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
[골로새서 3:12~1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 고둥 껍데기를 집 삼아 살아가는 소라게가 있습니다.
집게라고도 불리는데, 세계적으로 소라게는 백여 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은 날 때부터 자기 껍데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소라게가 있습니다.
집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집을 못 가진 놈은 자기 눈에 들어오는 껍데기가 보이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제 집처럼 삽니다.
기어 다니다가 빈 소라껍질 가운데 하나를 고른 다음에, 집게발을 벌려 그 소라껍데기 입구를 재어 봅니다.
재어 보고는 그 집이 자기 몸에 맞겠구나 하면 배부터 밀어 넣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삽니다.
살다가 나중에 소라가 몸이 커져 불편하게 되거나 살다가 좀 싫증이 나면 금방 껍데기를 획 벗어버리고
다른 소라 껍데기를 찾아 나섭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들어가 살다가 싫으면 또 집어 던집니다.
이것이 소라게의 생활 습성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나에게도 혹시 이런 소라게 습성이 있지는 않나요?
주일에는 교회에 뒤집어 쓰고 갈 수 있는 껍데기를 쓰고 예수님을 믿는 행세를 하다가
주일이 지나면 세상에서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세속의 껍데기를 씁니다.
세속의 껍데기가 그를 가려서 주변 사람들조차 그가 그리스도인인지 모릅니다.
힘들 때는 점집을 기웃거리고, 재미로 오늘의 운세를 보고 사주팔자를 보고 손 없는 이사날짜를 잡고..
세상 사람들처럼 초등학문에 휩싸여 살아갑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틸리히 교수는 현재 기성교인 중에 10%는 이미 죽었고
80%는 잠들어 있고
오직 10%만이 살아서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알렌 교수는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25%는 기도를 드려 보지 못했고
35%는 가정에서 성경을 읽는 일이 없고
40%는 하나님의 명령인 십일조 헌금을 안하고 있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으며
75%는 교회에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85%는 전도를 한 명도 못했으나
교인들 100%는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 알곡과 죽정이,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이 밝혀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을 믿는 삶은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천국의 예고편을 누리는 기쁘고 감사한 삶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삶의 고통이나 문제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세상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듯이 그분을 따르는 우리들도 인생의 고난을 경험하거나
통과합니다.
우리는 절대 진리가 없고 상대주의가 진리처럼 득세하며 죄로 뒤집힌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거꾸로 된 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죄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이 곧 말씀입니다.
아담 이후로 불순종한 인생, 뒤집어진 가정 인생 나라를 바로게 세우고 회복시키려면 성령을 통해 주시는 복음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참된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옷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소라게처럼 이옷 저옷 보기 좋고 편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어디든지 다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 현세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 자기 중심보다 하나님 중심으로
마음이 바뀌어야만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 영광 위해 살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분에 어울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은 어떤 것일까?
◆첫째, 옷은 긍휼의 옷입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무시하고 나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닙니다.
남을 세워주고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성품의 옷입니다.
새로운 인간관계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 자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원어로보면 `자비'란 `친절'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친절해야 합니다.
잘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친절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뒤로 하고 세상에 오신 것이 겸손입니다.
마구간에 있는 말 먹이통에서 탄생한 것 또한 겸손 자체였습니다.
거기다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까지 겸손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넷째, 온유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주님은 통치자로 오셨으나 군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강압 대신 온유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온유함은 유약함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의 권리를 양보하는 마음입니다.
◆다섯째, 오래 참음의 옷입니다.
잘못된 것을 오래 참고 다른 사람이 화를 나게 해도 끝까지 보복하거나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세워 가는 귀한 덕목인 것입니다.
◆여섯째, 용납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서로 용납한다는 말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있는 그대로, 그들의 약점과 결함을 그대로 두고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용서가 없으면 교회는 존속될 수가 없습니다.
만일에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말끔히 씻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풍성하신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셨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걸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사람만이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죄로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를 바로 잡는 유일한 길은 피 묻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묵상함으로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혀 참된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고
세상 탓이나 환경 탓하지 말고 내가 먼저 거꾸로 된 세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역할을 하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지금 당장 눈이 보이는 이익 때문에 세속의 껍데기를 쓰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여기 저기 쫓아다니는
세상의 부자가 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길을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소서.
하나님이 자녀에게 친히 주신 특권, 정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게 하시고, 이기심과 우월감을 버리고 겸손하게 낮아짐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를 섬기며, 믿음의 본으로 칭찬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서와 사랑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