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0929. 묵상글 (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 내겐 세라핌 천사가 필요해!. 등 )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5.09.29 04:02
- 내겐 세라핌 천사가 필요해!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하도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악마는 존재한다>는 책을 내셨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천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갖고 묵상코자 합니다.
천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존재인가?
내겐 어떤 존재로 존재하면 좋을까?
내가 천사라면 나는 어떤 천사이면 좋을까?
천사의 존재와 관련해서는 믿으라는 것이 오늘 축일의 의미입니다.
제 생각에 천사는 하느님의 사신이니 하느님을 믿는다면
천사도 믿고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까지 곧 악마도 믿을 수 있습니다.
임금만 해도 사신을 보냅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사신이 있을 수 없겠지만
조금만 지체가 높아도 자기 대신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사신은 천사가 아니라 인사 곧 인간 사절이 되지만
하느님의 경우 우리는 천사 곧 하느님의 사절이라고 하지요.
하느님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부지런한 사랑의 손길을 느낄 것이고
그 손길을 천사로 느끼고 천사의 활약으로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천사에 대한 저의 믿음이고,
천사가 하느님 사랑의 부지런한 손길이라면
악마는 하느님 사랑의 다양한 손길이라는 것이 또한 저의 믿음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악마는 하느님 백성을 파괴하려는 악마가 아니라
욥에게 하느님께서 사탄을 보내셨듯이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악한 영이 아니라 천사지만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이것이 천사와 악마에 대한 저의 믿음이고,
이것은 관념적인 믿음일 뿐 아니라 체험적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정작 나누고픈 것은 천사론을 얘기하기보다
내겐 어떤 천사가 필요하고 나는 어떤 천사가 되고 싶은지 그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 일생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나,
악령과의 전투에서 도움을 주는 미카엘 천사나
어려울 때 도와주는 라파엘 천사의 손길은 이미 많이 체험했습니다.
저는 프란치스코처럼 치품천사(熾品天使) 곧 세라핌 천사 체험이 필요하고,
제가 천사가 된다면 프란치스코처럼 치품 곧 세라핌 천사가 되고 싶습니다.
치품천사란 한자어 뜻 그대로 불타는 사랑의 천사지요.
불태울 사랑이 인간적으로는 사그라드는 지금이
바로 세라핌 천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는 뜻이고,
약하기에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겸손히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세라핌 천사를 제게 보내주소서!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주님과 만남의 여정
“참나의 발견, 천사적 삶”
“내 마음 다하여 주님 기리오리다.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시편138,1)
오늘 가톨릭교회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위 대천사 본명을 가진 모든 형제자매들께 주님의 축복을 빌며 미사봉헌합니다. 우리 베네딕도 수도회는 여기에 더해 모든 거룩한 천사들까지 곁들여 축일로 지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대미를 장식하는 참 기분 좋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끝기도때 마다 위로를 받는 은혜로운 시편구절도 생각납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널 떠받고 가리라.”(시편91,11-12)
천사들은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과 도움의 표현들입니다.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 삶의 여정중 하느님의 천사들의 보호아래 살아왔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세 대천사들에 대한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강론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천사라는 명칭은 본성을 뜻하는 명칭이 아니라 직무를 뜻하는 명칭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이고,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이며,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옛 원수들이 일어날 때 미카엘을 파견하여 그들과 투쟁하게 했습니다. 요한은 묵시록에서 ‘천사 미카엘이 그 용과 싸우게 되었다.’ 증언합니다. 그리고 마리아께는 가브리엘이 파견되고, 라파엘은 치유의 직무를 통해서 토비아의 눈을 열어 주시니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이름에 걸맞는 천사입니다.”
천사들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고유의 사명이 있음을 봅니다. 이런 천사신심도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20세기 대영성가 토마스 머튼 역시 늘 천사상본을 지니고 다녔다 합니다. 참 좋은 공동체를 보면 천사들의 공동체같다는 생각도 들며 착한 형제자매들을 보면 천사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주변에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이런 ‘하느님의 심부름꾼’ 같은 천사같은 분들도 많습니다. 천사들은 누구입니까?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를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을 모시고 시중드는 천사들의 존재입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을 모시고 섬기며 사는 착한 이들은 그대로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받은 천사들임을 깨닫습니다.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중에 예수님의 진면목이 그대로 환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 앞당겨 미사중에 모시는 분, 주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바로 이미 그분 나라에 소속되어 살고 있는 우리들이요 미사전례를 통해 깨닫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 나타나엘의 감동적인 만남이 오늘 복음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이 상징하는바 주님을 늘 간절히 찾는 순수와 열정의 구도자들입니다. 나타나엘의 진면목을 첫눈에 꿰뚫어 보신 주님의 경탄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사람에게 이보다 극찬의 언사는 없습니다. 참으로 진짜 참사람이라는 주님의 인정입니다. 참 구도자, 나타나엘의 내공을 짐작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궁극의 참나의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대화도 감동적입니다. 참사람과 참사람, 참스승과 참제자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나타나엘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처럼, 각자 주님을 공부하고 묵상할 고유의 공간과 시간 마련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보아주지 않아도 낙심은 금물입니다. 주님은 나를 속속들이 아시고 언제나 당신 천사를 통해 나의 배경이, 버팀목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타나엘의 감격에 벅찬 고백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입니다.”
나타나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에, 샘솟는 영감과 활력의 체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1회성 만남이 아니라 평생 주님과 만남의 여정을 통해 참나의 발견과 더불어 주님을 닮아 천사적 삶을 살게 됨을 깨닫습니다. 두 순수한 영혼들의 만남이 점입가경입니다. 주님은 나타나엘에게 놀라운 축복을 예고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창세기의 야곱의 꿈을 연상케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하늘문이자 하늘길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연결하는 사다리이자 계단이자 다리이자 통로이신 예수님은 천사들중의 천사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신 예수님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인간 세상에 내려 오시고 우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이릅니다. 일방소통이나 통행이 아니라 양방향 소통이자 통행입니다. 마침내 야곱의 꿈이 예고한 하느님과의 통교가 이제 믿는 이들에게 항구적인 현실이 된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을 만남으로 참나의 실현에 천사적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부르던 날, 당신은 내게 응답하시고,
내 영혼의 힘을 붇돋아 주셨나이다.”(시편138,3). 아멘.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습니다.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입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존재로서 하는 일이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합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천사들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천사가 있는 것이지, 천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이토록,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주님,
제 마음에 울려오는
하늘의 이야기를 듣게 하소서.
우리 안에 펼쳐놓은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우리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이
당신이 여시는 하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82세 어르신이 담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목사님이 어르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르신은 ‘나는 로마 가톨릭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성당으로 전화했습니다. 어르신이 병자성사를 받고 싶어 하니 신부님이 와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병실에 도착하니 어르신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픈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병실에 있는 딸과 사위를 제게 부탁했습니다. 딸은 어려서는 성당에 잘 다녔고, 청년부 활동도 했는데 지금은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다고 걱정했습니다. 사위도 결혼을 위해서 세례는 받았지만, 요즘은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다고 걱정했습니다. 어르신은 본인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하지만, 딸과 사위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어르신이 웃은 이유는 저를 통해서 딸과 사위가 성당에 다닐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간절함이 있으니, 딸과 사위가 다시금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면서 천사를 보내셨는데 그 천사의 이름이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82세 어르신은 ‘천사’였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비록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도 결코 천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얀 날개가 없어도, 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았어도,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면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천사입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으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지난번 ‘안경 휠체어’를 원하는 형제님 이야기를 전했을 때입니다. 많은 분이 기꺼이 형제님을 위해서 정성을 나누었습니다. 형제님을 위한 스마트 안경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 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명을 지녔습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탄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을 일으켰을 때, ‘누가 감히 하느님처럼 구느냐?’라고 호통을 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교회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교회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권세’, ‘하느님께서 당신을 권세 있는 분으로 드러내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 무엇보다 즈가리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형제들의 생일에 맞추어서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큰형은 9월에 태어나서 미카엘, 작은형은 12월에 태어나서 사도 요한, 동생 수녀님은 10월에 태어나서 프란치스카입니다. 저는 5월에 태어났는데 9월이 축일인 가브리엘로 정해 주셨습니다. 태어난 달의 축일은 아니지만 저는 저의 세례명을 참 좋아합니다. 어릴 때는 ‘가별’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요셉에게 나타나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던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저에게 대천사 가브리엘로 세례명을 정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천사와 같은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프란치스코와 복음!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9월 28일 일요일- 마흔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프란치스칸 증거와 실천
프란치스칸 삶의 방식은 "복음의 정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이 어떻게 해서 프란치스칸 영성의 초석이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는 자신의 공동체를 분명한 의도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작은 형제들의 규칙과 생활은 단순하게 복음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 그가 1209년 무렵 쓰기 시작했던 첫 번째 수도 규칙(공동체 생활을 위한 안내서)은 단순히 신약성서의 구절들을 모아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가 그것을 로마에 보냈을 때, 당시 교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규칙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복음일 뿐입니다." 이 반응에 대해 프란치스코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여러분은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의도한 바입니다! 우리는 복음 이외에 다른 어떤 규칙도 필요 없습니다!"
프란치스칸이 된다는 것은, 프란치스코가 말하듯이, 언제나 "복음의 정수를 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2] 프란치스코는 우리 삶의 목표와 목적이 복음의 정수 혹은 핵심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핵심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것은 참 어려운 것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3]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 설교인 진복팔단을 읽었을 때, 그는 가난해지라는 소명이 자기 삶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되다!"(마태 5,3). 그 이후로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읽으면서 가난을 "다른 모든 덕의 수호자"로 여겼습니다. [4] 다른 덕목들은 미래의 약속으로 천국을 받게 해 주는 반면, '가난'은 바로 지금 하늘 나라를 소유하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현재 시제입니다!
그 결과로, 프란치스칸 영성은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구현된 구체적인 실천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의 삶과 가르침은 복잡한 이념이나 교의적 확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주신 구체적인 지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단순히 설교하거나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단순한 생활 양식. 그의 삶은 마치 예수님의 육화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복음이 육화된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삶 속에서 성령의 현존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영성이 가장 진실하게 드러날 때, 그것은 단순한 말이나 윤리적 규범을 넘어서 삶 그 자체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란치스코의 삶은 단순한 말이나 윤리적 규범이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인간 존재 자체로서 행해지는 복음 실천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것을 내면의 벌거벗겨진 "가난"이라고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순수하고 실천적인 복음의 비전은 수많은 사람에게 교회와 사명을 살아내는 데 있어 새로운 자유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당시 수도 공동체들은 점차 금전적 보상과 부유한 토지 소유라는 물질적 부와 제도적 안정에 얽매이게 되었습니다. 수도회 회원들은 개인적으로 단순한 삶을 살았지만, 공동체적으로는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칸들과 같은 탁발 수도회들은 사명 수행과 돈을 엮는 위험한 결합을 깨뜨린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수도자들)이 단순히 구원을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들도 그렇게 하긴 했지만...), 그들의 존재와 삶 자체가 구원의 증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삶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형제들이 세상에서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서 복음을 살아내면서 예수님의 삶을 본보기로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영성의 핵심—복음의 육화와 성령의 현존을 삶으로 드러내는 길—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프란치스코는 "복음 선포가 특정한 순간이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삶 전체를 통해 항상 이루어져야 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만 말로 행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은 이 말이 언제 어느 때라도 복음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고자 했던 프란치스코의 바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5]
한마디로, 그의 삶은 복음 그 자체였으며, 그 진실함이 수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과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제가 일곱 살 되었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저는 중산층의 삶을 살다가 수피리어 호수 근처에 있는 숲속으로 이사를 가 거기에서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가난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교회에 나간다는 것"이 한적한 숲에서 거니는 것이었고, 또 다른 동료 피조물들과 동등한 존재로서 하느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순간과도 같은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식물들과 동물들과 대화하는 놀라운 감수성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람쥐와의 동행은 외로움과 상처를 치유하는 영적 치료의 통로가 될 정도였습니다!
—Sean K.
References
[1] Francis of Assisi, “The Later Rule” (1223), chap. 1, in Francis of Assisi: Early Documents, vol. 1 (New City Press, 1999), 100.
[2] Thomas of Celano, “The Remembrance of the Desire of a Soul,” chap. 158, in Francis of Assisi: Early Documents, vol. 2 (New City Press, 2000), 380.
[3] Adapted from Richard Rohr, Franciscan Mysticism: I AM That Which I Am Seeking (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2012). Available as MP3 audio download.
[4] From prologue of “Sacred Exchange Between St. Francis and Lady Poverty,” in Francis of Assisi: Early Documents, vol. 1 (New City Press, 1999), 529.
[5] Adapted from Richard Rohr with John Feister, Hope Against Darkness: The Transforming Vision of Saint Francis in an Age of Anxiety (St. Anthony Messenger Press, 2001), 111–112.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Tom Swinnon, untitled (detail), 2019,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낡고 오래된 식탁은 프란치스코의 삶의 방식, 즉 그의 단순성과 겸손함, 그리고 연대로서 살아내는 가난에 대한 겸허한 예언을 상징합니다. 이 식탁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가난한 이들과의 친밀함과 삶의 단순함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숨영성 묵상글
하느님은 더 이상 저~ 하늘 너머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천사"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aggelos에서 유래했으며 "메신저(전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사라는 개념의 성경적 뿌리는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 mal’ak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이와 사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모두에게 적용되었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창세기 32,4-5에 야곱이 "에사우에게 자기보다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지시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심부름꾼'에 해당되는 단어가 바로 이 'mal’ak'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천사를 단순히 신비로운 존재로 보기보다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자(messenger)로 이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천사가 하느님의 뜻을 전하거나 예수님의 탄생, 부활 등 중요한 사건에서 등장하지만,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천사는 하느님의 도구로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연결자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이 인간에게 멀게 느껴질 때, 예를 들어 고난, 침묵, 불확실성을 체험할 때, 사람들은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기 어렵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 천사의 존재가 더 부각되었던 거고요....
사실 이러한 인간의 영적 갈망은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존재론적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은 "내가 누구이며, 하느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구약 성경에서 묵시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이 많은 책인데, 여기서 미카엘과 같은 강력한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후에 "대천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거나 보호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시점부터 천사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질서를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기능과 이름이 천사들에게 붙여지는데, 이는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단순한 하느님의 사자 역할을 넘어서서, 보호자, 인도자, 중재자, 치유자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단지 신학적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대중 신심, 즉 일반 신자들의 기도, 묵상, 전통 속에서 천사들이 실제적이고 친밀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천사 미카엘(의미: 하느님은 힘세시다)은 악을 물리치는 수호자로, 라파엘(의미: 하느님이 치유하신다)은 치유의 천사로, 가브리엘(의미: 하느님과 같은 존재)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역할은 성경뿐 아니라 전승과 신심 안에서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유대교적 천사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신약성경에서도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등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점점 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동했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천사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성모님에게 알려 준 천사 가브리엘은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긴 하지만, 예수님의 강생과 십자가 사건 이후, 하느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분으로 인식되며, 천사들의 역할은 그분의 현존을 강조하는 보조적 위치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천사들의 역할을 역할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더 깊이 추구하려는 영적 진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을 보면 천사들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돕는 존재이지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천사보다 뛰어난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천사들이 중심이 아닌 보조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토전서 13장 1절을 보면 "천사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바오로 사도의 선언이 나오는데, 이는 천사의 웅변조차 사랑이라는 덕목 앞에서는 부차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1장 12절에서 천사들이 복음의 신비를 엿보고 싶어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는 은총과 구원의 깊이를 천사들조차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육화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희생과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함께 계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하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더 이상 저~~~ 하늘 너머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식탁에 앉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우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진리, 이 분명한 현실을 마음에 새기는 것만큼 우리 신앙의 여정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세 대천사들은 우리 마음에 이런 강한 신념이 뿌리내리도록 우리를 위해 하느님 면전에서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있을 겁니다!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확언의 의미인 ‘진실로 진실로’
우리 구원자께서 ‘진실로’[‘아멘’]라는 말을 때로는 한 번, 때로는 두 번씩 사용하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확인해 주고자 하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은 히브리식 어법으로,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너에게 분명히 약속한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너는 분명히 보게 될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분께서는 하늘이 열리는 것과 천사들이 예수님께 시중들기 위하여 오는 것을 감각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말로,진짜로’라고 쓸 수도 있겠지만 ‘진실로’ ['아멘‘]가 여기에 더 잘 맞습니다.
-암모니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어떻께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지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녀와 똑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누구와도 닮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하느님이 누구도 닮지 않았다는 진술은 물론 옳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이 누구의 모습이라도 닮았다는 말이냐? 어떤 모습이 그를 닮을 수 있다는 말이냐?”(이사 40,18). 하느님은 누구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지점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지점에서만 우리는 그분 자신과 같은 본질 속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지점에 이르러, 나 자신을 어떠한 상에도 투영하지 않고, 내 속에서 어떠한 상도 상상하지 않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내던질 때, 비로소 나는 하느님의 적나라한 존재 - 본질 - 속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순수한 본질입니다. 거기에서는 모든 비교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하느님 안으로 옮겨져, 그분과 하나가 되고, 하나의 실체와 하나의 본질과 하나의 본성이 되고, 마침내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477)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2코린 2,6-16
하느님의 지혜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1983년 11월 4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노바 블라흐비첸가 마을에 ‘옥시나 말리야’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 모두 알코올 중독자라서 이 아이가 3살 때부터 대형 개 사육장에서 사람의 보호가 아닌 개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것입니다. 부모의 방치 속에 5년 동안 개 사료를 먹고, 개들의 보살핌으로 살아남았습니다.
1991년, 경찰과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이 아이는 두 발이 아닌 네 발로만 걷고 뛰었으며, 개처럼 짖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늑대 소녀, 개 소녀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 뒤 언어 교육과 사회 적응 훈련을 받았지만, 정상적인 언어 발달에 제한적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유치원생 수준의 언어 수준에 머물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사람들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과 함께 살아야 가능했습니다. 동물과 함께 살면 어떨까요? 또 혼자 살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모두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산다면 어떨까요? 하느님을 닮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를 보내 주십니다. 바로 천사입니다. 이 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세 천사가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입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이 맡은 임무에 따라 이름을 붙입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대천사가 성 미카엘,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이’로 예언의 뜻을 알려주는 대천사가 성 가브리엘, ‘하느님의 치유’로 우리를 살려 주고 안내하는 대천사가 성 라파엘입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거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 거짓 없는 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가 율법과 전통에 충실하고, 마음이 순수하며, 위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천사의 도움으로 우리는 충분히 하느님과 함께하며 하느님을 닮을 수 있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 받는 것, 사랑하는 것, 희망하는 것, 떨리는 것, 사는 것이다. 예술가가 되기 전에 사람이 돼라(오귀스트 로댕).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 박윤식 [big-llight]
■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통로인 천사들 /
교회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천사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는 유권 해석을 굳이 하지 않았다.
더구나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외의 다른 천사 이름은 금하고 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축일도 오늘의 세 대천사 축일과
‘수호천사 기념일’(10월 2일)을 정하여 천사 공경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유일한 통로는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층계이다.
역경에서 하늘나라로 순례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층계를 올라가게 도와주는 존재,
하느님 집에 도달하게 하는 존재가 천사들이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보라, 저 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으로, 거짓이 없는 이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너는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 그에게 또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바르톨로메오라고 전해진다.
그는 필립보를 통해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고,
오로지 예수님 그분 안에서 참된 진리의 길을 발견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의 열두 사도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 삶에서 나의 천사가 되어 내 삶을 바꾸어 준 이는 누굴까?
한편 나는 누구의 천사가 되어 그 이의 삶에 축복이 되는 걸까?
이렇게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 되어 주면,
하늘의 영적인 존재처럼 천사가 될 수 있으리라.
사실 그 각자의 수호천사를 포함해 그 많은 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세 천사,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을 우리는 대천사라고 부른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다르다. ‘하느님의 힘’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대천사가 성 미카엘이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으로 예언의 뜻을 알려 주는 대천사가 성 가브리엘이다.
‘하느님의 치유’로 우리를 살려 주고 안내하는 대천사가 성 라파엘이다.
그들에게 우리를 보살펴 주시도록 전구하여 하늘의 문에 도달하도록 기도하자.
이처럼 지상 여정의 부르심을 수행하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맡기신 임무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
우리도 천사와 같은 삶을 살아가리라.
하느님의 손발이 되고 그분 목소리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분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 현존을 드러낼 때
우리도 천사 같은 이들이 될 게다.
따라서 큰 천사가 아닌 작은 천사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길 바라는 작은 바람을 꼭 가져보자.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바로 그 사다리이시며,
거기를 통하여 하늘의 하느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수도 없이 보게 될 것이란다.
그들은 세상의 이기심과 욕심을 끌어 모아 하느님 앞으로 가져갈 것이며,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우리에게 담뿍 가져준단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는 신앙 고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 박윤식 [big-llight]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야말로 하늘에서는 가장 큰 이/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혼재하고 타 종교관은
어쩌면 우리가 믿는 하느님마저 옹졸하게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분을 그런 편협한 생각이 아닌,
모든 걸 품는 큰마음으로 본다.
큰 건 작은 걸 담기에 그렇다.
예수님 오신 이유는 능력 드러냄이 아닌 우리의 구원이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하신다.
가장 작은 이가 가장 겸손한 이다.
작은 이를 받아들이면, 하느님도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라.”라고 하셨다.
깊은 계곡이 물을 받아들이듯 깊은 겸손이 모든 이를 포용할 수 있는 힘이다.
교만하면 죄를 짓고 그 죄책감을 무마하려고 다른 이를 심판한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단다.
권력 있는 정치인, 돈 많은 이 곁에 많은 이가 모인단다.
반면 힘없는 순진한 이, 돈 없는 이 주위엔 모여드는 이가 별로라나.
그들은 작은 이이기에 이로울 게 없기 때문일 게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야말로 가장 큰 이다.’라신다.
어린이는 사회의 가장 작은 약자였기에
그들을 가까이에서 껴안아야만 보호할 수 있다.
우리는 연약한 어린이를 제대로 그리고 진심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
믿는 이의 공동체는 모두가 평등하고 소중하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다.
어쩜 모든 이들은 저마다 내노라 행세하고픈 욕망을 가진다.
그러나 주님의 공동체는 이런 속물적인 것들을 과감히 털어 버려야 할게다.
그래야만 주님 따라 나설 수가 있다.
사실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독재주의적인 발상에는
과감히 저항할 수 있는 ‘신앙적 용기’가 실은 필요하리라.
우리가 가진 욕망 중 버릴 수 없는 것,
모든 이 내면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권력일 게다.
그러니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이냐?”하고 다투었다는 것은 어쩜 자연스럽다.
예수님께서는 이 권력 욕심 극복 방법을 알려 주신다.
어린이의 단순함이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가치는 지상의 가치와 매우 다르단다.
하늘 나라의 권력은 인간의 속된 계산법을 넘어선다.
그래서 가난과 겸손 속에 자리 잡는 게 하늘 나라가 지닌 권력이라나.
큰 이 되고자 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 축에도 들 수 없음을 꼭 명심하자.
그분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이야말로 가장 큰 이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새겨 두어야할 것은,
가장 작은 이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기가 하는 일을 자랑 삼아 하는 그런 이가 아닌,
남을 위하여 봉사하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겸허한 자세로 일하는 이를 말하리라.
하느님의 일을 한다면서도 우리는 쉽게 사기를 치곤 한다.
우리가 마련한 행사보다 다른 이의 것이 더 성공을 거두게 되면,
마음 한구석 어디 꼭 불편해지기도 하리라.
하느님 일을 하려면 사심 없이 오직 하느님의 그 영광만을 바라봐야 한다.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는 말없이 자기 할 일만 수행하는 이는 어디에나 있다.
어떤 단체든 내색하지 않는 이는 있기 마련이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이다.”
눈앞에만 매달리다보면 아마도 멀리 보지 못하게 되리라.
얕은 강이기에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깊은 강은 언제나 조용히 흐른다.
속 깊은 이는 깊은 강 닮은 이일 게다.
이 땅에 그런 지도자가 많아져야만 한다.
가장 작은 이야말로 가장 큰 이라는 예수님의 그 말씀을, 꼭 깊이 되새기자.
----------------------------------------------------
==========================================================
이하 자료는 추가 안내 자료입니다
==========================================================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 서하
X X X X X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num=8&id=2116401&menu=4770
위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 리스트에서 “서하”를 찿아 들어가세요.
늦게 올라오거나 다음날 또는 게재 아니될 수도 있습니다.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김명겸 요한 신부님.
자신을 알아보는 예수님을
나타나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에 관해
더 큰 일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창세기에 있는 야곱의 꿈 구절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늘에 닿은 층계를 보는 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는 꿈을 꿉니다.
천사들이 향하는 방향은 하늘인데
요한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로 표현됩니다.
그것으로 천사들이 향하는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더 나아가 하느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천사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계신 곳
누가 하느님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천사들의 역할로 요한복음에는 묘사됩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당신께 이끌어 주십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기 위해서
또한 우리를 당신 가까이 이끌기 위해서 노력하십니다.
이것은 서로 가깝게 되기 위해서
그것을 넘어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끌어당김은 사랑하는 관계임을 드러내는데
그 사랑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즉 천사들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려 인간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또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그 이끄심에 우리도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
25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함승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요한 1,47-51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천사’(天使)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로써,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 이 정의에 따르면 예언자들은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릇된 길을 갈 때면 그들이 통회하여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큰 고통과 절망 중에 있을 때에는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모든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분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백옥처럼 희게 만드시리라는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는 성인과 성녀들이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해 우리 모두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과 의지를 전했습니다.
우리도 천사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희고 큰 날개가 없어도, 대단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아도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가르침과 계명을 따르는 진실된 삶으로 이웃 형제 자매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형제를 사랑으로 품어 안으면 됩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는 가르침에 따라 자비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고통과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참된 이웃이 되어주면 됩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가 천사가 되어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다하면, 이 세상과 하느님 나라 사이를 가르는 경계가 사라집니다. 우리의 뜻과 바람이 하느님께로 직접 올라가고, 그분의 뜻과 바람이 우리 마음에 직접 내려와 실현되는 놀라운 기적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나에게 찾아오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다른 이를 찾아가 그에게 천사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내 뜻과 고집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과 순명으로 하느님 뜻을 따른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미카엘’ 천사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활용하여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돌본다면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힘을,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가 될 것입니다.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랑과 정성으로 돌본다면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신 치유의 은총을 전하는 ‘라파엘’ 천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 말씀과 구원의 진리를 머리로 공부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주님께 대한 믿음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말고, 내가 알고 믿는 구원의 진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하느님의 참된 일꾼이 되어야겠습니다.
----------------------------------------------------
================================================
================================================
“아래 1.”은 박 베드로 형제님이 보내주신 자료입니다.
## 공유하신 분께서 강론글이나 묵상글 수합과정에서 과년도의 자료를
사용하신 것도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1. ================================================
♣복음말씀의 향기♣ No4361
9월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
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
**cpbc방송미사**
[살레시오회 이기성 안드레아 신부님 집전]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는 천사들의 도움에 힘입어 하느님께로 나아갈 것입니다!>
부모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머리 둘 곳 없던 아이들의 자상한 아버지요 친구, 천사로 다가갔던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이신 돈보스코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한 형제가 다른 형제를 칭찬할 때, 한 형제가 기회 있을 때 마다 자신의 허물에 대해 다른 형제에게 용서 청할 때, 그 공동체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서로를 향한 천사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천사란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큰 과제입니다.
천사(天使)는 말마디 그래도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심부름꾼입니다. 신구약 성경 몇몇 군데에 천사의 존재와 활동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체로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 개입하실 때 천사는 매개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알려주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인간에게 알려주며, 인간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께 봉사하며,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보호합니다.
홀로 외로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실 것이며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가 천사입니다.
마리아의 삶에 개입한 대천사 가브리엘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든 인류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치유를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미카엘 대천사를 통해 우리는 악을 물리치시는 승리의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결국 천사들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에 충실한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나라와 인간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사다리 역할을 해내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천사들의 도움과 협조에 힘입어 지상에서 천상으로 걸쳐진 사다리를 타고 하느님 곁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는 보다 많은 천사가 필요합니다. 측량할 수 없이 깊은 하느님의 사랑을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천사,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의기소침해 있는 이웃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 무인도처럼 고립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로 다가가는 천사,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언어를 매 순간 사용하는 천사가 필요합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
<왜 우리는 믿는 데도 불안할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세 대천사님들은 각자의 역할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날라다 주는 존재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으로부터 우리를 수호하며 정의를 세우고,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라파엘 대천사는 우리를 치유하고 동반합니다. 이 모든 천사의 역할은 결국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성당에 다니면서도, 왜 여전히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할 때가 많을까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충분히 내려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혹시 우리 마음속에 천사가 내려올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재래식 화장실 밑으로 채변봉투를 떨어뜨린 적이 있습니다. 악취가 진동하는 그곳으로 누가 선뜻 손을 내밀겠습니까? 그곳에 손을 넣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제가 학교에 가서 혼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지저분한 곳으로 손을 내려 채변봉투를 올려주셨습니다. 왜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하셨을까요? 그 채변봉투 안에 '저의 것'이 들어 있었고, 저라는 '소중한 것'이 그 속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속에 저의 것이 없었다면, 아버지는 똥이 있는 곳으로 손을 넣을 필요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은총'의 원리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조각, 곧 그분의 아드님이 없으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으로 은총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당신 아드님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 안에 '하느님의 조각'을 심어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당신의 피가 섞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가 흘려진 곳', 곧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단이 만들어지고, 그 무덤 위로 천사들이 평화와 은총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천사가 우리에게 온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이신 아드님을 우리 마음속에 '무덤'이 되게 하시고 그 속에 묻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ㅂ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천사를 통해 은총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자리에 천사가 앉아 있었다고 요한 복음은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자리에 흰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는 머리맡에 다른 하나는 발치에 있었다." (요한 20,12) 천사는 아무 데나 앉을 수 없습니다. 천사는 오직 하느님의 아드님, 곧 하느님의 가장 소중한 조각이 묻힌 그 거룩한 무덤 위로만 내려와 평화를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가 섞인 곳에 은총이 내린다'는 진리는 우리 시대의 성인,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통해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의사라는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멀리 아프리카 수단 톤즈로 건너간 그는, 한센인들의 고름을 직접 짜주고, 학교를 짓고, 병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의 피와 땀은 톤즈의 메마른 땅과 그곳 주민들의 고통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톤즈 사람들을 품었고, 그들의 삶 속에 자신의 '피'를 깊이 섞었습니다.
그런 이태석 신부님이 암에 걸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수단 톤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스러운 암 투병 중에도 그의 마음은 왜 그곳을 향했을까요? 그는 "우물을 만들러 다시 톤즈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곳, 톤즈에 당신의 피와 땀, 그리고 영혼이 너무나도 많이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당신의 '피가 섞인 무덤'과 같은 자리였고, 그 무덤을 통해 하느님의 평화와 은총이 쏟아져 내리기를 갈망하셨던 것입니다. 가장 깊이 피 흘린 곳에 가장 큰 평화가 임합니다.
우리 안에 이 무덤을 가졌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십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하느님의 조각, 곧 예수님께서 영원히 살아 계시는 '무덤'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무덤만 있으면 될까요? 무덤은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는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자주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그분의 죽음을 묵상하고 그분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 있었고, 무덤을 가장 먼저 찾아갔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마음속 깊이 품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무덤'을 자신 안에 만들었기에, 가장 먼저 평화의 소식과 부활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상들이 3년 상을 치렀던 것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그 아픔을 품는 것이 효의 도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평화를 얻고 싶다면, 우리 안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무덤'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 무덤을 만들 수 있을까요? 바로 십자가의 길이나 비르짓다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 15기도 등을 매일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분의 고통을 내 마음의 무덤에 새길 때, 우리는 그분의 피에 동참하고 그분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무덤을 만드는 이는 그 무덤 위로 평화의 천사들이 내려와 항상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82세 어르신이 담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목사님이 어르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르신은 ‘나는 로마 가톨릭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성당으로 전화했습니다. 어르신이 병자성사를 받고 싶어 하니 신부님이 와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병실에 도착하니 어르신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픈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병실에 있는 딸과 사위를 제게 부탁했습니다. 딸은 어려서는 성당에 잘 다녔고, 청년부 활동도 했는데 지금은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다고 걱정했습니다. 사위도 결혼을 위해서 세례는 받았지만, 요즘은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다고 걱정했습니다. 어르신은 본인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하지만, 딸과 사위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어르신이 웃은 이유는 저를 통해서 딸과 사위가 성당에 다닐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간절함이 있으니, 딸과 사위가 다시금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면서 천사를 보내셨는데 그 천사의 이름이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82세 어르신은 ‘천사’였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비록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도 결코 천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얀 날개가 없어도, 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았어도,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면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천사입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으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지난번 ‘안경 휠체어’를 원하는 형제님 이야기를 전했을 때입니다. 많은 분이 기꺼이 형제님을 위해서 정성을 나누었습니다. 형제님을 위한 스마트 안경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 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명을 지녔습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탄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을 일으켰을 때, ‘누가 감히 하느님처럼 구느냐?’라고 호통을 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교회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교회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권세’, ‘하느님께서 당신을 권세 있는 분으로 드러내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 무엇보다 즈가리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형제들의 생일에 맞추어서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큰형은 9월에 태어나서 미카엘, 작은형은 12월에 태어나서 사도 요한, 동생 수녀님은 10월에 태어나서 프란치스카입니다. 저는 5월에 태어났는데 9월이 축일인 가브리엘로 정해 주셨습니다. 태어난 달의 축일은 아니지만 저는 저의 세례명을 참 좋아합니다. 어릴 때는 ‘가별’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요셉에게 나타나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던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저에게 대천사 가브리엘로 세례명을 정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천사와 같은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성 바오로수도회 김태훈 리푸죠 신부님]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예고하신 대로 고난과 죽음을 겪으실 것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향한 여정이기에 슬프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루카 9,51)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건너가실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기에 희망에 차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 계획 안에서 이 죽음과 영광이, 그때가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신뢰에 차 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운명을 느끼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습니]다”(9,51). 이 구절을 굳이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글자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기로) 얼굴을 고정하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 얼굴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을 보시지 않고 하느님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명만을 보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히브리 말 표현이고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고통받는 주님의 종의(이사 53장 참조) 모습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50,7)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한 덕분에 당신의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주님의 종의 모습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예수님 마음속 숨겨진 힘을 우리에게 밝히 드러냅니다. 그분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9월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복음: 요한 1,47-51: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1. 천사와 하느님의 섭리
천사란 누구인가?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angelus Dei)이자,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능력을 수행하는 영적 존재이다. 히브 1,14는 “모든 천사는 봉사하는 영이요, 구원받을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이들”이라 기록한다. 성경에서 천사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영적 존재이다. 이러한 묘사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표현이다.
2. 세 천사의 역할
미카엘(Michael):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천상 군대의 장수이자 악의 세력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보호자, 구약(다니엘 10,13; 12,1)과 신약(묵시록 12,7)에서 악과 싸우는 임무를 수행한다.
가브리엘(Gabriel): “하느님의 힘”, 다니엘서 환시 해석자, 세례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을 알린 천사, 하느님의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명 수행한다. 라파엘(Raphael): “하느님의 치유”, 토비트서에서 토비트를 돕고 그의 눈을 치료한 천사, 시각장애인과 여행자를 위한 수호천사로 공경한다.
3. 신학적 의미
천사들은 하느님을 섬기지만, 그 존재의 목적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 이렇게 말한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도로서, 인간에게 신적 섭리를 알리는 존재이다: Angeli Dei ministerii sunt, hominibus divinam providentiam indicantes.” 복음 속 나타나엘은 예수님께서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 1,47)라고 칭찬하신 것처럼,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이 참된 신앙의 표지이다. 인간은 천사처럼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뜻을 전달할 수 있다.
인간은 천사의 삶을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인간이 신적 활동을 모방하면 천사적 존재가 된다: Ὁ ἄνθρωπος ἐὰν τὰ θεῖα ἐνέργειαν μιμηθῇ, ἀγγελικός γίνεται.”라고 하였다.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며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의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4. 삶 속에 적용
나의 삶 속의 천사를 찾아보자. 내 삶을 바꾸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이 나의 천사였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천사의 도움을 받으며 신앙을 지켜왔다. 이제 나도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야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전하는 천사가 될 수 있다. 천사의 역할은 단순히 영적 존재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삶을 통해 이어져 퍼져나간다.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 전달하는 천사가 되어야겠다. 인간이 하느님과 이웃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랑을 전하는 삶이 곧 천사 같은 삶이다. 이는 신앙의 실천적 성숙과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길이다.
5. 묵상 포인트
나는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천사’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묵상하고 실천하며,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는가? 천사적 삶을 모방하며, 나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가?
=====================
[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요한 1,47-51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하늘이 열리고
땅이 품으니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땅까지
하늘을 내리러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하늘까지
땅을 올리러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하늘과 땅을
곱게 이으러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루러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천사의 도움은, 사실은 ‘하느님의 도우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47-51)
1) 미카엘 대천사는 사탄의 군대에 맞서 싸우는 천사 군대의 지휘관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자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떨어졌습니다."(묵시 12,7-9)
천사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전쟁은 사실은 ‘만군의 주님’이신 하느님과 사탄 사이의 전쟁이기 때문에, 그 전쟁은 처음부터 천사 군대의 승리로, 즉 하느님의 승리로 끝나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전쟁입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묵시 12,10)
미카엘 대천사와 천사들에게 주어진 강력한 무기는 바로 하느님의 권능과 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권능’과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가브리엘 대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천사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 1,19-20)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전하라고 시키신 말만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서 ‘내 말’은 천사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혀’와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가 되면 이루어질’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또 단 한 마디도 ‘빈말’이 없는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3) 라파엘 대천사는 ‘수호천사’와 비슷한데, 사람들을 도와주고 보살피는 일을 합니다. “자 이제 보라, 너와 사라가 기도할 때에 너희의 기도를 영광스러운 주님 앞으로 전해 드린 이가 바로 나다. 네가 죽은 이들을 묻어 줄 때에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네가 주저하지 않고 잔치 음식을 놓아둔 채 일어나 가서 죽은 이를 매장해 줄 때, 너를 시험하도록 파견된 자도 나였다. 또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견하시어 너와 네 며느리 사라를 고쳐 주게 하셨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토빗 12,12-15)
라파엘 대천사는, 자기가 한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그것은 내 호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날마다 그분을 찬미하고 찬송하여라."(토빗 12,18)
천사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은, 사실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와주고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축일입니다.
4) 그런데 천사의 직무가 항상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하나로 합쳐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이 좋은 예입니다.
“나의 주님이시고 또 내가 섬기는 하느님의 천사가 지난밤에 나에게 와서, ‘바오로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황제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도 너에게 맡기셨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천사가 나에게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사도 27,23-25)
천사가 한 말은, 세 천사의 직무가 합쳐져 있는 말입니다. 단순히 하느님의 뜻만 전한 말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와 일행이 폭풍우나 박해로 죽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임무를 마지막까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켜 주겠다는 약속이고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천사를 통해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천사>
천사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파견된 일꾼입니다. 히브리서1장 14절에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써,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하고 적고 있습니다.
천사란 말은 그들의 정체나 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직무와 사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될 때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아브라함은 길손을 대접하다 천사를 만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창세 18장)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기도 응답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다니 8,17) 토비트는 라파엘 대천사를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의 축복을 누렸습니다.(토빗 11,4-13) 구약에서 천사론이 전개되는데 하느님의 아들, 거룩한 자, 수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수한 영적존재로 나타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루카1,28),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도(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루가2장1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때 천사들이“하느님께 영광”이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할 것도 알려주고(마태 12,13)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르1,13) 또한 흰옷을 입고 부활을 알려주었으며(마르 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묵시 22,6)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 천사들이 영적인 실체라고 가르칩니다.(1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고 선한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은 성경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바지한다는 것은 성경과 교회 정통 가르침에 근거한 교회의 신앙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우선 길을 인도하고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과 동행하는 천사입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시편 91,11)
마태복음은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 18,10) 하고 각자에게 배속된 천사를 언급합니다.
결국, 천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사에 대한 의식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언자와 율법학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알려졌지만, 이제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 교리교사를 통해 예수님의 계시 진리가 좀 더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천사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천사는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성 바실리오는 말합니다. “모든 신자 곁에는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보호자이자 목자인 천사가 있습니다.” 각 사람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사는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이웃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천사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이미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우리 눈에 부족하게 보인다 해도, 지금 우리의 일상이 천상의 영광과 기쁨을 만날 자리입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견줄 수 있느냐?'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만군의 주님 사령관으로 악마를 물리치는 대천사 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영웅’,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 ‘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 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
[대구대교구 강수원 베드로 신부님]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천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사두가이들)과 인정하는 이들 (바리사이들, 에세네파)로 나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자리에서 천사의 존재와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세 대천사 축일에 오늘 복음을 봉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 하시자 곧바로 그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 고백합니다. 당시 라삐들은 후기 유다이즘에서 선악과나무와 동일시되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자주 성경과 율법을 연구하였는데, 나타나엘은 그동안 간절히 진리를 찾고 구원을 열망해 온 자신의 내적 투쟁을 예수님께서 꿰뚫어 보셨기에 온전히 승복하여 그분을 메시아라고 고백한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나선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더 큰 일”, 곧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가 선포한 “사람의 아들”에 관한 계시의 실현을 몸소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조 야곱이 꿈에서 보았던 대로 천상과 지상이 이어진 세상(창세 28,10-17 참조), 곧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통하여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가 온전히 완성되는 세상을 직접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작은 믿음은 그분 곁에 머무르며 보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점점 더 큰 믿음과 확신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도 그분께 눈과 마음을 두고 그분 곁에 충실히 머무를 수 있도록, 오늘은 특별히 대천사들에게 전구를 청합시다.
=====================
[작은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대천사 축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감지>합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천사는 하느님과 사람을 잇는 메신저입니다. 당신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하느님께서 뽑아 파견하신 존재가 천사지요.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조 야곱도 형 에사우를 피해 달아나던 길에 천사가 하늘까지 닿은 층계를 오르내리는 꿈을 꾸고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며 염려하고 도와주신다는 표지입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다니 7,10)
다니엘 예언자는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천상 옥좌와 마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을 환시로 봅니다. 옥좌에 앉으신 분, 옥좌에서 강물처럼 뿜어 나오는 불길, 그리고 그분을 둘러싼 이들,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진 사람의 아들... 인간이 상상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엄위롭고 영화로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지요.
천사는 하느님 곁에서 시중들며 그분을 모시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전제주의 국가의 군주와 노예들 간의 관계를 떠올리면 곤란합니다. 천사들은 사랑 때문에 하느님 곁에 머무르며 그분을 모시는 존재들이니까요.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입당송)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따르는 모든 신하들아."(복음 환호송)
천사들은 그분께서 원하시면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 세상에 그분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그분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지요. 또 그분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때로는 힘센 용사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주님 군대의 용사로서 그분의 뜻을 이룬 천사들이 등장하지요.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영성체송)
천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더 친밀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우리는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비록 여전히 지상 순례 여정 안에 있어도 천사들처럼 주님 곁에 머물러 그분을 섬기고 모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과 한 목소리로 그분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리지요. 지상의 우리와 천상의 천사들이 함께 올려드리는 찬미의 하모니가 얼마나 아름다울런지요!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 세속과 재물과 관계에 치여 허덕허덕 살아가면서도 천사들처럼 주님과 가까울 수 있는 방법이 곧 말씀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매일 하고 있는 거룩한 일이지요. 부족하나마 있는 힘껏 듣고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말씀이 나날이 우리를 천사처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변모된 우리를 누군가를 위해 천사처럼 쓰실지도 모릅니다. 당신 뜻을 담아 누군가에게 파견하시고 그를 위해 당신의 사랑이 되어 주라고요. 천상의 천사들과 성인들, 이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모두 하느님과의 사랑을 위해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분과 일치하고, 주님 향한 찬미와 감사를 잊지 않는 영혼으로 살아가도록 대천사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천사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1983년 11월 4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노바 블라흐비첸가 마을에 ‘옥시나 말리야’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 모두 알코올 중독자라서 이 아이가 3살 때부터 대형 개 사육장에서 사람의 보호가 아닌 개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것입니다. 부모의 방치 속에 5년 동안 개 사료를 먹고, 개들의 보살핌으로 살아남았습니다.
1991년, 경찰과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이 아이는 두 발이 아닌 네 발로만 걷고 뛰었으며, 개처럼 짖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늑대 소녀, 개 소녀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 뒤 언어 교육과 사회 적응 훈련을 받았지만, 정상적인 언어 발달에 제한적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유치원생 수준의 언어 수준에 머물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사람들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과 함께 살아야 가능했습니다. 동물과 함께 살면 어떨까요? 또 혼자 살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모두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산다면 어떨까요? 하느님을 닮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를 보내 주십니다. 바로 천사입니다. 이 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세 천사가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입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이 맡은 임무에 따라 이름을 붙입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대천사가 성 미카엘,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이’로 예언의 뜻을 알려주는 대천사가 성 가브리엘, ‘하느님의 치유’로 우리를 살려 주고 안내하는 대천사가 성 라파엘입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거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 거짓 없는 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가 율법과 전통에 충실하고, 마음이 순수하며, 위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천사의 도움으로 우리는 충분히 하느님과 함께하며 하느님을 닮을 수 있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습니다.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입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 존재로서 하는 일이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합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천사들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천사가 있는 것이지, 천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이토록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아멘.
--------------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주님,
제 마음에 울려오는 하늘의 이야기를 듣게 하소서.
우리 안에 펼쳐놓은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우리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이 당신이 여시는 하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주님과 만남의 여정>
-참나의 발견, 천사적 삶-
“내 마음 다하여 주님 기리오리다.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시편 138,1)
오늘 가톨릭교회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위 대천사 본명을 가진 모든 형제자매들께 주님의 축복을 빌며 미사봉헌합니다. 우리 베네딕도 수도회는 여기에 더해 모든 거룩한 천사들까지 곁들여 축일로 지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대미를 장식하는 참 기분 좋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끝기도때 마다 위로를 받는 은혜로운 시편구절도 생각납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널 떠받고 가리라.”(시편 91,11-12)
천사들은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과 도움의 표현들입니다.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 삶의 여정중 하느님의 천사들의 보호아래 살아왔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세 대천사들에 대한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강론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천사라는 명칭은 본성을 뜻하는 명칭이 아니라 직무를 뜻하는 명칭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이고,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이며,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옛 원수들이 일어날 때 미카엘을 파견하여 그들과 투쟁하게 했습니다. 요한은 묵시록에서 ‘천사 미카엘이 그 용과 싸우게 되었다.’ 증언합니다. 그리고 마리아께는 가브리엘이 파견되고, 라파엘은 치유의 직무를 통해서 토비아의 눈을 열어 주시니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이름에 걸맞는 천사입니다.”
천사들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고유의 사명이 있음을 봅니다. 이런 천사신심도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20세기 대영성가 토마스 머튼 역시 늘 천사상본을 지니고 다녔다 합니다. 참 좋은 공동체를 보면 천사들의 공동체같다는 생각도 들며 착한 형제자매들을 보면 천사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주변에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이런 ‘하느님의 심부름꾼’ 같은 천사같은 분들도 많습니다. 천사들은 누구입니까?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를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을 모시고 시중드는 천사들의 존재입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을 모시고 섬기며 사는 착한 이들은 그대로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받은 천사들임을 깨닫습니다.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중에 예수님의 진면목이 그대로 환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 앞당겨 미사중에 모시는 분, 주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바로 이미 그분 나라에 소속되어 살고 있는 우리들이요 미사전례를 통해 깨닫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 나타나엘의 감동적인 만남이 오늘 복음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이 상징하는바 주님을 늘 간절히 찾는 순수와 열정의 구도자들입니다. 나타나엘의 진면목을 첫눈에 꿰뚫어 보신 주님의 경탄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사람에게 이보다 극찬의 언사는 없습니다. 참으로 진짜 참사람이라는 주님의 인정입니다. 참 구도자, 나타나엘의 내공을 짐작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궁극의 참나의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대화도 감동적입니다. 참사람과 참사람, 참스승과 참제자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나타나엘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처럼, 각자 주님을 공부하고 묵상할 고유의 공간과 시간 마련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보아주지 않아도 낙심은 금물입니다. 주님은 나를 속속들이 아시고 언제나 당신 천사를 통해 나의 배경이, 버팀목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타나엘의 감격에 벅찬 고백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입니다.”
나타나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에, 샘솟는 영감과 활력의 체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1회성 만남이 아니라 평생 주님과 만남의 여정을 통해 참나의 발견과 더불어 주님을 닮아 천사적 삶을 살게 됨을 깨닫습니다. 두 순수한 영혼들의 만남이 점입가경입니다. 주님은 나타나엘에게 놀라운 축복을 예고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창세기의 야곱의 꿈을 연상케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하늘문이자 하늘길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연결하는 사다리이자 계단이자 다리이자 통로이신 예수님은 천사들중의 천사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신 예수님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인간 세상에 내려 오시고 우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이릅니다. 일방소통이나 통행이 아니라 양방향 소통이자 통행입니다. 마침내 야곱의 꿈이 예고한 하느님과의 통교가 이제 믿는 이들에게 항구적인 현실이 된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을 만남으로 참나의 실현에 천사적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부르던 날, 당신은 내게 응답하시고, 내 영혼의 힘을 붇돋아 주셨나이다.”(시편 138,3) 아멘.
=====================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내겐 세라핌 천사가 필요해!>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하도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악마는 존재한다>는 책을 내셨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천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갖고 묵상코자 합니다.
천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존재인가? 내겐 어떤 존재로 존재하면 좋을까? 내가 천사라면 나는 어떤 천사이면 좋을까?
천사의 존재와 관련해서는 믿으라는 것이 오늘 축일의 의미입니다. 제 생각에 천사는 하느님의 사신이니 하느님을 믿는다면 천사도 믿고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까지 곧 악마도 믿을 수 있습니다.
임금만 해도 사신을 보냅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사신이 있을 수 없겠지만 조금만 지체가 높아도 자기 대신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사신은 천사가 아니라 인사 곧 인간 사절이 되지만 하느님의 경우 우리는 천사 곧 하느님의 사절이라고 하지요.
하느님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부지런한 사랑의 손길을 느낄 것이고 그 손길을 천사로 느끼고 천사의 활약으로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천사에 대한 저의 믿음이고, 천사가 하느님 사랑의 부지런한 손길이라면 악마는 하느님 사랑의 다양한 손길이라는 것이 또한 저의 믿음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악마는 하느님 백성을 파괴하려는 악마가 아니라 욥에게 하느님께서 사탄을 보내셨듯이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악한 영이 아니라 천사지만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이것이 천사와 악마에 대한 저의 믿음이고, 이것은 관념적인 믿음일 뿐 아니라 체험적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정작 나누고픈 것은 천사론을 얘기하기보다 내겐 어떤 천사가 필요하고 나는 어떤 천사가 되고 싶은지 그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 일생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나, 악령과의 전투에서 도움을 주는 미카엘 천사나 어려울 때 도와주는 라파엘 천사의 손길은 이미 많이 체험했습니다.
저는 프란치스코처럼 치품천사(熾品天使) 곧 세라핌 천사 체험이 필요하고, 제가 천사가 된다면 프란치스코처럼 치품 곧 세라핌 천사가 되고 싶습니다. 치품천사란 한자어 뜻 그대로 불타는 사랑의 천사지요.
불태울 사랑이 인간적으로는 사그라드는 지금이 바로 세라핌 천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는 뜻이고, 약하기에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겸손히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세라핌 천사를 제게 보내주소서!
=====================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복음 1장 47절)
<천사가 되자!>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 '하느님의 봉사자들'입니다.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천사에 대한 분명한 교리'는,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우리의 감각을 초월한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례력으로 천사를 기념하는 날은 '오늘(9.29)과 10.2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세 대천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을 지닌 천사로서, 악과 맞서 싸우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천사이며, 임종자들의 수호천사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닌 천사로서, 하느님의 전령, 곧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설명해 주는 일을 하는 천사입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고쳐주셨다.'라는 뜻을 지닌 천사로서, 아픈 이들의 수호천사입니다.
나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도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너를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천사! 임종 때 곁에서 지켜주는 천사! 너에게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뜻과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 영적 육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랑으로 함께해 주는 천사!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천사가 될 수 있고, 이런 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복음 1장 47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 쪽으로 다가오는 나타나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창고가 깨끗한 사람'입니다. '마음의 창고 안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천사 같은 사람들이며 천사입니다. 날마다 나를 지켜주고 보호 해주는 천사들에게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어 봅시다!
=====================
|
|
