마리의 메밀과 비슷한 열매는 구황식물로 재배되기도 했습니다.
소에게도 좋은 먹이가 됩니다.
고마리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논란이 있지만 역할이 많아
칭찬해 주고 싶은 이 식물의 이름이 ’고마우리‘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해도 괜찮을 듯합니다.
◉ 고마리 줄기에는 아래로 굽은 잔가시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동물이나 사람의 옷에 붙어 활동 범위를 넓혀가기 위한 장치입니다.
화살촉처럼, 창검처럼 생긴 잎의 모양도 특이합니다.
고마리는 눈에 보이는 별사탕 모양의 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꽃은 땅속에 있습니다.
◉ 땅속까지 찾아오는 벌레는 물론 없습니다.
그래도 걱정할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꽃가루로 가루받이하는 폐쇄화(閉鎖花)입니다. 제비꽃과 같은 전략입니다.
고마리는 한해살이풀이라 부모는 그해 시들어 죽습니다.
그래서 멀리 가지 못하는 씨앗은 다음 해 그 자리에서 다시 대를 이어 나타납니다.
◉ 반면 땅 위의 고마리는 넓은 세계로 나가서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가시에 붙어 이동하기도 하고 새의 먹이가 된 뒤 배설물 섞인 씨앗으로 다른 세상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기도 합니다.
식물들이 자손을 퍼뜨리고 번식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 그 가운데 씨앗을 바람에 실어 세상 곳곳에 넓게 퍼트리는 식물들도 있습니다.
민들레가 대표적인 식물로 민들레 홀씨는 바람과 함께 춤을 추며 날아가 150 Km 떨어진 먼 곳에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민들레는 희망의 홀씨를 멀리 보내기 위해 바람 부는 맑은 날을 기다립니다.
◉ 두 장소 사이에 기압과 온도 차이에 따라 공기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 바람입니다.
온도 차가 클수록 빠르게 붑니다.
기압 차가 클수록 세게 붑니다.
간단한 것 같은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너무 많아서 종류도 많고 이름도 많습니다.
계절별로 이름이 있고 방향별로 이름이 있습니다.
◉ 이 바람의 흐름은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큰 영향을 줘왔습니다.
그래서 특히 문학과 음악 등 창작물 속에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로 등장해 왔습니다.
특히 가을에 부는 선선하고 서늘한 바람은 예사롭지 않은 감성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 가을바람은 흔히 소슬바람이라고 부릅니다.
가을에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주며 부는 으스스한 바람이라고 국어사전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자어로 퉁소 ’소(簫)’와 큰 거문고 ‘슬(瑟)’로 적는 게 재미있습니다.
퉁소나 거문고 소리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는 바람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가을에 벼 이삭이 소슬바람에 춤추며 익어가는 풍경은 쓸쓸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가을 분위기를 타고 흐르는 바람의 노래들을 만나봅니다.
◉ 여름꽃들이 하나둘씩 지고 가을꽃들이 나타나는 요즈음입니다.
바람이 불면 지는 꽃들은 안쓰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꽃의 말을 빌려서 바람이 비켜 가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가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 입니다.
1992년 예민이라는 재능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만들었습니다.
박선주의 ‘귀로’를 작사 작곡했던 뮤지션입니다.
◉ 예민이 가요계를 떠난 뒤 이 노래를 널리 알린 가수는 가을 이미지를 가진 포크 가수 박강수입니다.
2006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박강수는 작은 음악회 생방송을 계속하면서 이 노래를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동시에 이 노래로 박강수라는 가수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작사 작곡한 ‘가을은 참 예쁘다’가 크게 사랑받았지만 박강수가 올해 연 콘서트의 제목은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 이었습니다.
◉ 지난해 KBS 인간극장은 박강수의 가을을 닮은 노래 인생을 따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꽃이 지고 작은 꽃씨를 남기고 길을 따라 시간을 맞이하고 싶어 바람을 기다린다’는 마지막 노랫말에 여운에 남습니다.
https://youtu.be/FN4rfiGfj54?si=r89fhnvMlN4cYPwN
◉ 소슬바람은 가을 갈대밭이나 억새밭을 스쳐 지날 때 제대로 이름을 얻은 바람 같습니다.
스치는 소슬바람에 억새는 은발을, 갈대는 텁석부리 머리칼을 휘날리며 몸을 흔들어 댑니다.
그 모습이 장관이라 많은 사람이 가을에 ‘ 억새밭과 갈대밭은 찾습니다.
그 광경이 생각나게 만드는 노래, ‘숨어 우는 바람 소리‘ 입니다.
◉ 지금은 가요계를 떠난 이정옥이 1993년 가요제 대상을 받았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열여덟 상의 여고생 전유진의 노래로 듣습니다.
올해 한일 트롯 대전에 나설 한국 측 대표를 선발하는 ‘MBN 현역 가왕’에서 우승한 전유진입니다.
전유진은 ‘현역 가왕’ 결승 1라운드에서 이 노래로 1위를 한 데 이어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원곡 가수와 다른 힐링과 감동을 안겨주는 전유진의 커버곡입니다.
https://youtu.be/H5U4MaK0lkk?si=CdivKmx3tVFbGEKI
◉ 가을에 부는 바람을 줄여서 흔히 갈바람이라고 부릅니다.
선선하고 서늘한 가을바람을 그렇게 부르지만 농부나 어부들이 가을의 서풍을 부르는 ‘하늬바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노래로 등장하는 ‘갈바람’은 올해 데뷔 40년이 된 이선희가 데뷔 이듬해인 1985년 2집 앨범에 담았던 곡입니다.
노래 속 갈바람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남겨놓고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회사 운영과 관련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되면서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 역시 전유진의 풋풋한 가을 감성으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JluOy7r3KfI?si=lRhb11a5MXxmGHyI
◉ 농부나 어부들이 가을에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하늬바람이라고 부릅니다.
‘하늬’라는 순수 우리말 자체가 서풍을 의미합니다.
습하고 무더운 동남풍인 ‘된마바람과 상대되는 바람이 하늬바람입니다.
상쾌한 가을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농촌에서는 풍년을 어촌에서는 풍어를 가져오는 기분 좋은 바람이기도 합니다.
◉ 추석을 앞두고 풍년을 부르는 노래 ‘하늬바람’을 불러옵니다.
2019년 미스트롯 입상자인 정다경입니다.
신명 나는 연주에 국악기들이 등장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퍼포먼스까지 등장하는 밝은 무대입니다.
맛깔스러운 정다경의 보컬이 더욱 흥을 돋웁니다.
https://youtu.be/Ucq-HKzajQ8?si=E8LL22fad2WZ-G9I
◉ 올해 미스트롯에서 우승한 10대 정서주의 바람 노래로 마무리합니다.
올해 미스트롯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노래 ‘바람 바람아’입니다.
상처받은 이 땅의 모든 이들을 감싸고 싶은 마음을 담아 불렀다는 열여섯 살 소녀의 노래입니다.
이 신곡 미션에서 정서주는 알고보니혼수상태가 만든 이 노래로 압도적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미스트롯 3에서도 최종 우승했습니다.
심사위원을 포함한 모든 이를 감동하게 만든 정서주의 무대를 ‘ 다시 불러옵니다.
https://youtu.be/oknxL2km_A8?si=TVsUkuDKnm--psrA
◉ 폭염 수준의 늦더위가 끈질기게 버티고 있습니다.
역대급 9월 더위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래서 소슬바람도 하늬바람도 갈바람도 아직은 실종 상태입니다.
내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면 늦더위가 한풀 꺾일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 기대와 달리 추석 연휴 초반에도 무더위가 쉽게 물러가지 않을 전망입니다.
하지만 아침저녁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니 늦었지만 가을 기운이 퍼지고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을 기다려 봅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